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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니까 문득 찾아오는 현타

분류: 수다, 글쓴이: 아무강아지, 9월 8일, 댓글6, 읽음: 112

(그림은 상관없습니다. 아마도?)

 

사실 ‘창작의 고통’ 같은 건 뭐랄까 허구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다들 일하다 보면 피곤할 때도 있잖아요. 그냥 그 정도 수준 이하? 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충격 실존함’을 알아버렸습니다.

 

갑자기 몸살이 온 것처럼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구요. 눈앞이 노랗고, 식욕도 없고, 감긴가? 싶어서 내과도 가봤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단순히 포진성 구내염으로 진짜로 감기조차 아니었음) 설마 평소에 먹던 약 끊어서 환절기성 우울증이 재발한건가 싶어서 상담도 오랜만에 가서 약도 타왔습니다. 근데도 아픈게 안 가시더라구요. 그래서 알바도 아직 못 구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아팠냐면, 방에 불 켜놓고 있는 것조차 눈이 아픈 게 신경이 거슬려서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심심하면 노래를 틀어놓는 편인데, 노래 틀어놓으면 머리가 아파서 그냥 방에 불 끄고 창문틈으로 햇살 들어오는 거 받으면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었어요. 사람이 그게 되는 때가 있더라구요?

 

그래도 친구랑 만나기로 약속잡아놓은 건 갔다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나고 왔습니다. 친구한테 ‘빛만 받아도 눈 아파서 어지럽다’고 하니까 하는 말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자이 오사무도 죽기 전에 그 소리 했는데”

“근데 솔직히 글 별로 많이 안 썼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랑 똑같이 그 소리함”

정확하게 다자이 오사무는 ‘전등 불빛만 받아도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나요. 그리고 지금까지 쓴 분량을 물어보더라구요. 대충 <청환검>은 12만자로, 아직까지 에피소드 5 작업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부분 쓰고 있음) 그랬더니 친구가 웃으면서 ‘아 ㅋㅋㅋㅋㅋㅋ 이걸 아직 아무도 안 말해줬어?’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1권 분량 이야기를 처음 마무리칠때에는 누구나 멘탈이 깨진다.”

 

작가가 처음 1, 4, 12권 이렇게 이야기를 처음 마무리칠때에는 평소에 뇌에 안 쓰던 뉴런을 쓴다나봐요. 그래서 안 되는 걸 억지로 하기 때문에 미친듯이 아프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물론 그 친구는 확실하게 근거가 있겠지만, 저는 뇌과학따위 모르므로 출처는 모릅니다.)

그래서 다들 이 시기에는 여러가지 수단을 쓰는데 정공법은 자극을 최소화화고 미친듯이 폐관수련하는 건데, 가끔 술이나 도박(고흐, 헤밍웨이, 도스도예프스키 등)이 있고 (압생트가 직빵이라고 하던데, 저나 그 친구나 술은 안 하는 타입이라 그렇구나… 했습니다.) 진짜 마약 한 사람도 있고 뭉크가 좀 웃겼습니다.

“30년동안 우울한 생각만 하다가 갑자기 햇빛 받고 나았다”

그 외에도 허먼 멜빌은 그냥 낚시하러 갔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 낚시가 고래 사냥이라 그렇지. 멜빌은 평생 그거랑 고딕 로맨스 울궈먹은 사람이니까 딱히 도움은 안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너는 <청환검> 에피 5 막힌 거 뚫을 때까지 미친듯이 죽어라 고생할 것이다. 뭐, 설마 그것도 못하지는 않겠지?’ 같은 뉘앙스로 격려를 받았습니다. 뭐, 그때쯤 부터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나니까…

안 아플 줄 알았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미친듯이 아팠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불현듯 막힌게 뚫렸습니다. 아. 이거 이렇게 적으면 안 되고 이렇게 적어야 하는구나. (스포니까 자세한 건 생략함) 어? 그럼 이대로 쭉쭉 적으면 되겠네?

며칠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던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씻고 카페에 글쓰러 갔습니다.

무슨 무안 단물을 먹은 것도 아니고. 할렐루야!

그대로 대충 2천자 정도 쓰고 이따 더 적어야지~ 하는 순간 문득 식욕이 돌고 세상이 밝아 보이는게 (햇살은 안 들었습니다 오전만 해도 하늘에 구름이 꼈음) 점심으로 싸이버거를 먹으면서 생각했어요. 아, 뭔가 벽 하나를 뚫었구나.

근데 계속 쓰다 보면 이거 또 경험하겠네? 그때 또 고생하고 그거 지나면 또 있겠네?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순간적인 현타였을 뿐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 조금 들긴 했습니다만 진심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도서전을 연대서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갔는데, 문득 ‘<청환검> 봄편에서 안 끝내고 여름편까지는 계속 쓸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다음에 가을편 겨울편 쓰면 딱 맞겠다.

오는 길에 계속 여름편 구상하면서 웃었는데 아… 이거 창작의 나선에 갇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춘하추동 다 쓰려면 알바 구해야겠다. 하는 생각까지.

 

 

이 글이나 제가 쓴 다른 뻘글이 그렇듯 뜬금은 없습니다만, 이런 과정을 다룬 게임으로는 앨런 웨이크 2가 제일입니다. 주인공이 소설가에요! 본편은 다 깼고 뉴 게임+은 못할 것 같고 DLC는 아직 안 샀습니다.

그럼 저는 오늘의 1회분을 다 썼으니 이만 쉬러 총총…

아무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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