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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고양이를 알아본다는 일념으로

분류: 작품추천, 글쓴이: 이나경, 17년 8월, 댓글8, 읽음: 94

며칠 전 아침에 나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타는 버스는 십 분 간격으로 오는데 방금 한 대를 놓친 탓에 망연자실하여 서 있었다. 지난 밤에 첫눈이 내려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입김을 휘휘 불어대며 나는 초겨울의 추위를 나름대로 즐기는 방법을 터득했다.

눈이 내렸다고는 하나 길이 좀 미끄러워졌을 뿐 눈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미처 녹지 않은 눈이 있을까 둘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멀찍이 떨어진 중앙선로 위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 무언가가 한순간 꿈틀, 하고 움직인 것을 발견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처음에는 눈뭉치가 자동차 매연으로 새카매진 것인 줄 알았으나 트럭이 중앙선을 바싹 훑고 지나간 순간 이것이 그에 반응한 것이다. 그것은 작은 고양이였다. 어느 쪽으로도 쉽사리 움직일 수 없는 가련한 검정 고양이가 중앙선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불현듯 끔찍한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괜스레 다급해졌다. 그러나 넓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고양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참혹한 상상이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기를 빌며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차는 양쪽에서 여전히 쌩쌩 달렸고 고양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혹시 고양이의 딱한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다른 이가 있을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살펴보았는데 그들은 고양이는커녕 내 눈길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둔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고양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요란한 승용차와 그보다 큰 승합차와 비슷비슷하게 생긴 수많은 차들이 그 옆을 굴러갔지만 고양이는 겁에 질려 있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친 걸까? 내 속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신호등이 바뀌어 고양이 앞쪽으로 잠시나마 광장이 펼쳐졌을 때에도 나무 밑동마냥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문득 나는 의심이 들었다.

혹시 고양이가 아닌 게 아닐까?

어떻게 보면 검은 비닐봉지가 대충 구겨져 있는 모양 같기도 하다. 그게 아니라면 처음 생각대로 단순히 눈뭉치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처음에 움직인 줄 알았던 것은 단순히 착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본 게 맞다면, 일단 눈뭉치는 아니다. 또한 비닐봉지가 자동차 사이에서 나부끼지 않고 매여있을 이유도 없다. 확실히 그것은 고양이다. 나는 저기 웅크린 새카만 것이 고양이라고 믿기로 했다. 이성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그것은 (위기에 처한) 고양이여야만 했다. 이후로 신호등이 몇 번이나 더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고양이는, 각도에 따라서는 비닐봉지로 보이기도 눈덩이로 보이기도 하는, 그러나 겁에 질려 있는 게 틀림없을 그 고양이는, 잠자코 앉아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 기다리던 버스가 왔기 때문에 나는 남의 사정에 신경쓸 여유가 없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버스에 올라탔고 고양이에 대해서는 이내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소싯적에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읽고 휘갈겨 썼던 독후감의 일부입니다. 소설은 유령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가정교사의 환상에서 비롯된 것인가, 유령은 초자연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개인의 심리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상당히 아리까리한 스탠스를 유지하며 전개되지요.

오늘 제가 준비한 추천작은 바로바로바로 최근에 프로필 사진을 새로 등록하신 OldNick 님의 라보란이즈츠 입니다.

 

 

나사의 회전과도, 그걸 읽고 제가 쓴 독후감과도 비슷한 얘기랍니다. (추천사가 한참 길었는데 정작 본편은 14매예요..)

이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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