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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실 후기

분류: 수다, 글쓴이: 주렁주렁, 17년 12월, 댓글4, 읽음: 152

저는 어제 홍대에 6시에 도착, 걸으면서 미친듯이 포켓스탑을 찍었어요. 행사장에 도착했을때 이미 2만보를 걸은 상태였습니다. 덕분에 완전히 탈진 상태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제 이름표 보이길래 확 잡아채고는 맨 뒷자리에 앉았어요.

예전에 동네 극장에 갔다가 원하는 좌석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솔직하게 제가 앉고 싶은 자리, 즉 불이 났을 때 제일 먼저 탈출할 수 있는 자리를 달라고 했지요. 그때의 그 얼어붙는 듯한 공기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_-;; 그래서 이번에는 출입구와 제일 가까운 자리 확보가 가능한가가 저에게 가장 중요했지만 그런걸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 경험상 얼마나 이상하게 볼 지 아니까요. 다행히! 제일 뒷자리에 빈자리가 있어서 앉았지요.

원래는 술 마실 생각이 없었어요. 딴 게 아니라 마시다 중간에 멈추는 걸 되게 싫어해요. 그럴거면 그냥 안 마시는게 돈도 굳고 깔끔하고 좋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너무나 피곤한 상태라 집중도 안 되고…술이나 마시다 가자로 잽싸게 생각을 바꿉니다. 3000 짜리에서 컵에 따라 마시는 거였는데 제 바로 뒤에 이 맥주가 있었지요. 계속 왔다갔다 하며 마셨는데 한 번은 먼저 따르시던 분이 “따라드릴까요?” 하고서 따라주심. 감사합니다 하고 명찰을 보니 bard 님이기에 정말 훌륭한 분이고 정말정말 또 훌륭한 분이라고 속으로 계속 감탄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마시면서 행사만 봤습니다. 처음에 챙긴 쿠키를 안주 삼아. 술까지 마시는데 딴 거까지 축내긴 좀 그렇기도 했지만 뭣보다 쿠키 과일 중 하나만 고르라고 써있는 걸 나중에 봐서…. ‘누구 나 남은 과일 좀 다오’ 속으로만 생각 -_-;; 갈때부터 명찰을 달 생각이 없었고 누구랑 대화하리라 생각도 안 했어요. 작가분들이야 서로 할 말이 많겠지만 저는 리뷰어라 딱히 할 말도, 궁금한 것도, 그냥 할 말이 없었어요. (원래는 말 많고 낯 안 가림) 작가와 리뷰어를 병행하는 분과 달리 저는 오로지 리뷰어이고, 제 글에는 어찌됐든 작품에 대한 평가의 성질이 묻어납니다. 그런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모르겠더라고요.

아니 그럼 왜 갔느냐? 어 저는……….집 근처 말고 번화가에 나가고 싶었습니다 (  ..) 또 이번주 병원에 하루 꼭 가야하는 상황인데 병원이랑 홍대랑 가깝길래 포켓몬도 잡을 겸 겸사겸사 참석을 결정한 것이었던 겁니다. 저도 이런 이유로 참가해도 되나 고민을 안 한 것은 아니나, 이런 이유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어느 누군가와 대화할 일이 있으리라 예상을 전혀 못했습니다.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고요. 이미 술을 입에 댔을 때부터 예상대로 흘러갈 수 없었던 걸지도요.

얼마전에 예전 리뷰를 수정할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해당 작품을 다시 꼼꼼하게 읽었는데 처음 읽었을 때와 똑같은 부분에서 잘썼다고 느꼈어요. 저는 오래전부터 외국소설과 한국소설의 차이로 이런 걸 느꼈어요. 외국소설을 보면, 총은 뭘 썼네 몇 구경이네 차는 뭘 타네 몇 년도 차네, 뭔 전철역 몇 번 출구로 나가 오른쪽 첫번째 골목으로 꺽어진뒤 100미터 가량 걸어가면 나오는 카페에 들어갔다….시시콜콜하다 싶을 정도로 엄청 묘사한단 말이죠. 그런데 한국소설은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정도로만 나와요. 도시 지형은 최대한 특정화가 안 되게, 대신 숲 나무 강 이런 자연물 묘사는 엄청 꼼꼼하게. 모르겠어요, 제가 읽은 것만 그런지 어떻게든 도시를 탈색시키려 한다는 느낌까지 받았어요. 그리고 이 부분이 답답했어요. 내가 사는 도시라는데 도시가 아니라 그냥 방. 캐릭터들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동한다는 느낌이었어요. 이런 공간 묘사에서의 예외는 순문학에서는 윤대녕, 장르쪽에서는 듀나의 대리전이라 봤고요.

원래 얘기로 돌아가서 다시 읽었어도 여전히, 아반떼 벤틀리 경부고속도로…이런 단어들로 서울과 서울근교를 소설 안으로 가져와 하드보일드 공간을 구축하는 솜씨가 첫번째 장점이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저는 첫 리뷰나 수정본에서나 이 얘기를 못해요. 가령 한국 장르에는 이런 점이 외국에 비해 부족했는데 이 소설은 다르다 ㅡ 고 한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럼 그냥 원래 잘하는 외국 장르 보면 되지 왜 한국 장르를 봐야 하느냐. 이 부분이 우려스럽고 어떻게 건드려야할지 너무 큰 것 같아서 방향을 좀 틀어서 리뷰를 썼어요. 그리고 잊었어요.

그런데 며칠전에 한밤중에 갑자기 이 생각이 나는 겁니다. 나는 왜 저 부분을 내가 못한다고 결론 짓고 포기했지? 왜 나는 작가나 다른 누군가한테 쪽지로 물어보거나 조언을 구하지 않았지? 겁나서 안 했더라고요. 쪽지를 받아본 상대방이, 와 한심하게 이런 걸 물어보냐, 아 귀찮아, 혹시라도 이럴까봐 겁이 나서요. 그럼 너무 쪽팔리니까.

이걸 깨닫고 충격을 받았어요. 이게 무서우니까 핑계를 붙여서 우회하고 있는 제 태도에. 이걸 계기로 갑자기 지난주부터 리뷰를 연달아 썼어요. 목적은 두 개인데, 하나는 제가 얼마나 빨리 쓸 수 있나 알고 싶다 이고요. 오크 변호사 리뷰는 타이머 60분 맞춰놓고 썼어요. 30분 초과했지만. 다른 하나는 수위를 확인하겠다 예요.

제가 이번달에 올린 세 편의 리뷰는 예전 리뷰보다 강도가 더 세요. 일부러 퇴고도 안 했어요. 좀 걱정되는 부분은 퇴고 중 빼는데 마지막 문장 쓰고서는 바로 올렸어요. 되게 욕먹을 각오도 했고요. 하지만 역시 알아야한다 싶었어요. 브릿지 내에서 리뷰 수위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이건 말로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계속 써서 경험으로 파악해야 할 부분이 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가능하다면 어디가 마지노선인가 알 때까지 수위를 높이고 싶어요.

제 리뷰 쓰기의 원칙은 이래요. 장점을 찾는다, 하지만 작품 내적 의의를 방해하는 단점이라고 느끼는 부분은 반드시 지적한다, 그 외의 단점은 무시한다, 방해 요소를 느꼈는데 지적하기 곤란하다면 리뷰를 쓰지 않는다. 이런 제 나름의 기준 하에서 움직이고 있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걱정은 되지요. 추천리뷰어란 아이콘이 붙어있으니 반박하기 꺼려질수도 있고, 기분이 상할 수도 있고…또 이런 것도 있지요. 이러저러한 점을 나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봤다를 오해가 안 생기도록 전달하기 위해서는 설명이 길어져요. 분량으로 봤을때 장점은 3,4 / 단점은 7,6이 글 내용이 되어버려요. 그러면 받는 입장서는, 얜 뭐야? 까기는 욕 먹을까 무서워서 장점을 구색맞추기로 넣었나? 이러진 않을까, 이것도 걱정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런저런 고민하는 와중에 어제 어떤 분이 제 리뷰에 대해, 당신 소설을 정면으로 보고 있구나 느꼈다 ㅡ 고 해주셔서 용기가 됐달까….기운이 났달까….네, 저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계속 작품을 정면으로 마주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상입니다.

 

* 이 글은 왠지 너무 부끄러워서 나중에 삭제할 지도 모릅니다.

주렁주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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