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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소설] 소설 동의보감과 드라마 허준

분류: 수다, 글쓴이: 한고요, 23년 11월, 댓글7, 읽음: 42

자게는 무척 오랜만이네요.

 

처음 소설을 쓴 건 2017년으로 기억하지만, 일단 먼저 옛날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야기가 조금 길 것 같으니 귤 몇개 가져오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때는 세기말 1999년.

 

당시 저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현혹되어 지구 종말을 굳게 믿었던 평범한 초등학생이었습니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나뭇가지 하나를 학교 사루비아 화단에 푹 박으면서, 내 뒤지기 전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노라 하며 친구들과 낄낄대며 놀았었어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노스트라다무스는 초등학생 사이에선 꽤나 존재감이 컸습니다. 모두가 공포에 떨었죠! 학교 앞에서 팔던 300원짜리 컵떡볶이를 먹으면서도 야 많이 먹어둬 우리 이제 다 죽어 라며 심각한 하굣길은 종종 있었지요. 물론 여러분들도 살아계시니 아시겠지요. 실제로는 지구 종말 따위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떡볶이 가격에 통탄을 금치 못할 시대가 왔지요. 또한 종말 대신 IT버블과 보증으로 인해 저희 집안이 망하는 순간이 곧 다가온 건 무척 유감스러운 역사입니다.

 

어쨌든 그 예언을 어찌나 신경을 썼는지 꿈에서도 지구 종말이 나왔어요. 지구 종말이 임박한 날, 한때 주먹다짐을 나눴던 친구에게 다가가 그토록 아끼고 아끼던 과학상자2호(조립설명서 분실)를 건네주면서 그땐 미안했다 사과했고, 서로 눈물을 펑펑 흘리며 포옹했던 꿈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토록 저는 순수하기 짝이 없던 아이였습니다.

 

그런 시절에 전국적으로 크게 유행한 드라마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허준이었습니다. 소설 이야기에 왜 뜬금없이 드라마 이야기를 꺼내는지 이해하지 못하실 분이 계시겠지만 일단 들어보세요.

 

다시 초딩 때로 넘어가, 드라마 허준은 어린 초딩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인기였습니다. 시침핀으로 손가락 피부껍질을 아슬아슬하게 관통시키는 행위야 유구한 역사를 가진 놀이였다쳐도, 교실 뒤편에선 학교 분리수거장에서 구해온 스티로폼 조각에 바늘을 쑤시며 맥이 돌아왔소! 맥이 돌아왔소! 호들갑을 떨었고, 교실 앞문에선 문을 쾅쾅 두들기며 문을 여시오! 문을 여시오! 난리를 부렸으니 드라마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뭉친 지우개똥을 난로에다 지져 ‘뜸’이라 우기는 건 우리들 사이에서도 애들 장난으로 취급했지요.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호기롭던 꼬마 한고요는 탕약(드라마의 영향으로 한약을 반드시 탕약이라 일컬었음)을 만들겠다고 과학실에서 몰래 실험용비커와 알코올램프를 이용해 검은물감 섞은 물을 가열하려다(뜨겁고 검은 액체가 필요했음) 당시 타이슨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계셨던 선생님께 발각되었고, 타이슨께선 이 새끼가 학교에 불을 지를 작정이냐며 저의 오른쪽 귀싸대기를 여러 번 때리셨으니 저는 눈물을 질질 흘리며 반으로 돌아갔어야 했습니다. 그때는 이런 체벌이 흔했지요. 당연히 좋은 기억은 아닙니다.

 

아무튼 저는 타이슨에게 가격당한 아픈 뺨을 부여잡고 찡그리고 있었는데, “저 새끼 구안와사 걸렸나봐!”라고 손가락질하며 낄낄거리던 친구들의 모습에 주먹을 부들부들떨던 순간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녀석들은 아마 지금쯤이면 드라마에서 봤던 수많은 병 중, 한 가지 이상을 몸에 지니고 있는 상태겠지요. 너희들 잘 살고 있니? 난 요통을 가졌단다.

 

이처럼 드라마 허준은 영향력이 대단했고, 지구 종말은 오지도 않은 새천년이 되어서도 어린 저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뭐든 허준과 연관을 짓기 시작한 겁니다. 아마 제 일기장에 세종이나 충무공보다 더 많이 등장한 위인일 겁니다.

 

장래희망을 구체적으로 써서 내는 숙제에는.. 내 꿈은 의원이고,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침을 휙 던져 꽂아버려 병을 고치는 신의가 되고 싶다 썼으니(물론 제가 드라마상에서 나온 심의(心醫)라는 표현을 ‘신의’로 잘못 이해한 멍청이였긴 했지만, 나름 귀여웠지요?) 이 녀석 가히 싹수가 노란 녀석이었구나 라는 걸 여러분은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실 수 있을 겁니다.

 

당시 그런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지(IT버블 붕괴 전)께서 허허 이 녀석이 태몽대로 가려나보다 라며(우리 집안 유일하게 공부를 할 태몽이었음) 언젠가 책을 구해와 건네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드라마 허준의 원작인 이은성 작가의 <소설 동의보감>이었습니다.

 

제 인생에 많은 충격적인 순간 중 하나였다고 기억합니다.

 

원작이라는 단어조차 몰랐던 어린 저에게 소설 동의보감은 너무나도 흥미로운 컨텐츠였습니다. 오잉? 이 소설로 드라마를 만든 거라고? 자연스레 관심이 증폭되었고 탐독하기 시작했어요.

 

충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드라마와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어요. 소설과 2차창작물은 달라야 한다는 신념이 생긴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소설 동의보감은 미완성의 소설입니다. 작가께서 집필 도중 타계하셨지요. 나온 건 ‘상, 중, 하’ 세 권인데, 본래 기획은 ‘춘, 하, 추, 동’으로 총 네 권이었다고 합니다. 정확하지 않지만 대충 ‘동권’은 미완으로 남은 거지요. 그 어린 시절에 그 사실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마지막 동권은 직접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지요. 물론 현재까지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소설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소설 동의보감 말고도 영상화가 된 소설은 정말로 많지요. 당장 생각나는 걸 하나 꼽자면 스티븐 킹의 <사계>에 실린 ‘리타헤이우드와 쇼생크 탈출’을 들 수 있겠군요. 채널을 돌리다 걸리면 높은 확률로 리모콘을 멈추게 되는 쇼생크 탈출의 원작이요.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의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가 얼른 영상화 됐으면 합니다. 분명 몇 년 전에 제작한다는 기사를 봤는데..)

 

아무튼 그 뒤로 여러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집안에서 유일하게 책을 읽어댔지요.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줄담배를 피던 아버지(IT버블 붕괴 후)께서 말하시길,

 

“아들아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주식이고 둘째는 예술이며 셋째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다.”

 

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주식이 뭐고 예술은 왜 하지마?”

 

라고 당돌하게 물었는데 아버지께선 담배 연기를 허공에 주욱 뱉고는 나지막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 번째 걸 지키지 않으면 알게 돼.”

 

풍파를 격하게 맞으신 아버지의 말씀은 정말 옳았습니다. 저는 위대하신 어머니의 말을 드럽게 안 듣는 철부지로 자라나면서, 주식과 예술을 왜 하지 말라고 하셨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오해하진 마세요. 지금은 가족들과 저 모두 잘 지내고 있으니까요.

 

고등학생 때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한 건 순전히 야자를 빼먹기 위한 수단이었으니 차치하고, 본격적으로 글쓰기(예술이라 합시다)를 시작한 건 어린 시절이 훌쩍 지나버린 2017년이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이곳 브릿G를 알게 되면서 시작했어요. 글이나 써볼까?라는 발칙한 시발점은 아니었으나 뭐, 비스무리했네요. 어쨌든 마음 속 한 구석에는 소설 동의보감의 동권이 자리잡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집필이라는 행위를 괜히 시작했다고 생각한 건 금방이었습니다. 어떤 글을 읽든, 영화를 보든 머리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나였으면. 나였으면.

 

도저히 순수한 독자나 시청자로 머물 수가 없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그런 상태에서 처음 쓴 소설은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의 눈썹을 없애버리는 이야기’였습니다. 그야말로 막무가내로 썼어요. 그리고 서둘렀지요. 그때는 그저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으니까요.

 

저에게 여러 깨달음을 준 글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한 무언가가 누군가에겐 불쾌할 수도 있구나 라는 점이 대표적이었지요. 그 소설은 물론이고 여러 다른 글도 하드에 고이 잠든 상태입니다. 모종의 이유로 브릿G를 탈퇴 후 재가입하는 바람에 추천 딱지를 받은 몇 개의 글이 사라진건 가슴 아픈 일이지만요. 물론 활동도 잘 하지 않는 유령 상태인 건 송구스럽습니다만…. 현생에 벌여놓은 일이 많아서 여유가 없네요.

 

심지어 개인적으로 집필이라는 업을 성스럽게 여기진 않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이 짓을 왜 하나?’라는 근본적인 푸념이 더 어울리는 일이에요. 안주거리로도 형편없습니다. 다가오는 대설에 작가 모임을 나가서 삼겹살을 굽는데 뜬금없이 “어제 다리 한 쪽을 자르는 호러물에 3,000자를 투자했습니다”, “미래먹거리를 위협하는 AI를 다룬 SF물에 2시간40분을 투자했어요.”라며 소주잔을 짠 하는 건 어째 별로거든요. 심지어 누군가 로맨스에 대해 논하려든다면 크게 놀라며 “김치도 구울까요?”라고 황급히 주제를 돌려야 마땅합니다. 반찬으로 깻잎이 없기를 바래야하는 건 덤이고요.

 

약간 농담을 섞었지만 그만큼 집필이라는 행위는 고독이 어울린다고 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시면 역시 제 말이 맞다고 느끼실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또한 지금도 뭔가를 쓰고는 있습니다. 물론 잘 안 돼요. 신은 저에게 좋은 집필 능력을 주진 않으셨나 봅니다. 그래도 쓰게 되는 이유는요.

 

저에게 글쓰기란 밥벌이도 아니고 취미도 아닌 정체불명의 행위이지만,

 

‘나 뭔가를 하고 있다, 너에게 이걸 말하고 싶어, 우리는 어떤 존재이지?’라며 불특정에게 끊임없이 울부짖는, 뭐.. 정체불명의 행위라 했지만 어찌보면 일종의 저항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물리적이고 추상적인 인생을 조금씩 접어가면서 다가오는 시간에게 말이죠.

 

여러분이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야 천차만별이겠지요. 그래도 어차피 종점은 같습니다. 펜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언젠가 도착할 그때까지 펜의 무게를 견디시며 오늘도 고독하게 고뇌하십시오.

 

뭔가 장황하게 떠들었는데 두서없는 이야기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건필하고 즐독하세요.

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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