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손님 리워드 추첨과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크리스마스 잡담
안녕하세요,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네요. 모두들 각자 원하는 모습의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수고해주시는 리체르카님께서 개최 해 주신 크리스마스 단편제 [굴뚝손님], 제가 걸었던 리워드는 ‘추첨을 통해 한 분께 어울리는 일러스트레이션 그려드리기’ 였는데요, 그 대망의 주인공은…
짜잔! 8번 작품, 노타우 작가님의 <MERRY CHRISTMAS!!>입니다! 축하드려요! 근시일 내로 멋진 일러스트레이션을 생산해드리겠습니다..! 작품을 막 읽고 왔는데, 훈훈함 속에서 벌레처럼 간질간질 돌아다니던 서늘함이 순식간에 덩치를 불려 눈알을 시뻘겋게 뒤집고 송곳니를 드러내는 게 딱 크리스마스와 어울리는 작품이더라구요.(?)
아직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크리스마스가 지나기 전에 꼭 읽어보세요!
그건 그렇고, 저도 이번 단편제에 참가할 예정이었다는 것 아시나요? 여기엔 슬픈 전설이 있습니다…
사실 전설 그런 건 아니고, [굴뚝손님]에 참가하기 위해 쓰던 단편이 제목만 남기고 전부 날아가버렸어요. 약 1만 2천자 분량으로, 퍼센테이지로 치면 80%정도 써둔 글이 담긴 TXT 파일이 마치 크리스마스 새벽 어느 시골 공터에 아무도 모르게 내려 조용히 쌓인,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채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성탄 아침을 맞아 거리로 뛰어나올 아이들을 기다리는 눈처럼 순수하고 무결한 백색으로 돌아가버렸지요. 휴대폰과 소설 작성용 PMP를 SD카드 하나로 번갈아 사용하고 있는데, 아마 옮기는 과정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나 봐요. 머릿속에는 남아있었지만 그 텅빈 화면이 제 남은 기운과 의욕을 전부 빨아먹어버려서 제출은 그냥 포기하고 올라오는 글들을 읽기만 했답니다. <안티 크리스마스 협회>라는 단편이 세상에 잠시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세요…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르니까요…
이 일이 벌어진 건 바로 어제,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 4시 35분이예요. 글이 날아가자마자 트위터에 하소연을 했기 때문에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있지요. 트위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꽤 재미있는 것 같아요.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하는 외국 작가들의 활동을 받아보는 것도요. 제 트위터 아이디는 @mr_cric_ket 이예요. 혹시 타임라인에 보인다면 마음 한 번… 아무튼, 어제 저의 기분은 최악이었어요. 크리스마스 이브에 추적추적 비가 내리질 않나, 외로이 홀로 카페에 있는 것도 모자라 글까지 날아가버리고, 게다가 기대에 가득 차 관람한 영화가 (제 기준에서) 올해 최악이지 뭐예요.
네. <스노우맨>을 관람했어요. 요 네스뵈 작가의 원작을 재미있게 읽었고, 예고편의 음산한 분위기에 완벽히 매료당한 데다가 주연 배우 마이클 페스벤더를 너무 좋아하던 터라 바쁜 친구를 꼬셔서 단독 개봉관인 CGV 압구정관까지 나오게 만들었죠.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저는 친구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별로였어요. 정말로. 아직 영화를 안 보셨다면? 보지 마세요. 영화를 이미 보셨다면? 안타깝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원작 팬이시라면 절대 보지 마시고, 원작을 안 보셨다면 더더욱 보지 마세요. 원작을 알고 봐도 내용을 따라가기가 벅찬데,(초 단위로 끊어지는 장면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도 영화상에서 이야기를 따라갈 수 없어 머릿속으로 소설의 내용을 되짚어가며 뇌내보정을 해야 했습니다. 모든 설명과 묘사가 극도로 짧고 불친절해요. 원작의 내용을 억지로 줄이고 줄이고 줄였는데도 시간이 부족해 더 짧고 나쁘게 각색하고, 그마저도 모자라 찍어둔 영상을 간신히 알아볼 수만 있을 정도로 잘라버린 느낌이었어요. 멋진 요소들은 전부 사라지고 범인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맹물이 되어버렸어요. 이 영화의 별로인 점을 전부 얘기하면 아마 책 한 권은 거뜬히 나올 것 같습니다…) 원작을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본다면 의미 없는 노르웨이의 풍경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행동이 담긴 짧은 영상 모음집을 보시게 될 거예요. 그나마 좋았던 것은 뽀얗고 조용하고 스산한 노르웨이의 풍경에서 오는 분위기와 영화 음악이었는데, 그럴 거면 차라리 노르웨이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시는 게 나을겁니다. 마이클 패스벤더도 이 영화는 살릴 수 없었어요.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이전 작품 <렛 미 인>은 정말 좋았었는데… 대체 왜… 저는 영화가 끝나고 눈사람을 볼 때마다 으스스한 기분과 함께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원했는데, 이제는 눈사람만 보면 아주 짜증이 납니다. 한 대 쳐버리고 싶어요. 꽤 오랜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아요. 어? 왠지 얼마 전 개봉한 <그것>을 봤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았던 것 같은데… 착각인가… 아무튼, 개봉을 CGV 압구정관 단 한 곳에서만 한 것에 대해 친구와 함께 불평했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요. CGV의 큰 뜻을… [스 노 우 맨 보 러 간 다 제 발 재 밌 길 . . .] [스 노 우 맨 절 대 보 지 마 십 시 오 올 해 최 악 의 영 화] 라는 두 문장이 너무나 슬프게 보이네요…
제 트위터 타임라인에 적힌
물론 철저히 주관적인 평이니 혹 <스노우맨>을 재밌게 관람한 분이 계시다면 위 버튼을 꼭! 못 본 체 넘어가 주세요. 이미 버튼을 눌렀다면 그 안의 내용을 못 본 체… 죄송합니다.
어쨌든, 너무 속상하더라구요. 소중한 크리스마스 이브가 이렇게 망가지다니. 저는 기독교도는 아니지만 크리스마스를 정말로 사랑한답니다. 길거리에 퍼지는 캐롤, 트리, 달콤한 케이크와 배불뚝이 산타, 루돌프, 저는 날이 추워지면 슬슬 설레기 시작하고, 눈이 오면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해 들뜨는 사람이예요. 거의 매일 캐롤을 듣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마침 지금도 캐롤을 듣고 있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캐롤 중 하나예요. 마이클 부블레를 원체 좋아하기도 하고, 그의 캐롤은 정말 완벽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부블레의 Christmas special 영상도 수십 수백 번 돌려봤어요. 여러분도 부블레 캐롤 듣고 행복해지시길!
또 이야기가 샜네요. 너무 속상한 나머지 중고 서점에서 책을 세 권이나 사 버렸어요.
그 중 한 권은
뚱한 모습의 데미안이 귀엽게 서 있는, 데이비드 셀처의 <오멘>이예요. 절판이 되었는지 소장하지 못하고 도서관에서만 읽어보았는데, 마침 보이기에 얼른 구매했어요. 역시 크리스마스엔 <오멘>이죠.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날, <오멘>을 읽고 모두 함께 적그리스도를 경계하는 마음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저는 이 <오멘>을 읽을 때마다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여기서 데미안이 잘못한 게 있나요? 대체 뭘 저질렀기에 모두의 두려움을 사는 걸까요? 적그리스도스러운 행동이라곤 교회 가기 싫어하는 것 밖에 없는데… 물론 하나 있긴 하지만 그것도 정말로 어린아이가 장난감 자동차 가지고 놀다가 사고 낸 걸 수도 있고. 솔직히 저는 쏜과 캐서린이 너무 답답해서 ‘에라, 그냥 다 망해버려라!’ 라고 생각한 부분이 좀 많은 것 같아요. 입원한 캐서린이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장면에선 “무슨 일인지 똑바로 설명해! 납득시켜! 그리고 집에 가지 말라면 가지 마!”, 버겐하겐을 만나는 장면에선 “칼을 받아! 이만큼 했으면 좀! 다 알잖아! 애를 죽여!” 그리고, 태손 신부. “비유 좀 그만두고 똑바로 말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캐서린을 밀어버리는 베이록 부인이 사악하고 무자비하게 느껴져야 하는데, 바로 전 장면에서 캐서린이 너무 답답해 오히려 베이록을 약간 응원하게(…) 되더라구요. 참고로 저는 적그리스도를 절대 숭배하지 않습니다. 뭐, 이런 답답함이 있지만 그래도 <오멘>은 좋은 소설인 것 같아요. 밤에 머리 끝까지 이불 덮고 독서등 켜고 읽으면 이불 바깥이 온통 음산해지는 느낌!
저는 크리스마스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왠지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작년엔 친구와 함께
요런 크리스마스 기념 엽서를 만들어 원하는 분들께 편지를 써서 나누어주는 이벤트를 했었어요.
엽서에 담긴, 제가 그린 루돌프예요. 귀엽지 않나요? 아니라구요? ㅠㅠ 어쩐지 저만 좋아하는 것 같더니… 하루 안에 전 세계에 선물을 배달하려면 단순히 순록 정도로는 안 돼요. 개조가 필요하죠. 출력도 왕창 올려야 하고,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요격 병기도 달아야 하고… 그것도 아니라구요?
그리고 올해는 책을 만들어 보았어요. 브릿G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에 제출했던 (운 좋게도 본심까지 올랐던!) 단편인
을 메인으로, 가족에 관한 짧은 이야기 6편을 담은 단편집 <크리스마스의 기적 外5>가 드디어 세상 빛을 보았답니다!
하하! 어때요? 예쁘지 않나요? 예쁘죠? 네?
쓰고 만든다는게 쉽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프로젝트였어요. 그리고 다음에 또 책을 만들게 된다면 그 때는 이번보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직감하기도 했구요. 물론 할 지는 모르지만요…
비록 군생활 중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지만 (다행히 외출 날이라 집에서 잠시 쉬고 있습니다. ㅠㅠ), 크리스마스가 되니 신이 나서 이것 저것계속 주절거리게 되네요.
네? 근데 왜 여기다 주절거리냐구요? 혹시 이야기 할 친구도 애인도 없는 거 아니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