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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남자의 변증법

분류: 책, 글쓴이: 조나단, 18년 5월, 댓글7, 읽음: 152

최근에 단편 하나를 쓰면서 여성 캐릭터를 고민했었어요. 독립적이고 자기철학(?) 같은 게 있는 여성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저 역시 여자를 잘 모르는 한국남성(?)이어서, 혼자 고민만 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 한정우기 님이 소개해주신 강의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고, 거기에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라는 저자를 알게 됐어요. (이 자리를 빌어 한정우기님께 감사를^^!)

단편을 쓰면서 틈틈히 저자의 책을 읽고 도움을 받았는데, (무지한 저에게는) 놀라운 책이더군요. 해서 단편 다 쓰고 나서, 브릿G 작가들에게 소개해 드려야지, 했다가… 게으름을 이유로 이제야 쓰게 되네요. 늦었지만 소개해 봅니다.

 

페미니즘 책이예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미국의 초기(제2기 물결) 페미니스트 이론가라고 해요. 1970년에, 스물다섯 나이에 쓴 이 책은 페미니스트 운동에서 선구적인 이론을 제공했고, 아직도 논쟁(?) 중이고, 페미니즘/여성학의 필독서 중 하나라고 하네요.

(장르소설이라면 사견이라도 덧붙였을 텐데) 안타깝게도 저는 이 책을 논평할 능력이 없어요. 페미니즘에 관심은 있지만 무지에 가까운 수준이고, 결국은 남성의 관점이니까요… 해서,

제가 읽으면서 ‘자극’ 받았던 책의 본문을 몇 단락 소개해 볼까 합니다. (긴 글이라, 인용만 읽으셔도 될 듯)

 

*

다른 페미니스트들처럼, 파이어스톤도 남녀의 관계를 불평등하고 <성적 계급>이 존재한다고 말해요. 하지만 ‘법적 평등’을 최우선으로 말하는 초기 페미니스트과는 다른 주장을 하죠. 그녀는 첫 문장에서 선언적으로 말해요.

성적 계급sex class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

 

남성과 여성, 또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적 계급’에 대해 파이어스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이고 유물론적인 분석 방법’을 빌어 설명해요…

(제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원시 모계 사회에서 육체적 차이로 인해 부계 사회로 넘어오면서, 사회적 계급(귀족/하층계급, 부르주아지/프롤레타리아트)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한 성적 계급도 함께 고착되었다는 것이죠. 그런 고착에는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인 생물학적 차이에 기인한다고 보고요.

생물학적 가족(어떤 형태의 사회조직에서든 남성-여성-유아의 기본적 생식단위)은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사실들로 특징지어진다.

1) 피임의 출현 이전까지 여성들은 역사를 통틀어 생물학적인 요인들, 즉 생리, 폐경, 부인병, 고통스러운 출산의 연속, 수유, 양육 등으로 육체적 생존을 위하여 남성(형제, 아버지, 남편, 애인, 또는 친족, 정부government, 공동체 전체)에게 지속해서 휘둘려왔다.

2) 유아가 성장하는 데에는 동물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무력하고 적어도 최소 얼마 동안은 육체적 생존을 위하여 성인에게 의존한다.

3) 기본적인 어머니-아이의 상호 의존 관계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사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존재했고 따라서 모든 성숙한 여성과 유아의 심리를 형성해왔다.

4) 남녀 간의 자연적 생식의 차이는 계급제도의 전형the paradigm of caste (생물학적 특성에 근거한 차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계급이 발생할 때 직접적으로 최초의 노동 분업을 가져왔다.

 

파이어스톤은 당연히 남녀의 ‘성적 계급’ 차이에 비판적이지만, 그렇다고 저자가 혁명을 통해 남자들을 ‘물리치고 몰아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아요. 그보다 더 큰 통찰을 보여주지요.

…사회주의 혁명의 최종 목적이 경제적 계급 특권의 철폐뿐만 아니라 경제적 계급 구분 그 자체를 철폐하는 것이듯,

페미니스트 혁명의 최종 목적은 최초의 페미니스트 운동의 목표와 달리, 남성 특권의 철폐뿐만 아니라 성 구분 그 자체를 철폐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면서 과감한 예언으로 페미니즘의 지향점(?)을 말하죠.

 인간 존재 사이에 생식기의 차이는 더 이상 문화적으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양성 모두를 위한 단성單聲에 의한 종족의 생식은 (적어도 선택의 여지가 있는) 인공생식으로 대치될 것이다.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아이들은 양쪽 성에서 동등하게, 혹은 두 성 중에서 어느 성에라도 상관없이 태어난다. 아이가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것은 대개 다른 소집단 사람들에게 상당히 짧은 기간 동안 의존하는 것으로 대체될 것이고, 육체적인 힘에 있어 어른들보다 열등한 것은 문화적으로 보상될 것이다. 노동분업은 (사이버네틱스[인공두뇌]cybernetics를 통해) 노동을 완전히 철폐함으로써 종식될 것이다. 그리하여 생물학적 가족의 압제는 붕괴될 것이다.

…진정으로 모든 계급제도를 근절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주의 혁명보다 훨씬 큰, 그것을 포함하는 성의 혁명이 필요할 것이다.

책이 나온 1970년대에는 SF 같은 이야기였겠지만, 지금은 ‘미래적 화두’로 부상하는 이야기들이라 작가의 통찰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것이지만요)

 

*

제 글을 쓰면서 참고했던 챕터는 <사랑/로맨스 문화>였는데, 그것들에 있어서도 파이어스톤은 (제가 몰랐던) 다른 관점을 보여줘요.

사랑에 대해서 파이어스톤은 “사랑을 다루지 않은 급진적 페미니즘에 관한 책은 정치적으로 실패작일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저돌적인 질문을 던지죠.

왜냐하면 오늘날 사랑이라는 것은 어쩌면, 출산보다 훨씬 더 여성 억압의 주축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놀라운 사실을 함축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사랑을 없애기를 원하는 것인가?

 

파이어스톤은 사랑이나 로맨스 문화가, 실은 ‘남성이 주도권을 잡은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말해요. 

…’남성들이 걸작품을  창조하는 동안 여성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는 지겨운 질문은, 여성은 문화에서 금지당하고 어머니의 역할에서 착취당했고, 또는 역으로, 여성은 자녀들을 창조했기 때문에 작품을 그릴 필요가 없었다는 명백한 대답 이상의 가치가 있다. 사랑은 그것보다 훨씬 심층적인 방식으로 문화와 관련이 있다.

여성이 그들의 에너지를 남성에게 쏟기 때문에 남성은 생각하고, 글을 쓰고, 창조한다. 즉, 여성은 사랑에 몰두하기 때문에 문화를 창조하지 않는 것이다.

 

오랜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여성들이 (남성들 또한) 의식하지 못하지만, 사랑은 여성들에게 ‘성적 계급’ 차이에 (자신도 모르게)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기재로 작용합니다. 파이어스톤은 근대 이후의 <로맨스 문화>로 인해 ‘여성의 성의 사유화privatization’이 이루어졌다고 말해요.

에로티시즘은 여성의 열등성을 강화하는 낭만주의의 최고 단계에 불과하다.

어떤 하위계급에서와 마찬가지로, 집단의식은 반항을 못 하게끔 둔화되어야 한다. 이 경우, 계급으로서의 여성의 착취를 구별하는 특성이 성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똑같이 성적으로(‘성기로’) 여겨진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는, 특별한 수단을 발견해야만 한다.

 

그것이 ‘남자들이 여자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면서, 여자들이 사랑받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로맨스 문화>라는 것이지요… 그런 남성 중심의 로맨스 문화에 포위된 여성들은, 여성 자신들조차 이율배반적인(?) 모순된 심리를 드러내기도 해요.

 

성의 사유화 장치는 매우 복잡해서 그것을 감지하려면 몇 년이 걸릴 것이다. 도대체 감지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것은 여성 심리의 많은 ‘곤혹스러운’ 특성들을 설명하는데, 다음과 같은 형태이다.

-성에 대한 찬사, 즉 “작은 아가씨에게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라!”와 같은 것에 의해 개인적으로 찬사를 받는 여자들.

-규칙적으로 그리고 비인격적으로 Dear, Honey, Sweetie, Sugar, Kitten, Darling, 천사, 여왕, 공주, 인형, 여자라고 불릴 때 모욕을 느끼지 않는 여자들.

-로마에서 엉덩이가 꼬집혔을 때 은근히 기뻐하는 여자들.

-“남자와 성교할 것처럼 행동하나, 실제로는 하지 않아 남자를 애태우는 것”의 기쁨.

-‘몸치장 밖에 모르는’ 현상. (개성을 표현할 정당한 출구가 거부된 여성은 “나는 뭔가 색다른 것을 보고 싶어요.”라는 말처럼 자신을 육체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것들은 섹슈얼리티와 개성을 교란하는 성의 사유화 과정에 대한 반응의 일부일 뿐이다. 그 과정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대부분의 여성이 세계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특별한 성적 기여가 필요하다고 진지하게 믿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의 사유화’는 여성을 정형화한다.

 

파이어스톤은 남성 중심의 ’성의 사유화’가 남성들에게도 ‘여성이 겪는 정형화 과정’을 노출시킨다고 말해요. 여성이 점점 더 여성적이 될수록, 남성들은 더 남성적(마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거기에는 현대 미디어의 확장이 크게 기여하고 있고요.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제안으로 챕터를 마무리합니다.

결론적으로, 나는 문화적 주입 수단을 통한 성적 계급제도를 공격하는 특별한 어려움에 관하여 한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성의 대상은 아름답다. 그들을 공격하는 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공격과 혼동될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보그Vogue> 지의 표지 얼굴의 아름다움을 단호하게 부정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경건해질 필요는 없다. 그것이 핵심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그 얼굴이 인간적인 방식으로 아름다운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장과 변화와 쇠퇴를 허용하는가, 긍정적인 감정뿐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들도 표현하는가, 인위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허물어지는가, 혹은 금속이 되려고 하는 나무처럼 무생물적 대상의 다른 아름다움 자체까지 거짓으로 모방하는가 등의 문제이다.

…에로티시즘의 제거를 요구할 때 우리는 성적 기쁨과 흥분의 제거가 아니라, 그것을 삶의 전 범위로 재확산시키도록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길어졌네요…^^!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활발하게(?) 일고 있는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 ‘남녀의 불평등 문제’를 보면서, 그 많은 주장과 반박과 험담과 말들과 말, 말, 말… 속에서 핵심이 뭐지’ 하는 생각을 하곤 해요. 결국은 저의 무지에서 오는 의문일 텐데, 이 책이 어느 정도 ‘개념’을 잡아준 것 같아요. 저에게는.

한국이라는 사회의 불평등(그게 어디 남녀 문제 뿐일까요) 속에 사는 우리는 무엇보다 ‘그 불평등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 책이 페미니즘의 전부를 알려주지는 못하겠지만, 그 시작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 것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 일독을 권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조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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