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의 주권
(다른 곳에 올렸던 영상/비영상의 차이에 대해 가볍게 쓴 글을 이곳에도 올립니다)
창작물에서 (연극 상영을 포함한) 영상과 비영상의 차이는 1초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라고 생각한다.
1초의 주권이 창작자에게도, 감상자에게도 없고 시간에게 있는 것이 영상이고, 1초의 주권이 감상자에게 있는 게 비영상이다.
물론 ott 시대에 영상도 감상자가 배속이나 정지, 되감기 등을 이용해 얼마든지 1초의 주권을 가져올 수 있지만, 영상은 기본적으로 1초의 주권을 시간에게 두고 제작되기 때문에 영상에서 감상자가 1초의 주권을 가져오는 건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1초의 주권 차이로 인해 영상과 비영상은 각가의 다른 한계와 강점을 가진다.
비영상은 1초의 주권이 감상자에게 있다. 감상자는 마음대로 감상을 중단할 수 있고, 숙고할 수 있으며, 되돌아갔다가, 건너뛰었다가, 정독하다가, 속독할 수 있다. 이러한 재량이 영상보단 폭넓게 행사될 수 있고, 그에 따른 제한 역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창작의 관점에서, 비영상에게 1초는 무한히 늘릴 수 있지만, 최소 단위가 존재한다. 컷을 할애하거나 문장을 할애하면서, 그것을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해 발생하는 필연적 시간의 지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영상은 영상에 비해 1초에 담을 수 있는 정보량이 제한적이다. 같은 시각 매체인 만화와 영상에서의 비교도 정지된 1컷의 1초와 움직이는 영상의 1초가 전달할 수 있는 정보량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로 인식되는 정보량은 영상보다 비영상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왜냐면 1초에 담긴 영상의 정보량을 인식하기 위해선 1초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상에서 1초의 주권은 시간에게 있으므로, 1초는 어느 장면에서든 평등하게 흐르기 때문에 품고 있는 정보량과 실제로 전달되는 정보량에는 늘 괴리가 발생한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영상은 “굳이 당장 전달되지 않아도 되는 정보”들을 배치시킬 수 있다.(또한 이 정보들은 전달되어야 하는 정보들과도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기에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다)
비영상, 특히 줄글에선 모든 정보가 필연적 시간의 지연에 의해 공개되므로 필요한 정보들을 압축시켜 전달할 필요성이 생긴다. 그렇지 못하면 전개가 지지부진해지기 때문이다.
즉, 영상은 1초를 채워넣는 것이 관건이라면, 비영상은 1초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라프텔 구독을 새로 끊고 보기로 했던 애니들을 보기 시작했는데 문득 떠올라서 여기에도 공유합니다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