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해할 수 없는 의식의 흐름과 고민

분류: 수다, 글쓴이: arsgem, 21시간 전, 댓글7, 읽음: 89

방금 올라온 따끈따근한 글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생각의 회로가 이 글을 기반으로 해서 이상한 곳으로 흐릅니다.

이거? 써볼까? 해볼까?

그래서 끄적끄적, 주섬주섬 적어봤습니다. 이런… 벌써 1시가 가깝습니다…

소설이라고 보기는 힘들어 브릿g에는 올리지 않겠지만, 만들것 같습니다. 아마도요…

 


<아포칼립스 생존수첩>

 

세상이 멸망했다.

아니, 정확히는 모른다.

세상이 이렇게 된 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고,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지도 곧 1년이 되어간다. 그렇다고 세상 어디에도 사람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도로는 곳곳이 끊겼고, 댐이 무너진 것인지 범람한 하천이 길을 삼켜버린 곳도 많았다. 멀리까지 가보려 해도 이동할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내가 살던 도시의 절반 정도는 돌아다녀 봤다.

처음에는 물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나중에는 생존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혹시 어디선가 연기가 피어오르지는 않는지, 불빛이 보이지는 않는지,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먹고 마시는 것은 문제가 없다. 아니, 없었다.

전기는 끊겼지만 마트와 편의점 폐허에는 통조림이 남아 있었다. 유통기한이 몇 년씩 지난 것도 있었지만, 통이 부풀지 않고 냄새가 이상하지 않으면 일단 먹었다. 죽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물은 조금 더 큰 문제였다.

정 안 돼서 범람한 강물을 끓여 마셔봤다. 끓인다고 다 괜찮아지는지는 몰랐다. 그래도 그대로 마시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었다. 다행히 연료는 있었고, 아직까지 죽지는 않았다.

어차피 마실 수 없는 물이라면 죽을 테니, 한번 마셔보자.

그런 생각이 통했던 셈이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통조림은 거의 바닥났다. 남아 있는 물자를 찾으려면 더 멀리 이동해야 했다. 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도시는 사람이 살던 곳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터전으로 변해갔다.

아스팔트의 갈라진 틈으로 풀이 자랐고, 건물 외벽에는 덩굴이 뒤덮였다. 길을 점령한 야생동물들은 처음에는 나를 피했지만, 요즘에는 멀리서 가만히 바라보는 놈들도 있었다.

도시가 점점 야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근처에는 군부대가 없었다.

파출소에 들어가 진압봉과 방검복, 무기가 될 만한 장비 몇 개를 챙기기는 했다. 하지만 저것들이 어떤 상황까지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총이 있었다고 해도 제대로 쓸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지하철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는 들어갔어야 했다. 전기가 끊긴 직후라면 선로를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어두운 지하로 내려갈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늦었다.

언제부터인가 지하철 입구 안쪽에서 처음 보는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물인지 벌레인지 알 수 없는 것들. 빛을 비추면 달아나는 것도 있었고, 오히려 빛을 향해 다가오는 것도 있었다.

두 번 다시 가까이 가지 않았다.

예전에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죽기는 싫지만, 세상이 멸망한다면 차라리 다 같이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동의한다.

혼자 살아남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통조림을 따고, 물을 끓이고, 오늘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방금, 내가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어쩌면 인류 전체가 몰랐을 사실이었다.

푸른빛이 일렁였다.

공기가 물결처럼 흔들리더니,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사람처럼 생겼다.

팔도 두 개였고 다리도 두 개였다. 눈과 코와 입도 제자리에 있었다. 다만 피부가 파랬다. 몸 전체가 흐릿한 빛을 내고 있었고, 윤곽은 불꽃처럼 조금씩 흔들렸다.

외계인인가.

신인가.

그것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말했다.

“뭐야. 여기 왜 이래?”

그의 시선이 무너진 건물과 갈라진 도로를 훑었다. 풀이 무성해진 거리와 멀리 범람한 강 쪽까지 살펴보던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또 망했어?”

“또?”

그것의 등장보다 그 말이 먼저 귀에 꽂혔다.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표정에는 놀라움보다 난처함이 먼저 떠올라 있었다. 그러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알아챈 듯, 조금 안쓰러운 얼굴이 됐다.

“아…….”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한데, 규정 때문에 내가 직접 개입할 수는 없어. 외부 개입 없이 일어난 일은 자연의 섭리로 분류되거든.”

자연의 섭리라는 것치고는 규정이 꽤 구체적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보고는 해야겠지. 완전히 멸종하게 둘 수는 없으니까.”

그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였다. 푸른 글자 같은 것들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왔다 갔다 하고, 보고서 올리고, 승인받으려면…….”

그가 잠시 계산했다.

“너희 시간으로 10년 정도 걸리겠네.”

“10년?”

“아마도.”

그는 다시 나를 살폈다.

“살아남으려나.”

다큐멘터리의 관찰 대상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화가 나야 할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화를 낼 힘이 없었다. 오랜만에 듣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피부가 파랗고 허공에서 나타났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허공에 손을 집어넣었다.

정말로 허공에 집어넣었다.

팔꿈치까지 사라졌던 손이 다시 나왔을 때, 그 손에는 두꺼운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받아.”

나는 얼떨결에 책을 받아들었다.

표지는 낡아 있었지만 종이는 이상할 정도로 멀쩡했다. 먼지도 없었고, 습기를 먹은 흔적도 없었다.

“오래전에 너처럼 홀로 남겨졌던 사람이 쓴 거야.”

“나처럼?”

“완전히 같은 상황은 아니겠지만. 그때 문명 수준이 지금이랑 거의 비슷했을 거야. 아마.”

아마라는 말을 꽤 자주 쓰는 존재였다.

“언어는 이 지역에서 쓰던 걸로 변환해서 출력했으니까 읽을 수 있을 거야.”

책 표지에는 분명한 한글이 적혀 있었다.

《아포칼립스 생존수첩》

“이걸로 10년을 버티라고?”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잘 살아남아 보라고.”

“잠깐.”

다시 푸른빛이 일렁였다.

“질문이 있는데.”

그는 사라졌다.

오랜만에 만난 대화 상대와 나눈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동안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혹시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기다려봤지만, 푸른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표지를 다시 살펴보고 첫 장을 열었다.

목차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책은 곧바로 첫 번째 항목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첫 페이지 위쪽에는 큼직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거미줄, 먹을 수 있을까?】

나는 책에서 눈을 떼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구석에 거미줄이 하나 걸려 있었다.

arsg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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