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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판타지 작가들이 소설에 지도를 집어넣는가

분류: 책, 글쓴이: OneTiger, 18년 7월, 댓글4, 읽음: 214

중세 유럽 판타지 소설에서 지도를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수많은 중세 판타지 소설들은 첫장에 지도를 집어넣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판타지 독자들은 먼저 지도를 만납니다. 내용을 읽기 전에 판타지 독자들은 가상의 세계를 만납니다. 저는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텍스트 매체입니다. 하지만 텍스트를 보여주기 전에 숱한 중세 판타지 소설들은 지도를 보여줍니다. 일부러 지도를 건너뛰지 않는다면, 내용을 머릿속에 담기 전에 독자는 지도를 머릿속에 담아야 합니다. 이런 첫째 조우는 이후 독자에게 여러 영향들을 끼칠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호빗>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언제나 지도를 염두에 뒀습니다. <호빗>은 빌보 배긴스와 회색의 간달프와 소린과 12가신들이 호비튼을 떠나고 외로운 산맥에 도달하는 내용입니다. 당연히 기나긴 여정 동안 그들은 여러 장소들을 들립니다. 당연히 그런 여정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지도를 머릿속에 떠올릴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많은 판타지 독자들은 지도가 그런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합니다. 지도는 독자들이 소설을 읽는 과정을 규정할지 모릅니다.

 

이는 중세 판타지가 이야기하는 내용과 관계가 있을 겁니다. 중세 판타지 소설들은 주연 등장인물들이 어딘가에서 다른 어딘가로 이동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호빗>에서 빌보 배긴스가 호비튼을 떠나고 임라드리스나 어둠숲이나 호수 마을에 방문하고, 외로운 산에서 황금용 스마우그를 만나고, 다시 돌아온 것처럼. 중세 판타지 소설들은 장대한 여정을 포함하고, 따라서 지도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겁니다. 지도는 어떻게 그런 여정이 펼쳐지는지 알려주는 길잡이이고 안내원입니다.

누가 이런 지도를 판타지 소설에 집어넣기 시작했을까요? 누구 때문에 판타지 소설들이 지도를 집어넣기 시작했을까요? 여러 평론가들은 <호빗>이나 <반지의 제왕>이 시초라고 거론합니다. <반지의 제왕> 이전에도 장르 소설들은 지도를 집어넣었습니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은 지도를 그리는 유행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저는 이런 평가가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은 정말 지도를 매력적으로 활용합니다. 뭐, 비단 지도만이 아니겠죠. 언어, 종족, 역사, 족보 등등 <반지의 제왕>은 숱한 설정들을 자세하게 꿰뚫었고 지도는 그것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판타지 소설은 장대한 여정을 따라가고, 그래서 지도는 가장 중요할 겁니다. 설사 가장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지도의 중요성은 뒤쳐지지 않을 겁니다.

 

어떤 작가들은 적극적으로 지도를 집어넣습니다. 어떤 작가들은 소설을 쓰기 전에 먼저 방대한 세계를 조성하고 지리를 파악하고 가상의 지도를 만듭니다. 하지만 아무리 작가가 방대하게 구상한다고 해도, 어떤 부분은 소설에 등장하지 않을 겁니다. 작가는 (그 부분이 소설에 나오지 않음에도) 그 부분을 묘사한 지도를 일부러 집어넣습니다. 이는 지도가 일으키는 부작용(?)이겠죠. 아니면 이는 설정을 풍성하게 꾸미는 긍정적인 방향일 수 있고요. 이는 모든 중세 판타지 작가가 지도를 중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몇몇 판타지 작가가 이런 유행을 싫어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작가들은 소설에 지도를 집어넣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지도를 요구한다고 해도, 그런 작가들은 지도를 그리지 않습니다. 어떤 작가는 독자에게 지도를 그려달라고 요구하고, 그걸 다른 독자들에게 보여줍니다. 지도를 그린다고 해도, 어떤 작가들은 지도를 나중으로 미룹니다. 조지 마틴은 방대한 판타지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를 썼으나, 처음에 지도를 구상하지 않았습니다. 지도 없이 조지 마틴은 소설을 썼고, 필요할 때 몇몇 부분을 구상했습니다. 이게 사실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건 인터넷에 떠도는, 출처 없는 카더라 정보일지 모르죠. 하지만 만약 조지 마틴이 먼저 소설을 쓰고 나중에 지도를 구상했다면, 이는 유행을 따르지 않는 방법일 겁니다.

 

여기 브릿G는 인터넷 소설 플랫폼입니다. 브릿G에는 다양한 판타지 소설들이 있습니다. 세부적인 장르나 분위기나 주제가 서로 다르다고 해도, 브릿G에는 <오버 더 초이스>나 <피어클리벤의 금화>를 비롯해 다양한 판타지 소설들이 인기를 끕니다. 만약 브릿G가 훨씬 발전한다면, 판타지 소설들 역시 훨씬 늘어나겠죠. 전통적인 판타지 소설들처럼, 이런 인터넷 판타지 소설들이 지도를 중요하게 집어넣었을까요? 인터넷 판타지 독자들이 첫장부터 지도를 만날까요? 글쎄요, 저는 인터넷 판타지 소설들을 아직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뭐라고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하지만 대충 눈치를 살핀다면, 인터넷 판타지 작가들은 지도를 그렇게 중시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제 눈치가 옳다면, 그건 인터넷 판타지 소설들에서 지도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뜻이겠죠. 설사 제 눈치가 틀린다고 해도, 종이책 판타지 소설과 인터넷 판타지 소설에서 지도는 서로 다른 느낌을 풍길 겁니다. 인터넷 작가들은 지도 같은 설정을 공지 사항에 집어넣는 것 같습니다. 종이책의 첫장에서 지도를 만나는 것과 공지 사항을 클릭하고 지도를 만나는 것은 서로 다른 느낌이겠죠. 그건 소설을 읽는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고요.

 

사실 지도 그리기는 아주 재미있는 작업일 겁니다. 가상의 세계를 조형한 이후 창작가는 지도를 이용해 가상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작업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에 종종 작가 지망생들은 소설보다 지도를 더 중시합니다. 그래서 경력이 있는 판타지 작가들은 지도 그리기(를 비롯한 설정 작업)에 너무 빠지지 말라고 충고하죠. 소설 창작 사이트에서 설정을 다듬고 다듬고 다듬는 작가 지망생들을 저는 더러 봤습니다. 그런 작가 지망생들은 설정을 다듬느라 이야기를 쓰지 못하죠. 이는 드문 사례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여기 브릿G는 그런 양상과 다릅니다. 여기 작가들이나 독자들은 설정보다 이야기에 치중하죠. 어쩌면 인터넷 소설 플랫폼이라는 형식 때문에 그런 차이가 생겼을지 모르죠. 설정에 치중하는 작가들은 여기에 오지 않을지 모르죠. 음…, 저는 판타지 소설들을 잘 모르고, 그래서 어떤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판타지 작가들이나 독자들이, 아니, 종이책과 인터넷을 포함한 판타지 작가들이나 독자들이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소설을 좀 더 재미있게 쓰거나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 참고로 중세 판타지 소설들과 달리, 비경 탐험 소설을 비롯해 SF 작가들은 지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소설 주인공이 거대한 외계 유적이나 우주선을 탐험한다고 해도, SF 작가들은 지도를 그리지 않아요. 어쩌면 지도 그리기는 중세 판타지 소설들의 독특한 전통일지 모르겠군요.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의 비평문을 편집 및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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