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에 케이크를 얹어 언밸런스한 맛을 노린 [데세르 오마카세, 플리즈]는 작가가 추구하는 스토리성이 쉽게 들어온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될지 독자가 이른 시점에 파악할 수 있으면, 작가는 마련된 틀에 담을 재미 요소에 최대한 집중할 여력이 생기지요. 호러 장르는 특히 우리 마음에 잠재해 있는 두려움, 동시대의 부조리를 건드림으로써 극대의 효과를 거두기 쉬운 장르라 다른 본선작들에서 더러 시도된 것처럼 현시대 한국의 자영업 창업 사장으로서 준영과 미솔의 공통점을 조명해 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면 도균과의 공통점이 비쳐도 살 떨리는 재미가 있지 않았을까요? 엔딩의 기묘한 맛에 비하여 작중 사건과 그 해결이 그리 인상적이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치즈케이크와 건율다식]은 착실한 취재와 안정적인 문장이 강점입니다. 다만 아쉽게도 맛깔나야 할 주요 조역인 금화 어머니의 대사가 진부하게 느껴지네요. 나이 찬 딸을 막말하며 구박하는 서민적인 어머니 캐릭터는 드라마의 클리셰로 한없이 재생되면서 점점 현실적인 입체감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율에게 대필을 맡긴 회장과 금화의 디저트 지향을 부정하고 방해하는 어머니가 금화-율 로맨스의 양대 빌런인 셈인데, 회장 역시 그렇게 리얼하거나 강력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빌런이 제역할을 충분히 해줄 때 히어로의 분투 승리가 빛이 나지요. 그렇다 보니 회장 대신 율이 격퇴하는 대상은 대놓고 초라한 율을 깔보던 여비서에 그치네요. 하지만 적절한 호흡으로 장편을 완결짓는 작가의 저력은 이후의 작품을 기대해 보게 합니다.
[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은 중편이나 장편으로 구성해도 좋을 드라마틱한 서사가 돋보입니다. 다만 그 서사를 다루는 솜씨는 조금 더 세련되면 좋겠습니다. 브랜드명과 같은 고유명사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수법이 이 작품에서도 눈에 띄며, 말하고 싶은 것을 지나치게 과장되게 또는 여러 번 말하여 오히려 원치 않는 효과가 나는 경우도 보입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고, 돈 이야기에 힘을 주면 가난해 보인다고 하지요. 기술적인 면만 향상된다면 얼마든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낳을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산사의 하루]의 최대 강점은 세계와 인간에 대하여 작가가 가진 고유의 관점이 충실히 드러나 보인다는 점입니다. 불교적 설정이 덜 삭아 서걱거리는 점, 정명의 번뇌, 쌀강정, 아이, 로봇 각각의 의미가 미처 충분히 어우러지지 못한 조금 미진한 이야기 진행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보다 ’목소리’가 일독을 이끄는 매력이 됩니다. 어떠한 소재를 시도하든 이 강점만은 놓치지 말고 지켜가셨으면 합니다.
소설이라기보다 한 편의 시 같은 [과자로 지은 사람]은 글 자체가 제과 같았습니다. 동시대의 노동과 사회제도 문제, 팔복설, 베이킹, 애도라는 별난 재료 조합에서 계량, 혼합, 배치의 묘를 잘 보여줍니다. 이야기가 어디로도 가지 않고 한 자리에서 시작하고 끝나지만 때로는 이래도 괜찮겠지요. 본선작 중에서 가장 양과자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 시가, 상담 후 판매]는 심사 이전에 한 명의 독자로서 저를 동요하게 한 작품입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어조로 시작하는데 그런 어조로 전하는 도입부 내용에 너무 거부감이 일어 당혹스러웠거든요. 혹시 그런 효과를 기대한 걸까? 아니면?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읽어나가다 중반에 이르러 반전이 생기면서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지만, 이내 어, 어 하다가 소름 끼쳐 하며 망연자실 결말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요. 호오를 떠나 이 정도로 불가항력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은 작가에게 힘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무서웠다는 건 믿어졌다는 것이지요. 이야기를 다루는 솜씨가 입 댈 곳 없이 깔끔하고 도시적인 분위기도 좋습니다. 원하는 이야기를 익숙하게 연주할 수 있는 작가의 역량이 뚜렷합니다.
[탐정에겐 후식이 있어야 한다]. 실제 인물명, 지역명 등 특정성을 가진 정보로 묘사를 대신하는 것은, 그걸 아는 사람에게만 전해진다는 것 말고도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독자와 작가의 인식이 과연 같은가. 작가는 좋은 취향의 고급품임을 나타내고 싶어서 쓴 브랜드명이 어떤 독자에게는 한물 간 취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까요. 이어서, 설령 성공적으로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할 때 그 부분만 지나치게 해상도가 높아 다른 부분의 초점을 뭉개지 않는가. 더욱이 특정성 있는 정보는 빠르게 의미가 변하고 대체됩니다. 신분당선 연장개통 전인 5년 전의 미금역과 지금의 미금역은 점포도, 분위기도 퍽 달라졌어요. 다만 이 작품에서는 너스레에 섞어서 유쾌하게 넘기는 방식으로 위험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두 인물의 케미는 작가도 쓰면서 즐거웠다는 것이 느껴져 더욱 흥이 납니다.
다루고 있는 소재 대부분이 ‘디저트’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연상하게 되는 것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어서 반칙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디저트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지를 작중에서 폄으로써 논란을 일소했습니다. 디저트물이란 디저트에 관해 쓴 것이라고 할 때 디저트를 논한 글 역시 디저트물임에 틀림없겠지요. 줄거리 전개와 그 사이사이의 재미요소 밸런스도 좋았습니다.
[크렘브륄레 크래프트] ‘마법사의 제자’를 연상하게 하는, 그 대안 같은 소재 ’마녀의 조수’. 권위, 일탈, 파국, 회복이라는 전자의 대척점에 서서 21세기 사제관계의 다른 모델을 제시한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작품세계가 확실하고 안정감이 있어 편하게 읽힙니다. 이야기에 굴곡이 부족한 점은 아쉽습니다. 단일 단편이라기보다 죽 이어질 이야기의 첫 부분 같은 느낌입니다.
[피의 발렌타인 데이 연대기] 발렌타인 데이에 관한 블랙유머에 좀비물을 섞어, 여행 기념품으로 파는 전갈사탕처럼 꺼림칙하면서도 짜릿한 결과물이 태어났네요. 작품의 전후반부를 잇는 뼈대이자 호러의 바탕에 색다른 맛을 가미하는 로맨스의 힌트가 너무 박한 것, 용문에서 태령으로 이어지는 복수 액션이 좀 단조로운 것이 흠입니다. 소재인 초콜릿이 무기 또는 당분 보충을 위해 쓰일 뿐 주인공의 소회가 머물지 않은 점도 살짝 아쉬웠습니다.
[소금 사탕] 단맛과 짠맛은 실은 상보적이지만 일견 대립항으로 여겨지지요. ‘소금 사탕’이라는 제목에서부터 그런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25년 시차를 둔 주인공과 주인공의 직장 풍경이 미스터리 판타지의 얼개를 짜고 거기에 수수께끼의 핵심 열쇠로서 사탕이 끼어 들어가며, 크리스마스가 배경으로 깔리는 것까지 훌륭하게 어우러진 풍미의 균형이 감탄스럽습니다. 서두의 현재형 서술을 그대로 죽 유지해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드네요. 그 편이 시야를 좁히면서 서스펜스 느낌을 주어 독자에게 이것이 기묘환상담인 것을 더 확실히 알려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환상특급》이나 《기묘한 이야기》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