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한켠이 죽다니.

분류: 수다, 글쓴이: 아이라비, 17년 5월, 댓글12, 읽음: 126

그는 잠시 모니터 속 뉴스 기사에 초점을 맞춘 채 몸을 들썩였다. 앉지도 못하고 일어서지도 못한 엉거주춤한 자세임에도 시선은 화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강남 신사동에서 변사체 발견. 피해자는 모 사이트에서 소설을 올리던 소설가이며, 최근 올린 소설을 단서로 수사중’

그냥 지나칠 뉴스가 아니었다. 사건 정황에 대해선 짧은 기술임에도 그는 피해자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파스타집에서 도로에게 제안하던 내용을 도청한 듯, 너무나 상세히 담아 소설인 척 공개했던 바로 그 작가임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그를 직접 응징하는 것은 너무 빤한 수법이 아닌가? 그렇다. 이것은 함정이 분명했다. 자신을 함정으로 몰아넣기 위한 누군가의 음모.

그는 britg.kr을 타이핑했다. 긴장한 탓에 ‘ㅠ걋ㅎ.ㅏㄱ’을 눌렀지만 구글은 당연하다는 듯 브릿G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자유게시판에 한켠 대신 새로운 작가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마치 그에게 수사 현장을 중계하듯 보여주곤, 그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웃는 것 같았다. 관리자 페이지로 가 보았지만, 작성자의 행방은 찾을 수가 없었다. 입이 바짝 말라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1회용 종이컵에 정수기 물을 받아 벌컥벌컥 마시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살인청부니 뭐니 이런 걸 대놓고 드러내는 걸로 봐선, 브릿G에 악의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간 청부업자로 등록한 인원이 1000명에 육박하니, 그 중에서 혹은 그들이 행한 임무로 인한 보복을 꿈꾸는 이를 찾기란 오탈자 찾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오탈자와 같다. ‘책의 마감 중 오탈자가 하나라도 발견되면 그건 바퀴벌레처럼 어딘가 숨어 있는 수십 수백의 오탈자가 있다는 거야’라는 지론처럼 브릿G에 악의를 품은 이는 하나가 아닐 것이다. 수십, 수백, 어쩌면 수천? 어떤 방식으로든 대책을 세워야 한다. 급히 구글 메일로 들어가 팀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자 메일 버튼을 누르는 순간, 갑자기 눈이 핑 돌아갔다. 극심한 복통과 함께 숨이 끊어질 듯 호흡이 가빠왔다. 자기도 모르게 1회용 종이컵을 구기며 신음을 뱉어냈다. 그의 눈에는 백색 종이컵 끝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은 글자가 보였다.

‘환경을 위해 머그컵을 애용하지 그랬나?’

그는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전에, 의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아이라비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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