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평·김성곤(문학 평론가, 서울대 교수)
본심에 오른 작품은 『화조풍월』, 『항해』, 『시대 세공사』, 『몸』등 네 편이었다. 각각 동양 팬터지, 해양 팬터지, SF 팬터지, 호러 팬터지로서 서로 다른 특성을 갖추고 있었다. 팬터지가 마법과 모험이라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상징과 은유만으로 주제를 담아낼 수 있는 단편과 달리 장편은 그에 걸맞도록 플롯과 스토리라인이 뚜렷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문학상 본심에 오른 네 작품 중 어느 한 편도 그런 힘있는 서사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은 몹시 아쉬운 대목이다. 이중에서 당선작은 이견없이 『몸』으로 결정되었다. 『몸』은 서사 자체의 흡인력이라는 점에서 발군이었고,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많은 미덕을 지니고 있었다.
『화조풍월』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점과 우리 옛말의 구사는 좋았으나 뚜렷한 주제 의식을 담아내지 못했고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흐른 서술과 산만한 구성이 가장 큰 흠이었다.
『항해』는 고등학생의 작품답지 않은 원숙함과 해양 팬터지와 성장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선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극적 요소가 부족했고, 작품의 배경이나 등장 인물들이 너무 서양적이었다.
『시대 세공사』는 한국을 배경으로 미래 소설과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소설의 요소를 가미한 SF 팬터지로, 복합적인 구성과 진지한 주제 의식이 돋보였으나 설정 자체에 지나친 내공을 쏟다 보니 정작 중요한 스토리라인을 놓쳐 주객이 전도되는 오류를 범했다.
『몸』은 열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연작 형식의 작품으로, 눈, 입, 얼굴, 귀, 머리카락, 손 등 신체의 부분 부분을 소재로 삼아 몸이 지니고 있는 그로테스크함을 포착한 점과, 일상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에 대한 초현실적 묘사가 돋보였다.
돌발적인 반전이나 반복의 모티프들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서사의 흐름을 조율해 내는 드라마투르기도 중요한 미덕이었고, 정신 분열적 상황에 빠진 인물의 1인칭 시점으로 환상과 현실을 교직하며 섬뜩한 환상들을 포착해 내는 솜씨도 좋았다. 이런 장점들에 비해, 일상에 대한 묘사가 거칠고 정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상대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프롤로그의 상황과 정교하게 맞물려 들어가는 에필로그를 통해 그런 문제들을 비교적 노련하게 해결하고 있는 작가의 역량은 믿음직스러웠고, 작품 또한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또 이 작품은 주인의 통제를 벗어나 기괴하게 변형된 위협적인 몸을 은유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소외된 현대인들이 비인간적인 산업사회 속 타자들과 갈등을 빚다가 파멸하는 과정의 공포를 잘 표현했다.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로 팬터지 문학 장르에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다줄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 생각되었다.
주인공들을 각각 영화 감독과 작가로 설정해 꿈과 현실, 그리고 창작과 표절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천착한 점도 높이 평가해 『몸』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평·서영채(문학 평론가,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본심에서 논의된 작품은 『화조풍월』, 『시대세공사』, 『향해』, 『몸』, 네 편이었다. 당선작은 특별한 논란 없이 『몸』으로 결정되었다. 『몸』은 무엇보다도 서사 자체의 흡인력 면에서 발군이었고, 경쟁작들에 비해 많은 미덕을 지니고 있었다.
『몸』은 열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연작 형식의 작품이다. 눈, 입, 얼굴, 귀, 머리카락, 손 등 부분 대상으로 독립한 몸 자체가 지니고 있는 그로테스크에 대한 포착과 일상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에 대한 초현실적 묘사가 돋보였다. 돌발적인 반전이나 반복의 모티프들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서사의 흐름을 조율해 내는 드라마투르기도 『몸』이 지닌 중요한 미덕이었고, 정신 분열적 상황에 빠진 인물의 일인칭 시점으로 환상과 현실을 교직해냄으로써 실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섬뜩한 환상들을 포착해내는 솜씨도 좋아 보였다. 또한 액자 소설이라는 틀을 통해, 에피소딕한 이야기들을 하나로 엮어냄과 동시에 공포 소설이라는 다소 낯선 장르에 대한 성찰적 기제를 마련해 둔 것도 작품 전체의 안정감에 기여했다.
이런 장점들에 비해, 일상에 대한 묘사가 거칠고 정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상대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단순히 폭력성이나 환상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공포나 폭력성 자체에 대한 성찰에까지 이를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폭력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앞서게 됨으로써 폭력성을 잉태하는 상황이 단순화되고 그에 따라 작품이 의거하고 있는 인간학도 마찬가지로 단순하고 소박한 차원에 머물게 되는 것이 아닌가, 밀도 있는 문체는 단순히 서사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철학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점에 대한 성찰이 아쉬워 보였다.
전체적으로 네 편의 후보작을 읽으며, 이제는 장르 소설의 영역에서도 서사의 깊이가 강조되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묘사는 기본이다. 하지만 서사의 판을 까는 일에 지나치게 힘을 기울이다가 정작 서사 자체는 용두사미로 끝나고 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몸』의 작가는 서사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만큼 자신의 소재를 다루는 데 능숙했다. 『몸』에서 보여준 강렬한 묘사가 향후의 작품을 통해 서사의 깊이로 심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심사위원평·이종호(소설가)
상징과 은유만으로 주제를 담아낼 수 있는 단편과 달리 장편은 그에 걸맞는 플롯과 스토리라인이 뚜렷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문학상 본심에 오른 네 작품 중 어느 한편도 그런 힘 있는 서사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은 몹시 아쉬운 대목이다. 『몸』과 『시대 세공사』를 상위에 두고 『화조풍월』과 『항해』를 그 아래에 두었다는 것을 앞서 밝힌다.
우선 『화조풍월』. 완결이 나지 않아 뚜렷한 주제 의식을 담아내지 못했을 뿐더러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흐른 서술과 산만한 구성이 가장 큰 흠결이었다. 작가가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지 못하면 작품은 균형을 잃고 만다. 방대한 분량에 비해 이렇다 할 스토리 라인이 잡히지 않는 것이나 작중 인물에 공감할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항해』는 무난하긴 하였으나 극적 요소가 부족했다. 서사를 이끄는 힘은 사건과 갈등이다. 이 작품은 이 두 가지 모두에서 미진했다. 바다를 찾아나서는 에알키와 에알키를 데려오려는 이니스의 추격전은 처음부터 동기와 필연성이라는 면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으며, 이로 인해 여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 또한 긴장감을 잃고 말았다. 결국 작가는 바다에 도착한 에알키가 “왜 왔지?”라고 반문하고 이니스 역시 “왜 따라왔지?”라 말하는 자가당착적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고야 말았다.
『몸』과 『시대 세공사』는 나름의 장단점을 가진 작품이었으나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과 작가의 목소리에 있어 한층 강렬한 호소력을 전한 『몸』에 좀 더 후한 점수를 주었다.
『시대 세공사』는 언뜻 음모 이론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재가 흥미로웠다. 비록 「나이트메어」나 「매트릭스」, 「다크시티」, 스티븐 킹의 「타로 카드」 같은 여러 영화나 소설에서 차용된 설정이 눈에 거슬렸으나 그에 못지않게 작품 곳곳에서 빛을 발한 참신한 아이디어는 단점을 상쇄시킬 만큼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처럼 복잡한 설정과 장치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설정 자체에 지나친 내공을 쏟다 보니 정작 중요한 스토리라인을 놓쳐 주객이 전도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덕분에 미래에 발생한 한 살인사건이 중심에 있어야 할 작품은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과 왜곡된 기억, 뒤틀린 시공간 등 그 배경을 설명하는 것만도 힘에 부쳐 보인다. 여기에 독자는 쉼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곤혹스럽기만 하다.
이번 문학상에서 수상작을 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망설임이 있었으나, 그 수상작을 『몸』으로 선정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몸』은 문학상뿐만 아니라 국내 장르 문학에서도 쉽게 접하기 힘든 공포 소설이다. 흔히 공포는 인간에게 남은 가장 원시적 감정이며 그 영역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다고들 한다. 인간의 몸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각기 다른 이야기를 펼쳐낸 이 연작 소설은 그런 공포의 영역을 무난히 탐구해 냈다. 인간에게 가장 친숙하면서 그 일부이기도 한 몸이 주인의 의사에 반해 제각각 다른 생명체로 진화할 때 우리는 낯선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그 무한한 공포에서 헤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를 죽이는 방법뿐이다. 몸은 왜 주인을 배반하고 공포의 대상으로 돌변하는가. 작가는 우리에게 또 다른 몸이기도 한 현실의 부도덕성에서 파생된 필연적 광기와 죄의식으로 그 답을 찾고 있다. 비록 각각의 이야기를 한 그릇에 담아 내지 못해 장편으로서의 호흡이 아쉬웠고 반복적이고 전형적인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점은 단점이었으나, 국내 공포 문학의 가능성과 작가의 잠재력에 희망을 걸어 보며 수상작으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