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연말정산] 그래도 세상은 굴러간다
1. 2025년에 이룬 것, 혹은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일은 무엇인가요? (창작과 무관해도 좋습니다)
– 저 혼자만의 것은 아니지만 이건 역시 아무래도 민주주의입니다.
2. 2025년에 본 창작물 (영화, 책, 기타 등등)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 애니메이션, 만화 부문 <진격의 거인>. 15세부터 30세까지를 <레미제라블>에 빠져서 인생을 조졌(?)다면, 아마 지금부터의 15년은 <진격의 거인>으로 인생을 조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애니메이션을 보고 너무나 감동을 받은 나머지 만화책 전권을 사서 틈날 때마다 다시 읽고 있습니다.
– 좋은 이야기를 발견하면 옷의 솔기를 뜯듯 그 이야기를 분해해서 그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영향을 받은 작품들은 무엇인지 나름대로 파헤쳐서 해부도를 만들어 보는 게 취미인데요. 간만에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뜯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대단한 볼륨의 명작을 만나서… 약 반 년 내내 초흥분상태로 지내고 있습니다.
– 영화 부문 <굿뉴스>. 윗사람들이 점잔 빼면서 삽질하는 동안 아래에서 갈려 나가는 불쌍한 사람들의 비애를 코믹하게 그려낸 블랙코미디. 영화 자체도 좋았지만 카사마츠 쇼, 야마모토 나이루라는 존재감 대단한 배우를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 영화 부문 2 <위키드: 포 굿>. 뮤지컬이 정말 ‘뮤지컬의 교과서’, ‘뮤지컬의 정석’ 그 자체라 영화로 만든다고 할 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만 그런 걱정을 한 스스로가 한심해질 정도로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추가된 오리지널 넘버 중 엘파바가 부르는 No Place Like Home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원작 소설에서는 엘파바의 반체제, 무정부주의적 혁명가의 면모가 드러나는 점이 좋았던 반면 뮤지컬에서는 혁명 색채가 상당히 빛바랬다…고 생각했는데(엘파바-피예로의 사랑, 엘파바-글린다의 우정에 집중된 느낌) 영화에서는 혁명가로서의 엘파바를 잘 부각해 주어서 좋았습니다.
또한 원작 소설 자체가 굉장히 퀴어한 소설인데 (작가도 게이, 엘파바-피예로의 아들이 바이섹슈얼인 등) 뮤지컬 공연을 볼 때는 그런 퀴어함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아쉬웠거든요. 아무래도 글린다-피예로-엘파바의 삼각관계가 헤테로섹슈얼적으로 부각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영화에서는 피예로 역할을 맡은 배우가 아무래도 오픈리 게이 배우고 엘파바 역할 배우도 동성 연인이 있고, 조연 중에서도 게이다(게이 레이더)를 발동하지 않아도 아 딱 봐도 퀴어다!!싶은 주변인물(배우: 이미 커밍아웃함)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도 했고 해서, straight하지 않은 이야기가 된 게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소설 공식커플인 Fiyereba 서사를 챙기면서도 Gelphie파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잘 각색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참고로 저는 Fiyereba 파입니다.)
– 게임 <성세천하>. 역덕입니다만 서양근대사 위주로 덕질하던 편이라 동양사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제게 측천무후 책을 사게 만들고 중국 시대극 드라마들을 보게 만들었습니다. 대충 갓 궁에 입궁한 측천무후가 되어서 여러 가지 선택지를 고르며 황궁에서 살아남기(그리고 겸사겸사 황자들과 썸도 타고…) 미연시인데 게임 플레이가 너무나 재밌었던 나머지 버튜버 남궁혁 공자님과 향아치 나으리의 리액션영상까지 야무지게 챙겨봤습니다(평소에는 버튜버 영상을 거의 보지 않습니다). 2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3. 2026년의 창작, 감상 목표는 무엇인가요?
– 지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창작을 하기는 좀 어려운 것 같습니다.
– 무엇이든 가슴 뛰는 창작물, 아 나는 이것을 보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창작물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4. 올해 브릿G에서 읽은 소설 중 가장 좋아했던 소설
여담입니다만, 지금은 볼 수가 없는데, 저는 ‘바쁜 벌꿀’ 작가님의 <너는 잠의 꿈을 꾼다>라는 소설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필명이 기억나지 않는 작가님의 <그들은 그를 헨리라고 부른다>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