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이 있었군요

분류: 수다, 글쓴이: Dott, 17년 12월, 댓글3, 읽음: 101

……이 사실을 2017 브릿G 만남의 밤 후기는 자유게시판에 남겨달라는 부탁을 들은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게 후기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어, 좀 장황한 글이 되겠지만, 그래도 맨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어요. 그래도 될 분량이거든요.

 

2017년 10월 28일, 인터넷에서만 괜히 부끄러워 비밀로 하는 모종의 이유로 브릿G 사이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인 날짜는 트위터 검색으로 알았지만요.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가입했고, 글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좋아서 가입했습니다.

2017년 10월 31일, 몇 년에 걸쳐 명절마다 조금씩 구상하고 끄적이던 글을 완성했습니다. 드디어 이 글을 완성했다는 게 마냥 좋았는데, 한 분에게 명료하고 직접적인 반응까지 얻었죠. 정말 기분 좋았습니다.

다른 분들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구상만 하거나 조금만 끄적이고 완성 못한 습작들이 한가득이었거든요. 여기는 내가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십 년 전 썼던 이야기를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로 다시 쓰고, 연재를 생각하던 이야기를 잠시 접어두기도 하면서, 차곡차곡 여섯 작품 정도를 공개하게 되었네요. 즐겁습니다.

모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신청을 해야하는 걸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누군가 간절히 원하는 분이 계신다면 진심으로 양보할 생각도 했습니다.

아직 어린 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쩌다보니 사람을 만나는 게 익숙하지 못한 인간으로 나이가 들어버렸고, 이곳에 정착한 이유도 불순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단순했으니까요. 좋은 글들이 잔뜩 올라오는 공간을 워드 프로그램이나 글 저장용 클라우드처럼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그래도 그냥 신청하고 기다렸어요. 좀, 외로웠거든요. 들으면 진심으로 재밌어 할 수 있는 말이 들리는 곳에 있고 싶다는 욕심이었습니다. 딱 그 정도의 기대감으로 출발했고, 그런 기대가 충족되는 모임이어서 다행이었죠.

 

도착 시간이 오후 네 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모과차를 생전 처음으로 마셔봤어요. 그렇게 두 시간을 앉아 있던 게 미안해서 밖으로 나오고, 준비중이던 모임 장소에 들어갔었습니다. 표현은 굼떴지만, 죄송했어요. 괜히 걱정을 끼쳐버려서요.

모임이 시작된 이후에는 꾸역꾸역 열심히, 심지어 다들 자리에 앉아 경청하는 순간에도 먹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먹었는데도 쿠키 빵 하나, 샌드위치 하나를 못 먹어봤네요. 다른 걸 먹느라 인기 상품을 놓친 걸까요?

오디오 북 탓을 하고 싶어요. 작품이 괜히 음산해서, 안 그래도 허둥지둥인데 정신을 못차렸죠. 작품이 좋은건지 오디오 북이라 흡입력이 좋았던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중간에 아는 분을 만나 인사하기 전까지는, 안 들으려고 해도 계속 내용이 들리더군요. 다들 무섭지 않다고 하시던데, 읽어봐야 할까봐요.

마지막 응원의 발언처럼 되어버렸지만, 사실 마음 속에는 완성된 질문이 있었어요. 지금 브릿G의 글 쓰는 공간을 거의 워드 프로그램처럼 쓰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게 어디 서버라던가 그런 곳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가 하는, 좀 멍청한 질문이었죠. 기지로 뱉은 말이 좋은 반응으로 이어져서 다행이었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이 십 분으로 잡혀있는 게 너무 짧았다고 비판적인 생각을 갖기도 했었는데, 오히려 제게는 좋은 기회가 되었네요.

아쉬운 점은 진행 보다는 제 탓이 더 많습니다. 콜라를 챙기고 싶었는데 못 가져갔고, 양말을 사려고 했는데 아차 하다가 못 샀어요. 명찰도 순순히 반납했죠. 다음 만남을 위한 수거였을까요? 부끄러워서 제대로 차고 다니지도 못했으면서, 막상 손에서 떨어지니 아쉽더라고요.

이건 불만보다는 아이디어에 가깝지만, 자리가 테이블 식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괜히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둘러 앉고, 아는 사람끼리는 자리가 부족해서 못 앉고 그랬으려나요? 제가 서서 있는 걸 너무 좋아했는지 의자가 많지 않아도 괜찮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근데 두 시간을 서 있는 건 아무래도 다들 싫겠죠?

 

모임이 늦게 끝날 줄 알고 밤을 새고 집에 돌아가는 계획을 세웠어요. 근처에 눈여겨본 바에서 칵테일 한 잔 시켜놓고 첫 차를 기다린다는, 이상하게 낭만적인 계획이었죠.

근데, 생각보다 일찍 끝난 덕분에, 지금 이렇게 집에 와서 후기를 남깁니다. 이제 새벽 세 시군요. 이 시간에 집에 있을 줄은 몰랐어요.

후기를 어떻게 끝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하던대로 하자면, 읽어줘서 고마워요.

브릿G가 더욱 더 잘 되길 바랍니다. 트위터 트랜딩의 주인공은 작가였지만, 그 작가가 등장하는 공간은 여기니까요.

 

아, 영 엉뚱한 소리지만 첨언하자면, 글이 출판된 작가들 너무 부러워요.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마냥 부러워요. 종이책에 이름 박혀있는 사람 세상에서 제일 부럽습니다.

D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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