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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는 게 답이라 느낄 때

분류: 수다, 글쓴이: 샤유, 18년 1월, 댓글8, 읽음: 145

1. 스타 워즈: 라스트 제다이를 개봉날 보고 올해의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아름답게 촬영된 영화였고 스타워즈의 작법을 따르면서도 거대한 야심이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며칠 뒤 인터넷은 지옥이었습니다. 이것이 클래식 스타워즈를 더럽혔다는 이야기나, 올드팬들을 대놓고 모욕했다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더군요. 갑자기 거슬리지 않던 것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는지 모든 것들을 트집잡기도 했죠. 여러모로 재밌는 풍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욕할 거리를 만들어서 자가발전하는 모습이요.

 

2. 마크 해밀이 한 인터뷰에서 특정 장면들만 잘려나가 그가 라스트 제다이를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는 이야기들이 돌아다녔습니다. 그가 직접 나서서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해명하기까지 했죠. 전체가 아닌, 부분들을 잘라내서 멋대로 의미를 끼워맞추면 사실 어떤 이야기든 만들어낼 수 있죠. 의도적 오독이랄까요.

 

3. 며칠 전 우연히 제 글에 대한 어떤 감상을 발견했습니다. 심도있는 분석이라던가 그런 건 아니고 말 그대로 어떤 느낌이었는지에 대한 감상 한두마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지금까지 제가 들었던 어떤 감상보다도 좋았습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이런 글로 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그렇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요. 딱히 제가 그렇게 말해달라고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그러고보니 의문이 들더군요.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4. 딱히 많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지만, 제가 제 글에 대해 들은 이야기들은 대체로 특정 장르에 귀속된 것들이었습니다. 그 장르의 코드들을 언급하고, 그걸로 저란 작가를 규정하는 방식이요. 그렇게 읽는 건 제가 참견할 바가 아니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점이 발생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굳이 이것을 중단편 소설의 형태로 쓸 필요가 있을까? 독자들의 목적이 오직 그것이라면 저는 짧은 글들로 그 장르의 코드만을 담은 글들을 써낼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쓰는 시간이 줄어서 좋고, 독자들은 읽는 시간이 줄어서 좋겠죠. 사실은 제가 쓸 필요도 없을 겁니다. 세상에 그 장르의 코드를 이용하는 매체는 많고, 대체로 소설 따위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아무것도 쓸 필요가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적어도 전체가 아니라 부분만이 읽히는 상황에서는요.

 

5. 독자와 작가는 분리된 인격체고 제겐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어달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애초에 그럴 만큼 독자가 많지도 않고요. 다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건 안 되는 건지. 그냥 그만두는게 답인 건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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