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행성에서 온 외계인과의 운명적 만남
리뷰 공모한 작품입니다.
작품에 대해 전하고 싶은 해석이 있는데, 작가의 말에 적기는 너무 길고 홍보도 할 겸 자유 게시판에 올립니다.
(주의) 큰 반전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스포일러 당하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 부분을 신경쓰지 않고 작성하겠습니다.
’블루, 가끔 무지개’는 산 속에 고립된 아이와 비를 부르는 외계인의 만남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작품 내에서만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숨겨진 비유를 찾으면 더 재밌는 해석이 나온답니다. 사실 그렇게 ‘숨겨진’ 비유는 아니지 않을까… 왜냐하면 제 일차원적인 작명 센스가 돋보이는ㅋ 주인공들의 이름처럼,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바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먼저 주인공들의 이름을 소개하고, 그들이 사는 공간을 들여다 볼게요.
비를 부르는 외계인 = 블루
산 속에 고립된 아이 = 산하
Blue는 물, 비가 떠오르는 색이기도 하고
’우울’을 뜻하는 영어 단어지요. 이야기 속 ‘나’, 주인공의 이름입니다.
대충 지었지만 마음에 들어요.
비는 우울의, 비를 부르는 외계인인 블루는 고질적인 우울증을 가진 사람의 비유에요.
작품 본문에서 블루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블루는
’비가 그치질 않아 물에 잠긴 듯 했던 행성, 썩지 않는 딱딱하고 매끄러운 것들로 가득 찬 집’에서 왔습니다.
늘 우울하지만 어떤 감정도, 외부의 어떤 자극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 하고
방수 처리된 정신 세계가 반영된 이미지에요.
우울증의 유형 중에 ‘멜랑콜리형 우울증’이 있는데, ‘무쾌감증’과 ‘감정적 반응성 결여’가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는데요. 블루가 그런 상태에 가깝다고 봅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영화 ‘멜랑콜리아’에서 우울증에 잠식된 사람을 잘 묘사했는데 참고하시면 좋겠네요.
그리고 블루가 만나게 되는 지구인 친구는 산하.
산 아래라는 뜻입니다. 언젠가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운명을 담아 지었습니다.
블루가 잠시 지내게 되는, 산하가 살고 있는 깊고 높은 산 속은 순수한 상태를 뜻해요.
아직 사회적인 기준, 편견과 관념에 물들지 않은 아이의 정신 세계, 그 자체인 거죠.
작중에서는 그런 인물을 나이까지 아이로 표현했지만 산하는 그냥, 순수한 사람(다 큰 어른보다 아이가 순수할 가능성이 크긴 하겠네요.)의 비유입니다.
반면 산 아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에요. 보편적인 인간성, 인간 사회, 그에 맞는 기준, 그들이 공유하는 가치…
앞으로 아이가 어울려 살아가야 할 환경입니다.
초반부에 산하는 누가 봐도 우습게 볼 만한 차림새로 돌아 다닙니다. 뭐, 마주칠 사람 없는 숲 속이긴 했지만요.
어떤 옷이 어떻게 보이는지 산하는 알지 못 하는 거에요. 그래서 외계인을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었죠.
외로웠기 때문만이 아니라, 뭐가 정상이고 뭐가 이상인지 고정된 틀이 없는 순수한 아이라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산 아래에서 온 사람이 우연히 블루를 발견했다면 어땠을까요? 신고를 했든, 놀라서 도망쳤든, 산하처럼 망설임 없이 블루를 구해주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이렇듯, 아주 다른 두 인물은 우연히 만나 독특한 시너지를 내는데요.
다르지만 서로 끌리는 필승 조합이라고도 생각됩니다.
그들이 처음 만나는 초봄의 숲은 가림막 없이 서로를 다 보여줘요.
사람이 그런 때가 있지 않나요.
가령, 원래 그런 사람 아닌데, 갑자기 아무 술집에나 들어가서 처음 본 사람한테 별 살아온 인생사 다 털어놓게 되는… 정신적 감염에 취약한, 나약하고 개방된 상태가 되는 때가 있잖아요. 둘은 그런 때에 마주친 겁니다.
깊은 내면을 가진 사람이란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입니까. 그 깊이를 파낸 게, 그 속에 채워진 게 대부분 ‘우울’이라고 해도 말이죠. 뭔가 있어 보이잖아요. 특히 뭣 모르는 아이 입장에서는 더.
우울에 도취되고, 전시하고, 선망하는 ‘패션 우울증’이라는 것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완벽한 타이밍과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사람과 순수한 아이(혹은 아이 같은)의 만남은 무지개처럼 어떤 작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썩지 않는 내면을 가진 사람과 달리 아이의 마음은 쉽게 부패합니다. 습기에 취약해요.
잠시의 만남은 아름답지만 영원할 수 없어요. 먼저 아이를 놓아줘야 해요.
까놓고 말하자면, 두 주인공은 설계된 인물이 아니에요. 처음부터 인물이 상징하는 바를 고심해 쓰지 않았어요. 제가 글을 쓸 때에 대체로 그렇듯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제 욕망이 이끄는 대로, 지속될 수 없는 관계에 초점을 맞춰 대략적인 스케치를 했어요.
그리고 쓰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뭘 쓰고 싶었는지. 마치 셀프 그림심리치료(집을 그려보세요! -> 높은 담장과 작은 창문은 방어적인 심리 상태를 나타냅니다. 집으로 가는 길 또한 구불구불 복잡하고 좁게 이어져 있네요. 현재 당신의… 중얼중얼… 같은)를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름의 진단과 처방이 결말을 이끌었어요. 장면 하나를 쓴 다음 그 비유에 맞춰 보면, 모든 게 해석 되더라고요. 종종 하는 경험이지만 늘 신기합니다.
이런 제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는데,
자유 게시판이라는 좋은 공간을 이렇게 활용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답니다.
다른 디테일도 많지만 쉽고 중요한 감상 포인트 한 가지를 말씀 드리자면!
블루와 산하의 심리, 관계 변화에 맞춰 강수량의 변화를 체크해보세요.
그럼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