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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관의 왕이 이르니’ 감상

분류: 책, 글쓴이: 스트렐카, 20년 5월, 읽음: 187

*제목이 <>표를 인식하지 못하네요. 따옴표로 바꿔둡니다.

장문의 감상을 썼는데 올릴 곳이 없어 이곳에 남깁니다. 감상 본문은 반말로 작성되었습니다.

 

<백관의 왕이 이르니>는 소설 프로젝트 그룹 ‘미씽아카이브’의 프로젝트 ‘drag_on’에 포함된 단편 소설이다. 다음은 프로젝트 크라우드 펀딩 당시의 소개문이다.

“미친 왕을 몰아내려 궁으로 향하는 왕자의 앞에 왕실의 진묘수, 순백의 드래곤 라디로비엔이 나타난다. 오래된 맹약에 따라 율법에 묶인 라디로비엔을 막을 수 있는 건 왕의 혈통도, 정통성도, 군대도 아니다. 이 땅에 하나 남은 유일한 율법학자 수요가 내놓는 율법 해석이다. 백관의 왕과 라디로비엔의 역사를 모두 알고 있는 율법학자 수요는 올바른 답을 찾아내기 위해 내면으로 지나간 시간을 떠올린다. 언어와 개념을 논하는 에픽 판타지.”

이 소개문을 보고 많은 이들이 이영도 작가의 판타지 소설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라디로비엔’이라는 이름은 <드래곤 라자>의 세계관에서 드래곤들이 갖는 이름과 비슷하며, ‘율법 해석’과 ‘언어와 개념’에 대한 부분은 동 세계관의 ‘어느 실험실의 풍경’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과연 본문은 어떨까? 이 소설에는 인용하고 싶은 문장이나 다른 독자에게 꼭 물어보고 동의를 구하고 싶은 지점이 굉장히 많지만, 접근이 쉬운 지면에 공개된 소설이 아니므로 소설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으려 한다. 대신 가정 하나로 시작하겠다.

어떤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고 하자.

욕망은 보통 추악하게 그려진다. 그러니까 아름답게 꾸며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많은 이들이 응원할 수 있도록.

욕망의 크기는 당연히 커다래야 할 것이다. 자그맣다면 달성하기 쉽고, 달성하고 나서도 시시할 테니까.

좋다. 아름답고 커다란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욕망의 크기를 드러내는 방법이란 결국 ‘선택’이다. 다른 걸 선택하지 않고 오직 그것을 선택함으로써 ‘보세요, 이 마음은 다른 것을 저버릴 정도로 커다랗답니다’ 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문제가 생긴다. 욕망의 주체자로 하여금 무엇을 저버리게 할 것인가? 누구나 쉽게 포기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 단순히 눈을 질끔 감는 것만으로 넘어갈 만한 대상도 탐탁지 않다. 그렇다고 추상적인 거대함을 논한다면 일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테다.

그뿐만이 아니다. 왜 바라는가? 그것을 공감하게 만들어야 한다.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아니면 인정에 대한 열망? 혹은 태생적으로 짊어지는 생리적 욕구?

그것들에 대답을 내놓는다고 해도, 아직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남았다. 대체 ‘무엇’을 욕망하는가? 그것이 어떤 것이길래 그렇게 저버리고, 그렇게 바라며,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백관의 왕이 이르니>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서술자인 수요는 자신의 기억을 들여다본다. 그의 기억은 완전하며, 그 완전함 아래에서 세계와 인물과 사건이 모습을 드러낸다.

소설의 문장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이야기하며, 기억을 매개로 시공간의 층위를 나눠 장면을 전환하고, 그러한 장면 전환은 어느 순간 선형적으로 이어진다. 그러한 구조적 추동력을 바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는 절정에 이르고, 일점으로 응축한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일점으로 응축한다기보다 이미 응축되어 있었던 게, 덜어짐으로써 드러난다고 해야겠다.

<드래곤 라자>와 ‘새’ 시리즈 그리고 톨킨에서 이어진 한국식 판타지의 영향력 아래에서 고유성을 드러내는 세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사람을 긴장케 하는 섬뜩한 환상성이, 작품의 초반에 선언되었던 강력한 모순이, 사람의 기억이 완벽할지라도 갖는 한계에 대한 지점이.

이야기를 지탱해오던 그것들이 빛을 발한 뒤 시야에서 모습을 감추고, 남는 것은 완연하게 아름답도록 엮인 욕망이다.

나는 사실 ‘아름답다’는 표현을 쓰는 게 어색하다. 그 말을 써본 적이 그다지 없었으므로. 고양이가 자그마하니 귀엽다, 수식이 정돈된 것이 예쁘다, 하늘과 물이 맑아서 기분이 좋다. 혹은 흥분된다거나 기대가 충족됐다거나 재밌었다거나. 그런 표현들을 사용해왔다. 이 소설의 첫 감상을 트위터에 가볍게 썼는데, 거기에서도 고민하다가 ‘예쁜 이야기였다’고만 표현했다.

그렇지만 소설을 읽고 그것을 반추하고 한 번 더 읽은 다음 리뷰를 쓰기로 했을 때, 나는 아름답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백관의 왕이 이르니>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욕망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

 

펀딩에 참여하고 소설을 아직 읽지 않으신 분은 이 기회에, 그리고 펀딩에 참여하지 않으신 분은 기회가 된다면(예컨대 펀딩 참여자에게 빌린다거나) 꼭 <백관의 왕이 이르니>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스트렐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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