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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키’ 생각들

분류: 책, 글쓴이: 조나단, 23년 8월, 댓글5, 읽음: 84

*안녕하세요, 조나단이라고 합니다. 모처럼 여유가 생겨… 요즘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잡썰을 두서없이 써볼까 합니다.

 

-언젠가부터 작법서를 읽지 않는다. 내가 머리가 커져서일 수도 있겠지만… (나이 먹으며 눈에 보이기 시작한) 얇팍한 제목들과 ‘이래야 한다, 저래야만 한다.’하는 훈계조의 글들도 한몫 하는 것 같다.

-여러 작법서들을 뒤적거렸지만, 내가 끝까지 읽은 것은 르 귄과 스티븐 킹의 작법서 정도다… 그리고 로버트 맥키. 

-Robert Mckee, 로버트 맥키… 라떼는 로버트 맥기였다. (그냥 그렇다고요)

-꽤 오래전에, 로버트 맥키가 서울에 온 적이 있었다. 삼성동 코엑스에서 강연을 했다. 당시 티켓 값이 100만원이 넘었고, 영화사 방송사의 피디와 작가들이 회사에 티켓 끊어달라고 난동(?)을 부렸다는 소문이…  소속 없고 빈털털이인 나는 마냥 부러워만 했다는 건 팩트. 

-<스토리>(원제)가 처음 나왔을 때 우리나라 제목은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였다. 부제는 ‘되는 영화를 만드는 시나리오 불변의 법칙들’. 

-당시 시나리오를 공부하던 나는 그 멍청한(?) 제목에 속아서 책을 샀다. 나만큼 멍청한 당신을 위해… 맥키의 책은 영화와 연극과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위한 종합(?) 작법서다. 읽어보면 그중에서 소설을 가장 애정하더라.

-그 당시 <스토리>를 읽으며 느꼈던 (내용은 가물가물해졌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여운은… ‘이 맥키라는 사람은, 정말로 작가를 존중하는구나.’하는 정서였다. 

-십수 년의 시간차를 두고 읽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얼마전 브릿G 이벤트를 통해 로버트 맥키의 다른 책 <다이아로그>와 <캐릭터>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서점으로 달려가 냅다 샀다. 

-주5일, 작업 전에 몇 페이지씩을 읽었고 막 <다이아로그>를 끝냈는데. 여전히 ‘작가로서 존중받는’ 느낌을 받는다. 

-맥키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 가르치려 들기 보다… ‘글쓰기가 힘든 일이지만 해야만 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작가들에 대한 자신만의 존중과 애정으로, 자기 책을 읽는 독자(작가들)에게 용기를 주면서, 스스로 깨닫기를 추동한다. 이런 식이다.

…요즈음 글쓰기 강의들은 흔히들 언어 안에 남이 흉내낼 수 없는 존재, 이른바 ‘목소리’의 개발을 강조한다. 내가 보기에 이런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작가의 스타일이랄지 이른바 ‘목소리’라고 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찾거나 만들어질 수 없다. 목소리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 주어질 뿐이다.

독특한 글쓰기 스타일은, 창의적 개성이 인간 조건의 깊고 넓은 지식을 수용할 때 비로소 결실을 맺는다. 재능과 콘텐츠가 만나 격렬한 결합을 이뤄낼 때, 거기서 고유한 표현 방식이 태어나는 것이다. 목소리는 뛰어난 재능이 땀을 쏟아 얻어지는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결과다.

바꿔 말하면 이렇다. 이야기의 내용 즉 역할, 의미, 정서, 행동을 탐색하며 등장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고된 작업을 하다 보면, 오로지 당신만이 쓰게 되는 그런 글을 쓸 것이다. 잘 되든 못 되든, 좋든 싫든 그게 당신의 목소리가 된다.

-책을 다 읽고 요 며칠, 뜬금없이, 브릿G 작가들을 생각했다. 

-브릿G에는 다양한 진폭의 글쟁이들이 있고, 내가 배우는 것은 (아직은) 실력보다 열정이 더 큰 ‘어린’ 작가들이다. 그들의 성긴 작품들을 발견할 때마다 생각한다… 나도 실력보다 열정이 앞설 때가 있었음을 되새기고, 지금도 그 열정이 남아있나 반성하고, 아직은 ‘그렇다’라고 환기한다.

-또 나는 그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기 목소리를 갖게 되기를 바라지만, 그중 누군가는 ‘나가떨어질’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여러가지 내외부적 이유로 그렇게 될 것이다. 글쓰기를 멈추는 게 실패를 뜻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시점엔가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처럼.

-그런 선택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 글이 읽히지 않고, 그로 인해 내가 글을 계속 써야 할 이유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동력이 꺼지는 것이다… 내 그런 경험을 떠올렸고,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브릿G 작가들을 생각했다. 

-그런 분들이 맥키의 작법서를 읽어보면 어떻까 하고.

-글쓰기라는 게 오묘해서, 매 작품 쓰는 순간마다 동력을 필요로 한다. 가장 큰 동력은 스스로의 욕구와 독자의 관심이지만, 내적인 동력도 중요하고 그 외 다른 동력들도 존재한다. 

-그런 분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삘 받으면 하룻밤에라도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만) 왠지 모르게 반복되는 자신을 느끼고. 내 작품에서 뭔가 2% 허전함을 느끼고. 또는 글쓰기가 답습같고 의욕이 떨어지는… 그런 작가들에게는, 맥키의 책이 동력의 불씨를 되살려줄 지도 모른다. 

-적어도 글쓰기의 가치와 작가로서 ‘존중받는’ 느낌은 받을 것이다. 그러기를 바란다.

 

-끝으로, <다이아로그>에서 요즘의 나를 건드리고, 마음에 품고싶은 구절로 마무리. (대사 관련, 잘 안 풀릴 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절대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작가는 자신의 지식과 상상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완벽한 선택안을 찾아낸다. 계속해서 즉흥적으로 변주해보고, 대사의 짝을 맞춰보고, 상상 속에서 대사를 이리저리 굴려보고, 소리 내서 말하고, 다시 적어 내려가며,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다.

창밖을 응시하며 몽상에 잠겨 있다고 창의성이 발현되지 않는다. 미학적인 선택안들은 오로지 지면 위에 옮겨질 때만 살아난다. 

아무리 시시한 대사라도 일단 써둬야 한다. 당신의 상상을 스쳐 지나가는 선택안을 남김없이 적어둬야 한다. 당신의 잠자는 천재성이 깨어나 재능을 하사해주는 순간을 마냥 기다리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완벽한 선택을 내릴 때까지 당신의 머릿속에서 생각을 끄집어내 지면 위의 실재하는 세계로 끊임없이 옮겨놓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다.

 

*로버트 맥키의 작법서야 워낙 유명해서, 작법 내용보다는 제가 느낀 인상들을 끄적여 봤어요. 무더운 날… 도움 되시기를. (응?) 

* 이 자리를 빌어 ‘명함’ 만들어주신 브릿G에 감사드려요. 다음에 또 명함 이벤트를 하신다면, 그때는 브릿G 로고 넣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와, 브릿G에 작품 올리시는 작가님이시군요!” 하는 느낌이 들게요… ㅎ

 

고맙습니다. 좋은하루 되시기를.

조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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