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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곳 사이에는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분류: 수다, 글쓴이: 천가을, 17년 4월, 댓글13, 읽음: 129

“추천작”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것은 독자/편집자가 고른, 다른 누군가를 위한 소설입니다. 그러니까 “독자를 위한 소설”입니다. 당연하게 들리지만, 그래서일까, 더 괴롭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까지 “독자를 위한” 소설을 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 “자신을 위한” 소설이었어요. 제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저 혼자서 만족하면 끝났어요. 누군가가 읽고 싶어하는, 읽었으면 하는 소설, 그런 소설을 쓴 기억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남을 위한” 소설, 그것은 어떻게 써야하는 건가요.

 

언젠가 문학 동아리에서 합평회를 하면서 선배가 제 글을 읽고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좋은 작가의 글엔 좋은 철학이 깃든다, 다음 번엔 네 자신의 철학을 넣은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부끄러워서 죽을 뻔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아무 생각 없이 글 써왔다는 것을 들켰으니까요. 물론 선배님은 친절하게 말씀하셨지만, 분명 들통 난 것입니다.

이 세상을 두 발로 딛고 19년이 조금 안 되게 흘렀습니다. 보고 듣고 배울 게 많은 대학생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어른으로 성장하는 시기입니다. 더 이상 누구에게 기대기만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제 두 발로 스스로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전 지난 19년동안 제가 무엇을 배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항상 부모님 말을 잘 듣는 어린이었고 선생님에게 주목 받는 모범생이었습니다. 나름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현재도 나름 좋은 대학교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제 인생은 완만한 곡선이었고 이렇다할 인생의 전환점이나 소중한 경험 따위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제 가치관은 여전히 물렁물렁한 떡이고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모양이 푹 변합니다. 주변에서 줏어들은 것이 제가 배운 전부입니다.

그래서 제 소설에는 제 철학이 없습니다. 어디선가 본듯한 이야기, 흔해빠진 메세지, 의미 없는 기교 뿐입니다. 꽃에 비유하면 향기 없는 플라스틱 조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소설에 제 자신을 넣습니다. 제가 사람들의 시선을 이기지 못했던 이야기, 제가 소설을 쓰다가 강박증에 걸릴 뻔한 이야기를 넣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나는 이런 일을 겪고 있어”일 뿐이지 그 안에는 어떠한 메세지도 없었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저 자신을 위한 소설입니다. 독자를 위한 소설은 제 작품 중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시 선배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좋은 작가의 글엔 좋은 철학이 깃든다.” 좋은 작가와 저 사이에는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아주 커다란 강이.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절대 건너갈 수 없는 커다란 강 앞에서 저는 망설입니다. “독자를 위한” 소설, 좋은 철학을 독자에게 전하는 소설, 그것을 나는 쓸 수 있을까. 한때 저기를 건널 수 있다, 아니 이미 건넜다고 착각하던 적도 있습니다만, 아니 어쩌면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걸지도 모릅니다.

줄곧 나를 위해 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만족에 그쳐도 되는 걸까, 불안해요. 뒤쳐지는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하면 열등감이겠죠. 질투심이고. 저와 그곳 사이의 지울 수 없는 엄청난 갭을 부정하는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네요. 결국 저는 저를 위한 소설 밖에 안 쓰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추천작”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저는 언제쯤 “추천작”을 쓸 수 있을까, 하고.

갈 길은 아직 멀고, 강은 여전히 깊습니다.

천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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