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을 뽑으려다 보험료를 깎였습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라는 말이 좋은 표현인지는 회의감이 있습니다만,
오늘은 그냥 아무말 대잔치나 해 볼 겁니다.
저는 이번 주 초에 영혼을 탈탈 털어 산 지 딱 1년 된 애마의 만기된 자동차 보험을 재계약했습니다.
그런데 주행거리 5000킬로 미만이면 특약으로 이십 몇 만원을 되돌려 준다는 말에
“에이, 말이 돼? 내가 그것도 못 탔을 리가.”
라고 생각한 채로, 가솔린과 전기를 가리지 않고 먹는
우리 잡식이가 그동안 얼마나 세상을 뛰어놀았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4608km

제가 09년식 YF소나타를 고이 18년 타다가 고이 보내드리고, 전기차냐 가솔린이냐를 가지고 화석연료와 전기의 미래와 경제적 효율을 고민하다가, 결국 산 게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냐고 주변 친구들한테 미친거 아니냐면서 구박과 조롱을 받아 가면서 데려온 차가 이 녀석이라구요.
입맛도 까다롭습니다.
3일에 한 번씩 완속충전기를 물려줘야 전기를 드십니다.
2.2톤이 넘어가는 체중 때문에 살이 찔까 봐 가솔린은 함부로 못 먹입니다.
그렇게 전기만 꼬박꼬박 먹여서 1년을 키웠는데……
겨우 4608km?
원래 계획은 1년에 한 15000km 정도를 타고, 그중 70퍼센트쯤은 전기로 굴려서,
천만 원 윗돈 더 주고 비싸게 데려온 이 녀석에게서 본전을 뽑아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년 뒤 현실은 4608km였습니다.
본전을 뽑으려고 산 차가, 본전을 못 뽑았다는 이유로 보험료를 깎아 주는 상황.
이것은 승리입니까. 패배입니까.
이게 다 소설 때문입니다.
공부만 하고 놀지 않으면 잭은 멍청이가 된다고 했습니까?
그러면 소설만 쓰고 나가 놀지 않으면 뭐가 되는 것 같습니까?
저는 애마를 집에 들여 놓고 골방에서 모니터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우리 잡식이는 돈만 먹는 금쪽이가 되어 가고 있었네요. ㅜㅜ
아, 생각해 보니 제 설정을 살려서 고유가 때문에 시비가 붙은 남녀의 로맨스 소설도 구상만 해 놓고 안 쓰고 있었네요.
이쯤 되면 차를 산 건지, 소설 소재를 산 건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패턴이라면……
아, 내가 너를 어쩌면 좋냐.
다른 데로 입양을 보내야 하나요?
요즘 바빠서 야근도 합니다.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저는 원래 월급루팡이었단 말입니다.
퇴근하려고 달밤에 주차된 차로 돌아가면 제가 마굿간 지기로 전직한 것 같습니다.
아 오늘도 야근각 ㅜ.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