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업작가의 삶이란..
* 저의 개인적 의견과 경험일 뿐입니다.
저는 생업이 있고 +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입국 신고서 작성할 때는 직업란에 그냥 ‘작가’라고 적지만
작가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기엔 반찬값…아니 과자값은 되나…정도로 벌고 있기에
‘전업 작가’는 못 되고 ‘겸업 작가’도 아니고 그냥 ‘부업 작가’라고 하고 다닙니다.
(웹소설 쪽은 모르겠고) 그냥 ‘부업 작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1. 돈
폭주기관차처럼 1년에 장편 2~3편+단편 여러 개를 쓸 수 있고…그리고 그것이 모두 계약됨.
또는 <82년생 김지영>급 베스트셀러를 쓰거나
또는 여기저기 강연을 다닐 정도 인지도와 말발이 있거나
또는 1년에 1개 이상 영상화 판권을 팔거나
이 정도 네임드 작가가 아니라면…전업 작가로 살 수 없습니다.
꿈을 먹는 업계는 잔인해요.
출판작으로 번 돈을 계산해 보면 집필 시간만으로 따지면, 최저임금에 미달하고(자료조사 기간은 제외.
저는 한 달에 단편 하나 쓰는 속도입니다.), 자료조사에 쓴 비용을 제하면 적자(요새 책이 비싸더라고요..),
글 쓰는 동안 혹사시킨 노트북의 감가상각비용과 제 방 조명의 전기요금 등등까지 다 따지면 백종원 아저씨가 와서 장사 접으라고 할 수준입니다.
작가가 되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을 쓰고 있는데…ㅠ저는 글쓰기를 ‘취미’라고 선을 긋고 글쓰기로 버는 돈은 ‘덕질하다 계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차가운 방바닥에서 촛불 켜고 떨면서 글 쓰다가 피 토하고 폐병 걸리는 일제강점기 문인 같은 낭만(?)은 없고요,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대로 여유가 있으면 시야가 넓어지는 건 있습니다. 글 말고 다른 데서 벌어들이는 돈이 있으면, 글이 생업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2. 시간
시간은…어떻게든지 만들면 생기긴 생기더라고요.
저는 다행히 사무직+내근직이라서
출퇴근할 때 전철 안에서 구상하고(승객이 너무 많아서 스마트폰 볼 공간도 없었기에 생각하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긴 했습니다.) + 출근해서 업무 시작 전까지 글 쓰고(회사 컴푸터, 회사 전기 등 회사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K직장인)+점심 시간에 글 쓰고+중간중간 눈치보며 월급루팡하며 글 쓰고+퇴근 후에 사무실에서 글 쓰면…부장님이 “요즘 너무 열심히 일하는 거 아냐? 맨날 일찍 출근해서 늦게까지 야근하던데”하면서 흐뭇하게 지나가십니다…
다행히 아이나 반려동물이 없기에 집에서의 시간에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3. 건강
마감이 급할 때는 눈 뜨면 노트북 켜고 글 쓰고+2번과 같이 글 쓴 후 퇴근해서+노트북에서 마저 쓰고…이런 식으로 ‘눈 뜨면 전원 켜고 전원 끄면 잠들고’…의 삶을 살았는데, 시간이 없으면 제일 먼저 운동과 잠을 줄이게 되고, 커피를 들이부으며 건강검진은 눈 감고 모른 척 하고 지나가면…’내가 무슨 걸작을 쓰겠다고 수명을 깎고 있나. 이래서 천재들이 요절하는구나(?)’는 깨달음이 옵니다. (생업에서 들어먹는 욕으로 생명연장하니 똔똔(?)일까요…)
4. 소재
제가 직장을 안 다녔으면 어떻게 ‘번아웃에 빠진 직장인’을 실감나게 그릴 수 있었겠습니까…
일을 하건 학교를 다니건 뭐를 하건 글 쓰는 외에 모든 경험은 다 소재입니다!
저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소재를 적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스노트…아니 작가노트를 적으면서…
글을 쓰면 좋은 건 직장에서 아무리 X같은 일이 있고 X같은 X끼를 만나도 ‘이거 내가 언젠가는 쓰겠어’라며 버틸 수 있다는 겁니다. (X장님은 나의 뮤즈…) 그런 의미에서(?) 번아웃에 빠진 직장인이 인어를 만나는 제 소설 막간 홍보…
5. 오래 쓰는 사람
쓰기 전과 후의 저는 분명히 다른 사람입니다. 저는 본명과 필명이 완전히 다른데 이제 좀 필명의 인격에게 익숙해진 것 같고, 이 존재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글을 쓰면서 저에 대해 점점 더 알아가게 되고 주변에 눈을 돌리게 되고 더 많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내가 인지도가 없다거나, 글이 잘 안 써진다거나 ‘글먹’이 안 된다거나 등등 조바심이 나고 우울할 수 있겠지요. 그럴 때면 5년 전 동동거리던 때의 글을 5년 후의 제가 읽어 봅니다…그러면 ‘이 때는 이렇게 패기롭게 쓸 수 있었구나’ 하는 글도 있고 그 때는 몰랐으나 지금은 ‘왜 망했는지’ 알 것 같은 글도 있고 어떻게 고쳐야할 지 보이는 글도 있고, 빛의 속도로 삭제하는 글도 있고, 지금 쓰면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은 글도 있습니다.
제가 5년 전에 쓴 장편로맨스판타지가 있는데 당시에 제 눈엔 대박날것 같은 걸작이었으나 모든 공모전에 탈락했고 조회수는 처참했으며 세상이 나를 알아보지 못 한다고 절망했으나…지금 다시 보니 여주인공이 중반에 죽고 나머지 절반동안 남주인공이 그리움에 겨워 방황하는 로맨스가 인기가 있을 리 없…5년 전에 절망할 시간에 습작을 했으면…그래도 장편을 완결 낸 경험은 소중합니다. 단편과는 다른 장편의 리듬을 익힐 수 있었어요. 그거 하나는 잘 했어, 나 자신.
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 미래의 독자가 현재의 작가를 읽으러 올 겁니다. 지금 보이지 않는 게 나중에는 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오랫동안 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