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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시리즈 리뷰

분류: 책, 글쓴이: 창궁, 7시간 전, 댓글2, 읽음: 43

세상은 집단에게 휘둘리고,

개인에게 변혁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개개인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한 줄 요약

주도권은 없다. 개인과 집단만 있을 뿐.

 

 

꽤 오래 시간에 걸쳐서 삼체 시리즈를 다 읽었다. 중간에 유기했던 기간이 길어서 그런 거지만…… 어쨌든 시리즈 3권을 통으로 리뷰하는 만큼 할 말이 많고 이래저래 떠들 구석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이번 리뷰에는 그런 건 좀 소소한 것들로 치부하고, 내가 이 시리즈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다뤄보려고 한다. 읽을 땐 이런 관점보다는 그냥 재미있게 쭉 읽었다.

내가 다루려는 관점은 삼체가 다루려는 주제에서 좀 비껴나간 주제라고 생각은 하고, 그냥 철저하게 내 주관을 삼체에 투영시켜서 삼체를 재해석한 만큼 나의 재해석에 대해 똑같은 논리로 다른 결론을 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만 알고 읽어줬음 함…

하여튼 리뷰 도입부에서 살짝 예고되었듯, 내가 삼체에서 발견한 하나의 관점은 개인과 집단 사이의 관계다. 지극히 보편적인 주제이지만, 또 절묘하게 해석되는 부분이 없잖아 있다.

1권의 예원제를 보자. 예원제는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의 시대 속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집단의 광기 아래 희생된 개인인 예원제는 단순히 홍위병이라는 집단에게 증오를 품는 수준이 아니라 더 나아가 더 큰 집단인 인류에게 증오를 품게 됐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부분.

하지만 예원제의 증오는 오래 가지 못했다. 예원제의 증오는 더 큰 집단에게 돌려버린 시점에서 예원제의 손을 떠나버렸고, 에번스가 예원제의 증오를 바탕으로 집단을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집단이 개인을 유린하고, 개인이 더 큰 집단에게 증오를 품고, 그 개인은 다른 개인과 만나면서 새로운 집단을 만들었다.

그 새로운 집단이 더 조직적으로 인류를 적대하니, 이는 다시 다른 집단과 개인들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 UN과 왕먀오가 대표적이다. 이때 에번스네 집단이 패배하게 된 건 왕먀오라는 개인의 연구(물론 이것도 따지면 중국과학원이라는 집단의 연구긴 하지만 작중에서 왕먀오는 개인으로 묘사되었으니)와 쓰창이라는 개인의 악마적인 발상 덕분이었다.

1권에서 보인 개인과 집단의 관계는 2권 3권에서도 지속적으로 변주되며 반복된다.

2권에서 다루는 개인과 집단의 관계는 개인에게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4명의 면벽자를 통해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 개인이 이상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파벽 당한 타일러는 하필 일뽕 미국인이라는 점은 둘째치고 철저하게 집단만을 생각하는 개인이었다. 그는 집단을 위해 개인을 멋대로 희생시키고자 했으며, 그렇게 희생당했음에도 집단을 위해 헌신할 개인을 찾았다. 그리고 이런 전체주의적 사고는 가장 먼저 파벽당함으로써 부정됐다.

그 다음 파벽 당한 레이디아즈는 타일러와 비슷하게 집단을 생각했지만, 인류 전체라는 거대한 집단을 생각하던 타일러에 비하면 레이디아즈는 인류라는 집단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그의 계획을 생각하면 지구와 인류를 지킨다는 발상 자체가 없다), 그래서 파벽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그 뒤에 이은 청문회였다.

레이디아즈는 인류라는 더 큰 집단보다는 자기가 다스리는 조국이란 집단과 자기 자신이라는 개인을 우선시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본인이 내세운 계획 때문에 본인이 사랑하는 조국의 백성에게 맞아죽는다. 그의 계획, 즉, 인류라는 집단을 그리 생각하지 않음이 역설적으로 그가 사랑하는 개개인들의 분노를 일으켜 죽게 한 것이다.

하인즈는 이들과 비교하면 지극히 개인적이다. 집단을 생각하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을 위한 과정의 부산물에 가까웠다. 패배주의+도피주의를 주입받고 타인에게도 주입했던 그는 타일러나 레이디아즈와 비교했을 때 딱히 크게 파멸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가 개개인에게 미친 영향은 끝끝내 장베이하이까지 도달하게 되면서 나비효과를 제대로 일으켰다.(그리고 이는 3권의 블루스페이스호까지 이어지면서 나비효과라는 말로는 부족한 엄청난 변화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뤄지는 하인즈와 레이디아즈 사이의 인물이다. 물론 처음에는 하인즈보다 더한 개인주의자였고, 그렇기에 가장 면벽자다웠지만…… 어쨌건 뤄지는 삼체 문명을 향한 승리를 거머쥐기 전까지 그의 동기는 인류, 조국 같은 더 큰 집단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 자신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개인도 아니었다. 그는 좡옌과 딸이라는 타인(그리고 역시 가장 작은 집단인 가족)을 위해 움직였다.

뤄지 역시 어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이었지만, 하인즈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그건 타인을 생각함이다. 하인즈의 개인은 자기 자신 외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하인즈는 자기 자신을 들려나가는 식으로 멘탈 스탬프를 찍어냈던 것이고, 자기 자신밖에 없었기에 자기 아내에게조차 자기 생각을 공유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뤄지는 쓰창을 생각하고, 좡옌과 딸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 인류를 생각했다. 허나 그것이 뤄지가 집단을 위시하고 집단을 위했다는 건 아니다. 다만 놓치지 않았을 뿐이다. 집단과 개인이라는 저울에서 3명의 면벽자가 각기 저마다 무게를 달다 실패했으나, 뤄지는 무사히 해낸다.

뤄지를 통해 전해지는 개인과 집단 사이의 균형은 ‘개인을 위해 살되 집단을 놓치지 마라’쯤으로 말할 수 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너와 네 주변을 위해 살되 그렇다고 그 외의 사람들을 함부로 배제하지 마라’…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어찌보면 이러한 명제는 모두가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삼체에서 인류가 맞은 위기는 이러한 명제를 추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결과가 결국 집단만을 추구하다 가장 먼저 파벽 당한 타일러, 더 큰 집단을 손쉽게 배제한 바람에 자기의 집단에게 배신 당한 레이디아즈, 철저하게 개인만 생각했기에 그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 하인즈다.(어찌보면 3명의 파벽자 중에서 진짜 실패자는 타일러밖에 없다. 이 역시 더 거시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개인이 없는 집단만을 추구하는 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3권에 가선 청신과 웨이드, 그리고 윈톈밍을 통해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재고할 수 있다.

청신의 경우…… 3권의 제일 문제적 인물인데, 나는 청신을 ‘실패한 뤄지’로 봤다. 뤄지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집단을 생각할 줄 알았다면, 청신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집단만 생각했다. 왜냐면 청신의 끔찍한 선택들은 청신 개인이 지닌 내밀한 특성(모성애로 위시되는) 때문이며, 청신은 단 한 번도 개인(그 자신을 포함해)을 생각한 적 없이 오로지 집단만을 생각하며 중대한 결정들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청신은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열에 열은 집단의 손을 들어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청신은 타일러와 비교해볼 수 있겠다. 둘의 차이점이라면 타일러는 집단을 위해 개인을 지워버리려 했었고, 청신은 집단을 위해 누구도 희생시키지 못해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과를 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웨이드는 타일러를 대신해 청신의 대조적 인물로 조명된다. 웨이드는 청신과 똑같이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집단을 딱히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웨이드가 추구하는 개인적인 길이 집단에게 도움이 될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웨이드는 개인(윈톈밍)도, 집단(연방 정부)도 모두 희생시킬 수 있다. 청신이 그 누구도 희생시키지 못해 삼체에게 지구를 내어주고, 헤일로 그룹을 투항시켰던 것과 비교하면 더더욱 대조됨을 엿볼 수 있다.

누구도 희생시키지 못한 청신은 결국 인류를 멸망시켰다. 청신의 정신은 모성애라느니, 인류애라느니, 성모 같다느니 하면서 잔뜩 포장됐지만, 결국 청신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집단만을 생각했던 것이 ‘인류 멸망’이라는 사실로서 드러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지극히 개인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생각했던 웨이드는 윈톈밍을 희생시켜 그를 통해 블랙존과 곡률 추진의 힌트를 얻게 만들었고, 연방 정부를 희생시켜 곡률 추진 우주선을 만들 뻔했다.

둘의 대조 속에서 누가 옳았는지는 개인적으로 판단할 일이다. 작중 인물들이 청신을 향해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한 건 일부 사실이기 때문이다. 청신이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족족 실패해서 그렇지, 윈톈밍을 보내게 된 건 청신 덕분이고, 윈톈밍과의 관계 덕분에 블랙존과 곡률 추진의 힌트를 얻었던 것이며, 청신이 웨이드에게 헤일로 그룹을 넘겼기에 곡률 추진 연구가 이뤄졌던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따져보면 결국 청신은 집단을 생각할 때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들(윈톈밍 보내기, 윈톈밍과의 관계, AA와의 관계, 웨이드에게 그룹 인계 등)이 더 인류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그 아이러니는 웨이드를 볼 때 더욱 극대화된다.

이런 아이러니는 사실 2권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뤄지가 그 예시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예원제와 뤄지, 뤄지와 쓰창, 뤄지와 좡옌 등)와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뤄지가 좡옌을 찾고, 좡옌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파벽자가 된 뤄지 등) 속에서 인류와 타인을 잊지 않고자 한 뤄지의 결실이 삼체 문명을 향한 위대한 승리로 나왔다.

즉, 뤄지라는 이상적인 개인과 집단 사이의 조화를 내세우고, 3권에선 그것의 균형을 고의적으로 깨뜨려 뤄지와 하인즈 사이의 인물(웨이드), 뤄지와 레이디아즈 사이의 인물(청신)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면 윈톈밍은 뭘까? 싶어지는데, 이 미친 호구 로맨티스트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인물이란 점에서 하인즈와 궤를 같이하지만, 자기 자신밖에 없었던 하인즈와 달리 윈톈밍은 청신만을 생각했다. 오로지 청신을 위해 별을 선물하고, 청신을 위해 뇌만 보내졌으며, 청신을 위해 삼체에서 동화 속에 블랙존과 곡률 추진을 숨겨 청신에게 전달하고, 청신을 위해 소우주까지 만들어준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이기주의자인 하인즈와 달리, 청신이란 타인을 위한 이기적인 이타주의자인 윈톈밍은 인류에게 몇 번이나 큰 도움을 주고 청신을 도울 수 있었다.

하인즈도 돌고 돌아서 도움을 주긴 했는데……(멘탈 스탬프-장베이하이-블루스페이스호-그래비티호-관이판…) 이건 개인이 개개인에게 미친 영향이 결국 집단 전체로 확산된다는 걸로 이해하는 게 더 좋을 듯하다. 왜냐면 장베이하이부터 또 다른 개인이 끼어들고 리뷰에서 다루지 않았을 뿐이지, 다양한 주조연들이 개인으로서, 집단의 일원으로서 영향을 끼치고 받고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이런 개인과 집단의 관계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다뤄진다. 빅 크런치를 위한 소우주 포기 문제였다. 새로운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 도피처로 만들어진 소우주가 아이러니하게도 빅 크런치를 방해한 것이다. 그래서 소우주를 포기하고 빅 크런치를 일으키기 위해 대우주로 돌아오라는 제안 속에 청신과 관이판은 기꺼이 소우주 바깥으로 나가기로 한다.

사실 이는 청신에게 있어 매우 의미있는 결정이다. 왜냐면 이전까지 청신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집단만을 생각했었는데, 이때 청신은 그 무엇도 희생하지 않았다. 청신이 잃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청신은 그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 전세계가 우쭈쭈해준 것도 있지만, 난 예쁘잖아! 청신은 중대한 결정 앞에 타인의 희생만을 논했을 뿐, 자신의 희생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 청신이 마지막에 타인의 결정과 관계없이 스스로 희생을 자처함은 분명 의미있는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지극히 개인적이었던 청신이 드디어 진정으로 집단을 위해 생각한 순간이니까.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위칭 NTR 당한 윈톈밍과 AA는 무슨 죄일까 이 미친 일뽕심술쟁이 류츠신

웨이드의 최후 역시 청신이 내린 최후의 결정과 유사한 면이 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생각했던 그가 순순히 청신의 결정을 따르고 물러난 것, 그동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진한 그가 마지막엔 멈춰버린 것 역시 생각하게 만드는 바가 있다. 물론 늙어서 유해졌다는 게 유력하지만(…) 웨이드도 청신도 결국 최후에 가선 뤄지라는 이상향에 가까워졌다는 걸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삼체는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대해, 각 개인이 어떤 결정과 선택을 내리는지를 주목한다. 그리고 류츠신이 생각하는 개인과 집단의 이상적인 관계는 뤄지를 통해서 제시된다.

1권에선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대한 기초 소스를 마련해두고 판을 깔았다면, 2권에선 1권을 바탕으로 거시적인 논의를 4명의 면벽자를 통해 전형적으로 다뤘으며, 3권에 들어선 2권에서 내놓은 답을 더 정교하게 맞추는 작업을 기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단순히 시리즈적으로 봐도 2권을 끝으로 하기엔 미회수 떡밥이 많았던 게 사실이고, 3권에 가서 우주의 끝이라는 상상력의 끝을 밀어붙인 걸 나는 굉장히 고평가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1권부터 3권까지 단계별로 풀리는 그의 본심…이 참으로 볼 만했지만…… 닌자!만 아니었어도……

과학적인 상상력에서도, 기술이 불러온 사회 변화에 대해서도, 집단으로서 사회가 가지는 다양한 심리에 대해 다룬 것도, 나는 전부 즐겁게 읽었다. 이 리뷰에선 인물 중심으로 다루느라 초점을 안 맞췄는데, 다양한 시대 속에서 나타나는 사회의 양상을 꾸준히, 그리고 빠짐없이 다루면서 기술한 건 류츠신이 무엇 하나 허투루 쓰려고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닌자!도 허투루 쓰지 않아서 문제였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내 인생에 이런 SF를 또 만나면 소원이 없을 정도로 잘 읽었다. 류츠신을 뛰어넘을 작가가 내가 앞으로 살아갈 21세기 속에 나타나지 않으면 그건 좀 슬플지도…

 

 

다른 곳에 올린 리뷰인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여기에도 리뷰를 공유합니다!

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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