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분짜리 기묘한 영상 하나 소개합니다.
1977년 영국에서 제작된 26분짜리 영상입니다.
채널의 설명란에 쓰여 있는대로
농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비극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공공보도(공보) 영상이죠.
크게 보면 공공(농장이란 곳에 한정되어 있지만)의 이익을 위한 거니 공익광고라고 해도 됩니다.
그리고 이 영상은 전설이 되었습니다
덜덜덜
26분짜리니 잠시 짬을 내서 보고 오시는게…
영어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마지막 시퀀스의 아이의 대사 밖에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도 영알못입니다 ㅜㅁㅜ)
1. 작중 등장하는 게임 ‘아파치’
다들 아시다시피 ‘아파치’는 인디언(네이티브 아메리칸)의 종족 중 하나를 가리키는 말(맞을 겁니다)로, 그들은 피부가 하얀 개척자들과 싸우다가 결국 패배한 쪽이죠.
그런데 작중 영국인(백인) 아이들이 하는 놀이가 바로, 아파치를 흉내내는 역할극이란 거죠.
추장이 되고 기병대가 되어 모형총을 서로에게 빵야빵야 쏘아가면서요.
그것도 국가의 근간인 동시에 점령 대상이었던 ‘땅’을 일궈 식량을 생산하는 농장에서 말입니다.
2. 아이들
게다가 이 아이들도 무척이나 이상합니다.
인디언 흉내를 내던 자기 친구들이 하나씩 (사망으로) 줄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별다른 감흥이 없는듯 계속 놀이에 열중합니다.
이는 타임라인 속에 점프컷에 해당하는 큰 생략이 있는데,
이걸 제대로 설명하는 컷이나 대사가 없기 때문에
어제 신나게 놀다가 하나가 죽었는데
오늘도 신나게 노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줍니다
(이 부분은 감독의 의도가 분명한데, 식사를 차리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죠)
이 부분을 과거의 비극에 대해서는 돌아보지도 않고 쉬이 잊어버린다는 감독의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요.
3. 아이들의 죽음
농장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아이들은, 환경을 생각지 않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다가 하나씩 사망합니다.
이 공보 영상의 목적(이런 위험성을 알리기 위한)을 충실히 실행하듯이
그 시절 슬래셔 영화에서도 도전하기 힘들었던 ‘순수한 어린 아이들의 죽음’을 대부분 가감없이 보여주는데요
이게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라서 무척이나 끔찍하게 와닿습니다.
특히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비슷한 사고로 사망한 아이들의 숫자를 보는 순간 그 끔찍함은 2배가 됩니다.
그리고 신나게 뛰너놀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죽기 시작하면서,
다음 번 아이들도 당연히 죽게 된다는 예상이 자연스레 떠오르고,
그때부터 불편함이 계속됩니다.
4. 나래이션
작품 전체를 통틀어 무심한 듯한 목소리로 나래이션으로 이끌어 가는 남자아이가 있습니다.
바로 가장 마지막에 죽는 남자 아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이건 일종의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물론 대부분 눈치채실 겁니다)
아이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한 자리에 모인 가족들을 보며 자신도 저 자리에 있고 싶다고 아이 특유의 무심한 어조로 대사를 마무리 하죠.
그렇습니다.
절름발이가 범인이듯이 나래이터가 바로 유령이었습니다. ㄷㄷㄷ
결국 전체적으로 흐르는 왠지모를 부조리한 분위기가 이 영상에 호러의 테이스트를 싹틔워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 (아마도 같은 감독에 의해) 제작된 공보 영상 몇 편도 마찬가지로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는데요
저는 그 중에서 이 아파치들이 가장 묘하더라구요.
아무튼 공공보도를 가장한(?) 민속 호러에 이 무더운 여름 조금이라도 시원해지셨으면 좋겠네요.
좋은 주말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