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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지망생이 그들을 상대하는 법

분류: 수다, 글쓴이: 조나단, 21년 4월, 댓글3, 읽음: 996

안녕하세요.

아래는 SNS에 쓴 글인데 공유해 봅니다. 브릿G에는 소설 쓰는 분들만 계시니 해당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여러분 중 극본이나 시나리오 쓰시는 분이 계시다는 걸 알고 있고. 주변에 그런 분들이 계실 수도 있으니… 가볍게 읽으시고, 술자리에서 안주로 씹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smile:

 

<작가지망생이 그들을 상대하는 법>

엊그제 후배 작가의 작품을 모니터해주다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친구가 어떤 피디와 일을 했는데, 유명 플랫폼에 연결시켜 주겠다며 6개월 동안 숏폼 드라마를 쓰게 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온갖 참견(내용은 이렇게 바꾸고, 이 배역은 이렇게 하고) 하며 완성했지만, 정작 플랫폼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그러자 피디가 대안이나 계획도 없이 관계를 끊어버렸다는 이야기. 일하는 동안 금전 보상이 없었던 것은 당연하고… 내게는 너무 익숙한 클리셰 같은 이야기였다.

나는 “이 바닥은 전쟁터다. 그 정도로 힘들어 한다면 네 친구도 거기까지인 거다.” 라고 조언했다.

모니터는 잘 끝났지만 왠지 찝찝했다. 뒤늦게 이유를 깨달았다… 거기까지라고? 네까짓 게 뭔데 그 친구를 그딴 식으로 판단해 버린 거지? 나는 다른 식으로 위로가 될 말을 했어야 했다.

계속되는 찝찝함. 아직도 안 변했다고? 내가 십수 년 전에 당한 일들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고? 한류니 K드라마니 다들 떠드는 지금도…?

하긴, 그런 자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남을 이용하는 자들. 어느 때나 어느 곳에나 있기 마련이다.

해서 내가 깨우친 그런 자들을 감별(?)하는 ‘상식적인’ 방법을 공유하려 한다. 아래는 작가지망생들에게 쓰는 글이니, 근처에 작가지망생들이 있으신 분들은 공유.

 

#작가지망생이_제작자_기획자_PD_감독_구분하는법 

소위 망생이들에게.

당신이 준비되어 있다면, 기회를 얻어야 한다. 제작자나 기획자나 PD나 감독(이하 그들)이 그 기회다. 만나라. 당신의 작품을 브리핑하라.

그러나 주의할 게 있다. 그들이 당신의 기회인 것은 맞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는 당신을 이용해 재능을 빼앗으려는 자도 있다. 그를 구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심리적, 육체적)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믿어야 한다. 내가 그 지옥을 몇 번이나 경험한 자니까. 

모든 첫 만남은 탐색전이다. 

어느 날 그들이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와 만나자고 한다면, 그것은 탐색을 위한 것이다. 그들이 당신의 작품을 읽었건, 소문을 들었건… 모두 당신이란 작가를 탐색하기 위함이라는 걸 ‘먼저’ 인식해야 한다. 그건 비지니스의 당연한 과정이다.

그러나 대개의 당신들은 그 ‘탐색’을 못한다. 제작자, PD, 감독이라는 명함에 혹해 그가 하자는대로 하면 기회가 올 것 같고, 그것을 잡으려고 매달리기 마련이다… 그럴 때는 두 가지를 확인하면 된다.

 

1. 

그들은 자신의 이력을(내가 어떤 감독과 일했고, 천만 영화에 참여했고) 늘어놓을 것이고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을 당신에게 확신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면서 함께 일해 보자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하는 수많은 말들 중에 이 말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가 계약 이야기를 꺼내는가?

제대로 된 그들이라면 계약 이야기를 먼저 한다. 지금은 콘텐츠가 산업이고 비즈니스니까. 그건 당연하고 상식적인 수순이다. 

만약 그가 온갖 화려한 말들을 쏟아내면서도 ‘정작’ 계약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때부터 의심의 안테나를 뽑아내야 한다. 길게길게.

 

2. 

물론, 그가 계약 이야기를 꺼내지 못할 상황일 수도 있다. 이제 막 독립한 제작자일 수 있고, 다른 백만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 계약보다 관계에 의존하니까.

그럴 때는 순진하게 웃는 얼굴로 물어보라.

“프로젝트가 멋지네요… 그런데 계약은 어떻게 되나요?”

그 질문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다.

제대로 된 그들이라면 사정을 이야기할 것이다. 당장은 힘들지만 나중의 계획을 설명할 것이고 양해를 구할 것이다.

당신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이 분과 일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같이 일해도 된다. 그건 일종의, 서로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신을 이용하려는 그들은 대개, 십중팔구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와아, 김작가 실망인데? 이건 당신한테 기회야. 이 기회를 놓칠 거야?” 또는 “박작가 그렇게 안 봤는데 돈만 밝히는 사람이었네? 날 못 믿는 거야 지금?” 식이다. 그들은 당신이 쓰는 작품의 병풍 캐릭터처럼 전형적이다.

그럴 때는, 아까처럼 순진하게 웃는 얼굴로 말하라.

“아, 그렇군요… 그럼 이만 조까세요.”

안다. 당신은 그 말을 못할 거다. 그건 그들에게 당해 봤던 이들이나 할 수 있는 반응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거절하고 돌아오라. 그리고 조용히 동료들에 그의 이름을 공유하라.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그러면 된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들을 구분해 내고, 제대로된 그들이 아니면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다. 처음 잘못된 관계를 맺으면 꽤 끈질기게 이어지더라.

당신은 작품을 트레이닝하듯 자신의 정체성도 트레이닝해야 한다. 스스로 중심을 잡고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작품이나 사람이나 똑같다. 이상.

조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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