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슬립] 3번 승강장
내가 G시에 있는 그 역으로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됐을 때, 휴게실에서 선임과 마주 앉았다. 선임은 믹스커피 봉지로 종이컵 안쪽을 휘저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을 꺼냈다.
“너 아직 3번 승강장 얘기 못 들었지?”
“그게 뭔데요.”
“폐쇄된 지 오래된 승강장인데, 거기로 통하는 문이 하나 있어. 그런데 어디 있는지는 몰라. 위치가 매번 다르다는 사람도 있고. 아무튼 그 문을 발견하더라도 절대로 넘어가면 안 돼. 거기에 열차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진짜 사람인지는 아무도 몰라.”
나는 웃어넘겼다. 어느 직장에나, 어느 장소에나 그런 실없는 괴담 하나쯤은 있는 법이었다.
“괜히 호기심 부리지 마. 순찰 돌다가도 이상한 문이 보이면 그냥 지나쳐.”
O O O
그날 막차가 끊긴 후, 나는 순찰 중에 역사 구석에서 노숙인 한 명과 실랑이를 벌였다. 셔터가 내려간 상가 앞에 박스를 깔고 앉은 노인이었는데, 좀처럼 자리를 뜨려 하지 않았다. 실랑이는 30분 가까이 이어졌고, 타이르기도 하고 몸으로 밀어내기도 하면서 노인을 겨우 다른 출구 쪽으로 돌려보냈다. 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진이 빠진 채 되돌아섰다.
그때 벽 한쪽,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닌 듯한 위치에 문이 하나 눈에 띄었다. 손잡이도 없고, 표지판도 붙어 있지 않은 철문이었다. 분명 내 기억에도 없는 문이었다.
낮에 들었던 선임의 말이 떠올랐다. 그냥 지나치라던 말.
하지만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그 틈으로 익숙하지 않은 냉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순간 호기심이 경고를 눌렀고, 어느새 나는 손전등을 켜고 문을 밀고 있었다.
O O O
안쪽은 3번 승강장이었다. 스크린도어도, 역사명도 없는, 콘크리트 벽만 남은 공간.
안내판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 숨을 쉬듯이.
그 안에… 무언가 있었다.
사람들.
한둘이 아니었다. 정확히 몇 명인지는 셀 수 없었다.
줄지어 늘어선 채, 저마다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자세였다. 다만 이 역에는 더 이상 오는 열차가 없었다.
나는 손전등을 들어 비췄다. 빛이 닿는 순간 맨 앞줄에 서 있던 형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이럴 수가.
얼굴이 없었다. 이목구비가 있어야 할 자리는 매끈했다. 그런데 그 매끈한 면에, 잠깐 내 얼굴이 비쳤다. 마치 물웅덩이에 비친 것처럼, 일그러진 채로.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등 뒤로 문을 찾아 손을 뻗는 순간 그나마 있던 안내판 불빛이 뚝 끊겼다. 승강장 전체가 완전한 어둠으로 돌아갔고, 인기척도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나는 정신없이 왔던 길을 더듬어 가까스로 문을 밀고 나왔다.
O O O
다음 날 아침, 나는 역사 사무실 문을 열었다. 먼저 출근해 있던 선임은 등을 돌린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 불빛만이 그의 어깨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선배, 안녕하세요. 근데 저 어제…”
내가 말을 걸자 선임이 “왔어.” 하고 대답했다.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그 목소리가 나오는 방향이었다.
등은 그대로였다. 어깨도, 앉은 자세도, 모니터를 향한 몸도.
하지만 목만이, 몸통과는 무관하게, 천천히 180도 돌아가 있었다. 얼굴이 나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등을 보인 채로.
“응, 뭔데?”
지극히 평범한 말투였다. 마치 그 자세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는 듯이.
목이 돌아간 채로, 선임이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몸은 등을 보인 방향 그대로 걸었고, 얼굴만이 줄곧 나를 향해 있었다. 걸음마다 목이 아주 조금씩 더 돌아갔다. 이제 180도가 아니었다.
나는 사색이 된 채 물러서며 물었다.
“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예요?”
선임의 입이 웃는 모양으로 벌어졌다.
문 너머 복도의 불빛이, 안내판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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