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브릿G 매거진의 공식 질문입니다. 『이계리 판타지아』를 집필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장편 소설을 써보고 싶었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어반 판타지 문학 공모전 준비 중에 브릿G 자유게시판에서 ‘어반 판타지’라는 장르의 정의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어요. 저도 어반 판타지 장르를 좋아해서 댓글을 남겼는데, 브릿G 작가 회원이신 ‘나쁜마녀 님’이 “시골을 배경으로 하면 어반 판타지가 아닌가요?”라고 물어보셨어요. 그 말을 듣고 ‘시골이라고 어반 판타지가 안 될 거 없지. 그럼 무엇이 나와야 할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줄줄이 떠올라 한번 써볼까 했던 게 『이계리 판타지아』였어요.
Q. 그렇다면 『이계리 판타지아』는 어반 판타지라는 장르를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네요. 평소에 좋아하셨던 어반 판타지 작품들이 있으신가요? 독자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작품을 꼽아 보자면요.
A. 어반 판타지 작품을 많이 쓰는 닐 게이먼 작가의 작품들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클라이브 바커도 좋아해요. 스티븐 킹 소설도 어반 판타지 설정이 은근히 많긴 하죠.
추천하고 싶은 작품으로는 최근에 재밌게 읽은 닐 게이먼의 『신들의 전쟁』과 『네버웨어』, 스티븐 킹의 『부적』과 『다크타워』가 있습니다. 『다크타워』는 2부에서 뉴욕을 배경으로 현실과 환상이 충돌해 어반 판타지로 볼 수 있어요.
Q. 어반 판타지는 현실을 기반으로 상상력이 더해진 현상 세계로, 단순히 서양의 흡혈귀나 위어울프만이 아니라 그 범위가 몹시 광범위하죠. 하나의 장르로만 분류하기에는 장르가 혼재되어 있을지 모르겠네요. 말씀하신 클라이브 바커는 작가님의 단편 「신입사원」에서 연상되는 지점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신입사원」도 어반 판타지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계리 판타지아』 역시 어반 판타지면서도 괴기한 형상을 지닌 괴이들로 인해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었어요.
A. 「신입사원」은 조금 애매한데, 쓸 때는 코스믹 호러에 가깝게 쓰고 싶었어요. 반면 『이계리 판타지아』는 무섭게 쓰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어요. 러브크래프트 작가의 초창기 몇 작품은 어반 판타지로 분류되기도 하는데요. 러브크래프트 소설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 ‘아컴’은 실존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그 도시의 이면에 우주적인 존재들이 좌지우지하고 있었다는 설정이 있어요. 다소 무리한 주장일지도 모르지만,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어반 판타지로 분류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어반 판타지 작품으로는 『퇴마록』이 있네요.
Q. ‘강미호’를 판타지 작가 지망생이자 여성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야밤 뒷산에서 미호가 어둑이라는 괴이를 기다릴 때나, 또 말하는 고양이나 얼굴이 계속 변하는 이장을 보고도 놀라지 않을 때 대담하게 느껴지는 면모들이 있거든요.
A. 캐릭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본 적은 없어요. 쓰다 보면 캐릭터가 보입니다. 성별 또한 딱히 고려하지 않고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편인데요. 성별을 정해 놓지 않고 쓰다가 남자일 수밖에 없구나 하면 그때야 성별이 정해지는 거죠. 그런 맥락에서 미호는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하이퍼리얼리즘 형태로 시골의 공포를 몸소 체감하려면 미호가 여자인 편이 더 와 닿지 않을까 했어요.
미호의 성격과 관련해서는, 조풍이 늦은 밤에 흉조를 잡겠다며 미호의 집에 찾아오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거기서 트럭 뒤 짐칸에 탄 미호가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언제부턴가는 오직 흉조를 잡기 위해 활쏘기에만 몰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을 통해 어떤 순간의 상황에 훅 빠지고 매료되는 사람의 성정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Q. 『이계리 판타지아』의 주요 캐릭터들은 다른 액션이나 판타지 소설에서 선량한 캐릭터로 묘사되는 주인공들과 달리, 예상 밖으로 냉정하게 행동하거나 짜증이나 분노를 드러내기도 하고 심지어 부도덕한 모습도 보여줍니다. 이런 모습은 인간적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량하지만은 않은 캐릭터의 의외성에 놀라기도 했어요.
A. 저는 악한 사람인데 좋은 일을 하는 캐릭터를 좋아해요. 악인이 선한 행동을 하면 대개 감격스러울 때가 있잖아요. 근본적으로 완전히 선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일제 강점기부터 살아오신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요. 오래 살다 보면 그 사람의 선함이나 악함과는 무관하게 시대상에 따라 변화하는 도덕률에도 무관심해지는 등 가치관이 달라져요. 수천 년을 살았으면 생명의 무게가 남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캐릭터의 냉혹한 태도에서 드러난 것 같습니다.
Q. 미호는 자신의 목표에만 집중하여 대의나 정의와는 상관없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는데요. 앞으로 캐릭터성이 변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갈까요?
A. 구상 중인 『이계리 판타지아』 2부에서는 조풍이 어려지는데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거기다 완전한 기억상실은 아니고, 무언가를 할 줄 알고 방법도 아는데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게 되어 몹시 무기력해집니다. 가령 운전을 할 줄 알고 운전을 하는 방법도 알고 있지만, 실제로 운전대를 잡으면 할 수 없는 거죠. 이후 무기력해진 조풍은 미호 옆집인 귀녀 할머니 집으로 도망치듯 이사를 오는데요. 1부에서 귀녀 할머니의 집이 원래 조풍의 집이었다고 나오는데다가 귀녀 할머니는 서울에 계시니까, 그곳에 머물게 되는 거예요. 조풍이 아기 호랑이가 되었지만, 채식주의자에 가까워서 생활 전반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1부의 이야기를 지나 온 미호의 성장 방향은 세상을 구하는 고전적인 영웅상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좀 더 자신의 인생을 재밌고 자유롭게 사는 좋은 인간이 되기는 하겠지만, 작가이자 궁수로서 본인이 성숙하는 게 선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Q. 『이계리 판타지아』의 작품 배경은 경상도 시골인데요. 작가님은 서울에서 출생해서 서울에서 쭉 살아오셨다고 하셨는데, 시골 생활을 직접 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A. 지인들이 시골에 많이 살고 있어요. 취미로 활쏘기를 즐기는데 시골은 활을 쏘기 좋은 넓은 장소들이 있어요. 그래서 오토바이 타고 활 들고 가서 시골에서 며칠 쏘고 돌아오는 일이 많아요. 이계리의 공터에서 미호가 활쏘기를 연습하는 장면이 그와 비슷해요. 활쏘기에 관해서도 상세하게 다룰까 고민했는데, 용어도 복잡하고 사법 이야기까지 나와서 두루뭉술하게 다뤘어요.
Q. 지명과 현장 묘사가 구체적이고 사실적인데요. 창녕 우포늪도 실제로 자주 가시는 곳인가요? 시골 배경을 어반 판타지라는 장르 안에서 표현할 때 나름의 기준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A. 우포늪에도 바이크를 타러 갔었습니다. 지금은 개발이 되어서 깔끔하고 보기 좋아졌는데, 예전에는 음산한 느낌은 아니었어도 사람은 거의 없고 새밖에 없었거든요. 늪지대에 가면 정말로 메기들이 밥을 주는 줄 알고 우르르 몰려와요.
‘이계리’는 어느 정도 전형성을 띤 시골로 그리고 싶었어요. 마을회관, 6시 내 고향, 정자 등 관념적으로 시골에 있을 법한 것들을 등장시켰죠. 해외의 어반 판타지를 보면 뉴욕을 배경으로 했을 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꼭 나오는 것처럼요.
Q. 특별히 애정하는 캐릭터가 있을까요?
A. 저는 제 캐릭터들이 모두 다 좋더라고요. 굳이 고르자면 ‘김 서방’에 조금 더 마음이 가요. 처음에는 다들 김 서방 보고 시골에 가면 이런 사람 있다며 질겁하며 싫어하시다가, 나중에는 김 서방 아저씨가 잘못될까봐 안쓰러워하시더라고요.
Q. 그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이야기 안에서 캐릭터가 알아서 움직일 수 있도록 내버려 두신다는 느낌이 들어요. 작품에서 미호가 생각하는 작가상은 개보단 고양이라고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었는데, 이런 게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작가상이신 건가요?
A. 제가 생각하는 작가상은 매일 술 먹고 방 안에 은거하는 이미지예요. 조풍처럼 턱수염이 있지는 않아요.
Q. 미호가 컴퓨터가 아닌 펜으로 노트에 글을 쓰는 이유가 있나요? 조풍은 신문물에 익숙할 것 같은데 펜으로 집필하나요? 작가님도 펜으로 글을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A. 의외로 펜으로 글을 써서 나중에 컴퓨터로 옮기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조풍은 펜으로 쓸 것 같습니다. 저는 무조건 컴퓨터로 씁니다.
Q. 평소에 글은 주로 언제 쓰시는지요?
A. 아무래도 회사를 다니다 보니까 시간대는 불규칙해요. 가끔이지만 단편도 많이 쓰는 편인데요, 불면의 밤이 이어지는 새벽에 갑작스레 착상이 떠오르면 단편을 씁니다. 아이디어나 설정을 따로 메모하지는 않고 브릿G 에디터에 바로 써요. 브릿G 에디터 굉장히 좋습니다.
Q. 『이계리 판타지아』 연재 초기에는 로맨스 태그가 있었지요. 그래서 독자들 사이에서 로맨스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한 조풍에 대해 호불호가 나뉘기도 했었는데요.
A. 처음에는 조풍을 로맨스 소설의 남자 주인공 느낌으로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모든 분이 조풍을 좋아하기보다는 절반 정도는 좋아했으면 좋겠고 절반 정도는 싫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풍만은 남자 주인공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실제로 있었고요. 그렇게 『이계리 판타지아』 1부를 쓰다 보니 이야기가 더 길어질 것 같았어요. 동시에 완결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그렇게 쓰려면 이야기에 로맨스가 들어올 여지가 없더라고요. “이 와중에 무슨 로맨스야.”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Q. 로맨스 태그가 사라져서 아쉽기도 하지만, 전형적이지 않아서 좋기도 했습니다. 귀녀 할머니와 조풍도 스승과 제자 사이라고 하기에는 좀 더 애틋한 느낌이 들어 두 사람의 과거가 궁금해졌는데요.
A.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귀녀 할머니의 외전을 써둔 것이 있어요. 귀녀 할머니가 어렸을 때의 이야긴데요. 학교 남자애들을 때려서 뼈를 부러뜨린 탓에 선생님이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했는데 조풍이 오는 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mrgreen: 귀녀 할머니와 조풍의 관계는 부녀나 사제에 가깝고 서로 연애 감정이 있었더라도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조풍이 과거에 연애했던 상대는 따로 있기도 하고요.
Q. 조풍이 채식주의자 느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조풍의 식사는 괴이나 다른 존재를 먹는 것으로 이루어지고 사람과 식사하는 것은 흉내 내기에 가까운 건가요?
A. 그렇죠. ‘도철’의 먹는 장면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모사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조풍과 도철의 자양분과 원동력이 되는 것은 그들에게 부여된 지위를 충족시키는 사람들의 원념과 열망, 그리고 갈망입니다. 이야기는 이야기의 해석이 만드는데, 가령 학살도 해석에 따라 영웅담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죠. 조풍과 도철은 그처럼 이야기의 해석에 녹아 있는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으로부터 존재합니다. 조풍의 경우 부여된 지위가 이야기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읽어주는 것으로 충족되어 존재하죠. 조풍이 잔뜩 멋 부리고 다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Q. 김 서방을 도깨비라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얼굴이 바뀌는 등의 설정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는데요. 조풍 아버지의 얼굴이 계속 바뀌는 이유는 용이 실체가 없기 때문인가요?
A. 제가 중국에 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용은 천변·무변해서 사람을 그대로 반영해주는 거울 같다고 해요. 그래서 모든 얼굴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어요.
Q. 이야기의 끝에 조풍은 아기 호랑이로 다시 돌아오는데요, 이들에게는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습니다.
A. 잊히지 않으면 존재 자체는 소멸하지 않습니다. 『이계리 판타지아』를 쓰고 한참 뒤에 『신들의 전쟁』을 봤는데, 닐 게이먼 작가도 비슷한 생각을 했더라고요. 신성(神性)은 사람들에게 잊혀 더는 숭배를 받지 않을 때 완전히 사라지는 것으로 묘사했더라고요.
“말했지? 나 너 엄청 싫어한다. 자꾸…….” – 『이계리 판타지아』 본문에서
Q. 미호가 포뢰에게 점진적으로 애틋한 마음을 가질 줄 알았는데, 결말에 이르러서도 포뢰가 싫다고 냉정해서 캐릭터의 성격에 놀랐습니다.
A. 싫은 내색을 할지언정 지켜만 볼 수는 없고 그게 옳은 일이라 도와줘야겠다 싶으면 행동을 하는 점이 미호라는 캐릭터의 좋은 점인데요. 포뢰와의 관계를 통해 드러난 이와 같은 부분이 제가 생각하는 인간적인 성숙이자 좋은 사람의 자질입니다.
Q. 반면 미호가 싫다고 내색하지도 않고 호의를 베풀었던 캐릭터로는 ‘소년’이 있었는데, 소년의 이야기는 이질적이어서 색다르게 다가왔어요. 소년이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언어를 빼앗긴다는 점에서 소의 이미지가 굉장히 강렬했습니다.
A. 소년의 이야기는 두 번째 에피소드까지 쓴 이후에, 괴이가 나올 때마다 때려잡는 전개가 반복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선택한 거예요. 저에게도 굉장히 이질적으로 다가와서 재밌었지만, 사실 그 챕터는 더 나중에 넣을까 하다가 브릿G 출판 지원작으로 선정해 주셔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대로 뒀습니다.
소년의 이야기는 실제 사례에서 가져왔습니다. 신 내림을 거부한 남자분이 7살 때부터 15살 때까지 실어증에 걸리셨는데, 그분이 방에 있을 때 소가 들어왔다고 말씀해 주시더군요.
Q. 노부인이 젊음을 되찾거나 영생 얻기 위해 소년을 제물로 바쳤다고 보면 될까요?
A. 끔찍한 이야기인데, 무당이 내림굿을 하면 신통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무당이 몸주가 기운을 잃으면 못 사는 집의 어린아이를 잡아 와 배불리 먹이고 잘 대해줍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팔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 팔다리를 다 잘라 움직이지 못하게 뒤주 같은 곳에 넣어 놓죠. 소리와 빛도 모두 차단하여 아이가 바깥세상의 모든 것들을 간절하게 만든 다음, 뒤주에 조그만 구멍을 내어 쌀을 넣어줍니다. 간절했던 아이가 하나 남은 팔로 그 쌀을 집으려는 순간, 아이의 팔을 잘라 버려 그것에 원념이나 새로운 신을 모시게 한다고 합니다. 괴이들은 사람들의 바람에서 나온 존재인데요. 그런 괴이들도 자유의지가 있어서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그러한 괴이들의 바람에서 나온 존재죠. 노부인은 괴이들의 신인 소년의 힘이 탐났던 거고요.
Q. 김 서방이 미호에게 ‘김 서방 딸내미’라고 하는 이유가 있나요?
A. 도깨비는 원래 사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요. 그래서 도깨비는 모든 사람을 김 서방이라고 부른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처음에는 미호를 김 서방 딸내미라고 부르다가 나중에는 미호라고 부르죠. 그런 작은 변화가 있습니다.
Q. 흉조의 외형은 중년 남성의 얼굴을 한 인면조인데요. 이와 같은 외형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때 폭발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흉조의 설정은 기존부터 구상하고 계셨던 부분인가요?
A. 네, 그 이전에 구상한 설정이에요. 고구려 벽화를 보면 수염을 기른 새가 등장하는데 볼 때마다 이상하게 느껴져서 뇌리에 깊게 남았어요.
Q. 말하는 삼색 고양이는 미호에 한하여 의사소통할 수 있는지요?
A. 모두에게 말할 수 있지만, 미호에게만 말을 할 겁니다. 재밌는 건 그 고양이는 사실 작품에 시골을 배경으로 개가 나와서 짝을 맞추기 위해 등장시킨 캐릭터인데요. 에필로그까지 다 쓰고 보니 주요한 역할로 등장하더라고요.
Q. 정자에서 미호가 만난 할머니 두 분을 제외하고는 이계리 주민들은 사투리를 쓰지 않는데요. 이는 이계리의 주민들이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요?
A. 작품을 보시면 알겠지만, 그 두 분 제외하고는 사람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계리에는 사람과 사람이 아닌 생명체가 비율이 반반 정도일 겁니다. 도시는 튀는 사람들이 있으면 오히려 눈에 잘 들어와요. 하지만 제가 보는 시골은 어딘가 무던해서 도깨비가 있다고 한들 이웃사촌처럼 잘 지낼 것 같아요. 뱀파이어들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기도 하고요.
Q. 뱀파이어들이 공장에서 험한 일을 하는 게 신기했어요. 빛을 볼 수 없는 생물학적 특징 때문일까요?
A. 경남 시골에 위치한 비료 공장이나 시멘트 공장 등에 가보면 빛이 안 들어와요. 게다가 공장 일로 여러 나라 분이 와 계셔서 시골이 서울보다 훨씬 더 다국적이에요. 또 제가 「앤 라이스 뱀파이어 연대기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거기에서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나와요. 이러한 이유로 제가 생각하는 뱀파이어는 공장에서 일합니다. 뱀파이어와 관련한 설정이 하나 있긴 한데 2부에서 나올지는 모르겠네요.
Q.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에 막간극이 들어가는 구성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A. 처음 써 본 장편이라 단편을 연속으로 쓴다는 느낌으로 먼저 에피소드로 끊었습니다. 그리고 에피소드 사이에 막간극을 넣었는데요.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나고 막간극에 화두를 던지면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겠다 싶었죠. 2부에서도 같은 구성으로 사건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Q. 괴이를 잡고 보상을 얻는 과정이 온라인 게임을 연상시켰습니다. 이것 또한 취미가 작품에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일까요?
A. 게임을 많이 하지만, 정작 온라인 게임은 하지 않고 플레이스테이션을 주로 합니다. 브릿G에 올라온 알렉산더 님의 리뷰에서도 흉조 사냥 장면은 퀘스트 받고 아이템 먹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요. 사실 저는 조풍이 격식을 갖춘 고아한 남자기 때문에, 선물을 주기로 했으면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을 정성을 다해서 보내준다는 캐릭터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풍이 미호에게 최고의 활을 선물한 거고요. 또 조풍에게 받은 선물을 통해 미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싶었어요. 사실 미호가 그 당시 필요했던 건 활이 아니라 돈이었는데 작가 지원금을 받지 못했죠. 조풍에게 받은 활을 팔면 지원금보다 더 큰 금액을 손에 쥘 수 있었을 텐데 미호는 활을 팔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의도로 썼는데, 어찌 보면 게임 같기도 하네요.
Q. 『이계리 판타지아』 출간 이후 기억나는 인상적인 반응이 있을까요? 주변에 작품을 읽어주시는 분이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A. ‘이계리’라는 하나의 작품 배경을 보고도 다르게 나타나는 상반된 반응이 재밌습니다. 시골의 부정적인 요소들이 잘 반영되었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시골 묘사가 리얼하지 않다는 반응도 있었죠. 독자마다 기대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어반 판타지가 어려운 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가 본 시골들은 농사를 짓기보다는 귀촌하신 분들이 많아서 집도 크고 외딴곳을 선호하는 등 이전의 시골과는 달라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도시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한다는 건 익히 알고들 계시지만, 시골도 도시에 못지않게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또 의외로 많은 독자분이 초반부를 두려워하거나 무섭게 느끼시더라고요. 이후 초반부의 공포스러운 부분들이 판타지 설정이라는 것을 알고서야 안심하셨다고 하더군요. 『이계리 판타지아』는 공포 소설 같은 면모가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현실적인 공포가 크게 다가왔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얼굴을 아는 주변 사람이 작품을 읽어주는 것은 꽤 머쓱한 일이지만, 최근 들어 생겼습니다. 브릿G에 단문응원을 남기거나 만나서 소감을 이야기해 주는 일 없이 조용히 읽어주는 편입니다.
Q. 『이계리 판타지아』는 2018 부산국제영화제 필름마켓 E-IP피칭 작품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최근 원작이 있는 판타지 영화의 흥행으로 판타지 작품의 영상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데요. 『이계리 판타지아』가 영상화된다면 등장인물로 고려하고 계신 배우가 있을까요?
A. 배우 분들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미호 역할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천우희 배우님이나 배두나 배우님이 해주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배두나 배우님은 「괴물」에서 활 쏘는 자세가 너무 좋으시더라고요. 사실은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CG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집필했습니다.
Q. 2부에서는 시골 마을 ‘이계리’를 벗어나 배경이 확장될까요?
A. 해리포터 1부는 완벽한 어반 판타지죠. 하지만 2부는 호그와트와 마법 세계가 일상이 되어 런던 뒤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경이는 사라졌습니다. 이계리 2부도 같은 일이 계속 펼쳐지면 신선하다는 느낌은 사라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그렇기에 동어반복적인 이야기를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계리를 벗어나면 이계리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니까 제가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2부를 별도로 쓰게 된다면 작품명은 ‘이계리 랩소디’가 될 것 같습니다. ‘이계리 판타지아’도 즉흥적으로 지었지만, 판타지라는 장르를 작품명에 명기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덧붙이는 이야기지만 이전에 실제로 이계리라는 지명이 있었다고 해요. 현재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으로 통합되기 전 1914년에 일계리, 이계리, 삼계리 등이 있었다고 해요.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연혁/지명유래)
Q. 2부에서도 이계리의 수호자인 미호를 둘러싼 사건들이 계속 펼쳐질까요? 새로운 괴이들이 등장하는지도 궁금합니다.
A. 미호에게 악당이 계속 다가옵니다. 미호는 앞일을 예언하는 꿈을 꾸준히 꾸는데요. 그 꿈이 천천히 현실로 다가오게 됩니다.
새로운 괴이들도 등장할 예정입니다. 조풍과 그의 형제들은 중국의 ‘용생구자’라는 설화에서 차용했는데요. 용생구자는 한 마리의 용이 낳은 아홉 명의 자식들을 가리키는데, 자식들이 아홉 명이 아니라 열여섯 명 정도 있는 등 사람마다 이야기하는 것이 다릅니다. 또 용의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형태가 각기 달라 고래나 호랑이 등을 닮았다고도 합니다. 가족애 없는 용 형제들을 포함한 다양한 괴이가 2부에서 꾸준히 등장할 예정입니다.
Q. 2부에서 미호와 조풍의 로맨스는 나오나요?
A. 어느 로맨스 작가님께서 로맨스가 되려면 로맨스 대상이 붙어 다녀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마도 2부에서는 계속 붙어 다닐 것 같습니다. 조풍이 작아지기도 했고요. 사실 처음에 로맨스 태그를 달았을 때는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하렘물은 많으니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하렘물을 적어보자는 심사였어요. 그래서 미호 주변에 김 서방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을 배치했는데요. 다들 미호의 연애 대상으로 조풍 말고는 고려하지 않으시더라고요. 김 서방뿐 아니라 치과 의사 구야자, 심부름꾼 은호(은호는 조풍과 헤어져서 괜찮습니다), 강의 신 하백 등 ‘누군가는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등장인물 모두를 연애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사실 잡혀간 공주 포지션인 세연을 로맨스 대상 1호로 생각했었는데, 이를 알아차리신 분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mrgreen:
Q. 미호의 아버지는 어떻게 이계리와 얽히게 된 걸까요?
A. 미호의 아버지는 도철에게 사기를 당해 집을 구매했고 졸지에 이계리의 수호자가 되어 이를 미호가 물려받게 된 것입니다. 알고 보니 이계리 수호자의 핏줄이었다는 설정은 좋아하지 않고, 이런 설정을 작가가 시시콜콜하게 설명하는 건 재미도 없기 때문에 독자님들께서 자유롭게 생각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도철은 설계자라 이계리의 모든 일이 도철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데요. 미호의 아버지가 어둑이에 의해 사망하고 미호가 이계리로 온 것은 물론 도철이 계획한 일의 일부이지만, 정확히 그 상황을 계획했다기보다는 미호의 아버지를 속이고 앞일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봤을 뿐입니다. 도철이 의도치 않은 상황대로 흘러갔다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자는 마음으로요.
Q. 도철과 조풍의 전투 장면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외전으로 풀어줘도 재밌을 것 같아요.
A. 도철과 조풍의 전투 장면을 기대하게 해놓고 다루지 않아 아쉬워하셨던 분들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조풍은 세상 모든 것에 애정을 가진 유쾌한 사람이고 도철은 인생을 즐기고 싶다는 바람이 명확한 사람인데요. 특히 도철은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먹을 땐 맛있게 먹고 싶어서 비공개 미식동호회를 운영하기도 하는데요. 회원들에게 맛있는 가게의 리스트를 공유하고, 1년에 한 번씩 회원들을 아무도 모르는 맛집에 초대해서 최고의 요리를 대접한 후에 회원 전원을 잡아먹는 거죠. 그래서 이 비밀스러운 미식동호회를 운영하려면 늘 일정한 회원 수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런 점이 또 재밌습니다.
Q. 브릿G의 첫 번째 종이책 단행본인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출간 당시 간단히 서면 인터뷰를 했는데, 수록작 「이화령」을 엄청 빠른 속도감으로 쓰셨다고 하고요. 「동호회」도 시골에 활 쏘러 가셨다가 본 것을 소재로 쓰셨다고 하셨고요.
A. 「이화령」은 속도감이 중요한 이야기라 뉴스 시작하기 전 30~40분 안에 썼어요. 「동호회」는 활을 쏘고 있는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저씨 한 분이 골프채를 들고 농로를 따라 산으로 올라가시는 모습을 보고 그 이유가 궁금해서 써봤습니다. (→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10인의 작가 랜덤 인터뷰)
Q. 『이계리 판타지아』도 논과 시골주택 등 시골의 세부사항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도시에 살고 계시지만, 작중에서처럼 시골 생활에 더 매력을 느끼시나요?
A. 그건 아닙니다. 원래 『이계리 판타지아』의 배경으로 하고 싶었던 장소는 을지로의 세운상가나 조명거리, 종로의 낙원 상가, 용산이었어요. 그곳에는 이상한 것들이 몹시 많아서 어반 판타지에 최적인 장소지만, 가보시지 않은 분들께는 설명해도 잘 와 닿지 않는가 보더라고요. 『이계리 판타지아』의 시골 풍경도 자신이 아는 시골과 다르다는 반응이 있었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어반 판타지의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아는 익숙한 곳임에도 ‘그곳에 이런 게 있었네?’라는 의아함이나 위화감을 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Q. 활쏘기같이 평소에 즐기시는 취미가 작품의 소재에 자연스레 녹아나는 것 같아요. 「이화령」에서도 취미로 즐기신다던 사이클에 관한 부분들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전해졌는데, 실제로 사이클을 타시면서 「이화령」을 구상하셨는지요.
A. 이화령은 아니고 국토종주를 하러 비슷한 규모의 산을 혼자 넘어간 적이 있어요. 예약해 둔 숙소가 있어서 그 산을 일찍 넘어가야 했는데, 시간을 잘못 맞춰서 밤에 가게 된 거예요. 그런데 그때 뒤에서 어떤 분이 따라오더라고요. 자전거 타다 보면 모르는 사람이 뒤에 붙는 게 달갑지 않아서 앞질러 가라고 속도를 늦췄는데, 뒤에 오시던 분은 저를 앞질러 갈 실력은 안 되고 저는 저대로 그분을 떨어뜨릴 실력이 안 돼서 애매모호하게 산을 넘었던 일이 있었어요.
Q. 『이계리 판타지아』의 2부인 ‘이계리 랩소디’ 이외의 다른 작품도 구상하고 있으신지요? 집필해 보고 싶으신 장르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다크 판타지 로맨스를 써보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로맨스에 기대하는 작품의 정서가 밝고 결말이 행복한 이야기라 정서적 학대와 파멸을 다룬 로맨스를 기대하진 않을 것 같지만, 기회가 된다면 어반 판타지 느낌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써보고 싶습니다. 줄리엣이 무기력한 여자가 아니라 지구를 파멸시킬 수 있는 존재로 나오는 코스믹 호러입니다.
저는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명확하게 들려야 글을 쓸 수 있어서 사극은 다소 험난할 성싶고, 쓴다면 김용 선생님 같은 초장편 무협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무협 정서의 핵심을 지켜가면서 쓴다면 현대든 과거든 시대적인 배경은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무협이 현대를 배경으로 하면 관점에 따라 어반 판타지로도 볼 수 있고요.
Q. 브릿G 초창기부터 활동했는데 어떻게 알고 오셨나요? 브릿G 독자로서 관심 있게 본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황금가지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브릿G를 알게 되었습니다. 브릿G에서 활동하기 전에는 글을 써본 적이 없었는데, 브릿G를 통해 처음으로 「동호회」라는 작품을 썼습니다.
좋아하시는 많은 작가님들이 있지만 이나경 작가님을 좋아합니다. 『전신보』가 빨리 완결되고 계약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브릿G를 이용하시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옛날 작품이 묻혀서 아쉽습니다. 웹에 작품을 등록한 지 6개월 또는 1년이 지났다고 구간이라고 보기는 힘든데, 초창기에 올라왔던 좋은 작품들이 새롭게 노출되어 꾸준히 만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특히 브릿G에서는 공포 장르의 작품을 많이 지원해 주시면 좋겠어요. SF의 경우엔 ‘크로스로드’나 ‘거울’ 등이 있고 로맨스도 다른 플랫폼에서는 많이 만날 수 있지만, 공포 단편은 브릿G 말고는 없어서 더욱 많이 조명되면 좋겠습니다.
Q. 브릿G가 곧 2주년을 맞이합니다. 축하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A. 브릿G의 오픈은 저의 글쓰기 시작과 맞물려 있어서 더욱더 기쁘네요. 브릿G 이전에는 중단편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는데, 브릿G가 생겨서 좋아하는 단편을 공개하고 볼 수 있어서 정말 좋고 감사합니다. 브릿G가 많은 작가를 발굴하여 오래 운영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