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2018년 동안 읽은 책의 한줄평 정리합니다.

 

1. 늑대의 문장(김유진)

그로테스크하고 야만적이다. 늑대의 야만이 인간의 야만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건 왜일까.

 

2. 해가 지는 곳으로(최진영)

아포칼립스물. 모든 것이 무너져도 사랑은 있을 것이다.

 

3.수짱의 연애(마스다 미리)

알콩달콩한 연애물을 생각했는데 그러지는 않았다. 연애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에 더 가까운 듯.

 

4. 데미안 (헤르만 헤세)

데미안 캐릭터가 너무 좋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그런 인물. 너무 좋다.

 

5. 소년이 온다 (한강)

1980년 5월 광주. 그리고 그 이후, 죽은 이의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자신의 삶이 장례식이 되어버린 이들의 이야기.

 

6. 3그램 (수신지)

아무리 아파도 삶을 등지지 않는 자의 위로.

 

7.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미친 교육열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존재했구나.

 

8. 딸에 대하여 (김혜진)

“너희가 가족이 될 수 있어? 어떻게 될 수 있어? 너희가 혼인신고를 할 수 있어? 자식을 낳을 수 있어?

엄마 같은 사람들이 못 하게 막고 있다고는 생각 안 해?”

퀴어의 엄마가 바라보는 퀴어. 읽으면서 화도 많이 났지만, 이런 소설이 더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9. 그대의 차가운 손 (한강)

“가끔 나는 발가벗은 채 전신 거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을 때가 있어. 최고급 향수를 바르고, 속옷부터 한 겹 한 겹 최고의 옷을 입지. 가장 훌륭한 화장을 하고, 가장 훌륭한 웃음을 짖지. 내 학력과 경력, 내가 설계한 공간들, 썩 괜찮은 은행 잔고, 그 동안 읽은 책과 잡지, 신문들, 지식과 교양,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인정과 찬사…… 그외의 것은 없어. 그래, 찬사가 아니라면 나는 존재할 수도 없겠지.”

우리는 인간인가? 인간의 형태를 한 껍데기에 불과한가?

 

10. 우울증 탈출ㅡ우울의 터널을 빠져나온 사람들 (다나카 케이이치)

우울한 건 네 잘못이 아니야. 우울해도 괜찮아.

 

11. 눈에서 온 아이 (에오윈 아이비)

광활한 눈밭에 누워 쏟아지는 눈송이들을 천천히 천천히 바라보는 느낌.

 

12. 피터 팬 (제임스 매튜 배리)

피터 팬이 너무 귀엽다. 사랑스러운 것.

 

13.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한강)

“알 만한 나이가 됐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리운 것임을, 수많은 형태의 사랑의 허구를, 환멸의 배면을 알고 있다. 그러나 또한 알고 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을. 그토록 쓸모없고 연약한, 부서지기 쉬운 찰나의 진실, 찰나의 아름다움만이 때로 우리가 가진 전부라는 것을. 심지어 치유의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을.”

한강은 노래도 잘 부르더라. 처연하고 아름답다.

 

14. 현남 오빠에게 (조남주, 최은영, 김성중 등)

“가족을 위해서 자기를 앞세우지 않고, 희생하는 거. 나 좋게 봐.”

“엄만 행복하지 않았어.”

“네 기준에서 봤을 때 그랬겠지. 옛날 분들 살아오신 걸 네 기준으로 판단하는 거지.”

“행복하지 않았다고.”

페미니즘의 다양한 변주. 장르를 넘나드는 페미니즘.

 

15. 밤 열한 시 (황경신)

“나는 아직도 살아 있고, 기어이 살아 있고, 황홀하게 살아 있고, 봄날의 속살처럼 연약하게 살아 있으니, 우리는 사랑을 하자.”

선한 에세이를 보면 기분이 좋다. 운문보다 산문이 더 좋았음.

 

16.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누군가 찾아오면 내가 죽었다 말해달라고 단짝에게 부탁했다. 어떻게 그래,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을. 그러면서도 단짝은 어떻게 죽었다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짝은 나의 사인死因에 골몰한 나머지 몇 날 며칠을 죽음만 생각하며 보냈다. 그리고 방학이 시작될 즈음 내게 언제가 가장 행복하니, 물었다. 노래를 부를 때,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노래를 하다가 죽었다고 할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때 죽으면 가장 불쌍하거든. 좋은 생각이지만 왜 불쌍하게 죽어야 하는데? 단짝은 깜짝 놀랐다. 당연히 불쌍하게 죽어야 하는 것 아니야? 사람이 불쌍하지 않게 죽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

별것 아닌 듯한 사소한 순간을 기민하게 포착해낸다. 그리고 대사 진짜 잘 쓴다. 표제작과 「개를 기다리는 일」이 좋았다. 양희가 너무 좋다.

 

17. 아내들의 학교 (박민정)

초국가적 여성혐오 환상 특급열차. 현 세대의 이슈들을 세련되면서 감각적으로 건드릴 줄 안다. 불편하고 화나지만, 이러한 분노가 이 시대에 필요하다.

 

18. 플레인송 (켄트 하루프)

플레인 맛 요거트처럼 담백하고 맛있다. 평화롭다.

 

19.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선한 사람이 쓴 시는 이렇구나 생각했다.

 

20.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

이 구절이 오래오래 맘속에 남는다.

 

21.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그는 이런 말도 하더군요. 자신은 타인을 설득하는 일에 한 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극장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서 항상 뭔가 말을 걸면, 그 대답으로 세상은 흙을 한 삽 떠서 그의 무덤에 퍼부었다는 거지요. 그래서 자신은 깊이깊이 묻히게 되었다고, 그렇게 말한 다음 그는 염소처럼 매에거리며 길게 웃었습니다.”

기나긴 악몽. 거울로 된 미로. 이것은 벽인가, 거울인가, 길인가, 입구인가, 출구인가? 무엇도 쉽게 분간되지 않지만 그러한 혼돈이 곧 매력이다.

 

22.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무슨 얘기 하고 싶어요?

당신 생각이 어떤지 알고 싶어요.

뭐에 대해서요?

여기 오는 것에 대해서. 이제는 어떤 느낌인지. 여기서 밤을 보내는 게요.

견딜 만하게 됐어요. 이젠 정상으로 느껴져요.

정상, 그뿐이에요?

당신과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는 줄 알아요. 진실을 말해봐요.

진실은, 이게 좋다는 것. 아주 좋다는 것. 이게 사라진다면 아쉬울 거라는 것. 당신은 어떤데요?

아주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요. 좀 신기해요. 여기 깃든 우정이 좋아요. 함께하는 시간이 좋고요. 밤의 어둠속에서 이렇게 함께 있는 것.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잠이 깼을 때 당신이 내 옆에서 숨 쉬는 소리를 듣는 것.

나도 그래요. 그것들 전부.

그러니까 말을 해봐요. 그녀가 말했다.

뭐 특별한 주제가 있어요?

당신에 대해 뭔가 더요.

안 지겨워요?

아직요. 지겨워지면 말할게요.”

인간이 아직 이렇게나 선하구나. 따뜻하구나. 아름답구나.

 

23.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황정은)

황정은의 첫 소설집. 오뚜기처럼 뒤뚱거리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엄청난 농담들을 던진다. 그 농담과 환상을 기꺼이 믿고 싶다.

 

24.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 (요조, 박준, 황인찬 등)

연애하고 싶어졌다. 많이 많이.

 

25. 꽃을 던지고 싶다 (너울)

“나는 열세 살을 살고 있는 서른여덟의 몸을 가진 괴물이 되어 있었지만, 세상은 내 고통과 상관없이 변하고 성장하고 있었다. 오직 나만 25년 전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25년 전의 나를 만나서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네가 도망치지 못했다 하더라도, 설령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더라도, 네가 강간당할 이유는 없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오랫동안 혼자 두어서 미안하다고, 이제야 너를 만나러 왔다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성폭행 생존자의 수기. 괴롭다. 그러나 눈을 돌리고 싶지 않다. 목격하고 싶다. 그들은 분명 존재하니까. 살아 있으니까.

 

26.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정지돈)

파티를 신나게 즐기기는 했지만 끝나고 나면 왠지 허전한.

 

27. 어려운 여자들 (록산 게이)

페미니즘 소설집. 뼈를 때린다. 페미니즘을 이렇게 환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놀랍다.

 

28.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역시 선한 영화를 찍는 사람의 글은 선하구나.

 

29.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은수연)

이건 너무 힘들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괴롭지만, 그래도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된다. 너도 살아남았구나. 말을 할 수 있구나. 살아 있구나.

 

30. 쓸모 없는 하소연 (김민준)

창가에 화분 하나를 두고 빗소리를 들으며 읽고 싶은 책.

 

31. 호두까기 인형 (E.T.A. 호프만)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동화를 읽고 싶으면 추천.

 

32. 헝거 (록산 게이)

어떻게 이렇게 자신이 당한 폭력의 역사를 세세하게 기술할 수 있는 걸까.

 

33. 테러의 시 (김사과)

“새벽처럼 창백하고, 미쳤고, 거품처럼 부풀어 올라 터져 버린 머리를 가진 너를 나는 사랑해.”

제곧내. 좀 미치고 싶을 때 읽으면 좋다.

 

34. 아무도 아닌 (황정은)

“아무도 아닌, 을 사람들은 자꾸 아무것도 아닌, 으로 읽는다.”

쓸쓸하고 다정한 풍경들.

 

35. 여수의 사랑 (한강)

“……아직도 사람이 선해가지고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나?”

네. 저요. 아직 믿고 있어요.

 

36. 영원히 사랑해 (다니엘 글라타우어)

이건 마케팅부를 조져야 한다. 이걸 어떻게 사랑과 집착의 경계선 어쩌구로 포장할 수가 있어. 이건 그냥 스토킹에 가스라이팅에 아우 진짜 개빡치네 마케팅부 죽어라.

 

37.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산뜻하고 다정하다. 읽는 내내 내게 무해한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38. 내 여자의 열매 (한강)

그녀의 환멸과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다. 인간으로부터 탈피하고 식물이 되어버리는 여자의 이야기는 끔찍하면서도 평온함을 안겨준다.

 

39. 이바나 (배수아)

자기가 전혀 모르는 언어를 쓰는 나라에 가서, 빵을 먹고, 잠을 자고, 기나긴 산책을 하며 긴 시간을 보내는 사람. 인생에서 완전히 무용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 나도 이런 여행을 하고싶다.

 

40. 여름, 스피드 (김봉곤)

퀴어소설. 개인적으로 서사가 희미해질수록 더 좋은 것 같다.

 

41. 잔학기 (기리노 나쓰오)

폭력, 그 이후.

 

42. N. E. W. (김사과)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시대에 맞는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새로운 세계에 걸맞는 환상이요.”

너무 재밌다. 몰락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최신식 황무지에서 동거하는 유령의 이야기.

 

43. 와우의 첫 책 (주미경)

“페인트칠하러 왔당께요! 페인트칠하러 왔당께요!”

 

44. 용의 미래 (최양선)

악역은 악역으로 남겨두면 좋았을 텐데.

 

45. 참담한 빛 (백수린)

“그런데 그것이 과연 치유일까요.”

치유는 아름다운 빛이 아니다. 구원이 아니다. 그것은 참담하고, 비극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이다.

 

46. 샤워 (정지원)

바퀴벌레 귀여워.

 

47. 달빛 마신 소녀 (켈리 반힐)

여성서사 판타지는 언제나 옳다.

 

48. 미카엘라 (박에스더)

애들이 다 너무 착해서 김이 빠지긴 하지만 씩씩한 여자주인공 보는 맛이 쏠쏠하다.

 

49. 첫사랑 쟁탈기 (천효정)

오늘날의 초등학생 교실 풍경을 이토록 생생하고 날카롭게 그려내다니.

 

50.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김숨)

위안부 생존자 증언 소설. 생존의 서사를 절대 포르노적으로 소비하지 않는 자의 존엄함.

 

51. 잘 가라, 내 동생 (빌리 슈에즈만)

건강한 애도에 대하여.

 

52. 신의 놀이 (이랑)

이랑은 영화도 잘 만들고 노래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못하는 게 뭐야? 질투난다.

 

레포트는 길게 길게 써야 되는데 한줄평은 그냥 하고 싶은 말만 툭 하면 되니까 좋네요 ㅎㅎㅎㅎ 모두 남은 2018년 평화로이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