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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브릿g를 건너지 마오 (dorothy님을 이어서..)

분류: 수다, 글쓴이: 한켠, 17년 5월, 댓글25, 읽음: 208

구글에서 브릿g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가 청부살인

dorothy님이 브릿g에서 <아메리칸 사이코>를 받으셨다

위 두 게시글(댓글 포함)을 읽고 아래 글을 읽으시면 더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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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씨, 나는 사실 당신이 흥미있어 할만한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속삭이듯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도로는 진저리쳤다. 그러자 남자는 만면했던 웃음을 한순간 거두고는, 교도관이 있는 쪽을 슥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다시금 도로에게 말을 건네는 남자.

“나는 당신이 하려고 했던 일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이에요.”

 

도로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하려고 했던 일? 그게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인데? 이렇게 교도소에 처박힌 마당에..”

“아, 그렇군요. 그럼 그것도 해결해 드려야겠군요.”

 

며칠 후 황사가 걷히고 유난히 하늘이 파랗던 날, 도로와 아이라비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 미아 까사’에서 파스타를 먹고 있었다. 도로는 어린애처럼 포크로 새빨간 토마토를 짓이기며 먹지도 않을 파스타 면발을 찍어댔다.

“대체 어떻게 손을 쓴 거지?”

“진범이 잡혔으니 풀려난 거죠.”

“진범은 나였는데?”

“진범을 만들었죠. 당신의 약혼녀 A가 사랑했던 남자가 A를 습격한 걸로.”

“그럼 그 새끼가 지금 감옥에 있는 건가?”

“아뇨.”

아이라비는 태평하게 알리오올리오를 후루룩 소리내며 흡입했다.

“죽었습니다.”

기름이 번들대는 입술을 냅킨으로 슥 닦아내며 아이라비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필리핀으로 골프여행을 빙자한 성매매를 하러 가서 필리핀 마약조직에 납치되었다가, 요새 필리핀 대통령이 마약범은 사살해도 된다고 한 거 뉴스에서 보셨죠? 마약과의 전쟁 중에 마약상과 함께 사살된 걸로 처리되었습니다.”

도로는 자기도 모르게 포크질을 멈췄다. 토마토 소스가 피처럼 빨갰다. 있지도 않았던 식욕이 뚝 떨어졌다. 교도소에서 나온 후 아이라비의 명함에 적혀 있던 ‘브릿G’를 구글에서 검색했을 때 연관 검색어에 ‘청부살인’ ‘필리핀 청부살인’이 뜨는 걸 보면서도 구글의 오류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거요? 국내 포털은 고객센터에 신고하니까 바로 수정해 주는데, 구글은 해외 기업이라…구글 번역기 돌려가며 영어로 본사에 항의해도 안 고쳐 주더라고요.”

“그 새끼는 골프 안 치는데…”

“네, 그런데 말입니다.”

아이라비가 김상중 성대모사를 하며 속삭였다.

“헬스장 탈의실에 어떤 남자가 비행기 티켓을 쥐여주면서 지금 바로 헬스장 밖에 주차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해서 필리핀에 골프여행 가자고 한다면, 그러면서 CCTV없는 탈의실에서 자기가 골프채는 빌려주겠다면서 피와 머리카락이 묻은 골프채를 보여준다면, 그리고 탈의실에 있던 몸좋은 남자들이 서서히 다가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이라비가 허공에 풀스윙을 했다. 도로는 자기도 모르게 뒷머리를 만졌다.

“하지만 골프도 안 치는 사람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사라지면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고, 필리핀에서 죽으면 외교문제가 될 수도..”

“추리소설의 허점을 잘 찾아내시겠군요. 그렇지만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성매매를 하려고 했던 걸로 처리되었다고요. 가족들이 필사적으로 덮으려고 할 수 밖에 없죠. 드러내고 시끄럽게 굴고 밝혀내려고 할 때마다 고인이 욕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 새끼에게 어울리는 죽음이라고 도로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저한테 이걸 말씀하시는 이유가 뭐죠? 저한테 뭘 바라시는 건데요?”

“이제 좀 존댓말 쓰시네요?”

아이라비가 포크로 피클을 푹 찔렀다.

“브릿G가 뭐 하는 사이트인지는 보셨죠?”

“그냥 웹소설 사이트 아닙니까?”

“다른 웹소설 사이트에 비해 특이한 거 못 느끼셨습니까?”

“추리, 호러, 스릴러가 많고 수준이 높다는 거요…?”

“호러, 스릴러…사람 죽이는 소설이 좀 많이 올라오죠? 그런 게 인기가 많고. 왜 그럴까요? 그게 그냥 소설일 거 같아요?”

어느새부턴가 도로의 포크는 더 이상 파스타를 짓이기지 않고 얌전해져 있었다.

“브릿G는 청부살인자들이 살인 방법을 공유하는 곳이죠. 자기 살인 방법을 올려서 자랑도 하고 남의 수법을 배우기도 하고. 일종의 집단지성이랄까요. 물론 저희는 킬러들이 로맨스나 판타지를 써도 너그럽게 봐 드립니다. 살인이라는 게,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일이거든요. 다른 데로 승화시켜야 하니까. 호러랑 스릴러 말고 다른 글도 좀 있어야 평범한 웹소설 사이트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에게 바라시는 게…?”

“리뷰를 좀 써 주시죠. 사례는 섭섭치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사람죽이는 분들도 다른 사람 인정에 목마르거든요. 브릿G에 올라오는 소설들 재미나게 읽으시고 좋았다고 리뷰 달아주는 분들도 계셔야 저희 킬러님들도 신이 나서 더 자주, 퀄리티 있는 글 공유하고 그럴 거 아닙니까. 더 기발하고, 개연성 있고 그런 수법들이 활발하게 공유되어야죠. 물론 좀 아니다, 싶은 글에는 가차없이 이런 게 별로라고 리뷰에 남겨주셔도 됩니다. 그래야 허술했던 점을 고치고, 자기개발도 하죠. 물론 그런 걸로 죽이진 않으니까 걱정은 마시고요.”

그날부터 도로는 브릿G에 올라오는 거의 모든 글들을 빠짐없이 읽었다. 브릿G에 올라오는 모든 살인 방법들이 자기 일처럼 느껴져서 리뷰를 열심히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도로는 어느새 브릿G 리뷰왕이 되어 있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리뷰왕이 받을 상품으로 책을 고르라고 했을 때 도로는 자기도 모르게 <아메리칸 사이코>를 선택했다. 내용도 모르고 ‘사이코’라는 제목에 감정이입해서 찍었다.

“아메리칸 사이코를 선택하시다니… 담당 편집자가 화장실 달려가서 토했던… 심지어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미성년자 구독 금지’도 아니고 무려 ‘출판 금지’ 처분까지 받았다가 간신히 복권되기도 했지요. 도대체 어떤 끔찍한 걸 쓰시려고…”

아이라비가 했던 말을 도로는 농담으로 들었을 것이다. 책을 중반쯤 읽었을 때 도로도 욕지기를 느꼈다. 그 책을 받았던 다른 리뷰어들처럼 도로도 그저 책 내용이 구역질 나서, 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 책은 그런 내용이었으니까. 눈 앞이 흐려지기 시작했을 때도 ‘요새 계속 브릿G에서 중단편만 보다 보니 긴 글을 못 읽겠네’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몸이 굳어가면서 도로는 추리해 냈을 것이다. 페이지마다 독성 물질을 발라놨구나…역시 기발한 방법이야…이런 수법은 브릿G에서 읽은 적이 없는데…역시 브릿G의 비밀을 알아선 안 되는 거였어…그러고 보니 아이라비의 명함에 있던 고양이 눈이 빛났던 건…금박이었나…

 

아이라비는 실험실로 돌아가 장갑을 끼며 콧노래를 불렀다.

“다음 미션 완수 이벤트 경품이 공기청정기인 이유를…아무도 모르겠지?”

한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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