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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만으로 소설을 쓸 수 있었나?

글쓴이: stelo, 17년 2월, 댓글3, 읽음: 169

리뷰를 쓰던 Stelo입니다.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리뷰를 쉬고 추리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가을님이 쓰신 글을 읽으니…  “소설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더군요.

저는 뭔가 시작하기 전에 이론부터 찾아봅니다. 설명서부터 보는 스타일이라 할까요. 3년 전에 TRPG와 소설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각종 비평서와 작법서, 연기 이론, 심리학, 글쓰기 연구서들을 50권 넘게 읽어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결국 ‘이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는 소설을 쓰지 못했거든요. 쓰다보면 “이건 별로”라고 생각만 들었습니다. 객관적으로도 형편 없었죠. 딱 3편 완성했는데 어디 보여주기가 부끄럽더군요. 어영부영하다가 소설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TRPG는 3년 동안 꽤 잘하게 되었어요. TRPG는 마스터와 플레이어가 함께 이야기를 만드는 게임입니다. 마스터는 괴물이나, NPC를 맡아서 플레이하고, 이야기 줄거리를 짭니다. 악역 배우 겸 연출자입니다. 저는 이제 플롯도 짤 수 있고, 묘사도 그럴듯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직접 말하기엔 그렇지만 “갓 마스터”라는 말을 들을 정도니까요.

그러면 소설과 TRPG는 무엇이 달랐을까요? TRPG에 재능이 있어서는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TRPG도 못했거든요. 이론은 다 아는데 실전은 엉망이었어요. “지루하”고 “노잼”이었죠.

하지만 그 뒤에는 꼭 피드백을 했습니다. TRPG를 하고 나면 다 같이 피드백을 하는 게 관례거든요. 저는 제 단점을 어떻게 고칠지 계속 고민했어요. 물론 이론도 도움이 되었죠. 책을 다시 읽다보면 “이게 그 뜻이었구나!”하고 깨닫는 순간이 여러 번 왔습니다. 경험이 필요했던 거죠.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3년 전에 저랑 같이 입문한 분들이 저에게 조언을 부탁하시더라고요. 노력은 똑같이 하셨지요. 이론을 모르는 것도 아니셨어요. 그런데 실제 플레이에만 들어가시면 뭔가 부족했던 거죠. 저는 궁금했습니다.

“나랑 그 분들에게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 왜 누군가는 더 빨리 배울까?”

저는 그런 분들을 수십 분 만나서 상담을했습니다. 문제는 다 달랐어요. 소재가 진부한 분도 있고, 이야기가 막히는 분도 있죠. 그런데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론을 기계적으로 따른다는 거죠.

예를 들어 [던전월드]라는 TRPG에서는 “모든 인물에게 이름을 주라”고 해요. 마스터분들은 모든 캐릭터에게 이름을 줍니다. ‘찰스’ ‘라이언’ ‘갈라디르’… 그게 전부였죠. 하지만 이 말은 인물을 생동감 있게 만들라는 뜻이거든요. 이러면 마스터들은 또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인물을 생생하게 만들어야지.” 하지만 그런다고 인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질리가 있나요. 그러면 우리 모두가 스티븐 킹이겠죠.

스티븐 킹은 그러면 어떻게 다를까요? 스티븐 킹이 쓴 [유혹하는 글쓰기]를 보면 딱히 특별한 비결은 없어보입니다. 오랜 기간 습작을 했고, 많은 책을 읽었죠. “평범한 작품과 한심한 작품들”을 보고 단점을 피하는 법을 배우고, “훌륭한 작품과 위대한 작품”을 보고 목표를 세운다고요. 다독 다작 다상량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우리는 다들 딱 그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스티븐 킹이 쓴 소설을 읽어보세요. 진짜 현란한 기술skill을 펼쳐보입니다. 인물에게 동기를 주고, 사실적인 배경이 있으며, 그 동기와 배경에 맞는 대사와 행동을 합니다. 모든 인물에게 공감할 수 있지만, 개성이 있죠. 이런 걸 제가 알고 있는 이유는… 제가 이걸 배워서 TRPG에 직접 써먹었기 때문입니다.

스티븐 킹은 최근에 추리 소설에도 도전했습니다. [파인더스 키퍼스]를 읽고 한 편집자분이 트위터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통속적인 기법부터 참신한 기법까지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고요. 스티븐 킹에게 한계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이걸 추상적인 ‘이론’과 진짜 할 줄 아는 능력인 ‘기술’로 구분했습니다. 똑같이 다독 다작을 해도 “이 작가는 인물이 참 생생하네”하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구체적인 기술들을 눈여겨 보고 익힌 사람이 더 많이 배웁니다. 제 예시조차도 너무 추상적입니다. 장면 하나, 문단 하나도 뜯어볼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전문가들에게 “비결을 말해주세요.”하고 물어보면 다들 “다독 다작을 했습니다. 인물을 생동감 있게 만들려 노력합니다.”하고 추상적인 이론으로 퉁칩니다. 전문가들은 설명을 할 때 자기가 쓰는 기술의 3~70%는 빼고 설명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유혹하는 글쓰기]가 막연하고 평범하게 보이는 이유도 그거죠.

결국 우리는 위대한 작가가 하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기술을 찾으려 하면 그 양은 어마어마해집니다. 전문 학자들도 소설은 단편 위주로 분석하죠. 심리학자 게리 클라인은 [인튜이션]에서 추상적인 메뉴얼을 구체적으로 바꾸려 했더니 백과사전 두께가 되었다는 사례를 말합니다. 소설을 쓸 때 백과사전을 뒤질 수는 없겠죠.

답은 직관을 다듬는 겁니다. 저도 TRPG를 하거나, 리뷰를 쓸 때 감으로 합니다. 물론 초보자들에게는 메뉴얼이나 이론이 중요합니다. 지침이 되니까요. 하지만 전문가들에게 메뉴얼대로 하라고 시키면 결과가 형편 없어진다는 연구가 많습니다. (역시 게리 클라인)

대신 플레이가 끝나고 나면 무엇이 좋고 나쁜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정리해봅니다. 피드백을 하는 겁니다. 여러 작법서들도 “뜨겁게 쓰고 차갑게 고치라”는 조언하고 있지요.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좋은 작가는 초고를 빨리 쓰고, 퇴고에 3배 더 많은 시간을 쓴다고 합니다. [작문 교육 연구의 주제와 방법]

 

마지막으로 한 말씀 올리자면… 어떤 좋은 이론이 있어도 결국 실천입니다. 다들 알고 계시겠죠.

당장 제가 좋은 예시입니다. 저는 여러 번 소설을 분석하면서 읽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매번 “인물이 참 생생하네”하고 끝냈습니다. 어떻게 분석을 해도 소설을 직접 쓰면서 적용해보고, 피드백을 하지 않으니… 제자리입니다. 기술을 익히질 못했지요.

하지만 여기서 딱 멈추면 안됩니다. 실천도 기술이거든요.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습관을 들이고, 어떻게 피드백을 할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작가 일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얼마나 썼고, 왜 딴 짓을 했고, 그래서 어떻게 대책을 마련할지 적는 거죠.(웃음)

여러분도 자기만의 실천 기술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저도 중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써보겠습니다. 모두 건필하시길 총총

 

(이 글은 1시간 타이머를 켜놓고 대충 썼습니다. 습작이 귀찮은 작가들은 도피를 하니까요.)

st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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