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뭔가를 까먹었다는 생각이 들 때
오늘의 브금 Chilldspot – Monster https://www.youtube.com/watch?v=1McqvLF1M-g
별안간 이유를 까먹었다는 생각이 들 때. 중요해서 매번 되뇌이고 있었던것을 잊어버렸을 때. 이를테면 지금껏 글을 쓰고 있었던 이유나,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이유, 아니면 하다못해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고 있었던 이유마저 잊어버렸다는 생각이 들때. 불현듯 사고(思顧)가 사고(事故)를 만난 듯 멈춰버릴 때.
요즘은 그런 걸 두고 번아웃이라든지 이것저것 표현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만 뭔가 그것보다는 근본적으로 무슨 탈이 난 게 아닌가, 그런 걱정을 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이게 번아웃이라면 나는 만성인 셈인데 근데 또 사실을 굳이 부정씩이나 할 필요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SNS라던지 인터넷 게시판이라던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지겨웠고 남들이랑 대화를 해도 삽시간에 피곤해지고. 어쩌면 콜센터 일 때문인지도 모르죠.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 동안 제대로 된 말은 못하고 듣기만 하고 업무처리만 하다 보니 평소에도 사람 말을 들어주기는커녕 음악소리조차 듣고 있으면 귀가 아파요. 사람이 왜 담배를 피는지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담배를 피지는 않았지만 술은 개인적으로 조금 하게 되었네요. 위스키 맛있어서요. 커피는 그 이전부터 열심히 마셔대고 있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삶의 질은 높아졌어요. 취직하고 나서 돈을 벌게 되었고, 읽는 것보다도 더 빨리 책을 사 모을 수 있게 되었죠. 매달 양주 한 병 쯤 구매 계획을 잡기도 하고, 동네 맛집을 순회할 수도 있고, 하지도 않을 비디오 게임을 사는 등, 돈을 모으는 습관이 아직 제대로 들지 않아 낭비도 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다음 달에는 안정적으로 들어올 월급이 있으니까. 조금만 더 버틸 수 있다면, 퇴사할 때에는 퇴직금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 게다가 미약하게나마 ‘1년 경력’을 채우고 나면 다른 곳에 다시 이력서를 낼 때에도 부담은 덜할 거라고, 뭐 그런 낙관적인 전망도 가져볼 수 있겠고.
사고쳐서 생긴 빚도 조금은 안정적으로 갚아 나가면서, 그냥 가족들로부터 ‘이제 사고 안치는 착한’ 어른이 된 대우를 받는 것도 같고. 같이 사는 어머니께 매달 용돈을 드리고, 매번 ‘이번엔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노라’ 하면서 저축 계획을 세우고. 물론 매번, 머리 끝까지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르면서 퇴사가 땡길 때가 있기는 한데,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월급날이 찾아오고. 그러면 그때마다 어금니를 꽉 깨무는 거죠. 아직 퇴직금 받을 날짜를 못 채웠다고.
그러다보면 문득 첫 문단처럼 생각이 드는 거죠. 왜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더라. 더 이상 예전처럼 이걸로 굳이 ‘인정’ 같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많은) 돈을 바라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이제는 알 나이가 되었고. 아, 물론 ‘콜센터보다는’ 편한 일을 찾는 건 변함이 없죠. 그 점에서는 돈 바라고 글 쓴다고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고, 양심에 찔리지도 않아요. 지금보다 편한 일 찾는 건 사람의 본성이니까. 물론 정작 글 쓰는 게 본업이 되는 순간 그건 또 콜센터 못지 않은 지옥이 될 거라는 건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죠. 겪지 않아서 모르는 것 뿐. 다만 그건 좀 더 콜센터보다는 납득 가능한 지옥의 형태일 테고.
다만 그런 외적이고 속물적인 이유보다 조금 더 드는 생각. 이걸 왜 하고 있었더라. 그럼에도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래, 차라리 소설은 속물적으로 쓴다고 쳐. 이제 나 혼자 즐기는 수준을 조금 더 넘어서 좀 더 남에게 글을 보여주고 싶고, 대화의 수단 같은 걸로 좀 쓰고 싶고, 그러니까 공모전이든 투고든 좀 더 팍팍 내기로 하자. 물론 체력은 바닥을 기고 있으니 좀 힘들지만, 뭐. 다들 회사 다니면서 본업 하나 두고 글 쓰는 거 아니겠어요. 어차피 수입으로 이바닥에 순수하게 소설 하나로 전업 가능한 건 웹소설밖에 없잖아.
근데 그러면 소설 말고 다른 건 의문에 부치게 되는 거죠. 그림은 왜 그렸더라. 영화는 왜 보고 노래는 왜 듣고 책은 대체 왜 읽었더라? 그래. 재미는 있는데, 그래서? 소설에 쓰려고? <광고의 세계사>가 소설이랑 무슨 상관이야? 청기사파가 소설이랑 또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건 그림 사조잖아?
한쪽에서 의심이 들면, 다른 쪽에도 의심이 번져나간다는 사실을 알 겁니다. 애초에 뭐 하려고 굳이 여기에 매달리고 있는 거더라. 그리고 왜 굳이 이 의심의 싹을 자르지 않으면서도, 계속해서 이 일을 하는 거더라.
그렇게 좀 몇주를 지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일을 하니까 루틴이 있어서인지 버티긴 하더라구요. 그건 좀 다행인 일이었죠.
누군 말하더라구요. 그냥 옆에 사람이 없는 탓이라고. 제가 외로움을 많이 탑니다. 특히 인터넷으로는 관계를 대체 못하는 타입이라서요. 그래서 며칠 전에 독서 모임에 등록했습니다. 아직 체험은 커녕 첫날이 되기도 전이라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벌써부터 기대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읽은 책에 대해 말하는 건 딱딱한 감상문의 형태 외에는 처음이라서요.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뭐랄까 내 취향 갈고닦는 것보단 남들이랑 같이 읽고 싶다는 생각으로 책을 골랐습니다. 각자 읽는 책 골라가는 모임이라서요. 페미니즘/퀴어 서점에서 하는 모임이라서, 정보라 작가님의 <한밤의 시간표>나 로즈 키팅의 <오드 바디>를 들고갈까 생각중이에요. 둘 다 들고가는 것도 좋겠지만, 저만 너무 말하는 것도 재미없을테니 결국 하나를 고르는 게 낫겠죠. 기왕이면 한국 작가가 친숙할테니 전자로 마음이 기울어 있습니다.
조금 회복의 기미가 보이는 상태에서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런 걸 하고 있었더라. 하는 생각. 불현듯 최근에 윤동주 글귀를 본 게 생각이 나더라구요.
“내가 사는 까닭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의 <길>이었던가요. 사람은 살면서 많은 걸 잃어버립니다. 학교 다니면서, 회사 다니면서, 그리고 다양한 일들을 겪으면서. 그런데 대체 뭘 잃어버린 거더라. 하는 생각까지는 나지 않더라구요. 다만 제가 좋아했던 작품은 다들 무언가를 찾아가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레메디 엔터테인먼트의 <컨트롤>이라거나, 그 외에도 언급하고 싶은 작품은 많지만 병목 현상이라도 일으키는 것인지, 꼽기가 힘이 드네요. 게다가 개중에는 언급하면 불쾌해질 만한 작품도 좀 있기도 하구요.
등장인물들이 찾아가는 것은 유년의 기억이기도 하고, 이루고 싶던 꿈이기도 하고, 아니면 자신이 ‘굳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가치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것은 되찾기도, 어떤 것은 영영 잃어버린 것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생각했던것과는 다른 무언가이기도 하구요.
그것을 뭐라고 부를까, 하다가 불과 몇 시간 전에 막 찾았습니다. ‘마음’이라고 하면 딱일 것 같네요.

<현학시종상담>, 미시마 요시하루 中
네. 헛소리가 길었으니 ‘그거’해야겠죠.
네. 바로 그겁니다.
연재중인 글 홍보로 마무리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