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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황금 드래곤 문학상 – 본심평: 복거일 문학평론가

16년 5월

황금 드래곤 문학상처럼 상금을 내걸고 작품들을 모집한 문학상은, 예기치 못한 사정이 나오지 않는 한, 당선작을 내는 것이 옳다. 그래서 심사 위원들은 응모작들에서 좋은 점들을 찾아보려고 무던히 애썼다. 아쉽게도, 우리는 당선에 필요한 최저 수준에 이른 작품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신, 결점들이 비교적 적고, 추고 과정을 거치면 상당히 나아질 가능성이 있는 <달의 노래>와 <열번째 세계 이야기>를 가작으로 뽑았다.

응모작들은 몇 가지 특질들을 공유하는데, 그것들은 우리 사회에서 나온 다른 환상소설(fantasy fiction) 작품들에서도 발견된다. 안타깝게도, 그것들은 거의 모두 부정적 특질들이다. 따라서 그런 단점들을 뽑아내서 살피는 것은 젊은 환상소설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근본적 문제는 이번에 응모한 작가들에겐 독자들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작가가 뚜렷한 이야기를 생각해낸 뒤에야, 소설은 모습을 제대로 갖출 수 있고, 독자들은 그것을 소설로 받아들일 수 있다. 환상소설을 쓰려는 작가에게 뚜렷한 이야기가 없으면, 마법사, 난장이, 용, 트롤과 같은 장르 환상소설 (genre fantasy)의 도구들을 아무리 많이 동원하더라도, 그의 이야기가 쭉정이라는 사실을 독자들로부터 감출 수 없다.

그렇게 이야기거리가 적은 까닭들 가운데 하나는 젊은 환상소설 작가들이 장르 환상소설에만 매달린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환상소설은 실제로는 장르 환상소설을 뜻한다. 그 이름이 가리키는 것처럼, 장르 환상소설은 독자들이 이내 환상소설로 인식하는 전통적 환상소설로, 흔히 이 세상이 아닌 이차 세계(secondary world)를 무대로 삼아, 환상소설의 전통적 배역들인 감춰진 왕, 미운 오리 새끼, 마법사, 난장이, 트롤, 엘프, 용 따위 존재들이 등장한다. ‘장르’란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장르 환상소설은 너무 많이 이용된 환상소설의 영역이며, 자연히, 수준 낮은 모방 작품들이 넘친다. 존 로널드 루얼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나온 뒤로는 그 작품의 아류들이, 그리고 이제는 아류의 아류들이, 특히 많이 나왔다.

그래서 지금 새롭게 느껴지는 장르 환상소설 작품을 쓰기는 언뜻 보기보다 훨씬 어렵다.
그러나 실제로는 환상소설은 매우 넓고 다양한 분야여서, 장르 환상소설말고도 여러 하위 장르들을 안고 있다. 따라서 그런 분야들을 자신의 재능을 펼칠 무대로 삼는 것은 젊은 환상소설 작가들에겐 좋은 전략이다. 예컨대, 탐정소설에 흥미를 느끼거나 재능이 있는 작가들은 ‘탐정 환상소설 (detective fantasy)’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 마법을 범죄의 수사에 이용하는 마법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랜덜 개리트의 <다시 경(卿)> 연작은 이 분야의 전범으로 꼽히는 작품인데, 우리 젊은 환상소설 작가들에게 환상소설을 쓰는 일에 관해서 많은 것들을 가르쳐줄 수 있다.

논리적 이야기를 좋아하는 작가들에겐 ‘과학 환상소설(science fantasy)’이 너른 땅과 비옥한 흙을 제공해줄 것이다. 과학 환상소설은 환상소설의 도구들을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의 방식들과 관행들에 따라 다루는 환상소설의 하위 장르로, 과학 환상소설 작품들에선 마법은 마법사가 마음대로 쓰는 기술이 아니라 나름의 엄격한 법칙을 따르는 것으로 그려진다. 많은 장르 환상소설 작품들에서 마법은 마법사들이 자의적으로 그리고 아주 쉽게 휘두를 수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마법이 진부한 것으로 느껴지고 환상소설에 내재하는 비현실성을 더욱 짙게 만든다. 마법이 과학이나 기술처럼 일정한 법칙들을 따르는 것으로 상정되면, 그런 사정은 작가에겐 지켜야 할 규율로 작용해서 보다 진지한 글쓰기를 가능하게 하고, 작품엔 현실성을 준다.

생물학 지식을 갖춘 작가들에겐 ‘동물 환상소설(animal fantasy)’이 새로운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동물들의 의인화에 의존하는 ‘짐승 우화(beast fable)’와는 달리, 동물들이 실제로 지닌 특질들을 그대로 작품에 반영하는 동물 환상소설은 우리 문단에선 아직 미개척 분야로 남아 있으므로, 문학사에 이름을 남기려는 야심을 가진 젊은 작가들은 한번 도전해 볼 만한 분야다. 이 분야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은 토끼들의 사회를 그린 리처드 애덤스의 <워터십 언덕(Watership Down)>으로, 동물 환상소설을 쓰려는 작가들은 꼭 읽어야 될 작품이다. 워낙 인기가 높았던 작품인지라, 책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 비평에 관심을 가진 작가들에겐 ‘수정주의 환상소설(revisionist fantasy)’이 적절한 매체가 될 것이다. 수정주의 환상소설은 이미 확립된 대본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는 장르인데, 서양에선 1960년대에 활발해진 ‘여성 운동(feminist movement)’으로부터 큰 운동량을 얻었다. <미녀와 야수>를 새로 풀어 쓴 로빈 머킨리의 <미녀: 미녀와 야수의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하기 (Beauty: The Retelling of the Story of Beauty and Beast)>와 <잠자는 미녀>를 새롭게 해석한 제인 욜렌의 <둘장미 (Briar Rose)>는 이 분야의 대표작들이다. 우리 나라에선 최인훈이 <놀부뎐>.및 <춘향뎐>과 같은 단편들에서 수정주의 환상소설을 시도했다. 이들 작품들을 쓸 때, 최인훈이 자신이 수정주의 환상소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 것 같지는 않다. 이 사실은 여러 모로 흥미롭고, 환상소설의 문학적 가능성에 대해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우리 작가들의 환상소설 작품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두번째 문제는 이야기가 환상소설의 틀 속에서 전개되어야 할 필연성을 지니지 못했다는 점이다. 바람직한 상태는,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가 환상소설의 틀 속에서만 제대로 표현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작가가 환상소설을 쓰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작가로서는 주류소설(mainstream fiction)인 모사소설(mimetic fiction)의 틀 속에서 이야기를 펼치는 편이 여러 모로 낫다. 작가로서의 기본적 소양과 기술을 갖추지 못한 젊은이들이 환상소설에 선뜻 손을 대는 것을 보면, 환상소설은 쓰기 쉽다는 생각이 널리 퍼진 듯하다. 그러나 사정은 전혀 다르다.

이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생각해내서 그것을 독자들이 이내 알아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으로 그려내는 일은 실재하는 세상을 충실하게 그리는 일보다 당연히 어렵다. 마법사나 용과 같은 장르 환상소설의 도구들을 진열하는 것으로 자신의 작품이 일단 환상소설의 모습을 갖췄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드물다.

세번째 문제는 대부분의 환상소설 작가들이 환상소설을 쓸 때 부딪치는 기술적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존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실적 이야기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 이야기를 들려주므로, 환상소설 작가들은 모사소설 작가들이 부딪치지 않는 몇 가지 어려운 기술적 문제들과 힘든 씨름을 해야 한다. 그런 문제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독자들에게 환상소설의 무대가 된 세상에 대한 정보를 적절하게 제공하는 일이다.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 이야기를 독자들이 알아들으려면, 당연히 그 세상과 이야기의 주제에 관해서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정보는 필연적으로 이야기의 전개를 방해한다. 충분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면서도 이야기를 깔끔하게 전개하는 일은 모든 환상소설 작가들이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다. 아쉽게도, 이번에 응모한 작가들 가운데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한 이는 없었다. <달의 노래>의 경우, 무대가 된 세상에 관한 기본적 정보들은 ‘프롤로그’라는 형식으로 작품 맨 앞에 나와 있는데, 무려 일곱 장이나 된다. 이야기를 듣기 전에 일곱 장 짜리 설명문을 읽으라고 독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분명히 현명한 방책은 아니다.

네번째 문제는 작가들이 만화나 전자놀이(electronic games)를 본받는 것이다. 그런 관행에도 물론 장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눈에 뜨이는 것은 심각한 결점들뿐이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소설 작품인데도 묘사가, 배경이든 인물이든, 거의 없다는 점이다. 만화나 전자놀이엔 물론 묘사가 없다, 글과 함께 실린 그림이 그 일을 하므로. 환상소설 작가가 만화나 전자놀이에 나오는 간략한 설명들과 대화들이 소설을 이루는 데도 충분하다고 여긴다면, 그 결과는 메마르고 앙상한 작품일 수밖에 없다.

만화나 전자놀이를 본받는 관행에서 나온 또 하나 부정적 영향은 대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런 작품들의 대화들은 거의 모두 어색하거나 인물들의 성격에 맞지 않고, 적잖은 것들이 현실에선 나올 수 없거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웃음을 으레 “푸하하하하하하”라고 표현하는 식의 관행들은 작품 전체의 품격을 불필요하게 떨어뜨린다.

사람마다 웃는 모습이 다르고, 같은 사람도 경우마다 다른데, 어째서 환상소설 작품들에선 나오는 인물들이, 나이도 성격도 직업도 가리지 않고, 모두 그렇게 과장된 웃음만을 터뜨리는가? 밝은 미소도, 씁쓰레한 웃음도, 입가나 눈에만 웃음기가 도는 모습도,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소리 없이 웃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가? 이런 메마른 모습은 만화에선 그런대로 재미있게 느껴지는 대화들이, 소설 속에 그대로 도입되면, 과장되거나 천박하게 느껴진다는 사정이 전혀 고려되지 않아서 나온 현상문이다. (이런 사정은 가사와 시 사이의 관계와 아주 비슷하다. 음악에 맞추어 불려지므로, 가사는 시와는 전혀 다른 논리를 따른다. 그래서 음악 없이 가사만을 읽으면, 우리는 애창곡들의 가사까지도 흔히 지나치게 상투적이고 과장되고 반복적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반면에, 좋은 시가 그대로 좋은 가사가 되는 경우도 드물다.)

그러면 그런 결점들은 어떻게 피하거나 줄일 수 있을까? 그 일은 아마도 존 로널드 루얼 톨킨이 환상소설 분야에 대해 지닌 너무 큰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1950년대에 <반지의 제왕>이 나온 뒤로, 장르 환상소설 분야는 톨킨의 압도적 영향 아래 움직였다. 그의 영향을, 그의 작품들로부터 직접 받았든 그의 아류 작가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받았든, 다소간 받지 않은 환상소설 작가는 드물다.

그의 작품들은 그만큼 장르 환상소설 분야를 혁명적으로 바꾸었고 큰 활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나 그런 사정에 따른 부정적 영향도 작지 않았다. 반 세기 동안 그의 아류 작가들이 수많은 모방적 작품들을 쏟아낸 터라, 이제 장르 환상소설은 지력이 쇠퇴한 농토처럼 되었고, 자연히, 좋은 장르 환상소설 작품들을 쓰기는 무척 어렵다. 폄하하는 뜻을 지닌 ‘장르’라는 말이 붙었다는 사정이 점을 은근히 가리킨다.

사정을 악화시키는 것은 톨킨이 뚜렷한 문학적 목적을 가지고 충분한 지적 자산을 갖춘 뒤에 튼튼한 이론의 인도를 받아 작품들을 썼다는 사실을 우리 작가들이 깨닫지 못한 듯하다는 점이다. 그는 영국이 북유럽 신화와 같은 웅장한 신화를 갖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고서 그것을 스스로 지어내기로 했다. 그리고 ‘아다’라고 불리는 세계에 속하는 ‘중간 대륙(Middle-Earth)’를 구상하고 그 세상의 긴 역사를 꾸며냈다. <반지의 제왕>은 그런 길고 웅장한 역사의 한 부분에 자리잡은 이야기다. 그는 원래 고대 영어를 연구한 언어학자로, 고대어에 관한 그의 깊은 지식은 그가 소설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뛰어난 문학 이론가여서 자신이 바라는 작품이 어떤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알았다. 환상소설에 관한 이론에서 핵심적 개념인 ‘이차 세계’를 그가 지어냈다는 사실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그는 환상소설에 관한 이론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그렇게 뚜렷한 목적, 튼튼한 이론적 바탕, 깔끔한 전략, 그리고 풍부한 지적 자산을 갖춘 작가가 오랫동안 다듬은 뒤에야, <반지의 제왕>가 같은 걸작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모든 젊은 환상소설 작가들에게 톨킨처럼 준비를 철저히 한 뒤에 작품을 시작하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래도 별다른 준비 없이 톨킨의 아류 작가들의 작품들을 몇 편 읽은 뒤, 나도 한번 써보겠다고 나선다면, 그에게서 좋은 환상소설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터이다.

그러면 젊은 환상소설 작가들이 위에서 언급된 덫들을 피하고 필요한 기술들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한 가지 실제적 방도는 과학소설을 주로 쓴 뒤에 환상소설에 손을 댄 작가들을 읽고 그들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과학소설은 환상소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장르다. 두 장르 모두 비현실적 세계를 다룬다. 그래서 과학소설 작가들은 환상소설 작가들이 부딪치는 여러 가지 기술적 문제들에 부딪친다. 위에서 언급된 ‘필요한 정보들을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일의 어려움’도 과학소설에서 훨씬 심각하다. 그러나 과학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자연적이고, 환상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초자연적이어서, 둘은 본질적으로 다르고 이야기의 성격과 전개 방식도 크게 다르다.

과학소설이 자연적 현상을 다루므로, 과학소설은 작가들에게 환상소설보다 훨씬 엄격한 틀을 부여하고, 대체로 과학소설 작품들은 환상소설 작품들보다 더 튼튼한 바탕 위에 더 논리적으로 구성되며 문학적 성취도도 훨씬 높다. 놀랍지 않게도, 과학소설 분야에서 업적을 쌓고 나서 뒤에 환상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자신들의 환상소설 작품들에 과학소설의 특질들을 도입해서 비교적 잘 짜여지고 논리적 구조를 지닌 작품들을 쓴다. 프리츠 라이버, 캐서린 루실 무어, 리 브래키트, 잭 밴스, 레이 브랫버리, 폴 앤더슨, 랜덜 개리트, 어슐러 르 귄, 마리온 짐머 브래들리, 진 울프, 그리고 로저 즐래즈니는 그렇게 과학소설 분야에서 업적을 쌓고 환상소설에 손을 댄 작가들로, 그들의 작품들을 읽는 것은 우리 젊은 환상소설 작가들에게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비록 당선작을 찾지는 못했지만, 응모작들이 모두 긴 작품들이어서, 우리는 상당히 흐뭇했다. 문학적 성취도를 떠나서, 긴 작품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작가가 글쓰기에서 최소한의 열정과 기술을 지녔음을 가리킨다. 모든 작가들이 잘 다듬어진 작품을 들고 세상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젊어서 별다른 재능을 보이지 않았지만 뒤에 훌륭한 작품들을 쓴 작가들이 드물지 않다. 이내 떠오르는 예를 들면, 조지 오웰은 이튼에 다닐 때 그를 지도한 선생으로부터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는 평을 들었지만, 꾸준히 노력해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정치 소설들을 썼다. 특히, 그의 짐승 우화 <동물 농장>은 환상소설이 지닌 사회 비평적 가능성을 한껏 실현했고 환상소설의 품격을 크게 높였다. 젊은 환상소설 작가들의 정진을 기대한다.

제2회 황금드래곤문학상 – 본심평: 이영도 소설가

16년 5월

본심에 올라온 세 작품 ‘달의 노래’. ‘열 번째 세계 이야기’, ‘활고자 속의 오르골’을 가리켜 난형난제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용호상박이라 하긴 어렵겠다. 최소한 심사자는 용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삼일우를 얻어 승천할 수 있을 만한 이무기는 누구일까.

가나다 순으로 제일 먼저 달의 노래.
문장 단위에서 문체는 안정되어 있다.(이것은 다른 두 작품도 마찬가지다. 심사자는 1회 황금 드래곤 문학상에서도 심사를 했었고, 1년 사이에 월등히 나아진 응모작들의 글쓰기 수준에 즐거움을 느꼈다.) 하지만 구문 단위에서의 문체는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으며, 글 전체로 보면 실험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세 개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그들 세 개의 이야기가 아무런 갈등도 일으키지 않는 묘한 전개가 되어버렸다. 루크편의 이야기는 카르시어드편의 이야기가 끝난 다음의 사건들이지만 카르시어드편의 이야기가 완료되는 것은 소설 후반부에 가서의 일이다. 그리고 유노편 이야기의 대부분은 다른 두 이야기와 관련없이 따로 펼쳐지고 있다.

물론 후반부에 접어들며 이 세 개의 이야기는 한 곳으로 모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상황 발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운명이라서’ 그렇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고전비극의 재해석이었던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트로이카는 말 세 마리가 같은 방향으로 달려야 움직일 수 있는 마차다. 하지만 각자 다른 시간에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유노편, 루크편, 카르시어드편이라는 세 마리의 말은 소설이라는 마차를 꽤나 비틀거리게 만들고 독자라는 탑승객을 불안하게 한다.

그 다음 열 번째 세계 이야기. 나호(이프델 역)의 열연을 다시 보는가.
이야기는 생성과 파멸, 삶과 죽음의 우주적 결합의지를 그리고 있는 듯하다. 비오스와 타나토스라는 고풍스러운 이름에서 이미 주제의 거의 대부분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들어버린 것은 아무래도 작명상의 부주의가 아닐까 한다. 약삭빠른 독자라면(심사자처럼) 이야기의 1/3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슬픔, 허무, 분노, 절망을 극복한 끝에 삶과 죽음이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만남으로써 존재 회복을 성취하는 결말이겠구나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진짜 그렇게 되었다. 씁쓸하다. 애써 사용한 추리소설적 기법이 빛을 잃었다.

그 다음, 서두에 농담삼아 말했듯이 나호를 연상시키는 이프델의 모습은 전형적이고 생명력이 없다. 기억이 없어서 생각나는대로 행동한다는 식의 이프델은 독자의 감정이입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작가 또한 그런 문제를 알기에 감정 이입의 대상으로 두 번째 주인공 무샤를 투입했지만, 무샤는 이야기의 거의 대부분에서 주동자이기보다는 목적물이 됨으로써 작가의 미스캐스팅에 일조를 하고 말았다. 무샤가 나름대로 열심히 연기했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비오스-타나토스의 거대 주제을 극복하고 여동생을 찾는 오빠의 명연기를 각인시킬 만큼은 아니었고, 그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무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비오스-타나토스의 이야기는 좀 더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거나, 아니면 무샤의 이야기를 완전히 빼버렸다면 좀 더 구조적 안정감이 있었을 듯하다. 현재의 상태에선 ‘여동생의 수탐’과 ‘삶과 죽음의 포용’이라는 두 개의 이야기가 효과적으로 엉겨 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활고자 속의 오르골.
‘실천의지를 결여한 미(美)는 타천사에 불과하고 진(眞)은 영원불멸하지만 흡혈귀일 따름이다. 오직 선에 봉사하는 것으로서 진은 참된 진으로 되살아나며, 미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선의 그림자만을 획득할 수 있다’는 내용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순간을 고정시키면 안된다, 정화의 의식(카타르시스), 어비파 등으로 표현되는 <회복될 수 없는 입김>은 미다. 영생의 저주, 살갗을 벗기는 의식(진리의 뼈아픈 수탐), 책 등으로 표현되는 <목마름의 처마 끝>은 진이다. 열렬히 환영받는 미와 공포의 대상인 진의 대비는 흥미롭다. 물론 더 흥미로운 것인 분명 미에 봉사하는 예술가인 작가가 이런 도덕지상주의적인 주제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지만.

‘달의 노래’가 시간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음으로써 오히려 독자를 불안하게 만든 것에 비해볼 때 ‘활고자 속의 오르골’은 시간을 흩뜨림으로써 몽환적 분위기를 창조하고 있다. 수많은 해석(위의 심사자의 해석은 백 가지 해석 중 하나일뿐이다.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이 가능한 상징의 다양함도 주목할 만하다. 구성은 ‘달의 노래’보다 괜찮은 편이고, 상징성은 ‘열 번째 세계 이야기’보다 약간 나은 편이다. 하지만 소설의 형식을 빌린 도덕우화극에 가깝다는 점이 심사자를 주춤하게 한다. 게다가 글에 맛이 적다. 비타민제가 몸에 좋기야 하겠지만 보통은 과일을 씹어먹는 쪽을 선택할 거라 생각한다.

본심 대상이 된 세 개의 글 중에 1회 당선작보다 현격히 모자란 글은 없다. 하지만 1회 당선작보다 월등히 뛰어난 글도 찾기 어렵다. 묘하게도 세 개의 글 모두 문장은 괜찮지만 인물조형은 부족하다는 공통점까지 가지고 있다. 그 이상은 심사자의 글 보는 눈이 부족해서 말하지 못하겠다.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셋 중 그래도 중도를 지키고 있는 두 작품 <달의 노래>와 <열번째 세계이야기>를 선택하겠지만, 그 작품이 대상의 이름에 합당한가는 말하기 어렵다.

제2회 황금드래곤문학상 – 본심평: 서영채 문학평론가

16년 5월

심사 대상 작품 중 ‘열 번째 세계 이야기’와 ‘달의 노래’ 두 편이 돋보였다. 두 작품 모두 나름의 장단처가 있어 둘을 놓고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었다. ‘열번째 세계 이야기’는 전체적인 구성이 탄탄해 보였고, ?달의 노래?는 다양한 인물들을 성격화하고 서사를 전개해나가는 박력과 기량이 돋보였다. 하지만 둘 모두 당선작으로 삼기에는 다소 미흡한 점들이 있어, 공동의 가작으로 추천했다. 간단한 독후감을 밝혀둔다.

‘열번째 세계 이야기’ 삶과 죽음이라는 고전적인 신화적 모티프를 알레고리적인 방식으로 적절하게 소화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4계절의 순환을 의미론적 메트릭스로 하는 신화적 반복의 모티프를 판타지 서사의 형식으로 형상화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채로웠다. 삶의 힘을 상징하는 여왕과 죽음을 상징하는 방랑자가 쌍생아의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힘이 4색의 데몬들로 존재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삶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또 죽음은 진정한 삶을 가능케 하는 긍정적인 힘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성의 커다란 틀 자체가 선악의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서 있어 호감이 갔다. 하지만 양자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4색의 데몬들의 모습은 선명한 개성이 없어 전체적으로 상투적이라는 느낌이 짙었고, 또 서사의 전개도 지나치게 단선적이어서 구상 자체가 지니고 있는 신화적 힘의 위력을 적절하게 담아내기에 역부족이었던 듯싶다.

‘달의 노래’는 북구의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군들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판타지의 문법에 입각해 있는 작품이었다. 부활의 땅을 찾아가는 한 부족의 이야기와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길을 떠난 용병들의 이야기, 그리고 가상의 대륙에서 펼쳐지는 부족간의 전쟁의 서사 등, 세 개의 스토리라인이 병치됨으로써 서사의 주축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각각의 모험과 전쟁의 서사들 속에서 개성적인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솜씨가 돋보였으며, 서사의 진행도 박력이 있어 시원시원하게 읽혔다. 하지만 문제는 이 세 개의 이야기가 어떻게 하나의 중심으로 통합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이 점에서 ?달의 노래?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작품의 말미에 가서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외삽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하스켈이라는 인물이 이런 구성상의 문제를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전체적으로 보아, 두 작품 모두, 이야기 만들기의 물신성으로부터 벗어나 서사적 담론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문제로 보였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왜 판타지 형식이어야 하는가, 판타지 문학만이 지닐 수 있는 강점이 무엇인가 등의 문제에 대한 좀더 철저한 자각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새삼스럽지만, 판타지이기 이전에 읽을 만한 글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이 자리에서 강조해두고 싶다. 우리의 판타지 문학이 한 단계 비약하기 위해서는, 자잘한 재미뿐 아니라 묵직한 의미로도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제2회 황금 드래곤 문학상 – 호러부문 심사평: 이종호 소설가

16년 5월

국내 호러, 미스테리 장르는 다른 장르문학에 비해 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건 국내 독자들의 정서에 호러문학이 맞지 않기보다는 일정수준을 갖춘 작품이 꾸준히 발표되거나 전문작가라 할만한 작가 군이 형성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번 문학상 역시 완결 작이 극히 적었을 뿐더러 대부분의 응모작이 장르의 특성을 살리지 못해 밀도 있는 공포나 미스테리적 긴장을 보여주지 못했다. 심사대상에 오른 작품은 총 다섯 편으로 이중 ‘이클립스’와 ‘어둠의 공포’는 소설이 갖춰야할 기본적 문법이나 구성에서 미달해 제외되었다. 최종 심사대상은 ‘두 아내를 거느린 사나이’ ‘유즈나’ ‘늪(가제(하나))’ 세 편이었다.

<두 아내를 거느린 사나이>는 작가의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작품 곳곳에 잘 녹여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보였다. 그러나 소설적 과장을 넘어선 무리한 설정이 이 작품의 큰 결점이었다. 탄탄한 논리가 뒷받침되지 않은 이야기를 추리소설이라 할 수도 없을뿐더러 추리와 미스테리를 완전히 같은 영역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즈나>의 경우, 문장이 비교적 안정되었으나 전개가 느슨했고 인물간의 갈등도 전혀 긴장감을 유발하지 못했다. 특히 작가는 과거의 회상이 주된 줄거리인 유즈나를 현대적 감각으로 그 의미를 찾았어야함에도 과거 틀에만 매달려 작품 어디서도 새로운 것을 내놓지 못했다. 작가는 호러소설의 고전인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이 오늘날 독자에게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늪(가제 ‘하나’)>은 응모작 중 비교적 완성도가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신과 인간의 관계를 선주 족과 그들을 닮은 싸이탄에 빗대 세상과 인간의 진화과정을 상당히 흥미롭게 풀어낸 점과 사악한 인간 욕망의 집약체인 다크로드를 통해 드러내는 주제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정리되지 않은 산만한 구성과 인물 심리묘사의 부족, 지나치게 의식의 흐름을 쫓는 듯한 몽환적 서술 등으로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데 실패했다. 소설이 일기나 낙서와 다른 점은 독자와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이고 무엇보다 공포, 미스테리 소설로는 보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국내 호러,미스테리 장르의 현실을 고려해 가능하면 수상작을 선정하려했으나 아쉽게도 기준에 든 작품이 없었다. 특히 대부분의 응모작이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 보였다. 흔히 호러문학을 테러문학이라 부르는 것은 소설이 독자에게 가학적인 공포와 긴장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심리공포가 되었든, 잔혹공포가 되었든 앞으로 이 부문의 응모자는 그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제2회 황금드래곤문학상 – 중단편 심사평: 장은수 문학평론가

16년 5월

황금 드래곤 문학상에 투고된 수백 편의 중단편들을 읽는 것은 즐거움이자 고역이었다. 소설이 기상천외의 아이디어로만 이루질 수 있다면 반짝이는 보석들을 널려 있었다. 특히 올해는 호러와 미스터리 소설들을 함께 읽을 수 있어 좋았으며, 몇몇 SF 소설들 역시 오랫동안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설들이 아이디어에서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이 딸려 보였다. 문장이 숙련되어 있지 않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해 내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구성을 제대로 갖춘 작품을 보기는 정말 어려웠다.

그중에서 눈에 띈 단편으로는 janhuss의 [그림자 인간], seifer312의 [메트로폴리타 오디세이], tehom의 [모텔 탈출기] 등이다. [그림자 인간]은 역사를 전체와 개인, 필연과 자유의 투쟁사로 파악하고, 그중에서 개인과 자유를 옹호하라는 신의 소명을 받은 이종족들의 운명을 다룬 수작이었다. 하지만 거창한 주제를 다루기에는 호흡이 짧아서 아쉬웠다. [메트로폴리타 오디세이]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아메리카 제국과 빈 라덴을 연상하게 하는 혁명가들의 싸움을 정부 조직에 의해 동생을 잃은 한 형사 반장의 이야기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묘사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문장이 계속 눈에 거슬렸고, 짜임이 틀에 박혀 있어서 감동을 주지 못했다. [모텔 탈출기]는 원조 교제를 한 여학생이 갑자기 욕실에서 죽어버리는 바람에 투숙한 여관에서 흔적 없이 빠져 나가고자 하는 한 의학도의 탈출기를 그린 작품이다. 사이버 채팅, 원조 교제, 엽기, 카니발니즘, 몰카 등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의 상징적 축약도를 보는 듯한 시사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그 기발한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결말부가 너무 단조로웠다. 이 세 작품을 놓고 오래 고민한 끝에 작으나마 독자들에게 읽는 기쁨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선사하는 [모텔 탈출기]를 당선작으로 하기로 했다. 열심히 작품에 정진해 더 좋은 작품을 내기 바란다.

중편의 경우, fenner7의 [할티노], goldenbough의 [볼케이노]를 재미있게 보았다.
[할티노]는 떠돌이 악사의 입을 통해 심장이 비어 있어 영원히 죽지 않는 괴물의 비극적인 운명을 들려주고 있는 작품으로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문체와 과장하지 않는 담담한 구성이 돋보였지만 전반적으로 긴장감이 약해 아쉬웠다. [볼케이노]는 랜틀러 경의 살해범을 쫓는 리넨 자작의 모험담을 그린 전형적인 판타지로 재미가 있었지만 주제 의식이 빈약해 감동을 줄 수 없었다. 두 작품은 각각 장단점이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할티노]를 당선작으로 뽑아 작가의 미래를 축복하고자 한다.

제2회 황금드래곤문학상 – 예심평

16년 5월

예심 심사위원

최재경(소설가), 홍정훈(소설가), 김준혁(편집팀장)

<달의 노래>

남성적이고 사실적인 묘사, 방대한 스케일, 실제 디테일이 잘 만들어진 지도를 전제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듯한 구체적인 상상력 등이 장점인 <달의 노래>는 불꽃부족의 후예인 맥그리거 부족, 대현자 빈세트와 엘름 신전, 신세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운명의 소녀 유노와 불꽃문양의 검을 지닌 소년 루크, 불꽃부족을 멸망시킴으로써 구세계 뮤의 몰락을 막으려한 아야르 오코, 아야르 오코의 계획 속에서 일개 인간용병대장에서 카르시어드의 왕위에까지 오른 영웅 아케르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이 소설 속에서 인간 혹은 생명을 지닌 것들의 허망한 욕망들과 그들이 꿈꾸는 진정한 낙원, 신(神)과 우주 창조 등의 주제를 폭넓게 다루려고 했다.

자신이 다스리던 세계의 몰락을 막기 위해 아야르 오코가 사주한 전쟁은 그토록 많은 살육을 불렀건만, 아야르 오코는 정작 마지막에서야 그런 방법으로 구세계의 몰락을 막을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새로운 세계와 구세계의 교체는 어느 한쪽이 어느 한쪽을 멸망시킴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흥왕성쇠의 운명을 따라 한쪽이 쇠할 무렵 자연스럽게 한쪽이 새로 태어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세계는 살육과 탐욕, 죽음과 질병, 가난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낙원이다.

그러나 꿈의 세계를 지켜내려는 주인공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초반에 독자가 품었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들이 눈에 띈다. 특히 운명의 소녀 유노의 이야기는 끝끝내 미진하다. 소설의 마지막에서야 운명의 소년 루크를 만나는 것도 그렇고, 만남 이후 둘이 합체되어 신세계를 이루는 부분이 너무나 단순화되어 있는 것도 그렇다. ‘환타지의 요소를 일부 차용한 전쟁소설’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신비의 마법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는 것은 신선한 부분이기도 하나, 환타지 소설에서 한번쯤은 나올 법한 ‘눈부신 환타지의 순간’이
빠져 있어 끝까지 건조하다는 느낌을 준다. 초장부터 지나치게 장황한 설명들이 많아 이야기의 흡인력을 떨어뜨리고, 마지막에서야 밝혀지는 주인공들의 방황의 비밀은 신비스럽다기 보다는 오히려 스토리 전체를 이끌고 가는 강한 모티브를 처음부터 보여주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을 자아내게 한다.

전반적으로 웅장한 전쟁소설과 역사소설의 골격과 디테일을 갖추었으나 매력적인 인물묘사와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 등에서 결정적인 한계를 보여줘 아쉬웠던 작품이다.

<열번째 세계 이야기>

일반적인 판타지 소설들은 <영웅>들을 소재로 하여, 그들의 영웅담이 전체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기사, 드래곤, 공주 등은 이미 판타지 소설의 소재로서 식상해져 버린 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타지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근본적 소재에 대해 극구 항거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열번째 세계 이야기>는 판타지의 새로운 주제 의식을 장편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낸 몇 안 되는 작품이다. 그동안 미세하게나마 단순한 기존의 흐름에 저항해 보겠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너무나 정형화된 영웅이지만-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이 나오기도 했고, 전년도 수상작인 <영혼의 물고기>와 같이 자신이 세상을 구하게 되는 사람이라는 것도 모른 채 세상을 구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모두 미미한 외침에 불과하거나 혹은 자기 멋-난 기존의 틀에서는 조금 벗어나려고 하는 혁명가야!-을 위해 주장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이 현재에 이르러서 출간되는 대부분의 판타지가 나타내는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과는 달리, <열번째 세계 이야기> 끝없이 <냉소>와 <기존의 영웅에 대해 반문>하는 이야기를 글 전체의 흐름으로 이끌어나간다. 다른 판타지 소설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물론 순문학에 비하면 다소 떨어지는- 그러나 너무나 평범한 문체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선정한 이유는 바로 그러한 전형성에서의 탈피가 엿보였고, 그것이 현재 침체기에 빠진 판타지 문학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였다. 같은 선상에서 심사를 보았던 <거울의 왕국>이 보다 나은 재미를 주고 있기는 하지만, 탈피하지 못한 전형성이 <열번째 세계 이야기>에게 본선 심사 기회를 빼앗긴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후반부 주인공이 내용의 궁극적 결정인 <여왕의 부탁>에 대한 독자의 기대를 거부하고,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고 한 노력 또한 높이 사줄만 하다. 전체적인 구성의 단일성,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충분한 해석이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평탄한 구조와 인물들간의 관계가 지나치게 작위적인 것, 그리고 다소 엉성한 플롯 등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난점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활고자속의 오르골>

시간도 공간도 어긋난, 미래인지 현재인지 전혀 알지 못할 관념적 환상의 세계에서, <목마름의 처마 끝> <활고자속의 오르골> <회복될 수 없는 입김> 삼인의 삼각관계가 이야기의 주를 이룬다. 기억 속에 파묻힌 추억을 들춰보는 것처럼 시공은 왜곡되어 있지만 아름다운 위화감이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난해한 언어들의 등장으로 곤혹스러웠다.

활고자 속의 오르골이란 다소 난해한 제목은 그것이 사람이름이라는 것에서 납득이 되었다. 이 소설에서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을 호적상으로 분류하기 위한 이름이 아니라 직접 그 존재를 묘사하는 근본적인 ‘이름’이다.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인 세계관에 현대적인 감각, 일본 만화 적인(현재의 한국 환타지를 지배하고 있는 작명센스랄까) 이름이 붙었다면 어땠을까? 긴 이름과 난해한 어휘들은 꽤 혼란스럽지만 그 혼란 속을 관통하는 조화가 있다. 모든 문장은 운율을 내포하고 있어서 처음 보았을 때의 당혹감과 불쾌감을 날려주었다. 자칫하면 흔하디 흔한 사랑타령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내용, 그러나 절제된 감정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다른 예심 심사작들 평
<더 위자드>는 큰 문제점을 잡아내기 힘들 정도로 무난하고 전형적인 통신 판타지이다. 그러나 이렇다할 특성이 없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난점이었다. <헤흐세티아>는 분량 조절에 실패하여 지나치게 내용을 늘였다는 느낌이다. 적절한 부분에서 내용을 조절하지 못하여 지루함을 유발시켰다. <환생기>는 일본의 몇몇 유명 소설들을 연상시키는 다소 독특한 소재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발전이 없는 다소 평탄한 진행과 부족한 흡인력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무하유지향>은 멸망에 치달리는 엘리시움에서 벌어지는 모험극이라는 전형적 판타지이나 전체적인 설정과 묘사가 평이한 단점이 있었다.

<큰푸른물>은 스토리나 세계관이 매우 훌륭하지만 문장이 매끄럽지 못했다. 문학상이라면 아무래도 문장은 기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비문도 많을 뿐 아니라 후반에 이르러 중대한 세계의 비밀을 맥없이 나열해 준 것을 보아도 후반부에 떨어지는 힘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글의 성격상 장편보다는 중편에 더 어울릴 듯하다. <성신전>은 만화적인 상상력과, 매력적인 인물 설정 등 판타지 작가로서의 성장 가능성이 엿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스토리의 얼개가 지나치게 단순하게 설정된 점, 불안한 문장과 필연성이 결여된 이야기 전개가 단점이었다.

<디바인 나이트>는 철학적인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판타지를 쓰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이 돋보였으나 아직은 미숙한 문장과 인물묘사, 관념과 사유의 단순함 등으로 인해 작가가 원하는 완성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많은 수련이 필요해 보인다. <방랑자 이야기>와 , 그리고 <검은 피라미드>는 기본적으로 문장과 스토리 구성력 등에서 보다 많은 수련이 필요한 작품들이었다. <거울의 왕국>은 초반의 매우 독특하고 재미있는 전개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그 힘이 딸리는 것이 아쉬운 작품이었다. 초반부의 긴장감을 후반까지 잘 이어가고, 전체적인 내용을 조금 더 압축할 수 있었다면 좋은 결과를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몽환>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판타지와는 다른 구성이 돋보이지만, 전체적인 인물간의 대화와 구성이 만화 시나리오적 구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일루젼>은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이 눈을 끌었으나 습작이 필요한 구성과 대화체의 부적절한 사용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터미너스>는 인물들의 심경의 변화와 행동의 당위성에 대해 묘사를 충실히 하였으나 평이한 설정과 미완성된 듯한 플롯이 아쉬운 작품이었다. <인서터>는 매우 충실한 묘사와 서술이 장점이었으나, 지나친 서술로 일관한 것이 오히려 필요한 부분에서 힘을 잃고 지루하게 만들고 말았다. 작가가 조금 더 대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인물들의 성격을 서술과 잘 조합하면 보다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심사 대상은 아니었지만, 작가의 의뢰로 세 예심 심사자가 본 <삼국사신기>는 나름대로 다듬어진 구성과 흥미 있는 소재에 비해 분량의 완급 조절이 실패하였으며, 후반부로 갈수록 힘을 잃는 이야기가 아쉬운 작품이었다.

황금가지는 문화일보 및 인터넷업체 오즈인터미디어와 공동으로 판타지문학 페스티벌인 제2회 황금드래곤문학상 작품을 공모합니다.

작품은 4월1일부터 11월30일까지 인터넷 연재를 통해 접수합니다. 총상금을 7000만원으로 증액한 황금드래곤문학상은 호러 및 미스터리소설, 시나리오 부문을 신설했으며 판타지 부문 대상작과 호러 및 미스터리 부문 대상작은 책으로 출간됩니다.

또 인터넷 조회수와 인기투표 등을 통해 뽑는 인기상, 네티즌 추천상, 비평상, 완결상 등도 마련돼 있습니다. 응모자들은 황금드래곤문학상 홈페이지로 접속, 작품연재를 시작하면 됩니다.

  • 입상작 발표: 2002년 1월10일자 문화일보
  • 유의 사항: 작품의 일부라도 이미 발표됐거나 다른 매체에 중복 투고한 경우, 입상이 취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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