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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소개? 묘지기에 나오는 까마귀가 바로?

분류: 수다, 글쓴이: 나쁜마녀, 18년 10월, 댓글8, 읽음: 71

추수가 끝난 너른 논밭에 황량한 바람이 불었다. 그 논을 가로지르는 개천가 맞은편엔 허리가 휜 큰 느티나무가 서 있다. 이파리 하나 없이 거무죽죽한 나뭇가지만 휘정거린다. 그 밑에서 긴 싸리비로 바닥을 쓸던 나는 잠시 멈춰서 나무를 올려다봤다.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나를 부르는 소리같아 가만히 숨을 죽이고 나무를 본다. 나는 시큰해지는 코끝을 비비고 덥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었다.

문득 저 나무의 열네번째로 굵은 나뭇가지 위에서 그를 처음 보던 날이 기억이 났다.

“드디어 나오는구나! 잘했다. 너의 형제들은 다 알을 까고 나왔는데 너만 나오지 않아 한참 걱정했지 무어냐.”

내가 둥지에서 알을 깨고 나왔을 때 어미의 품보다 서낭신인 후님의 손길이 먼저였다. 크고 보드라운 손이 나를 들어올려 요리조리 움직였을 때엔 세상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젖은 깃이 듬성한 날개를 파득거려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오히려 뒤로 넘어져 두 발이 허공에서 달랑거렸다. 치욕스럽다!

아하하. 청아한 웃음이 허공에 울려퍼지자 둥지를 둘러싼 나무잎새들이 일제히 바람에 흔들렸다.

“고놈, 제 형제보다 한 마디나 작으면서 성깔은 더 있구나!”

까악까악-.

“이크”

지척에서 어미가 울자 그는 어깨를 움츠리며 조심스럽게 나를 둥지에 내려놓았다. 내가 눈만 뜨면, 날개짓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날이 왔다. 내가 눈을 뜨고 날개짓을 열심히 해 뼈를 더욱 튼실히 한 날이. 이날을 위해 형제들 몫의 벌레까지 빼앗아 먹었다. 그는 느티나무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다. 지금이 기회다. 그의 머리위로 날아들어 머리를 쪼아대리라! 둥지를 뛰쳐나왔다. 바람을 타고 올라 그를 향해 고개를 쳐박고 쏜살같이 허공을 갈랐다.

그때 갑자기 옆에있던 나뭇가지가 휘어지며 나를 쳐냈다. 땅바닥에 떨어질때까지 이 가지 저 가지한테 얻어 맞았다. 흙바닥에 뒹굴어 엉엉 울던 나를 보드라운 손길이 얼렀다.

“나무의 눈은 피했어야지. 그래도 시도는 좋았다.”

그 후, 감히 서낭신을 해하려고 한 벌 때문에 백년동안 느티나무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사람으로 변했어도 나무는 모질었다. 그날의 겨울은 어찌나 춥던지… 허허허.

나는 다시 느티나무 밑을 쓸었다. 부는 바람이 매섭다. 후님이 없는 올해는 얼마나 추울런지.

나쁜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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