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6회 황금도롱뇽 문학공모전 결과발표
안녕하세요, 유권조라고 합니다.
길고도 길었던 기다림 끝에 제6회 황금도롱뇽 문학공모전 결과를 드디어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스레드로 남은 작품 가운데 한 편을 골라 트로피를 드리기로 하였는데요.
제멋대로인 심사를 거쳐 짧게나마 감상을 남기고자 합니다. 200자 이내로 육하원칙을 담으라는 기준에 다들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여타 문제풀이나 경진대회와 달리 제멋대로인 출제자의 의도가 참 중요한 공모전에서 이런 기준은 늘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이야기에 담긴 육하원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의 동기, 곧 ‘왜?’라는 질문이라는 생각으로 한 가지 요소에 힘을 크게 실은 경우가 있겠습니다. 아니면, 기능적으로 모든 요소를 담고 평소 하고자 한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내고자 한 이야기도 있겠어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번에는 굉장히 제멋대로인 심사가 작용했습니다. 트로피 하나 주면서 너무 까다롭게 군다고 생각하기는 해요. 한편으로 다가올 날에는 모든 이야기가 공모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작성 주체가 인공지능이 될 것인지, 요즘과 같이 사람으로 남을 것인지는 모르지만요.
공모전은 대회와 경쟁의 성격을 가지기도 하지만, 황금도롱뇽 문학상은 유권조라는 독자가 먼저 이야기의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사설이 또 길고도 길었습니다. 여하튼 이번 공모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이렇습니다. ‘200자를 가지고 그 앞과 뒤, 또는 과정을 얼마나 더 상상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어요. 어째 단편은 강렬한 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지만요. 저는 다음을 상상할 수 있는 200자를 원했어요. 200자만 읽고도 사람 가득한 지하철에서 뒷이야기를 홀로 공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답니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별로 조금씩 떠오른 뒷이야기 따위를 남깁니다. 소개하는 순서는 등록된 순서를 따랐습니다.
첫 번째 스레드는 오메르타 작가님이 써 주셨습니다. 공모가 시작된 날짜에 맞추어 11월의 마지막 날이 배경일까 생각했어요. 열두 번째 용사라는 점에서는 매월 한 명씩 용사가 길을 떠났겠거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왜 소녀 기사는 언니를 따라 떠나게 되었을까요? 공간적 배경을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았으나, 흐린 하늘과 창백한 산 그리고 잘게 내리는 눈이 떠오르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언니는 돌아오지 않을 테고 소녀 기사는 위험 가득한 산으로 떠날 거여요. 괴물에게 닿기 전, 언니들이 남긴 흔적을 발견하지 않을까요? 얼어붙은 산을 오르며 지난 추억을 조금씩 주워 괴물을 만난 소녀 기사는 왕자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한편으로는 분노가 치밀 수도 있겠습니다. 괴물과 싸우는 과정에서 소녀 기사는 열한 번째 용사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왕자 대신 언니를 구하며 이야기가 막을 내릴 수도 있겠습니다.
두 번째 스레드는 서계수 작가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아마 첫 스레드가 용사와 왕자님을 다룬 때문일까요? 이후 스레드 가운데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야기가 꽤 많았던 기분이어요. 오스나는 제 뜻과 달리 유일한 희망이 되어 마차를 타고 떠납니다. 이야기의 결말은 오스나가 왕국을 되찾는 순간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가신들과 함께 각지에서 힘을 얻은 오스나는 끝내 유린왕과 싸워 이길 수도 있겠으나, 그가 바란 건 왕국과 왕좌가 아닐 수 있겠습니다. 자신 역시 죽었다는 소문을 내 사라지고, 가신들이 연합 정부를 구성해 새로이 나라를 세우는 이야기를 상상했어요. 후속편이 나온다면, 연합 정부의 가신들이 폭정을 일삼아 세상이 혼란해지는 게 출발이 아닐까요. 그리고 젊은 주인공이 상식과 정의를 내세워 싸우다 위기가 닥치고, 그 순간 나타난 오스나가 주인공의 스승님이 되는 거죠. 즐거운 상상이었습니다.
세 번째 스레드는 일월명 작가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괴물과 주인공이 사이좋게 눈알과 팔을 잃었는데요. 이야기를 보면 주인공이 먼저 괴물을 찾아가 도발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괴물이 포식자가 아니게 되었으니까요. 이왕이면, 주인공이 평화로운 마을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으면 좋겠다 상상했습니다. 눈이 그치질 않는 겨울 산에 고립된 괴물과 주인공이 계속해서 서로를 노리는 거죠. 아마, 이야기가 끝나는 건 초봄이 아닐까요? 주인공은 괴물을 경계하고, 증오하기도 하지만 끝내 괴물과 좋은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눈보라를 피할 수 있는 좁은 굴에 서로 몸을 비집고 체온을 나누기도 하고, 죽일 수 있는 기회를 갖고도 서로를 구하는 과정을 조금씩 겪는 거죠. 그냥 동정인가? 아니면, 사냥꾼의 여유? 혼란스러운 가운데 주인공은 겨울 산 바깥에 두고 온 질문의 답을 얻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슬프고 여운 있는 결말이 그려지기도 해요.
네 번째 스레드는 장아미 작가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헷갈리는 건 늘 마음을 맴도는 법이지요. 그리고 거기에 논리적이지 않은 이유가 섞이는 건 매번 마음이 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레드의 마지막에는 여름이 이어지지 않을까 상상했어요. 홀로 있는 윤을 비추면서요. 환희는 어디로 간 걸까요? 사실 지난 겨울을 마지막으로 환희와 헤어진 걸까요? 어쩌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윤은 홀로 환희와의 기억을 쫓듯이, 추웠던 날을 생각하며 여름 볕 아래를 이리저리 분주하게 다닙니다. 추운데도 꼭 차가운 음료를 마시는 환희의 모습이나 기껏 따뜻하게 입고 나와서는 얇은 옷을 사 갈아입는 모습 따위를요. 조금씩 조금씩 환희와의 기억을 되새기며 분위기는 가라앉고, 윤은 여름을 몰아내려는 듯 냉방을 하는 카페에 들어섭니다. 괜히 겨울을 떠올리는 윤의 손을 누군가 잡네요. 환희일까요?
다섯 번째 스레드는 달총 작가님이 써 주셨습니다. 눈물은 통신달팽이의 사용법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프로게이머 홍구 님도 눈물을 흘렸을까요? 제 얄팍한 상식으로는 실존하는 인물이신 것 같으니 슬쩍 비켜서 갈까요. 여하간 용사 앞에 프로게이머 ○○ 님이 나타난 건 아닙니다. 드라마 시그널과 같이 의사소통만 가능한 상태지요. 그런데 1548년 후에 생기는 직업이라고 하는 걸 보니, 용사가 있는 세상도 우리네 세상과 비슷한 모양입니다. 통신달팽이가 있지만요. 아니면…? 용사님은 프로게이머가 조작하는 게임 속 캐릭터 중에 한 명일 수도 있겠네요. 다만, 조작이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한 명이지요. 조금 전의 교전으로 동료를 잃은 용사님이 눈물을 흘렸나 봅니다. 유일한 조작법으로 통신을 선택한 프로게이머의 조작과 함께 용사님은 영혼의 한타를 떠날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섯 번째 스레드는 누가 쓰신 걸까요? 제 화면에서는 작가님의 프로필이 확인되지 않네요. 여하간 왕은 어쩌자고 전사들을 위기에 빠뜨린 걸까요?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전사들이 왕권에 위협이 된다는 사실이겠어요. 그렇다면 전사들은 왕의 명령을 곧이곧대로 듣는 존재들이 아니겠네요. 어쩌면 왕은 마법사의 지원을 받는 존재가 아닐까요? 화자인 주인공은 전사들의 지지를 받는 왕 후보(굉장히 어색한 표현인데,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네요)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마법사들의 함정 주문이 가득한 곳에 갇혀 동료 전사들을 잃은 거죠. 그러나 당장 복수를 할 수는 없습니다. 왕좌는 야비한 왕에게 넘어갔고, 왕성 곳곳에는 적의를 품은 반란을 막기 위한 주문들이 가득하죠. 우리 주인공은 칼을 갈다 생각합니다.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고. 그렇게 주인공은 마법사가 되기로 합니다. 그들의 방식으로,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그들 사이에 숨어들어서 누구보다도 야비하게 왕좌를 빼앗겠다고요.
일곱 번째 스레드는 냉동쌀 작가님이 써 주셨습니다. 호기심이 많이 가는 이야기였어요. 노을을 닮은, 또는 그 안에서 톡톡 튀는 색이 다양하게 등장했는데요. 이건 이야기의 시작일까요? 아니면 끝? 어쨌든 이 다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감정의 변화가 컸으면 좋겠어요. 큰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피멍에 움츠러들었던 눈동자가 세상을 크게 담아내고 거기 모든 걸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 슬쩍 흐를 수도 있겠어요. 음, 그래요. 이건 시작이 좋겠습니다. 이제 주인공은 그의 손을 잡고 끌어 걷겠어요. 다음 장면은 고기집입니다.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서로의 상처와 그 상처를 덧나게 하는 소금 뿌리는 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고기를 노릇노릇 구워 먹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고기를 입에 대지 않죠. 주인공은 답답한 마음이 동정심을 누르고 오릅니다. 언제까지 멍하니 있을 거냐고. 그리고 남자가 대답하죠. 사실 자기는 비건이라고.
여덟 번째 스레드는 샘물 작가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이야기는 곧장 이유로 이어지겠죠? 그게 좋겠어요. 일반적인 흐름이라면, 죽임을 당한 ‘그들’이 주인공에게 상당히 중요한 존재일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다른 상상을 하고 싶어요. 주인공은 ‘너’와 동일인입니다. 평행 우주 너머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는 식상하지만, 언제나 상상하기 재미난 소재지요. 그리고 ‘그들’은 주인공의 연인이지만, ‘너’에게는 연인이 아닌 사람이지요. 벌써 머리가 복잡하네요. 여하간 차원과 우주를 넘나들며, 살인을 일삼는 ‘너’는 동일한 자신에게 붙잡힙니다. ‘너’는 자신을 죽이면 주인공도 사라질 것이라 위협하지만, 주인공은 개의치 않습니다. 그저 왜 자신이 타살을 통한 자살을 이루려 하는지 설명할 뿐이죠. 이렇게 상상했더니 정작 이유는 별로 재미나게 풀어낼 자신이 없네요.
아홉 번째 스레드는 liontokki 작가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폭발 주문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다르겠어요. 우리가 마법을 떠올릴 때의 주문이라면, 새는 일종의 마법 도구가 되겠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독립 과정에 얽힌 토종 마법사가 되지 않을까요? 그게 조금 더 재미가 있겠지만, 독립운동과 마법을 함께 상상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야기를 빠르게 돌려 박물관에 남은 새 장난감의 조각을 비추며 이야기가 이어져도 좋겠어요. 독립 운동의 흔적으로 남기는 했으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으로 등장하는 거지요. 주인공은 수십 년 전, 새 장난감이 어찌 만들어졌고 쓰였는지 추적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부품을 당시 일본인을 통해 구하는 장면도 담을 수 있겠어요. 어릴 적 제 새를 보살펴준 조선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면서요. 그렇지만, 이야기의 끝에는 조금 씁쓸한 맛이 있을 것 같아요.
열 번째 스레드는 liontokki 작가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메시지를 보면 멍멍이의 이야기일까 생각했는데요. 사실 안드로이드여도 좋겠다 생각합니다. 기능에 이상이 생겨 사람과 비슷하게 구는 안드로이드와 주인이 함께 여행을 다니는 이야기로 풀어내도 좋겠어요. 무언가 요구하는 주인공에게 안드로이드가 도움을 주면서 “내가 반려견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거야? 진작 말하지, 멍멍.” 이런 대사를 하는 상황도 상상했어요. 함께 위기에 처하는 순간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아, 주인공이 처음 안드로이드를 만나는 장면을 스레드와 비슷하게 담아도 즐겁겠어요. 쓰레기장이나 오염된 숲을 기웃거리던 주인공은 안드로이드를 장난감 삼아 괴롭히는 불량배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안드로이드를 구하다 부상을 입죠. 자신을 걱정하는 안드로이드에게 주인공은 얘기합니다. 네 생각만큼은 아프지도 않았으니까 괜히 동동거리지 말라고. 그러나 안드로이드는 동동거릴 발이 없다고 받아치고, 이제 둘은 안드로이드에게 팔다리를 달아주고 수리하는 여행을 떠납니다. 어쩌면 주인공은 삶을 포기할 생각으로 오염된 숲에 홀로 들어왔을 수 있겠어요. 스레드는 마지막 직전이 되겠네요.
열한 번째 스레드는 liontokki 작가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주인공이 대학생인 시점에서 출발하는 게 좋겠다 상상했어요. ‘너’는 워낙에 명석해서 주인공과 달리 이미 대학 교수인 상태로 등장하는 상상도 했습니다만. 뒤로 이어질 이야기를 떠올리기가 어려워서 그만 두기로 했어요. 그보다는 주인공이 ‘너’를 두고서 그저 자신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려도 지지해주는 사람. 한편으로는 걱정하지 않고 대해도 되는 사람. 왜 나를 두고 쩔쩔 매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그런 매력이 있는가보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들. 그렇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러 주인공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너’가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요. 무언가 비밀이 있음을 알게 되고 주인공은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발견합니다. 또한, 그 죽음 직전에 세상의 시계가 되돌아 자신이 전학 오던 날로 돌아가고 만다는 것도요.
열두 번째 스레드는 rensi 작가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노인의 몸이 우물에 푹 잠기면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상상했어요. 떠나온 고향의 모습과 그리웠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노인은 미소를 짓지만 숨이 조금씩 식어갑니다. 그러나 기지개를 켜던 황금도롱뇽이 노인을 끌어올립니다. 노인은 다시금 차가운 사막에 놓이고 절망에 잠기겠지요. 황금도롱뇽은 노인이 고향까지 돌아가는 여정의 동료가 됩니다. 왜 자신을 도와주는 것인지 노인은 이해할 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발이 잠기는 사막의 늪과 목숨과 재물을 노리고 칼을 휘두는 도적 떼들에게서 황금도롱뇽은 노인을 지켜줍니다. 그러다 고향에 이르기 직전에 황금도롱뇽이 모습을 감추죠. 노인은 지금껏 자신이 보았던 황금도롱뇽이 허상이었던 걸까 생각합니다. 어떤 영화가 떠오르는데요.
열세 번째 스레드는 은진아 작가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연인은 아마 소방관이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인공과의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구조 작업을 하다 목숨을 잃었을까요. 조금 무거운 이야기가 되겠지만, 주인공이 누군가의 희망과 격려가 되는 이야기를 상상했어요. 주인공이 같은 소방관인 경우도 상상했어요. 연인을 잃은 뒤로 현장 출동에 어려움을 겪는 과정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걸 극복하는 계기는 무엇이 될까요? 새로운 연인이나 인명을 구조하는 보람도 가능하겠으나, 보다 다른 과정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방화범을 추격하는 등 긴장감이 가득한 순간들은 더 얹고 싶지 않네요. 뜬금 없이 네일 아트에 도전하며 홀로 끼우고 있던 반지를 빼는 장면을 담을 수 있겠어요. 마지막 장면은 현장에서의 진화를 마친 주인공이 길에 주저앉아 손가락을 내려다보는 장면을 상상했어요. 동료나 상급자가 왜 이리 멍하게 있느냐고 물으면, 손톱이 다 망가져서 네일 아트를 받아야겠다는 대답을 하면서요.
열네 번째 스레드는 향초인형 작가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연재작품 성간도둑에 비추어 읽을 수 있는 스레드였는데요. 어쩌면 성간도둑에 답이나 뒤이은 이야기 숨어있지 않을까 이리저리 살펴보게끔 하는 이야기였어요. 보아하니 슈즙은 시간이 멈추는 형벌의 원인이 되는 모양입니다. 시간정지 레일 형은 짐승만도 못한 사람만이 받는 벌인 것 같지만, 멈추는 것은 외부에서 관측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만 그럴 지도 모르겠어요. 지흐의 입장에서는 눈을 깜빡한 사이에 세월이 흘렀고 주위에는 마찬가지로 시간정지 레일에 올랐다가 내린 사람들이 가득하죠. 그들은 모두 혼란스럽습니다. 자신들이 용서를 받은 것일까? 생각을 하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주변은 자신이 알던 모습과는 다를 겁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시간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가득한 상황에서 지흐가 첫 발을 내딛는 걸 상상해 봅니다.
열다섯 번째 스레드는 liontokki 작가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유독 6이 자주 등장하는 건 제6회 공모전인 때문일까요? 생일이 저물던 날, 주인공은 받아들인 마음처럼 죽음에 안겼을까요? 아니면 5를 6으로 바꾸기 위해 마지막으로 죽을 위기를 넘길까요?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6번째 사랑을 만나는 일이겠습니다. 하필이면 7월 7일 오전 7시 7분에 태어난 상대방을 만나는 거여요. 심지어 이 사람은 아직 사랑을 3번 밖에 하지 않았네요. 주인공은 그 사람의 마지막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에게 사랑을 느끼고 말았죠. 이제 주인공의 목표가 정해졌습니다. 이제는 피하지 못할 7번째 죽음의 위기가 오기 전, 저 사람에게 3번의 사랑 상대를 전해주자. 그리고 마지막 차례가 남았을 때에 자신이 등장하는 거죠. 엉뚱하지만, 어쩐지 처절한 계획을 펼치는 상상을 해 봅니다.
열여섯 번째 스레드는 태윤 작가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괄호와 나이, 성별을 표시하는 짧은 글은 분위기에 맞지 않은 상황을 묘사하며 웃음을 줄 때에 쓰이곤 하는 것 같아요. 매일 아기 고양이 인형으로 장식이 된 드레스를 입고 출근하는 프로레슬러 A씨(42세, 남)의 이야기처럼요. 그렇지만, 이번 이야기는 라면 봉지처럼 파먹이며 또 한 번 분위기를 돌려내는 것 같습니다. 이제 유현지가 곳곳에서 다양한 사람을 파먹으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걸까 상상합니다. 무서운 이야기에는 재주가 없어요. 그렇지만, 상상하자면 함 규덕(34세, 남) 씨가 옆구리를 파먹히고도 죽지 않는 상태이길 상상해 봅니다. 당황한 유현지는 자신의 이에 문제가 있을까 걱정하지만, 함규덕 씨는 아무렇지 않게 옆구리를 회복시키며 라면에 대해 투덜거립니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동족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덤비는 게 철칙이라며 오히려 유현지에게 설교를 늘어놓죠. 어라, 결국 무서운 이야기가 되지 못했군요.
열일곱 번째 스레드는 이진설 작가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소녀였던 어머니는 과연 내일 ‘죽는다’는 가능성을 계속 믿을까요? 저는 이 죽음의 대상인지 어머니인지 아이인지 얼마간 고민했는데요. 감정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걸 생각하면 아이의 죽음을 가능성으로 두는 상상이 먼저 떠오르네요. 그렇지만, 이는 초자연적인 원인을 두지 않을 수 있겠어요. 주인공이 아이를 낳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운명에 놓였을 수도 있지요. 운명의 날, 아이를 포에 감싸 제단을 오르는 주인공을 상상합니다. 사람들은 가뭄과 벼락과 여러 재해가 끝나기를 바라며 아이에게서 피가 흐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눈 앞에 놓인 현상을 마주할 용기를 갖고 제단을 끝에까지 오릅니다. 그리고 칼날이 번뜩일 때에, 한 번도 진리를 찾지 않던 어머니에게 악마가 나타나 속삭입니다. 진리를 알려주겠다고 말이어요.
열여덟 번째 스레드는 마윤령 작가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제 편견이지만요. 화자는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지 않을까요? 상대방은 사랑을 애써 피하는 사람이고요. 너무 식상할까요? 그렇지만, 식상한 상상일수록 더욱 즐겁게 다가올 때가 있곤 합니다. 화자는 불쌍한 상대방에게 한껏 말을 내뱉고서 발을 돌립니다. 잠시 멍하니 있던 상대방은 곧 뒤를 쫓아요. 그러면서 상상하기로 배경은 유기견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곳을 떠올렸어요. 화자는 솔직한 마음으로 왔지만, 상대방은 회사의 이미지 따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온 상황이죠. 역시나 편견이지만, 역시 상대방은 돈이 많을 것 같아요. 여하간 상대방은 사실 아끼던 강아지가 있었지만, 사고로 잃은 뒤에는 마음을 주지 않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이제 화자와 부딪치는 과정 속에서 상대방은 사랑을 다시금 느끼게 되죠. 중간에 삼각관계를 유발하는 라이벌은 왠지 다리가 긴 강아지를 데리고 있을 것 같아요.
열아홉 번째 스레드는 샘물 작가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새하얗게 입고 금실로 장식을 한 주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네요. 성수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마을을 지키던 물줄기를 교회가 빼앗아 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병에 담겨 신전이나 사당 따위에 보관되던 성수병을 교회에서 가져간 바람에 마을을 지키던 신적 존재가 떠나버린 것일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주교는 부를 위해 그 성수를 빼앗았고요. 주인공은 결국 성수를 빼앗을까요? 그러기에는 이야기를 좀 더 길게 상상하고 싶어요. 마지막 순간에 주인공은 주교와 대치하지만, 주교는 성수를 한 손에 들고 당장 병을 깰 것처럼 굽니다. 그에게서 성수를 되착기 위한 실랑이 끝에 주인공이 성수를 뒤집어 씁니다. 교회와 싸움을 하던 주인공은 졸지에 성수의 힘을 얻어 일종의 신앙의 대상이 되고 말지요. 강제로 붙들려 왕성으로 끌려가는 주인공과 그를 걱정하는 마을 사람들. 과연, 주인공은 고향으로 돌아와 가뭄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까요?
스무 번째 스레드는 미치르 작가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첫 문장이 너무나 마음에 닿았어요. 까마귀는 흔히 보이는 까마귀 가운데 한 마리일까요? 본래 사람이었거나, 유달리 특별한 능력을 가진 까마귀를 상상하기도 했지만요. 그보다는 역시 평범한 까마귀 한 마리인 것이 좋겠어요. 사람들이 죽음에 끌려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쫓아가는 까마귀의 시선을 상상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을 향하는 죽음의 그림자나 전염병의 기운 같은 것들을 그려내면서요. 위기를 알리기 위해 울부짖는 까마귀의 울음은 죽음을 알리는 불길한 것이 되고, 울음을 멈추고 그저 죽음이 다가오지 않기를. 사람들이 평온하게 내일을 맞기를 기다리면서요.
감사하게도 참여해 주신 스무 편을 읽고 조금이나마 생각을 덧대 보았는데요. 결국 제 상상의 방향은 비슷비슷한가 싶어요. 모두 즐거운 상상을 남기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트로피는 한 분에게 드려야 하니까요. 제멋대로인 기준대로 한 편을 골랐습니다. 스레드인 만큼 제목이 없어 첫 문장 일부를 제목처럼 삼았는데요.
「뭐, 어쨌든 그렇게 됐다.」 를 쓰신 liontokki 작가님께 제6회 황금도롱뇽 문학상을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소중한 작품을 남겨주심에 감사드리며, 멋대로 멍멍이를 안드로이드로 바꾸어 그린 제 상상에 송구한 말씀을 드려요.
liontokki 작가님께서는 tawring 이라는 작가계정을 운영 중이시므로 해당 작가계정에 후원을 통해 트로피 전달에 필요한 정보를 요청드리겠습니다. 정보는 배송 주소, 연락처, 수령인 성명이며 이는 오직 트로피 전달을 위해서만 사용됨을 알려드립니다. 트로피에 기재되는 이름을 liontokki 가 되며, 허락해 주신다면 화금도롱뇽 스튜디오 페이지에 수상작을 싣고자 합니다.
이번 작은 행사에 참여해주신 모든 회원 분들께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일월명 님께서 개최하신 소일장 [Crimson Christmas] 가 오늘부터 31일까지 진행된다고 하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 모두 건강한 하루하루 이어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