다시 밝은 불을 켜지 못하는 밴드에 대하여 [Interpol – Maurauder]
다시 밝은 불을 켜지 못하는 밴드에 대하여
“밝은 불을 켜라.”
2000년대 초반에 스트록스가 주도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에서, 위대한 밴드를 꼽으라고 하면 나는 제일 먼저 스트록스를 꼽을 것이다. 스트록스 다음을 꼽아야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인터폴을 꼽을 것이다.
인터폴은 “Turn On The Bright Lights”라는 앨범으로 2002년에 데뷔했다. 그 앨범은 실물 CD 음반으로 산 적도 있고–한때 CD를 모은 적이 있지만, CD를 틀 장비도 없고, 구하기 어려운 CD를 일일이 사는 것도 고역이었던 데다가 무엇보다도 애플 뮤직 스트리밍의 압도적인 데이터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자주 듣는, ‘대체 불가능한 음반’이다. 2집인 “Antics” 또한 좋은 음반으로, 지금도 가끔 듣는 음반이다.
나머지 음반은 잘 듣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작년에 피치포크에서 인터폴의 6집인 “Marauder”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점은 5.6점인가? 그다지 좋은 점수는 아니었지만, 딱히 점수에 연연하는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애플 뮤직에서 재생했다. 그리고 첫 번째 트랙에서 살짝 표정이 굳어졌고, 두 번째 트랙에 가서는 그냥 앨범을 꺼버리고 보관함에서 지워버렸다. ‘이건 내 인터폴이 아냐!’를 외치면서.
허나 시간이 지나면 차차 감정이 추스러지는 법이다. 인터폴의 6집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Marauder”를 재생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이번에는 80년대의 여러 하드코어 펑크 음반과 포스트 펑크 음반들을 접한 다음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큰 부담감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버스 안에서 천천히 가사를 보면서–사실 웬만해서 해외 음악을 들을 때 가사까지 보는 타입은 아니다– 음반을 뜯어가며 들어보자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음반에는 어딘가 부족함이 있었다. 사실, 이 부족함의 근원은 2집 “Antics” 이후의 음반에서 느껴지는 모든 부족함의 근원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인터폴은 2002년에 데뷔해서 2018년에 이르기까지, 16년동안 같은 사운드를 고수하고 있다. 그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두 밴드 모두 자세히 들어본 건 아니지만, 영국의 “엘보우”나 동년배인 “더 내셔널”은 자기들만의 사운드에 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슬로우다이브”같이 예전에 부흥했던 밴드가 그때 그 시절 유행했던 사운드를 들고와서 좋은 평가를 받는 레트로 마니아들의 시대다. 작년에 슬로우다이브의 셀프 타이틀 음반이 나왔을 때 피치포크는 물론이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냈던가.
그런 점에서 인터폴이 16년동안 리버브 먹인, 80년대의 “카멜레온”과 비슷한 음반을 찍어낸다고 해서 그렇게 비난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런 사운드를 갈고 닦아서 듣기 좋은 곡을 내면 좋으련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한때 “조이 디비전”의 재림이라고까지 불렸던–솔직히 이 말을 한 게 NME인지 피치포크인지는 모르겠는데 폴 뱅크스랑 이언 커티스랑 목소리 좀 비슷하다고 하이프를 너무 세게 준 것 같다– 밴드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추락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들의 첫 번째 앨범인 “Turn On The Bright Light”도, 어떻게 보면 80년대의 포스트 펑크 사운드를 그들 나름대로 변경한 그다지 다를 것 없는 음반이다. 하지만 이 음반을 들을 때에는 편안했던 감정이, 왜 “Marauder”를 들을 때에는 어딘가 불쾌해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Turn On The Bright Lights”가 왜 위대했는지 먼저 뜯어봐야 할 것이다. 이 음반은 단언컨대 지금도 위대하다. 앞서 ‘나는 팝송을 들을 때 가사를 일일이 외우는 타입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몇몇 음반에 한해서는 다르다. 인터폴의 1집도 그 중 하나에 포함된다. 좋은 음반들은 가사의 전달력과 곡의 만듦새가 뛰어나,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자연스럽게 가사의 내용에 궁금증을 가지게 만든다.
인터폴의 이 기념비적인 첫 음반은 제목과 앨범 커버부터가 의미심장하다. 극장에 붉은 불이 들어와 있고, 제목은 “밝은 불을 켜라”라는 의미이다. 불을 켜야 한다는 건, 지금 여기가 어둡다는 뜻이다. 인터폴의 1집은 그 제목과 앨범 커버에 담긴 포부 그대로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인터폴이 이 음반에서 주제는 주로 고혹한 사랑과, 어둠, 도시 변두리에 대한 것들이다. 처음 음반을 틀자 마자 나오는 “Untitled”는 리버브를 강하게 먹인 기타로 시작해, “놀라움은 당신이 진정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올 것이다”라며 불길한 징조를 전한다. 그리고 앨범의 실질적 첫 번째 곡인 “Obstacle 1”이 재생될 때 단단한 베이스라인 위에 세워진 날카로운 기타 리프에 놀라게 된다.
그 다음에 재생되는 곡은 “NYC”이다. “지하철은 포르노다, 평원은 쓰레기 더미다.” “하지만 뉴욕은 신경 쓰는가?” 슈게이즈라도 하는 듯이 강한 리버브가 먹힌 기타와 넓게 울려퍼지는 폴 뱅크스의 목소리는 뉴욕의 풍경을 환등기처럼 묘사한다.
“Stella Was a Diver and She Was Always Down”도 잊을 수 없는 곡이다. 이 곡은 바닥 없이 가라앉는 한 여성을 그린 노래이다. 이런 곡은 우리를 계속해서 침잠하게 만든다. 한편 “Roland”는 이웃집 살인마를 노래하는, 소위 말하는 ‘달리는 곡’으로, ‘그가 내 안에서 자라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끝난다.
인터폴은 이렇듯 1집에서는 도시의 어둠과 고혹함, 악을 노래해 왔다. 그랬던 밴드가 2집에서는 조금 더 밝은 분위기로 선회한다. 물론 “Evil”같은 곡에서는 섹시한 베이스라인과 함께 악의 유혹을 형상화한 가사로 청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런가 하면 “Nrac”과 같은 곡에서는 아찔함을 가진 사랑을 노래한다. 이 음반의 가사를 아쉽게도 일일이 다 외우고 있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들이다. 이 음반의 곡들은 대부분 들을 만하다.
그러나 그 동안 인터폴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우선 베이시스트였던 카를로스 덴즐러가 4집 이후로 탈퇴했다. 인터폴의 ‘망작’이라 불리는 4집에서도–사실 4집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의 베이스라인은 돋보인다. 그가 탈퇴한 후 발매된 5집 “El Pintor”는 2집의 “Evil”처럼 캐치하고 섹시한 베이스라인이 드러나는 곡이 없다고 감히 말해도 무방하다.
인터폴의 6집 “Marauder”는 기존의 앨범처럼 고혹한 사랑을 노래하는 트랙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버린 모습을 보인다. 싱글 중 하나인 “Rover”는 잘못된 곳에 다다른 방랑자를 노래하지만, 이 방향성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상황밖에 들지 않는다. 신나는 리듬은 가사와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이 곡이 싱글인 점이 굉장히 의문스럽다.
“Mountain Child” 같은 곡은 산의 아이를 유혹하는 곡인데, 마치 화자의 어린 시절을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인터폴의 곡들이 보통 그렇듯이 가사는 난해하게 꼬여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으로 내면으로 침잠한 것인지 알기는 힘들다.
사랑 노래와 내면으로의 침잠. 컨셉만 두고 보면 나쁘지 않은 음반이다. 하지만 이 음반은 불만족스럽다. 그들의 불세출의 명작인 “Turn On The Bright Lights”와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 답은 그들의 사운드적인 문제에 있다.
그들은 말했다시피 16년동안 똑같은 사운드를 고수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껍데기를 유지하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그 알맹이를 가다듬는 방법은 잊어버렸다. 곡의 컨셉과 사운드를 일치시키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들의 첫 작품 “Turn On The Bright Lights”는 도시의 풍경을 리버브를 잔뜩 먹인 포스트 펑크 사운드를 통해 환등기처럼 꾸며낸다. 하지만 “Marauder”는 어딘가 성급하다. 전자는 침묵해야 할 때 조용하고, 달려야 할 때 달릴 줄 아는 음반이었지만 후자는 포스트 펑크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리버브 먹인 기타는 공허하게 반복되고, 자아에 침잠해야 할 때 곡은 달린다. 그나마 사랑에 관한 노래는 들을 만하다.
사실, 인터폴과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대부분의 밴드는 해체하거나 포스트 펑크 사운드를 버렸다. 스트록스는 레트로 사운드를 도입한 채 6집을 내는 걸 미루고 있고, 악틱 몽키스는 울렁거리는 그루브가 있는 독특한 사이키델릭 사운드로 갈아탔다. 호러스는 마치 역사의 일부분을 보여주듯이 개러지 록, 고스 록을 거쳐 슈게이즈로 발을 뻗고 있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 펑크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인터폴이 그렇게 나쁜 밴드라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해체하거나 소식이 없는 다른 밴드들과는 달리 지금도 새로운 음반을 내며 활동해주고 있지 않은가.
인터폴의 팬이 아닌 다음에야 선뜻 추천하기 힘든 음반이지만, 그래도 추천할 만한 곡들은 여럿 있다. 첫 번째 트랙이자 싱글이기도 한 “If You Really Love Nothing”이 들을 만하다.
인터폴이 다시금 “밝은 불을 켤” 기회가 돌아올 거라고 보기는 솔직히 힘든 상황이다. 소위 ‘퇴물 밴드’라고 해도 될 정도다. 하지만 그래도 이 밴드가 좋은 걸 어떡하나. 좋아하는 밴드가 여전히 활동해주고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다시 다음 음반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