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자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후기 겸 감상 (스포있음, 줄거리 없음)
진짜 안 쓰려고 했는데… 참을 수가 없었어요.
전반적인 감상을 써보겠습니다. (스포 있음! 주의!)
일단 비극적일 것은 예측했습니다. 아무리 각색을 잔뜩 했다고 하더라도 원작이 원작이니 말이죠.
그러나 큰 플롯은 비슷해도 인물들의 감정선과 특징들은 많이 다릅니다. 단순히 고전소설이 아니라 최초의 SF소설로 취급되는 프랑켄슈타인을 아시는 브릿G 분들에게는 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로냐, 하면, 아뇨. 원작이고 뭐고 다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좋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후기를 쓰고 있겠죠.
어제 회차의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은 조규현 씨가 맡았습니다. 네, 실은 규현 씨가 이 공연으로 보러가게 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습니다. 입덕 부정기에 있었는데, 어제부터 팬이 되었습니다.
라이브도 연기도 전부 다 잘하고 잘생기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안 빠집니까? 조규현 성량, 발성 미쳤다는 말이 확 체감이 되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아실 ‘광화문에서’의 규현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가져가면서 동시에 뮤지컬 발성으로 낮고 깊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여기는 팬 커뮤니티가 아니니 그만하고, 규현 씨가 해석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사람을 사랑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표현이 서툴고,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으며, 약간은 매드 사이언티스트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비인간적인 인상을 보이지만, 혼자 있을 때는 누구보다도 다양한 감정을 보여줍니다. 웃고, 울고…. 오글을 못 빌려서 눈물 연기를 제대로 못 본 것이 아쉽지만, 호흡에 묻어나는 눈물 콧물은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굉장히 다면적인 인물이었어요.
또다른 주인공인 앙리 뒤프레, 괴물 역할을 맡은 고은성 배우님은 처음 보는 분이신데, 연기가 정말 놀라웠어요. 사람 관절이 저렇게 움직이는게 가능한가 싶었습니다. 꿈 많은 청년인 앙리일 때는 해맑고 밝은 목소리를 내다가 세상이 서툰 괴물일 때는 거칠어진 목소리를 내면서, 넘버까지 부르는데, 정말 대단하다 싶었어요. 두 캐릭터가 상당히 다른데, 그 모든 캐릭터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역시 프로는 프로구나 싶더군요. 그리고 자꾸 쓰러지는 역할이었는데, 프로니까 안 아프게 쓰러지셨길 바랍니다.
빅터를 모시는 인물인 룽게의 역할은 약방의 감초 같았습니다. 그 진지하고 암울한 극에 한 줄기 빛이었어요. 계속 웃음을 주는 대사를 치시는데, 김대종 배우님의 애드립이었는지 아니면 정해진 대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없었으면 정말 아쉬웠을 것 같아요. 강약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극을 해치지 않고 웃음은 챙겨갔습니다.
어린 빅터의 연기도 정말 좋았어요. 이때 자주 쓰는 말이 있던데… 아, 그래. 나는 저 나이 때 뭐했지? 그 어려운 대사를 줄줄 외우고 또 감정 연기를 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수 없이 해내야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텐데. 정말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티켓값하는 무대 시설에 놀랐습니다. 영화관보다 빔으로 배경을 띄우는 것이 선명하더라고요. 뒤로 나타나는 여러 무대 장치들, 특히 빅터의 실험 기구는 놀라웠습니다. 예전에 교과서에서 극은 무대라는 한정적인 장소에서 표현되기 때문에 여러 제약이 있다고 배웠는데요, 기술의 발전으로 현재는 그 제약이 줄어들었다는 표현을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돈만 있으면 다양한 장소를 몰입감있게 잘 표현해낼 수 있는 것 같거든요. 불타는 성을 표현할 때 건물 잔해가 무너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 있었는데, 그건 진짜 놀랐던 것 같아요. 진짜로 무너질 줄은 몰랐다고요. 뭐, 창문도 부서졌는데…. 도대체 어떻게 만든거지?
또 앙상블의 음악도 좋았습니다. 객석에서는 지휘자님 밖에 보이지 않았겠지만 다들 거기 계셨겠지요? 무대에서는 보이지 않는 역할이지만 앙상블의 풍부하고 섬세한 소리가 아니었다면 무대는 없었겠지요. 실은… 악보집 있으면사려고 했습니다. 앙상블의 반주도, 멜로디도, 가사도 전부 좋아서 말이죠. 제가 악보가 있으면 대여섯 개 악기까지는 동시에 상상해서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요. (물론 프로만큼은 못합니다.)
규현 씨가 표현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정말 줄리아의 말대로, 표현이 서툴 뿐인 다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생명을 사랑했기에 그들을 살리고 싶었을 뿐인데, 왜 세상은 그에게 그리 가혹해야만 했을까요.
물론! 우리는! 그 속에 담긴 철학적 사유니 뭐니 다 알고 있지만! 어쨌든! 자신이 몰입한 인물의 해피엔딩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누나를 잃었을 때, 안 울려고 했는데 울었어요. 아니 진짜 코 끝이 찡해지는 것까지는 내가 경험해 봤는데 진짜 가방에서 주섬주섬 손수건을 꺼내야할 줄은 몰랐다고요. 거기다가 과거 회상을 넣을 줄은 몰랐는데, 그게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질줄은 더더욱 몰랐는데, 대사가 그렇게 아련할 줄은 몰랐는데….
아내인 줄리아를 잃었을 때의 넘버, 후회는 유튜브에서 보고 갔는데요, 유튜브 댓글들을 이해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울면서, 그리고 그 끝에 다시 결의를 다지면서 나아가는 과정까지… 그 속에는 영상에 담기지 않은, 담을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때는 이때 겨우 진정했는데…….
마지막에 북극에서 자신이 죽인 괴물을 보고 앙리를 외치며 우는 빅터가 자꾸 머리에 맴돕니다.
그에게는 아끼는 사람이 많았지만 진정으로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인 앙리에게는 더더욱 정이 갔을 겁니다. 그랬기에 가장 외로운 순간에 앙리를 찾은 거겠지요. 그는 괴물과 앙리를 다른 존재로 구분지었지만 앙리의 얼굴을 한 그에게서 앙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겠죠. 괴물을 죽이기로 했을 때 어떤 오만가지 생각을 했을까요. 괴물을 죽인다고 생각하면서도 친구를 죽인다는 기분을 버릴 수 없었을 겁니다.
빅터는 신에게, 자신에게 저주를 내리라고 했지만 실은 축복을 받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현실에서 축복을 찾을 수 없었기에 스스로 만들고자 했겠지요. 그것은 인간의 오만함이었을까요, 인간의 나약함이었을까요, 인간의 의지였을까요. 오만한 행동이었을지라도, 잘못된 행동이었을지라도, 그에게 공감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요.
다만, 빅터가 떠나간 인연보다 현재 함께하는 인연들을 소중히 여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미래를 기대하기보다 현재를 바꾸자고 한다고 말했지만 실은 과거에 얽매여 있던 것 아닐까요?
10주년 공연을 하는 이유가 납득이 갈 만큼의 높은 완성도를 가진 공연이었습니다.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기승전결도, 연출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악도, 춤도 좋았고요. 춤을 잘 모르는 제 입장에서는 안무가 정말 멋지다는 말 밖에는 못하겠지만요.
다시 보러 가고 싶었어요. 돈도 시간도 자리도 없지만…….
제 언어로는 장황하게 더 설명하거나 이만 줄이는 것 밖에는 선택지가 없을 듯합니다.
넵, 이만 줄이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