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문4답] 골드 코인 받고 싶어요
제목은 어그로성으로 적어봤습니다. 여태껏 올라온 모든 4문4답을 봤는데 다들 흥미롭고 재밌어서 저도 참여해봅니다.
1. 내 글에 영향을 준 창작물 (ex: 영화, 게임, 노래, 책…)
제가 한 열한 살 때였나. 케이블 방송에서 ‘프릭스 대모험(Freaked, 1993)’이라는 영화가 방영한 적 있습니다. 대충 오염된 퇴비를 팔고 있는 미치광이 박사가 사람들을 납치해 돌연변이로 만든 뒤 괴물 서커스를 시킨다는 내용인데요. 그로테스크한 외형으로 변한 주인공들이 탈출을 감행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냥 동물이랑 합체된 수준이 아니라 세서미 스트리트 주인공 같은 양말인형으로 변한 인물도 나옵니다.) 그런데 입구를 지키던 거대한 얼굴 동상에서 눈알 두 개가 말 그대로 눈구멍에서 기어나오더니 레이저 총으로 탈출하려 했던 인물을 지져버리는 겁니다. 잔뜩 충혈된 눈동자에 팔다리 달린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그들이 경찰모를 쓰고 레이저를 쏘아 돌연변이 괴물을 태워 지져버리는 장면… 꽤 웃긴 컬트 코미디 영화였는데 어릴 때는 이게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분간이 안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느낀 충격과 이미지 감각만큼은 제게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이후 ‘크리터스’나 ‘불가사리’ 같은 각종 삼류but웰메이드 영화들이 방영하긴 했지만 프릭스 대모험처럼 큰 혁신을 주진 못했네요.)
상상력의 관점에서 비슷한 도움을 준 건 초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본 차이나 미에빌의 <쥐의 왕>이 있고, 좀 더 성숙한 시기에는 피터 스트라우브의 걸작 <고스트 스토리>에서 깊은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차이나 미에빌의 <쥐의 왕>은 피리 부는 사나이 동화를 재해석해서 도시의 힙합 클럽에서 벌어지는 복수에 불타오르는 쥐와 거미(피리 부는 사나이의 다른 피해 종족으로 나옵니다.)와 피리부는 사나이의 거대한 혈투는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고3 때, 조지프 헬러의 <캐치22>를 읽으면서 “이거지! x발”을 연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진짜 말도 안되는 코미디와 황당한 이야기로 가득한데, 그게 사회구조적 본질을 관통하는 이야기이면 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캐치22>는 관료주의 구조에 대한 적확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2차 세계대전 피아노사라는 섬에 주둔한 공군 부대 이야기인데요. 미군 만세 이런 건 하나도 없고 전쟁 자체를 풍자하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특히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을 주 비판 대상으로 삼죠. 등장인물도 다 정신이 나가 있습니다. 매번 전투 상황마다 일부러 가장 먼저 폭격당하는 파일럿(전쟁터에서 탈출할 길을 찾는다는 이유로…)이 있는가 하면, 전투 상황에 나가기 싫었던 군의관이 서류에만 전투에 나간다고 적었는데 그 서류에 올랐다고 기록된 전투기가 파괴당하자 서류상으로 사망한 군의관이 모든 병사들에게 유령 취급을 당합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마일로 바인더라는 취사장교 캐릭터인데요. 주둔지를 중심으로 장교든 병사든 모든 시스템을 다 바꿔가면서 장사를 하다가… 나중에는 낙하산이 소재가 싸다는 이유로 음식물에 낙하산 원료가 지급되고, 낙하산이 있어야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게 되는 일이 벌어지더니(그런데 장교들의 모든 금융자산과 공금까지 마일로가 관리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러 누구도 아무 말도 못하고…) 나중에 가서는 적군인 독일군들이 미군 주둔지를 폭격해주면 큰 대금을 지급하겠다고 해서 진짜로 아군 기지를 폭격해 쑥대밭으로 만듭니다.(이 역시 고위급 장교들마저 자신한테 돈이 들어온다는 이유로 오히려 아군 폭격을 독려합니다) 자본주의의 아이러니를 덕지덕지 달고 있는 캐릭터인데요. 지금 말씀드린 것들은 이 책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풍자 에피소드의 극히 일부일 뿐이긴 합니다.
앞서 유년 시절 겪었던 상상의 충격과 이 코미디 풍자의 충격의 결합이 지금의 글들을 생산하게 만든 거 같네요.
2. 내 글의 지향점
글을 쓸 때 가장 유의하는 지점 중 하나가 장면화된 서술을 필요할 때 넣고 되도록 이야기 서술을 하자는 것입니다. 함축된 이야기 서술로 독자들에게 바로바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지, 늘어지는 장면은 안넣고 싶어서요. 이를테면 호러 소설은 분위기가 중요하니까 장면적으로 서술해야 하겠지만, 에스에프나 판타지, 역사 소설, 코미디 소설 등은 장면이 필요할 때만 나오고 안나오면 좋겠습니다. 물론 공모에 제출하거나 청탁해오신 소설은 일부러 이 원칙을 따르지 않기도 해요.
독자들이 제 소설을 볼 때 아, 이 작가는 이야기 서술에 능숙하구나, 이야기가 살아 있구나 라고 말했으면 좋겠네요. 근데 안그렇게 느껴진다고요? …바람일 뿐입니다.
3. 내가 세운 목표에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
예전에는 제가 좋아하는 글을 꾸준히 쓰자는 데에만 방점을 뒀는데, 최근 두 가지의 목적이 생기긴 했습니다.
하나는 B급한 상상력을 마구마구 쑤셔넣어 터져나올듯한 황당한 상상력에 앞서 말씀드린 코미디 풍자가 절묘한 장편소설을 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블랙코미디로 서술한 장편소설을 완성하는 겁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블랙코미디로 톺아본 작품은 얼마 없거니와 있어도 이제는 시대적인 정치사회적 관점이 세련되게 교체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코미디-역사-정치적 관점이 입체적으로 뒤섞기가 항상 쉽지 않은 거 같습니다. 공부를 빡세게 하다보면 언젠가 쓸수 있지 않을까요? (타국 소설가들은 좀 많은 편인데 인도 근현대사-살만 루슈디 / 미국 근현대사-많은… 저는 임신중절과 대안 가족을 중점 삼아 전개한 사이드 하우스라는 작품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중국 근현대사- 역시 다수.. / ) 목표를 어느 정도 도달했나 생각하면… 1번의 목적은 경장편으로 얼마전에 해소하긴 했는데(언제 출간될지 모름), 1번에 해당하는 긴긴 소설을 얼마전에 시작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기대해주세요. 기대가 안되더라도 기대해주세요.
4. 글이 안 써질 때 나만의 방법 (ex: 노래를 듣는다, 앞부분을 다시 읽는다…)
글이 안써지면 다른 글을 꺼내서 씁니다. 요즘 병렬독서하는 습관을 들이다보니 글을 쓸 때도 이렇게 됐습니다. 제 글에 스스로 질리는 경우가 많다고 할까요. 자기의심도 많은 편이고요. 제 글을 쓸 때 남의 글이 더 잘써보이는 현상도 많이 느끼고요 하하.
코미디 소설을 쓰고자 노력하지만 코미디 소설을 쓸 때에 가장 막히는 편입니다. 다른 소설, 특히 호러 소설을 쓸 때는 그냥 생각한대로 밀어붙이면 완성되는 편입니다. 완성본은 얼추 제 마음에도 드는데요.(스스로에게 기대하는 기준이 낮아서.) 코미디 소설을 쓸 때에는 절대 쓰면 안되는 단어, 부사, 형용사, 문장 길이, 문장의 톤까지 조절하고자 하다보니 검열이 심해지는 것 같고요. 그런 거 치고는 이제껏 좋은 작품이 생산된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래서 코미디 소설-다른 톤의 소설-코미디 소설-다른 톤의 또 다른 소설 이런 식으로 번갈아 가서 쓰다 보면 어느새 소설 몇 개가 완성되어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이 습관을 좀 고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