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보고 왔습니다 (스포 감추기 해둠. 호메로스가 스포하긴 함(?))

화장실 참기 챌린지하고 왔습니다.
이게 원래 영화를 볼 계획은 아니었고, 버스 타고 시내 가서 카페에서 책 좀 읽다 오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아, 오디세이 봐야 하는데!’ 싶어서 도중에 예매하고 바로 영화관에 간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냥 영화가 존내 재밌습니다. 3시간 가까이 되는데도 지루하지 않아요.
평소 놀란 감독님 영화 길고 어렵고 지루해서 불호였는데, 이건 각색이 너무 잘된 데다 아는 내용이라 더 재밌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오뒷세이아’라는 좋은 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디세이지만 정작 오디세우스보다는 다른 인물들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라든가 페넬로페, 안티노오스, 페넬로페 시녀 등등.
제가 오디세우스였다면 억까 오지는 개빡센 귀향길에 정병 MAX 찍고 이타카고 뭐고 걍 바다에서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귀향을 택한 오디세우스도 대단하고, 그걸 기다린 페넬로페도 대단하고…
칼립소 선생님의 정신과 치료가 좀 많이 길어졌네요… 선생님 무슨 치료를 7년씩이나 하세요… (농담임. 붙잡아둔 거 앎.)
저는 일반관으로도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4D랑 아이맥스관 예매도 시도해봤는데, 무슨 야구장 티켓팅하는 줄 알았습니다. 영화 티켓 예매하는데 대기창 뜨는 거 처음 봤어요 
캐스팅 논란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영화를 보고 나오니까 정말 한심한 논란이었구나 싶었습니다 ㅋㅋ
엘리엇 페이지가 맡은 시논. 처음엔 트로이 목마에 대해 바닷가로 정찰 나온 트로이군들에게 알려주는 병사 1인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고요… 트로이 목마 속에 있었을 사람들의 고충도 처음 느껴봤습니다(?)
루피타 뇽오가 맡은 헬레네(와 클리타임네스트라). 클리타임네스트라는 그렇게 비중이 크진 않고… 헬레네는 제가 본 매체 속 헬레네 중에 가장 설득력 있었습니다.
제 생각엔 놀란 아저씨도 헬레네랑 파리스 커플을 보면서 ‘이게 말이 되냐?’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초딩 때 보면서 뭔 한 나라의 왕자가 여미새마냥 예쁘다고 유부녀를 냅다 납치해오냐고, 이게 말이 되냐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놀란 아저씨는 적어도 당대 개쩌는 문명을 갖춘 트로이의 무역 항로에 욕심이 나서, 헬레네를 핑계 삼아 트로이를 쳤다고 해야 납득이 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그 멋진 문명은 노래로만 전해질 거라고 오디세우스가 언급하기도 했고요 ㅠ
영화에서도 헬레네는 사실상 핑계고, 아가멤논이 트로이의 무역로를 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전쟁을 벌인 것으로 나오는데요. 클리타임네스트라를 굳이 보여준 것도 작중 시점에는 이미 고인인 아가멤논이 얼마나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였는지 알려주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아가멤논은 얼굴이 제대로 안 나오는데도 총사령관답게 포스가 미쳤습니다. 또 메넬라오스가 대머리로 나옵니다. 아가멤논은 풍성했던 것 같은데… 하긴, 그 정도 비주얼은 돼야 스파르타 왕이긴 해. 헬레네 얼굴에 상처가 있는데, 그거 메넬라오스가 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놀란 아저씨가 메넬라오스가 헬레네를 냅다 용서해준 것도 이해를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도 초딩 때 보고 ‘뭐임?’ 이랬긴 합니다 ㅋㅋ
초딩 때 그로신 보다가 텔레마코스가 스파르타에 갔을 때 메넬라오스랑 헬레네가 하하호호 잘 살고 있길래 솔직히 좀 이해가 안 갔는데, 영화에서는 두 사람 사이에 앙금이 씨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메넬라오스가 헬레네를 두고 ‘이 얼굴’ 때문에 전쟁이 났다는 식으로 비꼬니까, 헬레네가 ‘야, 말은 똑바로 해. 난 핑계고 다 니 형 욕심 때문이잖아’ 라고 반박하는 걸 보니 ㅋㅋ
세이렌의 노래를 표현한 방식도 인상적이었고, 키르케 캐릭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르고스 ㅠㅠㅠㅠㅠ 증말 강아지들은 왜 그러는 거야 ㅠㅠㅠㅠㅠ
진짜 너무 재밌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