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유리병 편지

분류: 수다, 글쓴이: stelo, 18년 5월, 읽음: 82

안녕하세요. 오늘은 특히 [짝사랑 문제]를 쓰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싶은 Stelo입니다.

 

0.

대학에서 [영화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었어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비평문이랑 시나리오도 썼었죠. 저는 거기서 [김씨 표류기]라는 영화로 발표를 했었어요.

[김씨 표류기]는 어렸을 때 왕따를 당하고 방에서 나가지 않게 된 히키코모리 여자가 주인공이에요. 세상은 넓디 넓지만 이 여자는 방이라는 ‘섬’에 갇혀서 나가지 못하고 있죠. 다른 사람의 사진을 훔쳐 미니홈피를 꾸미고, 망원 카메라로 달 사진을 찍는 게 유일한 취미에요.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제가 이런 식으로 요약하면 놀라시더라고요.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는 게 참 무섭죠. 방문을 걸어잠그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요. 하지만 사람은 혼자 있기를 힘들어하는 동물이죠. 외로움과 괴로움은 한 글자 차이라고도 하잖아요. 그래서 누군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찾아와주기를 바라기도 해요. 나를 이해해주고 상처를 치유해주기를…

하지만 현실에 그런 백마 탄 왕자가 없다는 건 금세 깨달아요.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죠.

[김씨 표류기]의 여자는 어느 날 망원 카메라로 하늘이 아니라 땅을 살펴보게 되요. 그리고 한 남자를 발견하죠. 그 남자에게 관심이 생기고 말을 걸고 싶어져요.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아무 것도 모르지만요.

여자는 두렵지만 용기를 내서 방 밖으로 나와요. 초록 유리병에 편지를 담아서 달려가죠. 그리고 그 남자가 사는 곳으로 편지를 던져요. 그렇게 영화가 시작되죠.

저는 그 발표를 듣는 분들에게 이 앞에 서는 게 두렵고 무섭다고 했어요. 그리고 병을 잡고 객석으로 던지는 자세를 취하면서 말했죠. 저 역시 여러분에게 용기를 내서 편지를 던지고 있는 거라고요.

 

브릿G에서 소설과 리뷰를 쓰면서 저는 똑같은 기분을 느껴요.

 

1.

소설을 쓰면서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었죠. 하지만 숨겨놓고 고민만 하면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마음 속으로 지켜보고 있던 분들에게 리뷰를 의뢰드렸답니다.

저는 속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합니다. 독백만큼 슬프고 외로운 게 없죠. 감사하게도 두 분에게 리뷰를 받았어요.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겠죠.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하고 싶은 말들을 조금만 적어보려고 해요. 대상 독자는 짝사랑 문제를 읽어주시는 분들이겠죠.

 

2.

먼저 한켠님께서는 계속해서 나오는 ‘선’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어요. 두 사람은 서로 선을 긋고 마음을 숨기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아버지와 선생님처럼 세영이와 예은이에게 잔인했던 어른들 이야기도 해주셨어요. 그건 두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고, 세상이 잘못된 거라고요.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짝사랑 문제]는 제가 겪고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이에요. 예은이와 세영이도 저의 일부를 나눠서 만들었어요. 두 사람이 비슷하게 보이신 것도 무리가 아니죠. 두 사람이 다르면서도 닮아있게 보이길 바랬어요.

그래서 한켠님이 해주신 말씀들이 저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어요. 저는 그저 보여드리기만 했는데 “자기검열과 자아성찰을 혹독할 정도로 하는 인물들”이라고 요약하셨죠. 물론 그렇다는 걸 저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그렇다고 말해주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에요.

다만 오해라고 할까요. 세영이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굳이 말하자면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는데, 같이 살아야 하니까 억누르고 있다고 할까요. 그런 부분들이 몇 가지 더 있는데, 이런 이야기는 소설을 통해서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는 해피엔딩을 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서로 서툴더라도 이 문제에 답을 찾으리라 믿어요. 한켠님이 말씀하신대로 두 사람이 서로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어요. 선을 더 명확하게 그어보고, 때로 지우기도 하면서요. 그렇게 서로에게 ‘안전한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3.

한정우기님께서는 열심히 [짝사랑 문제]에 대해 추리를 해주시고, 제가 올렸던 글을 하나하나 살펴봐주셨어요.

시를 검색해보신 건 첫번째로 놀란 부분이었어요. 이제 곧 세영이도 똑같이 시를 검색해보거든요. 그리고 한 가지 시는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죠. 오늘은 2018년 5월 16일. 그 날부터 4년 하고도 1달이 지난 날이에요. 저는 다들 이 단서를 보시면 예은이가 왜 세영이에게 화를 냈는지 아시게 되리라 믿었어요. 세영이는 “어떤 꿈도 행복보다 소중하지 않다”고 했었죠.

하지만 예은이는 다들 즐거워 하는 11월 11일에도 즐거워해서는 안 된다고 믿으니까요.

 

김수영과 윤동주의 이름이 나온 것도 놀랐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 김수영의 시를 참 많이 읽었어요. 전집도 집에 있죠. 하지만 지금은 읽지 않아요.

김수영은 빗 속에서 우산으로 아내를 때린 것을 고백하는 시를 쓴 적이 있어요. 어느 날 TV를 보는데 유명한 지식인들이 이 시를 보고 김수영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찬양하더라고요. 부끄러운 자신의 죄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반성하는 시인이라고요.

김수영은 1968년 교통사고로 죽습니다. 45년이 지나 아내 김현경씨는 [김수영의 연인]이라는 회고록을 써서 그때 이야기를 꺼내놓게 되죠.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 여전히 그는 김수영 시인을 사랑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언젠가부터 죄책감은 이기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더 이상 김수영이 쓴 시를 읽지 않기로 했어요. 죄를 짓고 반성하는 사람보다는, 처음부터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낫다고요.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될까 고민했어요.

세영이가 자꾸 자기 행동을 조심하는 이유랑 비슷해요. 아내를 때리는 남자가 되고 싶진 않았거든요. 폭력을 싫어하고,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게 되는 걸 두려워하죠.

 

윤동주가 쓴 시를 보면 ‘일제의 만행’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요. 스스로 성찰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아파할 뿐이죠. 세상이 잔혹함을 몰라서도 아니고, 이 모든 게 자기 탓이 아니라는 걸 모르지도 않았을 거에요. 단지 자신은 무력하며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보고만 있었다는 게 힘들었겠죠. 뭔가 해야만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윤동주는 외로웠고 힘들었으리라는 걸 알았어요. 예은이도 그렇겠죠.

 

하지만 또 오해라고 할까요. 예은이는 죽지 않아요. 저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고 싶고, 사랑하는 여자애를 죽이는 건 아름답지 않거든요. 예은이가 아픈 건 그냥 두통 때문이 맞아요. 두통은 원래 큰 원인이 없거든요. 틀린 추리는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단지 10대가 죽는 원인 1위는 불치병이 아닐 뿐이죠.

예은이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에요. 대신 ‘살아가’기로 결정하겠죠.

st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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