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습니다.

분류: 수다, 글쓴이: 선작21, 17년 8월, 댓글23, 읽음: 281

https://britg.kr/novel-review/20813/

 

(이해를 돕기 위해 작품과 해당 리뷰의 링크를 첨부합니다.)

리뷰는 신랄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에 저는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통해 리뷰를 하나 받았습니다. 그 분은 제가 고등학교 국어부터 다시 배운 다음에 글을 쓰는 게 낫다고 조언했습니다.

리뷰는 치명적이어도 됩니다.

시드노벨 공모전에 출품하기 위해 적었던 라이트노벨 도입부를 리뷰해달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리뷰어 분은 정확히 도입부의 두 장을 문장 단위로 해체해가면서 이게 왜 말이 안 되는지, 여기는 왜 이렇게 적었는지, 설정은 어떻게 망가져 있는지 구구절절히 깠습니다.

리뷰는 오독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같은 리뷰어가 리뷰하신 <기억의 기록은…>의 경우 전 동성애적 코드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해당 리뷰를 굉장히 신선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앞으로도 비슷한 리뷰가 나온다면 저는 제가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차곡차곡 배열되고 조합되어 어떠한 하나의 새로운 그림으로 나오는 점을 감탄을 거듭하며 볼 겁니다.

하지만 리뷰는 악의에 기반해서는 안 됩니다.

고등학교 국어부터 다시 배운 뒤에 글을 쓰라고 조언했던 까닭은 제가 유학생이라 실지 고등학교 국어를 배우지 않았다는 것을 조롱하거나 돌려 까는 게 아니라, 단지 제 글에 비문이 많아 그것을 수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입니다.

문장 하나 하나를 철저하게 파헤쳐서 비판했던 까닭은 제가 글에 부었던 노력이, 설정을 짜올리거나 문장에 의도를 부여하려 했던 시도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적 코드가 없는 글의 동성애적 코드를 찾은 까닭은 그것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가치가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겠습니다. 일단은.)입니다.

그런데, 이 리뷰의 속칭 ‘오독’을 보면 그런 선의에 기반한 비판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타임리프는 도구이지 주제가 아니다. 이 지점을 망각하는 순간 작품은 망가져버리고 마는데, 여러 타임리프 단편에서 이걸 놓치고 넘어가버리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타임리프에 너무 함몰되어서, 주제가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 해당 리뷰 발췌

 

타임리프는 도구이지 주제가 아닙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나는 분명히 내 주제를 넣었는데 당신은 주제를 못 봤다고 합니다. 이것도 좋습니다. 내가 주제를 너무 깊이 감춰두었거나, 너무 난해한 주제를 설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의도를 오독한다는 사람이 지금 열 한번이나 반복적으로 이어진 묘사에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거라 해석한 겁니까? 심지어 중간 중간에 몇 번이나 중간 묘사를 빼먹거나 더하거나 (예를 들면, 피아노 치는 부분이 나오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점심 먹는 묘사 또한 그러한데) 하는 부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같은 묘사를 반복했다’ 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적었습니까?

다음 단락도 봅시다.

가령 이런 것이 있겠다. 작품 내에서 겨울은 미나가와 히로미를 두고 ‘히로미 씨’라고 부른다. 실제 일본에서는 ‘미나가와 씨’라고 부르는 편이 옳다. 또한 히로미 역시 겨울의 성씨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서로를 이름으로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라면, 그렇다고 하더라도 ‘히로미 씨’는 어색하다. 히로미 쨩이나 히로밍 정도가 일본에서의 일반적인 호칭이 되지 않을까. – 해당 리뷰 발췌

이건 합당한 지적입니다. 다만 히로미 쨩이나 히로밍이라고 하지 않았던 건 둘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다고 느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둘은 연인 관계가 아니니 애칭으로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라고 해도, 히로미 씨라고 부르는 데에는 딱히 변명이 없습니다. (굳이 하자면 미나가와 씨는 너무 멀고 히로미 쨩은 너무 가까워서 중간으로 정했다, 정도입니다.)

심계항진 역시 그렇다. 심계항진이라는 병명은 일반적이지도, 익숙하지도 않다. 나 역시 그러해서 네이버에 찾아보았다. 심계항진은 약물, 음식, 정신적 요인, 기저 질환이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되어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히로미’는 하루 세 번 약을 먹고, 이것은 기저 질환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며, 매번 닭으로 조리된 요리를 먹고, 시험과 레포트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략…) 작품의 제목에 들어갈 정도로 중요한 키워드지만, 정작 작품 내에서 심계항진이 디테일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저 죽음의 원인으로서 작용할 뿐. – 해당 리뷰 발췌

심계항진은 병이 아닙니다.

심계항진(心悸亢進, palpitations) 혹은 두근거림은 환자가 심박을 느낄 수 있는 상태 그리고 이에 따른 불편감을 의미한다. (위키백과)

증상입니다. 심계항진이 타이틀인 이유는 명백히 다른 곳에 있습니다. (직접 작품을 보고 알아내셨으면 합니다…만 혹시 정말로 ‘제 의도’가 궁금하신 분들은 제게 쪽지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히로미의 사망 원인은 작품 내에 꽤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캐치하지 못한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심계항진이 죽음의 원인이라는 건 정말 창조적인 오독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오독이 작품의 가치를 폄하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의 타이틀에 넣을 정도로 의미 심장한 단어가 단지 글 안에 한번도 드러나지 않았다고 ‘음, 작가가 이 부분은 아무 생각도 없이 집어넣었군. 그러니 죽음의 원인인 게 분명해.’ 라고 적는 게 ‘오독’ 입니까? 아니면 그냥 성의 없는 독서입니까? 의도를 곡해하는 게 작가가 알지 못한 다른 주제를 찾아서 작품의 가치를 재설정하기 위해서입니까, 그냥 찾기 귀찮아서 알기 쉬운 것으로 하려고 하는 겁니까? 차라리 ‘작가는 주제를 너무 깊이 숨겼다. 나는 찾지 못했고, 아마 다른 사람도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라고 했으면 납득했을 겁니다.

다음 단락을 봅시다.

(전략) 개인적인 소리를 조금 더 해보자면, 나는 대학생이 강의를 쨌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어느정도 디테일과도 상통하는 부분이다. 보통의 대학생이라면 강의를 쨌다고 말하기 보다 자체공강 했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너 수업 있지 않아?”

“자체 공강이에요. 후후후, 대학생의 특권이죠.”

 

(해당 리뷰 발췌)

 

이 전에 심지어 리뷰어는 그 대화가 명랑하고 밝다고까지 합니다. 그 전의 리프에서 겨울은 불안해하고 있었고, (이 시점에서 독자는 겨울이 타임리프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는 가정 하에) 작품의 유일한 주인공이 반복해서 죽는 시점에 그동안 멀쩡히 나가던 아침 수업까지 스킵하고 와서 밝고 명랑하게 단 세 문장을 말한다?

저는 솔직히 잘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해당 단어를 ‘쨌다’ 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심한 뉘앙스 때문입니다. 그 문장을 쓸 때 자체공강이란 단어는 너무 밝고, 가지 않았다는 단어는 너무 길어. 그러니까 그냥 짧게 ‘쨌다’ 로 끝내자, 는 생각을 하고 썼습니다. 무심한 것 처럼 포장하기 위해서. 이것까지는 캐치 못해도 좋습니다.

근데 그 분위기에서 후후후, 같은 걸 넣어서 제 문장을 수정해버립니다.

더 대학생 답기야 답습니다. 근데 미안하지만 저는 절대 저렇게 수정 안 했을 겁니다. 여기까지 와서 한 말씀 드리자면, 제가 볼때 리뷰어님은 저에 대한 명백한 우위를 상정하고 이리저리 코칭을 한다는 감각으로 리뷰를 작성하신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심지어 공모전에 낸 글을, ‘수정’ 해서 ‘더 나은 버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각오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단락입니다.

일단 이 작품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끝난다. 겨울은 사랑하는 선배를 위해 선배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하루를 반복하기로 결심한다. 뭐, 열린 결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게 로맨틱한가? 여기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많다. – 해당 리뷰 발췌

제가 의도한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만 상술했듯이 직접 작품을 보셔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의도가 궁금하신 분들은 개인적으로 쪽지를 보내주세요.

이 부분까지야 제가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어지는 다음 부분이 제가 가장 짜증났던 부분입니다.

중단편은 짧은 분량 내에서 필요한 것을 선택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형식이다. 선택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달리 이야기하면 무엇을 보여주지 않을 것인지 역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보여주어야 할 것을 보여주지 않고, 보여줄 필요가 없는 것에 너무 연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 해당 리뷰 발췌

이게 제가 말한 그것입니다.

작가 (저) 가 명백히 생각하고 고민해서 보여줄 것은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은 것을 보여주지 않은 걸, 마치 그게 아니라 단순히 무뇌적 자동기술법으로 글을 썼다는 듯이 독자를 호도하면서 작가를 비난하고 있지 않습니까. 비난에 대한 파트는 후술하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실례가 되지 않기를 빈다. 나는 이 작품의 작가가 아직 덜 여물었다고 생각한다. 쓰고 싶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써내려가는 방법의 모호함에 갇혀있는 듯 느껴졌다. 내가 뭐 뛰어난 글쟁이는 아니지만 이거 하나는 말할 수 있겠다. 최고가 될 수는 없어도 괜찮은 글쟁이가 될 수는 있다고. 10년이 지난 후에 이 작품을 다시 쓴다면 훨씬 괜찮게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 해당 리뷰 발췌.

이 문단 전체를 읽고 짜증을 넘어 구토감이 치밀었지만 핵심은 단 두 문장입니다.

최고가 될 수는 없어도 괜찮은 글쟁이가 될 수는 있다고. 10년이 지난 후에 이 작품을 다시 쓴다면 훨씬 괜찮게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 해당 리뷰 발췌.

최고가 없어도 괜찮은 글쟁이가 될 수는 있다?

이딴 말을 듣고 제 정신을 유지할 바에는 펜을 꺾겠습니다.

최고가 되지 않으려면 나는 왜 여기서 글을 씁니까? 돈을 벌려면 문피아와 조아라로 가면 됩니다. 가벼운 글을 쓰려면 시드노벨 쪽으로 전향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왜 여기서, PC통신 시절 스타일 글의 성지인 브릿지에서, 팔리지도 않는 무거운 글에 인기도 없는 중단편을 붙잡고 왜 매일 매일 글을 씁니까?

상업성이나 대중성에 구애받지 않고 결국 최고, 혹은 내가 내 감정을 이 땅의 – 혹은 이 행성의 누구보다도 잘, 깔끔하고 세련되게 표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여기서 쓰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뭐, 최고는 될 수 없지만 괜찮은 글쟁이가 될 수는 있다고? 최고는 될 수 없다?

저는 심지어 이 분한테 댓글로 한번 더 물었습니다. 대답이 딱히 달라지지는 않더군요.

이제 내가 물어보면 됩니까. 당신은 누군데 내 재능을 감평합니까?

권위에 대한 호소가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이 리뷰한 글의 작가들이 글에 부었던 노력의 반의 반의 반이라도 넣어서 리뷰를 씁니까? 문학평론에 대한 이론을 압니까? 책은 많이 읽습니까? 힙스터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작가들을 많이 압니까?

그런데, 왜 내가 최고가 될 수는 없을 거라고 단정합니까?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 리뷰에서 내가 무엇을 개선해야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내게 신랄한 리뷰를 했던 사람들은 모두 내게 무엇 때문에 그런지 아주 잘 알려주었습니다. 난 그 분들에게 매우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내 글에서 비판한 점은, 단 1%도 없는 건 아니지만 (언급하지 않은 부분은 나도 수긍하는 부분이기 떄문에 언급하지 않은 겁니다.), 대체로 내가 의도했던 부분을 당신이 놓친 겁니다.

그리고 나는 저 마지막 문장에서 더 화가 났습니다.

10년이 지난 후에 이 작품을 다시 쓴다면 훨씬 괜찮게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 해당 리뷰 발췌.

이건 작가로서 나에 대한 모욕입니다.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작품을 내지 않습니다. 내가 납득할 수 없는 건 올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10년 뒤에 다시 쓰면 훨씬 괜찮게 써내려갈 것이라고?

난 심계항진에 최선을 다했고 후회는 없습니다. 10년 뒤에 쓴다면 그것의 이름은 심계항진2 가 될 것이지 심계항진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히로미와 한겨울이 다시 나와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건,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심계항진 이상의 그 무엇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해야만 한다고 굳게 믿었기에 딱히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자유게시판에서 당신이 당신 자신을 리뷰한답시고 하는 소리를 읽으면서 화가 치밀더군요.

아, 예.

미안하지만 나한테 당신은 독자가 창조적 오독을 하는 걸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작가’가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에게 하는 ‘훈장질’로 보일 뿐이지.

말이 거칠어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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