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게북클럽] 이 책은 보지 마세요.
잠실에 있는 <서울책보고>에 가면, 예전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있던 25곳의 헌책방들 참여해 12만 권이 넘는 다양한 헌책들이 모아져 있었습니다. 가끔 이곳을 돌아보면 마치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었죠. 도서관의 인테리어도 동그랗게 가운데가 뚫려 있어서, 워프 터널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곳에 용화서점이라는 책장에 가면, 밑에서 세 번째 줄에 파란색 하드커버로 된 <리더의 멋>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은 마치 <피노키오>를 보고 쓴 2차 창작 같은 내용의 책이었는데, 딱히 공포소설은 아니었어요. 별로 무섭지가 않았거든요. 나무로 만들어진 인형이 저절로 움직인다거나, 걸을 때마다 끼리릭 끼리릭 소리가 난다거나 하는 건 <피노키오>에서도 그렇잖아요?
하지만 이 책의 재미는 거기에 담긴 메시지가 무서웠습니다. <리더의 멋>의 간략한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어느 날 제페토는 사람이 된 피노키오가 성장해 결혼하고 분가를 하자, 늘그막에 심심해져서 다시 산을 헤맵니다. 그러다 말하는 나무를 발견했는데, 이 나무는 어찌 된 일인지 피 같은 붉은색이 도는 나무였죠. 그래서 제페토는 이 나무로 인형을 만들고, 재미 삼아 ‘피투성이 쿄’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피투성이 쿄는 아주 착했습니다. 피노키오처럼 말썽을 부리지도 않았죠. 제페토는 피투성이 쿄와 함께,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길에 만난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하고, 곤경에 빠진 제페토를 위해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빌리지는 않고 항상 책장 앞에 서서 조금씩 읽다가 오곤 했는데요, 그러다 오늘, 그러니까 25년 3월 2일이예요. 우연히 책 밑을 보게 되었어요. 그랬더니 바래진 붉은 글씨로 책 하단면에 이렇게 쓰여 있는 거예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마라” 너무 이상해서 사진으로 찍어 뒀어요.
그 글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오싹해졌어요. 책 내용은 약간 기괴함이 가미된 동화 같았는데, 이 거기에 빠져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 안 된다니. 그런데 저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럼 끝까지 읽는 게 아니라, 결말만 본다면? 아니면 결말 페이지부터 지금 읽은 곳까지 거꾸로 읽는다면? 아니면 대충 빨리 속독으로 본다면? 도대체 무엇이 책을 끝까지 보았다는 것일까요. 또 읽지 마라고 하는 건, 결말이 형편없기 때문일까요?
지금 보고 있던 부분은 마침 피투성이 쿄가 제페토를 죽이려던 여우를 반으로 찢어놓은 참이었는데요, 피투성이 쿄의 얼굴은 원래 피처럼 붉은색이라 피가 얼굴에 튄 것을 제페토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피투성이 쿄는 그 피를 핥아서 맛을 보았죠. 피투성이 쿄는 그 피맛을 느끼며, 점점 냉철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 같았습니다. 리더가 되는 것이죠. 무리를 리더가 되러면 아무래도 피의 맛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저자의 철학이 아닐까요? 기괴하지만 이제 막 흥미진진한 구간이었거든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마라’라는 글에 너무 호기심이 생긴 나머지, 저는 보던 페이지에 손가락을 끼우고 마지막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어,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에는 피투성이 쿄나 제페토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습니다. ‘읽지도 않은 책을 읽은 것처럼 말하지 말아야지.’ 내용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가서 다시 보던 곳을 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어요. 건물이 너무 어둡고 조용했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책들은 모두 사라지고 불은 꺼지고, 앙상한 책장의 뼈대들만 남아있었어요.
서둘러 입구 쪽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려 해 봐도, 열리지가 않았습니다. 책과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든 알리고 싶어, 마침 인터넷은 되길래 책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브릿G 게시판에 남깁니다. 누구가 되었든 푸른색 표지의 <리더의 멋>은 보지 말라고요. 책을 읽는 동안 시간여행을 한 걸까요? 어둠의 차원 같은 이상한 공간에 떨어진 걸까요? 왜 마지막 결말만 봤는데도 이렇게 된 걸까요.
끼리릭 끼리릭.
이상한 소리가 책장 멀리서 들려옵니다. <리더의 멋>이라니, 하나도 멋있지 않아요!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아, 다시 보니 제가 책 제목을 잘못 봤네요.
책 제목은 <리더의 맛>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