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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했던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전시 감상 리뷰…

글쓴이: 노르바, 3시간 전, 댓글8, 읽음: 29

리뷰… 하니까 문득 떠올라서요.

저는…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가만있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아 다만… 집에서는 ‘게으른 인간’취급을 받는데, 그 이유인 즉슨…

집안일 팽개치고 이딴거나 하고 있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콜록콜록

킁…

(으으디 가모장이 이렇게 바깥일을 하겠다는데 으이!)

작년에 혼자 북치고장구치고 아무도 안시켰는데 그냥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마녀와 주술과 일상리추얼을 테마로 한 잡지(라지만 그냥 2~30페이지짜리 PDF)를 AI 도움받아서 8개쯤 만들어 봤었는데요.

그 중에서… 작년에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전시한대서 서대문미술관이었나 암튼 거기 갔던 감상문을… AI에게 넣고 ‘잡지기사처럼 다시 작성해줘’ 라고 해가지고 만들었던거… 행사 제목과 테마가 ‘강령’인데 마녀가 안 갈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당연히 저는 이런 전문적인 편집디자인을 배운적이 없기 때무네…. 대애애충… 미ㄹ캔버스 가지고 그냥… 뚝딱거려보는 느낌으루다가 만든…

(글자는 잘 안보이실거라 맨 아래 본문 다시 써드렸읍니다)

 

〈강령: 영혼의 기술〉

서울, 그 자체가 세앙스séance가 되다

프랑스어 séance는 두 가지 뜻을 품고 있다. 하나는 영혼을 불러내는 ‘강령회’, 다른 하나는 영화를 상영하는 ‘상영회’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불러내는 의식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장면을 불러내는 영화가 같은 단어로 묶여 있다는 사실은, 이번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주제를 완벽히 요약한다.

 

[삼하인과 현대의 강령술, 그리고 서울]
올해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의 발전에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경험은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예술감독팀은 지난 10년간 대안적 형태의 지식에서 영감을 얻는 예술가의 수가 급격히 증가해 온 현상에 주목하며 억압된 문화적 전통에 담겨있는 신비주의, 예지적 접근, 비밀스러운 시선이 예술 담론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배경을 살펴본다.

예술감독팀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무렵, 사회 격변기를 겪으면서 일반 대중들이 영적인 실천에 대해서 급격하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 당시에 많은 예술가들 또한 이러한 움직임에 영향을 받았고, 지금까지는 사실 그러한 것들이 미친 영향이 대체로 간과되어 왔지만 이것이 현대 미술의 탄생에도 밑거름이 되어 왔다”라며, “그 당시에 일어났던 영적인 혁명 이 남긴 영향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느껴지고 있고, 이번 전시는 그 시기에 남겨진 유산들을 동시대의 문화와 연결해 보고자 하는 시도”라고 밝혔다.
이어, “서울은 풍부한 영적 전통, 급격한 근대화를 거치며 형성된 역사, 동시대의 전 지구적 문화 현상이 혼재하는 곳으로,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존재에 관한 질문을 나누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일상을 넘어선 세계로 접근하기 위한 매개된 경험으로서 ‘강령’은 이번 비엔날레의 은유이자 형태적 모형이다. 오랜 역사에서 예술은 그 자체로 관습적인 인간 경험 너머로의 세계에 진입해 그들과 조율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 왔으며, 예술감독팀은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었지만, 규명하지 못한 이런 경험을 ‘영혼의 기술’이라고 명명한다(서울문화투데이 인용).

안톤 비도클, 할리 에어스, 루카스 브라시스키스로 구성된 예술감독팀은 이번 비엔날레의 키워드를 ‘강령(降靈)’으로 정하고, 서울이라는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세앙스’ 현장으로 바꾸어놓았다.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열리고 있으며, 의식·의례·명상·종간(inter-species) 연결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탐사하는 87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이 전시는 영혼의 실존을 논증하지는 않는다. 대신, 인간이 왜 여전히 영혼을 불러내려 하는가—그 본능적 충동과 정신적 필요를 탐색한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로 드러난 집단적 상흔, 죽음과 부재에 대한 사회적 트라우마 속에서 ‘영혼의 기술’은 기억과 돌봄, 그리고 억눌린 지식체계를 복원하는 예술적 장치로 작동한다.

 

[분필그림과 환영의 서문]
전시에 대한 설명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홈페이지에서 PDF로 가이드북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리플렛 수준을 생각하면 안된다. 실제로도, 전시장 바로 앞에 열람 가능하게 가이드북이 놓여 있는데, 작고 두껍다……. 말 그대로 ‘책’. 꼭 미리 훑듯이라고 읽어보고 가기를 권한다. 어려운 전시다.

솔직히, 필자는 루돌프 슈타이너, 애니 베전트, 백남준 이 셋 이름만 보고 갔다. 그리고 이들의 이름은 그저 ‘미끼상품’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루돌프 슈타이너의 분필 그림들이 맞이한다. 그가 강연 때마다 칠판에 직접 그린 도식들은 일종의 영적 설계도처럼 보인다.
검은색 그림들의 입구를 지나가면 강렬한 핫핑크 방이 맞이한다. 첫번째 전시방의 제목은 [어제 온다면, 내일은 최초가 되리라]. 가이드북만 볼 때는 대체 저게 뭔 소리야 했는데, 영문(Come Yesterday, You’ll Be First Tomorrow)을 보니 이해가 된다.

핫핑크 방은 신성함보다는 생명력에 가까운 색채로 감각을 자극한다. 조지아나 하우튼의 미시적 회화에는 돋보기가 비치되어 있으며, 이는 눈이 아닌 ‘의식의 초점’을 확장하라는 요청처럼 느껴진다.

조던 벨슨의 영상 〈매혹〉과 〈명상〉은 정신적 통로를 직접 개방하는 듯한 강렬한 시각적 자극으로 전시장 내에서 거의 ‘의식’에 가까운 체험을 유도한다(고백하자면 사실 〈매혹〉 초반부 보자마자 뛰쳐나가고 싶었다. 물질에서 정신으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이 아니라, 그냥 작정하고 정신으로 나아가기 위한 목적만으로 만든 영상이었다. 전시감상 초반부부터 트랜스에 빠지고 싶다면 들어가봐도 좋다).

데구치 오니사부로의 무성영화 〈쇼와 시대의 칠복신〉은 일본적 신앙의 이미지와 20세기 초 오컬티즘의 융합을 보여준다. 심지어 어디서 구한건지, 불룩한 모양의, 20세기 TV브라운관에 틀어두었다. 영상에서는 데구치 본인이 의복을 갖추고 칠복신을 연기한다. 직접 잉어를 낚고(너무 작다며 다시 낚기까지), 신에게 바치고, 또 다른 칠복신으로 복장을 갖추고 사람들까지 동원해서 의식을 수행한다.

이 영상 속의 자아연출은 위카의 유명인사였던 알렉스 샌더스를 연상시킨다. 샌더스도 자신의 리추얼을 영상매체로 남겨두었다. 스스로를 매개체로 삼는 예술의 오랜 전통이 여기서 되살아난다.

그 옆에는 애니 베전트의 [상념체] 라는 서적의 각종 언어권 에디션 모음을 전시해두었다. ‘애니 베전트’는 신지학이라는 요상한 분야를 들이파다보면 곧바로 만날 수 있는 이름이다. 무려 한국어판(1992년)도 있었다. 참고로, 최근에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마녀와 영매의 것: 현대의 오컬티즘]
‘마녀와 영매의 것’이라 명명된 두 번째 공간은 이 전시의 중심부다.
안리 살라의 영상 〈생각의 과잉〉은 자살 장면이 담긴 사진 두 장을 ‘건축’으로 분류한 멕시코 화가 다비드 시케이로스에게 영매를 통해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다. 예술, 그리고 예술가 사후의 대화를 중개하는 타로 테이블, 불안정한 바람, 그리고 ‘보이지 않는 청중’이 한데 뒤섞인다.

이어 등장하는 〈사이버마녀 선언문〉은 인터넷 이후의 마법을 선언하며, 기술·여성성·네트워크를 새로운 주술 체계로 재정의한다.

https://lucilehaute.fr/cyberwitches-manifesto/cyberwitches-manifesto-en.html

그 절정은 수잔 트라이스터의 〈헥센 5.0〉이다. 78장의 대형 타로 회화는 기후위기, 외계환경, 인류세 이후 우주세까지의 세계를 마법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다. 이 작품 앞에서는 타로가 단순한 예언 도구가 아니라, 멸망 직전과 이후의 인간 문명을 기록하는 데이터베이스처럼 작동한다.

https://www.suzannetreister.net/HEXEN_5/Tarot.html

전시회에 가기 전,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검색해서 블로그에서 사진을 봤지만, 저 테이블이 타로라는 말을 보지 못했다. 덕분에 필자는 저걸 보자마자 육성으로 “미쳤다!!!!”를 내지를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무슨 약을 하면 이런게 나오지? 아니지, 무슨 약을 하면 이런 걸 전시할 생각을 하지?

벽면의 마야 데렌 〈마녀의 요람〉은 초현실적 리듬 속에서 ‘주체의 붕괴’를 시각화하고, 안젤라 수의 〈라크리마〉는 ‘닌’이라는 과학자와 영혼, 그리고 실종된 작가 자신을 잇는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예술가-매개체-영혼의 삼중 구조를 재현한다.

 

[트랜스와 실천적 우주론]
‘트랜스’ 섹션에서는 반복적 동작을 통한 신체의 각성 상태를 탐색한다. 〈비올렛 e a〉의 접히는 금속 구조물은 손의 감각과 명상을 연결하는 장치이며, 그 반복적 행위는 기계와 신체가 공유하는 리듬을 드러낸다. 접고 펼치고 다시 접는 행위 자체가 명상이 되고 점차 손의 트랜스 상태를 만들어낸다. 이 전시에서 유일하게 관람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손을 다칠 우려가 있고, 전시 자체가 난해해서인지 다들 들여다보고 지나갈 뿐이었다. 이런 곳에서 단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집에서 조용히 오랜 시간을 들여서 몰두하면 트랜스 상태에 들어갈 수 있을 듯 하다.

‘실천적 우주론’으로 들어서면, 예술은 명상에서 과학으로, 그리고 다시 주술로 회귀한다.
안민정의 ‘가족의 초상’ 시리즈는 애니미즘과 분자생물학, 사랑호르몬(옥시토신)의 분자식을 결합한 개인적 신화이며, 인주 첸의 〈외계 행성 평가〉는 레무리아 신화와 지질학, 크리스털 에너지, 그리고 소리의 설치가 한 작품으로 융합된 복합적 의식 공간이다. 물리적 재료와 비물질적 신념이 여기에서 등가 교환된다.
특히 안민정 작가의 작품은 사실 작가 개인의 유튜브에도 업로드 되어 있지만, 꼭 직접 가서 보길 바란다. 이게 오컬트인지, 과학인지, 아니면 대환장 일상개그물인지.

윙 포 소의 〈증발하는 심포니〉는 물방울이 돌에 닿자마자 증발하는 찰나를 포착한다. 영혼이 실체를 잃는 순간의 형상을 이보다 간결하게 표현한 작품은 드물다.

 

[기술과 힐링산업과 등가교환]
2층 이후의 공간은 오컬티즘이 기술과 접속하는 지점이다.
입구에는 과달루페 마라비야의〈질병 투척기 #17〉이라는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기사 첫머리 사진). 수세미, 뱀의 머리와 심장 해부 모형, 흑요석, 6개의 징 등 다양한 재료로 구성된〈질병 투척기 #17〉은 작가가 제의를 진행하는 동안 활성화되도록 고안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마라비야가 어린 시절 이주의 경험을 반추하는 과정에서 수집하고 애니미즘적 속성을 지닌 것들을 골라낸 물건들을 결합하여 완성했다.
‘주역과 예술품’의 도구들은 뉴에이지 산업의 허무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현대판 주술의 상품화, ‘힐링 산업’을 비판한다.

‘테크네(Techné)’ 섹션에 이르러서는 예술이 기술을 통해 다시 주술의 형식을 회복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이때의 ‘테크네(기술)’는 인간의 손이 아닌, 영상 장비와 데이터에 의해 수행되는 현대의 주술적 매개다. 특히 대만 출신 작가 슈 챠웨이의 〈영혼 기록〉은 그 상징적 사례다.

작품의 배경은 대만 해협의 한 섬에 전해 내려오는 개구리신 신앙이다. 그곳 주민들은 신이 깃든 가마를 흔들어 신의 뜻을 묻는 의식을 행한다. 제단에 부딪히는 가마의 움직임이 곧 신의 대답이 되는 셈이다.
슈 챠웨이는 이 전통적 의식을 스튜디오 안으로 옮겨온다. 사람들은 크로마키용 그린 스크린 앞에서 가마를 들고 흔들며, 작가는 카메라 앞에서 “장군님”이라 불리는 신에게 진심으로 말을 건넨다. 현실의 신앙 행위를 완벽히 재현하면서도, 그것을 영상 매체의 프레임 안으로 압축시킨 일종의 의식 재연이다.
이 촬영 장면은 얇은 양면 브라운관에 동시에 상영된다. 한쪽 화면에는 실제 의식의 과정, 다른 한쪽에는 그 영상을 토대로 디지털로 재구성된 가상의 사원이 등장한다. 물리적 공간과 가상의 공간, 신앙의 현장과 기술의 장치가 서로를 비추는 구조다.

〈영혼 기록〉은 질문을 던진다. 과거의 무속이 몸과 언어로 신을 매개했다면, 오늘날의 주술은 어떤 장치를 통해 이루어지는가. 슈 챠웨이는 브라운관과 디지털 영상이라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21세기에 여전히 작동 가능한 ‘마법의 기술’을 실험한다. 그것은 더 이상 초월적 존재를 호출하는 행위가 아니라, 신앙의 형식이 기술의 언어 속에서 어떻게 재번역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현대적 강령술이다.

전시의 마지막 장, ‘등가교환’ 섹션은 전체 비엔날레의 주제를 응축한 결말부다. 이곳의 중심에는 잉크젯 프린터와 물탱크가 설치된 작품 〈유령〉이 있다. 겉보기에는 단순하다. 관람객이 QR코드를 통해 고인의 사진을 전송하면, 프린터가 물의 표면 위로 잉크를 분사해 초상을 인쇄한다. 아니, 인쇄하려고 한다. 그러나 물 표면에 뿌려진 잉크는 곧 물에 녹아 퍼지며 사라진다. 관객이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잉크가 희미하게 스며든 물, 그리고 그 잉크가 다시 정화되어 순환되는 과정뿐이다.
이 단순한 작동 원리는 의례의 구조를 가진다. 프린터는 제단의 사제처럼 죽은 자의 형상을 잠시 현현시키고, 물은 그 초상을 받아 흡수한 뒤, 증발과 여과의 순환 속에서 재생된다. 디지털 장치의 기술적 행위가 곧 ‘강령’의 의식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유령〉은 물리적 이미지가 사라지는 과정을 통해, 기억과 존재의 덧없음을 시각화한다. 잉크가 물에 스며드는 그 찰나의 장면은 죽은 이의 모습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순간과 닮아 있다. 물 위에 머무는 초상은 인생의 짧은 지속을 상징하고, 잉크가 완전히 퍼진 후에도 남는 흐릿한 색의 잔영은, 사라짐 이후에도 이어지는 기억의 흔적을 암시한다.
3층까지의 긴 여정 끝에서 이 작품은 일종의 정화 의례처럼 기능한다. 강렬한 이미지와 사운드로 구성된 앞선 공간들과 달리, 〈유령〉은 조용하고 느리게 사라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관람자의 정신을 가라앉힌다. 기술이 주술로, 인쇄가 제의로, 사라짐이 순환으로 변하는 이 마지막 장면은, 결국 ‘영혼의 기술’이라는 전시의 부제를 가장 명료하게 시각화한 순간이다.

 

[부재가 입증하는 존재, 그리고 예술]
〈강령: 영혼의 기술〉은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지 않는다. 이 전시는 예술이 더 이상 물질적 세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선언이자, 망각과 기억, 인간과 비인간, 생과 사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의 인류학적 실험이다.

서울은 지금 하나의 거대한 강령회장이다.
이곳에서 영혼은 부활하지 않는다. 대신, 잊힌 지식과 상처, 그리고 ‘인간이었던 것들’의 잔향이 소환된다. 삼하인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이 전시는 현대 예술이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주술, 즉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의 의식을 보여준다.

이것은 예술로서의 세앙스이며, 기술로서의 위카, 그리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매개체가 되는 거대한 의례다.

마지막으로, 가이드북에 적혀 있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망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꿈속에 머물고, 건물을 떠돌고, 
파편으로 나타나며, 세상의 면면에 암호처럼 새겨져 있다.
영혼과 유령들은 세상의 본질을 관통해 움직이며, 
보이고 들리기를 요구한다. 
이 교란들, 억압받고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우리는 망자를 존중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를 위해 미래를 개선할 수 있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과거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바로 지금, 
우리와 같은 공간에 있다.

 


영화 [8번출구]를 마녀위카Wicca 관점에서 리뷰한 기사도 썼었는데… 그거는 다른 유튜버들이 말한거 우라까이가 많아서… 패스 ㅎㅎ

 

안민정 작가님 거는 한번 보세요. 진짜 개웃김

영어로 자기 가족들 이름 적혀 있고 언제 태어났고 누가 첫째고 엄마랑 아빠가 언제 결혼했고 다 적혀 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빠는 맨 왼쪽에서 약탕기에 인삼을 넣고 계시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작가는 맨 오른쪽에서 이 장면들을 자기 눈에 담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로에를 들고 있는 어머니한테서 후광이 나오는데 그 후광에 LOVELOVELOVELOVELOVELOVELOVELOVELOVELOVELOVELOVELOVE 라고 다 적어놨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공기중에 옥시토신(사랑 호르몬으로 알려짐) 분자식을 적어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오컬트야 과학이야 탱화야 아니면 대환장 일상개그물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거기다 어머니 자궁과 자식들이 다 선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나이가 몇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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