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가끔은 독자와 맞설 용기와 자세도 필요합니다

분류: 수다, 글쓴이: 수오, 17년 8월, 댓글12, 읽음: 162

물론 작가가 자신이 쓰려는 작품을 위해 주제 의식에 대한 심사숙고를 충분히 거쳤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문제입니다만……

독자의 시선에 너무 몰두하게 되면 가끔씩 탈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이건 혹시 독자의 기분을 거스르는 문장이 아닌가?’라고 하면서 자기가 쓰려는 소설의 소재에 제약을 두게 되는 경우라거나, 독자에게 지나친 연민을 가진 나머지 독자의 시점에 얽매여 버리는 경우도 있지요.

물론 독자의 시선에 맞추게 되면 더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고 독자들로부터 보다 공감을 이끌어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게 독일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도 있습니다.

오히려 작품이 품어낼 수 있는 시야가 지독하게 좁아질 수 있다는 염려를요.

예를 하나 들어보지요.

 

자폐 장애가 있는 장애인과 그 가족이 있습니다. 자폐증은 선천적이지만 부모가 이를 알아차리는 건 보통 아이를 만난 지 몇 년이 지날 때입니다. 갓난아기 때에는 다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줘야 하다보니 그냥 비슷해 보이거든요. 그러다보니 아이가 말을 깨우치고 다른 사람과 조금씩 소통이 가능해 질 나이 대에야 아이의 이변을 알아차립니다.

근데 대다수의 부모가 이 시기에 적절한 대응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은 자폐증에 대한 정보도 많이 알려지고 인식도 비교적 나아졌지만, 정보가 잘 없던 시절에는 이게 그냥 발육 부진인지 장애인 건지 알아차리기 힘들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가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신의 아이지만, 대다수의 부모들에게 있어서는 인생을 살면서 거의 처음으로 직접 마주하게 되는 장애인 혈육이기도 하거든요.

누군가 지나가다가 ‘너 구제 불가능한 바보네’라고 하면 화가 나시겠죠?

아니면 ‘너희 부모님은 자식 교육 정말 못했네’라고 누군가 말하면 주먹이 날아가겠죠?

그보다 더한 감정 작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실 거에요. 자식의 문제거든요.

일찍 자식의 문제를 고민하고 장애를 받아들인 부모님들의 경우는 낫지만, 아직 자식의 문제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정보가 취약한 부모님들은 아이가 의무교육 취학을 할 때에 최대의 실수를 저지릅니다.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반인 아이들과 같이 교육을 시키면 나아질 거라 믿고 일반인 학교에 보내는 거죠. 이 시기에 자폐아 판정이 떨어져도 그냥 초등학교 진학을 고집하는 부모들이 더 많습니다. 오히려 자폐증에 대한 교육 방식은 계속해서 연구되고 있고, 스무 살 이전에 지속적으로 적절한 교육을 취하게 되면 최대한 일반인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연구가 많은데도 의외로 많은 숫자가 이 적절한 시기를 놓칩니다. 아니, 놓쳐왔습니다.

정보가 없어서 몰랐거든요. 인터넷은커녕 PC통신 비싼 돈 내고 쓸 수 있던 사람도 적었던 때라.

이 부모님들에게 ‘특수 학교로 보내는 게 더 낫습니다’라고 설득을 하는 게 쉬울까요, 아니면 ‘네 말대로 초등학교에 보내면 나아질 거야’라고 도닥여 주는 게 좋을까요? 전자의 경우는, 아직 자식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한 부모는 대부분 울면서 화를 냅니다. 아무리 남 일이라곤 해도 막말 한다고, 남의 심정을 이해도 못하고 심한 말 하지 말라고, 오히려 멀쩡한 아이일 수도 있는데 다른 장애아들과 같이 지내면서 이상한 거 배우는 거 아니냐고…… 그러다보니 ‘특수 학교 보냅시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아이의 장래를 죽이려는 예비 살인자처럼 볼 수밖에 없게 되는 거지요. 공감을 해줘야 할 때에 공감도 못해주고 아이 장래까지 망치려 한다고, 심정적으로 광분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이 때에 적절하게 맞서주는 사람이 없으면, 결국 부모의 고집대로 가기 마련이고, 부모가 자신의 판단이 잘못 되었다는 걸 깨닫는 데 또 몇 년이 걸립니다. 같이 성장하여 자라난 사춘기 중학생들 사이에서 심하게 치이다 결국 크게 다치거나 더 망가져서 돌아왔을 때, 아이는 회복할 수 없는 습관이나 잘못된 버릇이 생겨납니다. 적절한 교정의 여지가 사라지는 거죠.

다시 한 번 여쭤보겠습니다.

부모의 고집에 맞서서 ‘그래도 특수 학교가 아이 교육에 가장 좋다’라고 말해주는 게 좋을까요, 그저 옆에서 도닥거리며 ‘그래 그래, 네 기분 거스르고 싶지 않아, 초등학교 가면 아이도 괜찮아 지고 다 잘 될 거야’라고 말해주는 게 좋을까요?

저희 부모님께서는 아직도 가끔씩 동생을 일반 초등학교 보낸 걸 후회하시더군요.

뭐 제 설득과 주변 분들의 설득으로 동생 중학교 진학할 때는 특수 학교로 보내서 호된 일은 당하지 않았습니다만, 부모의 고집으로 아이를 일반 중학교로 보낸 다른 집의 경우에는…… 뭐, 말하지 말죠. 제가 그래서 호러 장르를 손 대지 않는 겁니다.

귀신이나 외계인의 존재 따위는 인간의 잔혹성과 비벼볼 수 없을 정도로 싱겁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뭐 줄여 말하자면, 작가는 독자의 눈높이에 최대한 맞춰주려 노력할 필요도 있습니다만, 가끔은 자신이 작품 속에 투영하려는 주제 의식과 독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에 차이가 있을 때 궂은 소리로 맞설 자세도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럴 필요가 있다고 작가가 생각했을 때, 정말로 독자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죠.

(작품 속에서 애꿏은 소리만 내뱉거나, 별 고민 없이 툭툭 뱉어버리는 작가라면 문제가 있는 건 맞습니다만, 문제는 정작 그런 걸 즐겨 쓰는 분들은 자기 문장의 문제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엉뚱한 분들이 너무 움츠러 드는 경우가 생겨서 일부러 장문의 예시를 얹어보았습니다. 너무 신중하게 살아도 자기 작품 못 씁니다.)

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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