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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과 문체, 작가의 지문에 관한 Thinking…

분류: 수다, 글쓴이: 창궁, 2시간 전, 댓글4, 읽음: 54

최근…이랄 건 아니고, 올해 있었던 일 중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제가 중3 때 내여귀를 보지도 않았으면서 내여귀를 모티브(?)로 삼은 라노벨을 썼었던 걸 들춰본 일입니다.

제 소설을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라노벨이라니, 그것도 내여귀st 라노벨이라니, 상상이 가십니까? 아마 라노벨을 쓰던 저도 지금의 저를 예상하지 못했듯, 저는 제 과거를 알고 있음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알듯, 과거의, 그것도 까마득한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은 금기죠. 보는 순간 주화입마에 빠져 운기조식 운기브런치 운기만찬을 해도 모자랄 판일 겁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저는 판도라와 비슷한 기질을 지녔기에, “주화입마? 못 참지! 오라! 파멸이여!”를 호기롭게 외쳤고……

제목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잠시 제 문체에 관해 얘기를 하자면,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 문체의 형성을 어느 정도 ‘의도했다’고 여기는 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환경 변수보단 저의 인적 통제가 더 잘 이뤄져 다듬어진 형태가 제 문체였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시기적으로 따지면 고등학생 때 마이클 로보텀의 ‘산산이 부서진 남자’를 읽고 받은 충격적 꿀잼으로 인해 미스터리-스릴러 방향으로 문체를 잡아가고자 노력했고, 그게 21살 때 창궁-Prototype의 문체로 결실을 맺었다는 식이죠.

합리적인 역사였고, 그렇기에 오랫동안 그 역사를 믿어왔습니다. 저는 제가 가꿨다고 착각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마주한 건…… 창궁-Prototype-Prototype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제 문체의 원형을 거기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죠. 저는 꽤 충격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무개성이었다가, 혹은 개성이라 불러주기도 힘든 조악한 형태였다가 제가 문체를 만들고자 노력한 걸 기점으로 형성된 줄 알았거든요.

마치 지동설을 마주하고야 만 천동설 지지자의 심경이랄까요. 패러다임이 흔들린 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이 패러다임은 사수할 만한 가치가 딱히 있던 건 아닌지라 저는 빠르게 제가 생각했던 게 틀렸음을 인정했습니다. 제 문체는 사실 그 이전부터 형태가 있었고, 그걸 오물딱조물딱 만진 끝에 지금의 형태가 갖춰진 셈이죠.

그렇다면 이 문체의 원형은 어디에서 기원한 걸까요? 그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 성격이 그렇거든요. 깔끔하고, 명료하고, 단호하고. 그리고 닮고자 했던 마이클 로보텀도 그와 비슷한 문체였었습니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저의 기질적인 측면이 반영된 문체가 기술적으로 완성된 형태로서 기성의 작품을 흠모하게 됐다…라고 정리해볼 수 있겠네요.

 

위의 사건을 겪고 난 후, 문체에 대한 제 인식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기질이 절반, 본인 노력이 절반 정도로 이뤄진 게 문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지금은 기질:노력이 7:3 수준으로 크게 기울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8:2까지는 주장해볼 수 있겠네요.

기질은 성격, 취향, 자라오면서 겪은 경험, 사고체계(사건과 자극, 관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등등을 포괄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창궁을 타인이 아닌 창궁이라고 구분하게 만드는 요소들인 셈이죠. 그리고 이 요소 대부분은 ‘주어진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문체는 이 기질을 자신의 목적과 이상향에 맞게 얼마나 잘 ‘재구성’하느냐…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2~3’에 해당하는 항목이죠. 노력이라고 퉁쳐서 말하긴 했지만, 노력 말고 더 좋은 단어가 안 떠오르네요 하하

좀 더 쉽게 이해하면 성격(기질)과 사회성(노력)으로 말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성격은 타고난 것이라고들 하죠. 웬만해서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성은 (어느정도 주어진 능력에 기반해) 충분히 후천적인 습득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본인 성격 안에 맞는 사회성으로서 타인과 어울려 지내는 것(문체)이죠.

요점은 성격마다 커버할 수 있는 사회성의 범위가 다르단 겁니다. 누군가는 부단히 노력해도 호러라는 사람을 상대하지 못하고, 또 누군가는 기질적으로 너무 잘 맞아서 별다른 노력 없이 코미디라는 사람과 잘 어울리죠. 또 어떤 이는 부조리극과 영혼의 단짝이지만 로맨스 앞에선 쑥맥일 수 있죠.

하지만 기질적으로 맞지 않더라도 요령을 터득하면 어느 정도 웃으며 대할 수 있습니다. 잠깐이라면(분량이 짧다면) 적당히 어울려 지낼 순 있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질 겁니다. 심력 소모가 엄청날 테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곧 기질이 전부다! 기질 아래 복속하라! 같은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기질인지 아는 상황에서’ 사회성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단 얘기를 하는 거죠. 아무리 기질적으로 잘 맞는 사람이 있어도 사회성 없는 행동 하면 경멸을 받듯, 자기 기질을 똑바로 직시하고 적절한 사회성(기술)을 익혀 궁합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게 필요합니다.

사람과 사람은 꼭 기질적으로 일치해야만 잘 사귀는 게 아니듯, ‘의외의 조합’은 어디서나 있으니까요. 궁합이 맞는다는 게 기질적인 일치만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거듭 말하지만 저는 기질이 비중을 많이 차지한다고 기질이 중요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녜요. 그건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가까우니까요.

 

여기까지 했으니 다시 제 문체 얘기로 돌아오자면, 저는 깔끔하고 명료한 것을 추구합니다. 기질도 불명확한 걸 싫어하는 편이고요. 사람 답답하게 하는 걸 원체 좋아하지 않습니다.(그렇기에 제가 나폴리탄 괴담과 코즈믹호러를 쓰는 건 참 아이러니컬하죠)

또한 저는 대인관계에 있어 소통의 많은 힘듦을 겪고 있어서(어떤 신체적인 문제는 아니고 그냥 슈퍼힙스터라서 그렇습니다) 적어도 소설에서만큼은 그런 난관이 없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도 있습니다. 그래서 ‘읽히는 문장’을 쓰는 것에 상당한 추구점이 있죠.

그래서 제가 추구하는 가독성은 가독성을 위한 가독성이 아니라, 제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한 가독성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가독성이 아닌 다른 요소가 우선된다면, 그때는 가독성을 내려놓기도 하죠. 그럴 일이 거의 없어서 그렇지(…)

또한 저는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게 그거였고 이게 그거였고 저게 그거인 그런 거요. 하나의 콤팩트함… 완전함을 다루면서도 그것이 단순한 완결성을 가리키는 게 아닌, 모든 요소가 하나의 완결성으로 회귀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발견되는 지점이 있는 게 좋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곧 저에게 창궁식 빌드업이란 개성을 안겨줬고요.(모르시는 분들은 이참에 시린골-미궁 사변으로 경험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놀랍게도 이러한 성향들은 나폴리탄 괴담과 코즈믹호러 앞에서 미묘하게 빗겨나가고 부정됩니다. 깔끔하고 명료한 문장으로 불명확하며 모호한 것을 다루고, 그렇게 빌드업한 결과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괴해버리는 것이죠. 이는 역설적으로 제가 깔끔하고 명확한 것을 추구해왔기에, 완결성 있는 완전한 글을 추구했기 때문에 제 자신을 배신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제가 쓴 나폴리탄 괴담이나 코즈믹호러가 제 색깔을 벗어난 건 아닙니다. 읽어보면 결국 창궁이 쓴 작품입니다. 문체는 이런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대하는 게 사회성이고, 그러한 사회성 역시 본질은 자기 성격에 기반한 대응이라는 걸요.

제가 저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기존에 쌓아온 방식이 없었다면 나폴리탄 괴담과 코즈믹호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와 반대되는 것을 역설적으로 제가 제 자신에게 충실했기에 다룰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창궁이라는 한 개인의 이야기일 따름입니다. 논리적인 척하지만, 까고 보면 결국 지극한 개인의 경험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이야기에 불과해요. 제 특기이기도 합니다. 소설 쓰고 있는 저를 보면서 아 이러니까 소설 쓰는구나 싶기도 하네요 하하하

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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