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요즘 듣고 있는 교양수업이 참 재미있어요.
매스 커뮤니케이션 수업과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수업인데, 매주 흥미로운 내용으로 알차서 이렇게 다음 수업이 기대되는 강의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중학생 때 심리학에 대한 환상을 품고 심리학 개론 같은 수업을 학원에서 들었을 때 상상한 것보다 훨씬 재미없어서 상처 입었었는데, 그때 입었던 상처가 전부 회복된 기분입니다.
아무튼, 거기서 ‘자기지각 이론’이란 걸 배웠습니다. 요약하자면 “사람은 자신의 행동으로부터 자아를 추론한다”는 이론인데, 예를 들어 플룻 연습을 매일 하는 아이는 스스로 ‘아, 내가 플룻을 좋아하나보다’ 생각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플룻 연습의 동기로 이어지고요. 그러면 부모님은 아이가 대견해서 뭔가 보상을 해주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여기서 “외재적 보상의 위험성”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외재적 보상으로 인해 내재적 동기가 깨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플룻 연습하는 아이의 예시로 돌아가면, 아이가 플룻 연습을 위한 자발적인 동기를 얻은 것은 자신이 플룻 연습을 하는 이유가 그만큼 자신이 플룻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상이 주어지는 순간부터, 아이는 자신이 플룻 연습을 하는 이유가 그 보상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 실제 이론은 훨씬 복잡할 것입니다, 교양 수업이기 때문에 겉핥기 식으로 배우고 넘어갔습니다.)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들고 온 이유는, 문득 저 역시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창작하는 사람은 마치 열차와 같다고 종종 생각해요. 물론 열차에는 그 열차가 사용할 연료도 같이 실리지만, 그것은 금방 소모됩니다. 외부에서 꾸준히 연료를 공급해줘야 열차는 멈추지 않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제 글을 읽어주는 독자분들과 그분들의 반응에서 창작의 동기를 주로 얻습니다. 물론 창작하는 그 자체의 즐거움도 있지만, 그런 내재적인 동기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외부에서 채워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금방 소모될 것입니다. 만약 외부에서 제때 채워주지 못한다면 작가는 동기를 얻기 위해 더욱 자신을 파내겠죠. 그래서 읽히지 않는 작가는 마치 스스로를 태우며 달리는 열차라고 종종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저도 그런 비슷한 상태고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실은 제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 저 스스로가 외재적 보상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처음 소설 쓰기 시작할 때 한 달정도 “하루에 단편 한 편씩 쓰기”를 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나요. 그때 제가 하루에 한 편씩 단편을 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제 의지 덕분이었습니다. 제 단편을 읽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때는 브릿G가 없었으니까 단편을 올릴 마땅한 플랫폼이 없었거든요. 그냥 개인 블로그에 올리고 친구들에게 읽어달라고 빌면 그중 1할 정도가 읽어줍니다. 나쁜 친구들.
확실히 브릿G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창작 동기에 변화가 생겨났던 것 같습니다. 일단 읽어주는 사람이 생겼어요. 그것도 엄청. 초창기라서 그런 건지 운좋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읽어주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고, 그래서 엄청 들떴던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이후로 작품통계의 방문수 읽음수 그래프가 신경쓰여서 거의 1분 간격으로 새로고침 해보고. 브릿G 종소리 언제 울리나 초조해하고. 특히 그때는 별점을 0점부터 10점까지 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별점도 엄청 신경 썼어요. 아무튼 그냥 외재적 보상이 아니라, 수치로 구체화된 외재적 보상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이제 와서 다시 하루에 한 편씩 써보라고 하면 아마 일주일도 못할 겁니다. 확실히 소설을 쓰는 건 즐거워요. 하지만 그것보다 그 소설을 누군가가 읽어줬을 때의 기쁨이 더 커서, 결국 후자를 더 쫓게되는 것 같거든요. 지속적으로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금방 지치고 말 거예요.
찾아보니까 자기결정 이론이란 게 있더라고요. 외재적 동기보다 스스로 결정해서 하는 내재적 동기가 훨씬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실은 더 복잡한 이론이지만 제가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결국 작품통계 같은 눈앞에 보이는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동기를 찾아야 진정한 동기부여가 되나봅니다. 마치 페이스북 좋아요 같은 느낌이네요.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좋아요]를 받으면 받을수록 행복을 느끼지만, 그것이 지속되지 않으면 그만큼의 불행을 느끼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음, 어쩌면 SNS가 동기에 관련된 우리 두뇌 속 사고회로를 단순화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래도 역시 확 와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읽히지 않는 작가는 어디에서 동기를 찾아야 하는 걸까요. 스스로 즐거우면 정말 그걸로 된 걸까요. “글 쓰는 게 즐거워서 쓰는” 단계는 이미 지나쳐버린 게 아닐까요. 갑자기 심란해집니다.
어떻게 끝내야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밤낮이 수시로 바뀌어서 저도 제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당최 알 수 없군요. 원래는 내글홍보 하고 싶었는데 너무 홍보만 하는 것 같아서 수다할거리 찾다가 별 이야기 다 하고 있네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곧 내글홍보도 하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창작하는 여러분들 모두 힘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여러분 화이팅.
세줄요약:
1. 제정신이 아니라 두서없이 길게 썼다.
2. 하지만 우리는 글 쓰고 읽는 사람들이다.
3. 이 정도 긴 글은 그냥 읽어보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