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아직은 밤이 춥고 봄이라는 꿈이 깨지 않았을 때의 일화이다. 당시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향해 내놓은 소위 “완화 정책”이 오히려 구조적 모순으로 코킹된 슬링샷을 발사해 여러 문제를 야기했고, 이러한 흐름에 맞물려 피해를 본 세입자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여파가 광범위한 탓인지 필자의 오랜 지기도 경제적 쓰나미에 휩쓸린 한 사람이 되었고, 원치 않는 이사를 준비하느라 상당한 기력을 소모해야 했다.
사람을 오래 사귀다 보면 지인의 일이 곧 나의 대소사가 되는 경우가 있다. 부동산 사기에 관련된 소식이 많아서인지, 그때 필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임대차계약에 관련된 법과 정보를 찾아다녔다. 이삿날이 가까워졌을 때는 짐 정리를 돕고, 치다꺼리가 줄어든 뒤에는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주고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곧 이별할 동네의 야간 조명과 밤공기를 만끽하며 걸어보기도 하고, 아직 걸음 해보지 못한 낯선 쉼터에서 숨을 고르기도 하였다. 함께 묵힌 세월이 길다 보니 그냥 하는 말 한마디에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고, 필자와 지기는 어깨가 식는 줄도 모르고 추억에 대해 떠들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늦은 저녁의 향연은 마치 약속이라도 된 것처럼 감상회로 변해버렸고, 필자는 어두운 방에 배가 부른 로마인처럼 누워 친구의 추천작을 기다렸다. 이전에는 필자가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를 추천했으므로 이번에는 그가 선택할 차례였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이내 검은 스크린에 ‘HBO’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아무런 효과음이나 서곡도 없는 가운데 한 남자의 목소리가 이렇게 물었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What is the cost of lies?”
그것은 HBO 드라마 〈체르노빌Chernobyl〉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었다.
테르모필레 지하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흑연은 유황불을 지핀 것처럼 불길한 연기를 흘렸다. 재난 속에 사람들은 각자의 어리석은 선택을 신뢰했고, 낙진이 휘날리는 가운데 죽음의 춤을 추었다. 엎어진 잔 위로 그들은 끊임없이 보드카를 부었다. 그러나 인류의 손으로 빚은 지독한 압생트의 향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향쑥absinthium이 자라는 루스인들의 땅 ― 전쟁과 기근을 버텨낸 그들의 터전은 그렇게 황량한 폐허가 되었다.
손전등 빛을 서서히 좀먹는 어둠 속에서 가이거 계수기의 소름 끼치는 펄스 신호가 고막을 할퀴었고, 지하를 헤매는 사람들은 방호복 너머 보이지 않는 탄환의 존재를 느끼며 전율했다. 작열감이 느껴지는 붉은 피부가 체념과 담배 연기 사이로 눈에 띄었고, 세포를 유지할 수 없는 육신은 검게 썩어가면서도 가쁜 호흡을 이어갔다. 영상 매체에 삽입될 수 있는 가장 공포스러운 연출들이 그곳에 있었다. 무어라 할까, 견유犬儒의 자세로 보기에는 시청각적으로 몹시 불편한 작품이었다.
그날 감상회의 기억은 지금도 가끔 떠올라 필자에게 질문을 던지고는 한다. 예를 들자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로 한창 시끄러운 요즘 같은 때 말이다. 과학과 공리가 침묵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무수한 거짓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럼에도 현상의 두터운 거죽을 두드리며 진실의 둔덕이 올라오는 그런 순간마다, 낡은 녹음테이프에서는 재러드 해리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그것은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의 진짜 위험은 거짓을 계속 듣다 보면 진실을 전혀 분간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죄책이 있는 것으로 기소된 핵심 인물은 아나톨리 댜들로프, 빅토르 브류하노프, 니콜라이 포민, 보리스 로고슈킨, 알렉산드르 코발렌코, 그리고 유리 라우슈킨으로 모두 여섯 명이었다. 프리피야트의 에네르게티크 문화 궁전을 임시 법정으로 한 재판에서 이들 여섯 명의 피고인은 하나도 빠짐없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특히 안정성 시험을 감독했던 수석 기술자 아나톨리 댜들로프에게는 중과실 치사상 등의 죄목으로 10년의 노동 교화형이 선고되었다. 이는 레벨 7의 ‘심각한 사고’를 수습하는 데 힘을 소진해버린 소련이 추가적인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 벌인 연출이었고, 사고 당시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사망하거나 건강 악화로 은퇴하면서 이 의도는 어느 정도 관철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발레리 레가소프를 필두로 한 소련의 과학자들은 책임의 무게를 지고 의문의 깊은 영역으로 침잠했고, 자신의 파멸이 될 수도 있는 문제의 해연海淵에 도달하여 어떤 중요한 진실과 마주했다. 그것은 이 사고가 여섯 사람의 만용이나 어리석음으로 유발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오히려 개인의 머리 위에 드리운 국가 단위의 콤플렉스와 이데올로기가 만들어 낸 보다 복잡한 인재라는 사실이었다. 소련 정부는 자국의 기술적 우위를 상징하는 RBMK 원자로의 결함이 경쟁 관계에 있는 서방 국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렸고, 이를 은폐하고자 중요한 학술적 자료를 검열하고 안전 규정 및 설명서의 갱신을 회피했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특수 상황에서 AZ-5 스위치가 불러올 참사를 예상하지 못했고, 사고 초기 피해 규모와 원인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참조할 수 없었다. 이는 실체가 불분명한 국익을 위해 시민의 안녕과 인류의 보전을 져버린 주객전도이며, 말 그대로 ‘거짓의 대가’였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발생 후, 요미우리 신문은 ‘총리의 판단으로 해수 주입 중단’이란 타이틀의 기사를 1면에 실었다. 그것은 에너지 기본 계획의 재검토로 경제산업성 및 원자력 산업계와 마찰을 빚고 있던 간 나오토 총리를 겨냥한 기사였다. 사고 당시 수습 과정에서 제1원전 1호기에 주입할 담수가 부족해 해수를 대신 주입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이를 총리가 제지하여 55분간 해수 주입이 중단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연이은 후속 보도와 당시 전 총리였던 자민당의 아베 신조의 주장을 인용한 산케이의 기사로 내각에 대한 여론은 점차 나빠졌다. 간 총리가 정상회담을 위해 프랑스에 가 있는 동안 자민당과 공명당은 내각불신임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분열의 조짐이 보이며 정국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를 포함한 소위 “특종 기자”들이 단독으로 정보를 발굴했을 가능성은 전무했다. 그들에게 이러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던 유력한 정보원은 사고와 깊게 연관된 도쿄전력 임직원들, 그리고 도쿄전력에서 고문역으로 파견되어 해수 주입에 대해 현장과 통화 중이던 다케쿠로 전 부사장 정도였다. 특히 도쿄전력은 간 나오토 내각을 흔들 이유가 충분했다. 사고 대응 과정에서 “철수는 없다”라고 압박하는 총리에게 본사를 점거당한 기억이 있을뿐더러, 구제 계획은커녕 사고 배상액의 상한이 없는 배상책임안을 밀고 있는 정부에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원자력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기본 계획의 백지화 선언으로 입지가 흔들리던 경제산업성, 그리고 이들의 비호를 받아 왔던 도쿄전력의 적개심은 유언비어의 형태로 간 총리를 공격한 셈이었다.
그러나 이른바 “특종”은 모두 거짓으로 이루어진 정치적 공세에 불과했다. 관저에서 해수 주입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현장에서는 요시다 소장의 지시로 이미 해수 주입에 필요한 준비를 모두 끝마친 상황이었다. 그리고 다케쿠로 고문이 전화를 걸었을 때 해수는 이미 주입되고 있었다. 다케쿠로 고문은 “판단을 하시는 분의 이해를 얻지 못한 단계에서 해수 주입을 계속할 수는 없다”며 단독으로 중단을 지시했지만, 이마저도 겉으로는 중단하는 척하며 해수 주입을 지속한 현장의 임기응변으로 실제 중단되지는 않았다. 즉, 기사에서 주장하는 ‘55분의 공백’은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가장 큰 귀책이 있는 쪽은 도쿄전력이었다. 1971년에 가동되고 ‘고경년화 대책’에 의거해 유지‧보수되어 40년째 사용되어 온 후쿠시마 제1원전은 최대 5.7m 높이의 쓰나미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과거 10m 이상 높이의 쓰나미가 강타한 적이 있고, 2008년에 도쿄전력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8.7m 이상의 대형 쓰나미가 원전을 덮칠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도쿄전력은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이러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은폐하고 대책 또한 세우지 않았다. 이미 2002년과 2007년에 원전 데이터를 은폐‧조작한 사실이 알려진 도쿄전력 원자력 부문은 일반 직원들로부터 “원자력 마을”이라는 멸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도쿄전력은 2008년 당시 플루서멀(Plu-Thermal,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을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에서 실시할 계획이었고, 이것이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지역 사회나 여론을 자극할만한 정보를 상당수 은폐했다.
지진해일로 인해 벌어진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인재’의 특성이 도드라졌다. 쓰나미 대비는 물론이고 일종의 안전장치fail-safe였던 냉각장치의 비상 운전 또한 원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1호기는 사고 후 비상복수기가 수동으로 중단되고 이 사실이 요시다 소장에게 전달되지 않아 결국 수소 폭발을 일으켰다. 이런 상황 속에도 도쿄전력 본사는 현장과 관저 사이에서 불리한 정보를 통제하며 상황 파악과 사고 대처를 지지부진하게 만들기도 했다. 압력 벤트가 절실한 상황에서도 방사능 영향 예측 시스템의 자료는 간 총리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현장에서는 긴급 배치된 전원차와 시설의 접속 플러그가 맞지 않는 예상 밖의 상황이 일어나며 전원 공급이 지연되었다. 전력 회사로서는 실로 추태가 아닐 수 없었다.
이처럼 사고에 무한 책임이 있는 도쿄전력이었지만, 결국 원자력손해배상안은 국비 지원으로 결론지어졌다. ‘천재지변’을 핑계로 책임 기관을 증발시키는 원배법의 기이한 구조, 이를 믿고 도쿄전력에 거액의 융자를 빌려준 은행들, 국민의 세금을 에너지 산업체의 고액 보수로 탈바꿈해 선후배가 나눠 갖는 경제산업성과 원자력 카르텔 등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였다. 재생 에너지 분야로 나아가려던 일본은 기존의 질서를 극복하지 못하고 원자력 중심으로 회귀했고, 민주당이 선거에 참패하고 자민당-공명당 연합이 부활하며 일본의 민주정은 한 방향으로 완전히 기울어 마침내 침몰했다. 이 역시 사실의 은폐‧축소‧왜곡이 불러온 ― 일본이 치른 ‘거짓의 대가’였다.
올해 일본은 후쿠시마 오염수 측정‧평가 대상인 방사성 핵종을 64개에서 30개로 축소했다. 반감기가 짧은 핵종을 데이터에서 소거하고 상대적으로 수명이 긴 핵종을 위주로 측정하겠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제외된 핵종의 함량은 얼마나 되는지, 방류 시 반감기가 끝나기까지 생태계에 주는 영향은 얼마나 되는지의 자료나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국제 사회에 협력하고 높은 투명성을 담보하겠다 공언한 일본이었지만, 그들의 산정 방식과 준거는 여전히 불투명한 수조 안에 갇혀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놓고 사람들의 입에는 여러 이름과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ALPS 처리수의 트리튬(삼중수소) 방출량이 1500㏃/L 미만을 유지할 수 있는지, 유기결합 삼중수소OBT의 생물학적 반감기와 예탁선량committed dose은 얼마나 되는지, 오염수에 포함된 핵종 처리의 확실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이 그것이다. 또한, 아이오딘-131에 비해 반감기가 매우 긴 아이오딘-129도 고려되고 있는지, 만약의 경우 방사성 세슘이 불용성 입자 형태로 퍼질 우려는 없는지, 뼈에 침착되어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스트론튬-90은 안전한 수준으로 처리될 수 있는지, 그리고 MOX 연료(산화 플루토늄을 혼합한 재처리 연료)를 사용한 3호기를 고려해 플루토늄의 안전 수준 역시 보수적으로 평가하고 있는지 등, 현안을 둘러싼 질문은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의 유형만큼이나 다양하다.
이에 대응하고자, 일본은 TEPCO(도쿄전력홀딩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처리수 포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어/영어/중국어(간체자/번체자)로 번역된 포털사이트의 설명과 그래프, 다이어그램, 그리고 통계 자료는 일견 소명의 책임을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정보의 유형과 접근성은 인접국 시민과 환경단체, 그리고 반대 입장에서 영향을 평가하는 전문가들의 질문에 답하기에는 생략이나 결손이 많다. 심지어 정확한 통계 자료는 날것 그대로 게시할 뿐 이를 바탕으로 한 설명을 따로 작성하지 않기 때문에, 공개된 정보임에도 불구 비전문가에게는 여전히 장벽이 된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비록 전문성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필자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자료를 보고 느낀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공되는 자료는 외부기관의 개입이나 공조가 없는 ― 도쿄전력 단독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도쿄전력 원자력 부문은 이학‧공학 엘리트 특유의 독립성과 폐쇄성을 지녔고, 이러한 성향은 자료의 은폐‧조작이나 초법적인 일탈 행위로 발로되었다. 그리고 2012년에 국유화된 도쿄전력은 대주주인 원자력손해배상지원기구에 귀속된 형태로, 이전보다도 경제산업성-자원에너지청 관료의 의도를 강하게 반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편향성은 TEPCO 제공 자료의 신뢰도를 낮추고, (심지어 IAEA 보고서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자료 최적화에 있어 독립적인 외부 레퍼런스가 부족하다는 약점을 만든다.
둘째, 처리수 취급 절차에 있어 원자력 부문의 독주를 견제할 독립적인 기관이 부족했다. 처리수 포털사이트가 제시한 스케줄에 따르면, ‘현지를 비롯한 관계자 의견 청취’와 ‘기본 방침 결정’은 정부 담당, ‘구체적 취급 결정’과 ‘준비 공사’ 및 ‘처분/모니터링’ 등은 도쿄전력의 소관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개입해 ‘인가’ 절차를 담당했던 기관은 환경성 산하의 ‘원자력규제위원회’ 하나뿐이다. 자원에너지청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해당 도표는 ALPS 처리수 방류 결정이 충분한 수의 이해 관계자와 협의하는 대신, 불도저로 밀어버리듯 일방적으로 진행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외에도 지역민과 어업협동조합연합회가 명확한 반대 의사를 내비치고 있고, 2015년에 작성된 “관계자들의 이해 없이는 어떠한 처분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면 약속이 존재하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이를 일절 고려하지 않고 있다.
셋째, 해양생물 사육시험의 변인 통제가 불확실하고 측정 항목의 타당도가 충분하지 않다. 해양생물 사육시험의 목적은 삼중수소 농도 1500㏃/L 미만의 처리수가 해양 생태에 끼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수질을 통제하지 못해 광어가 있는 수조에서 기생충이 발견되거나, 다른 수조로 옮기는 과정에 충격이 발생해 전복이 죽는 등 사육시험의 가외변인 통제는 기준 미달인 점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ALPS 처리수가 담긴 수조의 전복이 일반 해양수 수조보다 개체 수가 많다고 적어놓았는데, 그저 ‘분석 목적으로’라는 설명만 있을 뿐 어째서 집단의 크기를 다르게 설정하였는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전복은 평균 수명이 9~10년이고 사육시험은 2022년도에 시작되었으니, 이론상 처리수가 안전하다면 1~2년 사이에 극적인 생존율 차이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2023년 4월 21일 일지에 따르면, 해양수 ①‧②의 전복 누적 손실은 각각 32‧27인 데 비해 처리수 ①‧②의 누적 손실은 43‧55로, 해양수 환경이 79.4~82.6%의 생존율(누계)을 보이는 반면 처리수 환경은 72.9~77.6%에 그친다. 그런데도 일지의 설명은 처리수의 전복 수가 더 많기 때문에 죽은 전복의 수 또한 많을 뿐, 생존율은 여전히 같은 70%대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상대적으로 세포 수가 적은 생물을 관찰하는 중에 이런 식으로 실험을 진행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연습 사육 때 (그나마 광어에 한하여) 사인을 분류해두었던 2022년 8월 일지에 비해, 본격적인 처리수 내 사육이 시작된 후 손실된 전복의 사인은 전혀 분류되어 있지 않다. ALPS 처리수가 해양생물에 주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실험임에도 이를 정확히 측정‧기술하지 않는 것은 적절한 연구 태도라 볼 수 없다. 과학적 엄밀성과 정보 투명성을 위해 노력해도 모자랄 상황이지만, 시험일지는 실험대상에 대한 불필요한 수준의 이입 등 감정적 접근에 호소하는 내용이 다수 기록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는 건강과 생존에 관한 실제적인 불안을 느끼고 있는 세계 시민을 제대로 설득할 수 있을 리 없다.
마지막으로 넷째, 여전히 일부 핵종 처리 능력에 있어 ALPS의 안정성이 의심된다. TEPCO의 〈저장 탱크 구역별 방사능 농도(2023년 3월 31일 기준)〉 자료에 따르면, B구역 저장 탱크 그룹 다수는 규제 기준인 3.00E+01(30)㏃/L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의 스트론튬-90이 잔류해 있다. 해당 그룹의 최고치는 2.26E+04(22,600)㏃/L로 기준치의 약 753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물론 도쿄전력이 공언한 대로 B구역의 오염수를 안전한 수준까지 처리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여기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ALPS의 스트론튬-90 처리 능력이다.
같은 날짜를 기준으로 한 〈다핵종제거설비 등의 출구에서의 ALPS 처리수 등 수치〉에 따르면, 2014년에는 도시바제 설비의 신뢰성 문제로 스트론튬-90의 처리 수준이 안정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처리 전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신형 설비를 사용한 2021~2022년 데이터에서도 기준치를 웃도는 결과가 존재한다. 해양 방류는 약 30년간 지속될 예정으로, 기간 내 설비 고장이나 오작동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며, 독립적인 외부기관의 감사 없이 제공되는 도쿄전력의 데이터를 막연히 신뢰할 수도 없다. 여전히 사고 오염수의 처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불안 요소를 안고 해양 방류에 동의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필자가 언급한 바 외에도 ALPS 처리수의 영향에 관한 우려는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피폭에는 문턱이 없으며 극미량의 방사능도 생물에게 유해할 수 있다’는 통계적 증명 ― 선형무역치Linear No Threshold 모델로 유명한 티모시 무쏘Timothy Mousseau 교수는 삼중수소의 생물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분위기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인근 해역을 오가는 선박의 평형수를 통해 오염이 확산하는 시나리오를 제기했으며, 지구온난화로 인해 쿠로시오 난류 등 여러 해류가 확장했을 경우 오염 확산에 영향을 줄 것인지도 아직 확실치 않다. 또한, 니가타현 주에쓰 앞바다에서 발견되었으나 도쿄전력이 의도적으로 정보를 통제했던 20km 이상 규모의 활단층 ― 이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재가동이 고려 중인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자력 발전소 6‧7호기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 6‧7호기는 개량 비등수형 원자로ABWR로 후쿠시마 제1원전의 마크Ⅰ 원자로의 단점을 보완한 모델이고, 현재는 재가동에 필요한 적격성 심사에 제동이 걸려 운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원자로압력용기RPV에 접근하여 물을 끓이는 구조인 만큼 오염 유출의 취약성이 있고, 앞서 언급했듯이 진원이 될 수 있는 활단층의 존재도 위험 요소로 남아 있다. 만일 재가동을 하게 된다면 이후 해당 원전에서 어떤 사고가 벌어질지, 원자력 마을의 이공학 엘리트들이 어떤 거짓말과 어리석은 결정을 할지 그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를 허가한 뒤 일본에서 또 하나의 레벨 7 원자력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면, 그때는 두 번째 방류 결정을 반대할 논리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이상 어떤 의제에 정답을 도출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어떤 견해를 지니는 걸 피할 방법 역시 없다. 이를 감히 밝히건대, 필자가 보기에, 현안은 매끄럽게 넘어갈 수 없는 몇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인류는 여전히 10년 뒤의 전반적인 상황이나 수준을 예측할 정도로 첨예한 분석 모델을 지니고 있지 않다. 복잡성이 높은 영역일수록 우리가 내다볼 수 있는 미래의 범위는 극도로 좁아진다. 외적 요인에 의한 유전 정보 손실이나 종양억제유전자의 돌연변이 유무 등 다양한 발생 경로를 지닌 암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미량의 독성물질은 긍정적인 생물학적 반응을 야기할 수 있다’는 호르메시스Hormesis 모델이 아직 완전히 반박되지 않았음에도, 안전 기준에서는 무역치No-Threshold 모델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방사성 물질의 경우, 저선량 영역에서도 문턱값이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하느냐를 두고 학계 의견이 통일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데 오염수 방류를 추진하거나 지지하는 측에서는, 방사선량이 기준치 이하이고 생물학적 반감기가 짧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안전”하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방류 후 최소 30년, 혹은 100년 이상 광범위하고 무분별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임에도 말이다. 여기에 더해, 그들은 100m㏜ 이하의 방사선은 무역치 모델이 적용되지 않는 범위라고도 덧붙인다.
7월 3일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헌법소원 청구인 모집 기자회견’에서 서울대 의과대학 백도명 교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임산부는 단순흉부촬영도 찍지 않는다”며 오염수를 마시겠다고 한 정치인들을 비판했다. X선 흉부촬영은 회당 0.05m㏜로 세계 평균 자연방사선 2.4m㏜보다 48배나 적은 수치이다. 그럼에도 임부와 태아의 건강을 고려해 촬영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극히 적은 방사선조차 세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암의 발생 과정을 설명하는 용량-반응 모델 중 가장 극단적인 유형은 한방One-hit 모델이다. 한방 모델은 극미량의 인자여도 세포에 유전적 결함을 “한 번 이상” 줄 수 있다면 암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관점을 지지한다. 이는 일견 보수적일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평가해야 할 것은 중장기적이고 미시적인 영향이다. 위험 평가에 있어, ‘제로 리스크’를 확신할 수 없는 모호한 지점에서는 과소평가보다는 과대평가를 택하는 게 백번 타당하고 ‘안전’하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회피할 만큼 기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몇 년 안에 ‘은퇴하거나 사망할지도 모르는’ 타국의 정부 관료나 기업 임직원에게, 수십 년 후에나 알게 될 문제의 책임을 뒤늦게 묻는다는 건 이론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일본 경제산업성과 그 산하 자원에너지청은 원전 사고 당시 귀책이 있는 관계 부처였음에도 문책을 받지 않았고, 도쿄전력 역시 일부 임원의 보수 삭감과 사퇴, 그리고 손해배상지원기구를 통한 국비 지원 배상안으로 결론이 나며 전례 없는 수준의 면책을 받았다. 당해에 있었던 사고임에도 일본의 사후 처리가 이러했을진대, 방류 개시 n년 뒤 동시다발적인 징후가 일어나 관계국에서 코호트 연구를 한다 한들 결론이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무덤에 누워 있는 죄인을 관에서 꺼내 목을 치는 시대는 진작에 지났다. 망자는 침묵할 뿐이고, 생자는 자연의 비정한 진실을 깨닫는 데 서투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을 추진하는 일본 정부의 방식과 태도도 위화감이 드는데, 이는 원전 사고가 어디에서‧어떻게‧왜 발생했는지를 따져보면 답이 나온다. 일본은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발생국이자 책임국이다. 그런데도 사고 오염수 처분에 있어 국제적인 이해와 협력을 촉구하는 국가치고 그들의 태도는 다소 독선적이고 오만하다. 마땅히 자국민 건강과 해양자원을 우려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이들에게 “유언비어를 퍼뜨린다”고 말하고, 일본의 결정을 지지하는 견해는 전면에 내걸고 반대되는 견해는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논리로 배척하며, 안보를 핑계 삼아 도쿄전력이 제공하는 데이터만으로 만족하고 신뢰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사고 발생 후 도쿄전력은 수습과 구호가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획 정전이나 현장 철수를 운운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고, 정치인들 역시 사기업에 수습을 맡긴 채 보안원과 안전위원회의 견해에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가 죽으면 살인죄로 고소하겠다”고 압박한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과 “철수는 없다”고 단언한 간 나오토 총리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정전이나 철수는 실제 실행될 가능성도 있었다. 즉,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보다 심각한 ― 어쩌면 태평양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인류 보전에 영향을 끼친 사고로 확대될 수도 있었다.
이처럼 신용하기도 어렵고 국제적으로 귀책을 지고 있는 일본이 이해 당사국의 입장보다 앞서 안보를 내세울 자격이 있는지 필자는 묻고 싶다. (사실 현대에도 그 범위는 모호하지만,) 근대 이전이었으면 이러한 종류의 분쟁은 개전 사유casus belli로도 확대될 수 있는 문제다. 일국의 안보와 인류의 안녕을 저울질하는 건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일이다. 후쿠시마 사고 오염수 및 ALPS 데이터를 당사국이 독립적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각국 전문가가 동일 비율로 구성된 국제기구’를 신설하고, 이를 통해 현 수준 이상의 정보 투명성을 보장하지 않는 한, 일본의 저의와 신용은 도마 위에 오르지 않을 날이 없을 것이다.
“현인들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
〈한일21세기위원회최종보고서 비판〉에서 도쿄대 인문과학과 오가와 하루히사小川晴久 교수는 이와 같이 물었다. 오가와 교수는 “①건설적인 파트너십을 위해 역사 감각을 양성하고 ②역사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탈피하여 전향적인 협력을 추구한다”는 논리의 한일21세기위원회 공통인식을 ‘경제동물적 발상’이라 표현하고, 보고서에 전제된 기러기행진형 경제발전이 아시아 태평양 국가 간의 수평적 평등 관계가 아님을 지적했다. 그리고 당시(1991년) 바젤 협약Basel Convention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일본의 상황을 놓고 “공해수출에 무신경한 일본이 주도하는 경제건설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사람들이 행복해질 리가 없다.”고 말하고, “개발이란 폭력이다. 그 지역의 평화를 파괴하는 것이다.”라는 이반 일리치Ivan Dominic Illich의 발언을 인용하며 일본의 경제 헤게모니론을 비판했다. 그리고는 단락장의 끝에서, “현인회의”라는 이름을 쓰는 당위원회 위원들을 향해 “기업을 엄격하게 비판하고 그것을 보고서에 포함시킬 용기가 없다면 ‘현인’이라고 불릴 이유가 없다.”라고 오가와 교수는 강한 어조로 논평했다.
오늘날에 이르러, 필자는 오가와 하루히사 교수의 이 표현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절하게 와닿는다. 한국에 아무런 이득도 없는 오염수 방류를 일본도 아닌 한국 정부가 나서서 “안전하다”고 해명하는 모습이, 한국의 이공학 엘리트들이 도쿄전력의 자료를 다방면으로 검토하기는커녕 자국민의 불안을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외면하는 꼴이, 그리고 현안을 ‘정치 쟁점화’하는 분위기가 도무지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환자의 불안을 다뤄야 할 상담사가 오히려 환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도대체 이 나라의 소위 “현인”이란 사람들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 것인가?
한술 더 떠 “현인”들은 “방사성 폐기물의 해양 투기는 수많은 전례가 있다”며 이를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같은 실수를 내일도 해도 된다”는 말은 그야말로 미래를 팔자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세계 각국에서 쌓아 온 실수 때문에, 당장 우리는 지구를 몇 년이나 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사고事故라는 개념은 관측할 때는 극적이고 순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현상이란 단위로 보았을 때는 생각 이상으로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진행일 수도 있다. 레벨 7의 심각한 사고만큼 눈에 띄지는 않겠지만, 향후 돌이켜보면 인류가 허용한 최악의 결정 중 하나로 꼽힐지도 모를 일이다.
1977년부터 2007년까지 일본이 버린 약 4,500조 베크렐의 방사성 폐기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30년’ 동안 실수가 ‘허용되었기 때문에’ 누적된 수치다. 사고 오염수의 처리 후 방류도 결국은 마찬가지다. 방류를 허락하는 순간 이후 발생하는 오염수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밖에 없고, 이게 반복되다 보면 ‘원자력 공해에 대한 경각심’과 ‘해양 오염을 막아야 한다는 공론’이 무디어지게 된다. 그럴수록 에너지 산업이 원자력 발전의 문제를 회피하는 기간이 늘어나고, 그러는 동안 산업 기조를 바꾸는 데 필요한 시간은 낭비될 뿐이다.
원자력학회에 속한 지식인이 “선동세력”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해가며 일본 언론에 조언을 아끼지 않고, 원자력공학과 교수가 지금의 분위기를 이용해 이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문제 삼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편의 부조리극이다. 차라리 그들이 일본의 학회나 연구소 소속이라면 이렇게까지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의 전력‧에너지 관련 행정법인과 재단법인의 경우 경제산업성 출신 관료가 낙하산으로 오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에너지연구소에서 경제산업성의 주머니에서 나온 (보조금이나 위탁조사비 등으로 구성된) 고액 보수를 받는 게 ‘제2의 커리어’처럼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도 아닌 ‘한국’의 지식인이고 전문가이다. 한국에서 연구활동비를 받는 사람들이 어떤 연유로 이렇게까지 타국의 이권을 비호하는가? 정말 그들이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면, 이는 한국에도 원자력 카르텔이 있다고밖에 추측할 길이 없다.
우리는 거짓이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이미 너무 많은 거짓이 ―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논점을 흐리고 중언부언하는 이들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뿌린 씨앗은 지금도 뭇사람의 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거짓이 맺을 과실은 눈에 보이지 않고 향도 없어 유해성을 쉽게 알 수 없지만, 계속 접하다 보면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는 독에 서서히 중독된다. 거짓에 무감각해지면 허와 실을 분간할 수 없게 되고, 종국에는 중요한 무언가를 상실한다는 감각마저 느끼지 못하게 된다. 지금도 인류는 그런 식으로 가치 있는 것들을 떠나보내고 있다.
거짓을 신용하고 이를 옹호하고자 또 다른 거짓을 생산한 대가는 건강과 자연의 손실로 끝나지 않는다. 금권 정치와 엘리트주의에 의해 민주적 의사 결정의 대전제가 훼손되고, 세계 시민이라는 공통인식을 상실하고, 상호적‧수평적 관계 대신 헤게모니가 국제 관계를 규정하며, 재생 가능 에너지로 나아가는 동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현안에는 그만한 무게가 있고, 그렇기에 우리는 “건강에는 문제 없다”는 해명에 만족하고 견유처럼 누워서는 아니 된다.
이 세상에 타인의 악의와 무신경 속에 서서히 익사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인간의 바람을 받쳐주지 못하는 모양이다. 필자가 이 졸문과 씨름하는 동안, ALPS 처리수의 안전을 홍보하는 광고가 국비로 편성되었고, 정상회담에서는 일본의 방류 계획을 승인하는 뉘앙스의 발언이 나왔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큰 흐름에 짓눌려 허우적대는 이 무력감을 글로 적으려면 아마도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럴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필자는 다만, 인류 문명이 진실을 외면한 대가를 감당할 만큼 견고한지 묻는다.
1.현재 학계는 저선량 영역에서 무역치no-threshold 모델을 적용하지 않는 입장을 지지합니다. 또한, PNAS에 게재된 〈Evidence for formation of DNA repair centers and dose-response nonlinearity in human cells〉의 경우, 저선량 피폭으로부터 DNA가 회복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무역치 모델과 한방one-hit 모델을 언급하는 단락은 이점을 유의하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2.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관한 내용은 오시카 야스아키大鹿靖明의 〈멜트다운〉을 참조하였습니다.
3.제시한 처리수 관련 자료는 모두 ‘처리수 포털사이트’에서 열람 가능합니다.
원고지 30매 정도의 분량으로 간단히 쓸 생각이었는데, 참조할 자료를 읽다 보니 자꾸만 할 말이 많아져 70매를 넘겨버렸습니다. 바쁜 와중에 감기몸살을 오래 앓아 상당한 시간을 허비했는데, 덕분에 창작 노트나 다른 중편의 집필이 늦어지고 말았네요. 정말 답답한 일만 한가득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여름에 건강 조심하시고, 장마철에 큰 피해 없이 무사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