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심 심사평 조원희(영화감독)
「백투더퓨처」를 본 이후로 타임 리프는 개인적으로 언제나 중요한 관심사였다. 단순히 시간을 오간다는 공간적 전환이나 타임 패러독스 같은 일종의 퍼즐을 초월한, 신선한 타임 리프의 서사들이 출판계와 영화계를 점령하고 있는 이 때, 아직은 구태한 타임 슬립과 시간 반복의 소재들이 전체적인 공모작들의 경향이라는 부분이 아쉬웠다. 하지만 최대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참가작들의 장점을 찾으려 애썼다.
「1교시」는 현실적인 배경 설정 아래 간단하게 시작된 게임의 규칙이 점점 복잡한 사건의 연쇄로 확장되는 구성이 매력적이었다.
「Cafe;보름달」은 흔한 림보 서사를 미려한 서술로 풀어내면서 매우 당연한 만큼 더욱 묘사하기 힘든 인생의 마감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높은 완성도로 구현해 내는 데 성공했다.
「엡실론」은 정통 과학소설의 톤과 스릴러적 구성이 비교적 정교하게 짜여져 있어 앞으로 완성될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날의 꿈」에는 전형적이고 관습적인 소재가 짧은 분량 안에서 의외성 강한 사건으로 전개되는 흥미로움이 존재했다.
「목격자」는 대부분의 과학 소설 독자들이 알고 있는 실제 사건을 흥미롭게 각색했다는 부분이 용기있는 시도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최근의 장르 소설에서 차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서사를 혼합해 조금은 번할 수 있는 스토리 텔링을 보완하는 장점이 엿보였다.
「Fixed Future」는 아시모프의 단편을 보는 듯 한 장르적 쾌감을 지니고 있었다.
「월요일이 없는 소년」은 독특한 인물을 포진시켜 자칫 반복적으로 끝날 수 있는 서사를 장황하지 않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했다.
추천할만한 공모작들도 있었다.
「세이브」는 PC 게임의 저장 기능을 차용해 긴 분량을 축약한 것이 아니라 단편의 깔끔한 서사로 풀어낸 작법이 매력 있어 추천하게 됐으며 「러브 모노레일」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아이디어를 길지 않은 서사로 풀어냈는데, 지나치게 압축돼 있다는 점을 극복한다면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추천한다.
가장 돋보였던 참가작은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찾아 헤멘 나날들』이었다. 장르 소설로서의 대중성과 타임 리프의 전통적 서사 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장편 소설로 본 공모전의 취지와 가장 부합되는 성격을 지닌 동시에 뛰어난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본심 심사평 김용언(북칼럼리스트)
한국을 배경으로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면 어떤 설정이 가장 설득력 있게 읽힐 수 있을까? 쉽게 예상할 수 있듯 본선에 오른 대부분의 작품이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연인이라든가 가족 등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의 복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동시에 몇몇 작품들이 보여주듯 한국사회의 가장 예민하고 불안한 지점을 시간여행이라는 불가능한 상상으로 건드리는 지점은 꽤 중요하게 다가온다. 즉 인생을 결정하는 차원의 대학 입시 시험이라든가 사회적 재난을 배경으로 한 불안감의 심리가 시간여행을 둘러싼 욕망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특히 최근 세월호 참사를 겪은 한국사회에서 삼풍백화점이라든가 성수 대교의 붕괴, 지하철 방화 등 연달아 떠오르는 재난의 기억은, 과거를 바꿈으로써 현재를 바로잡겠다는 욕망이 상당한 현실적 설득력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본선에 오른 작품들 중에선 장편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찾아 헤맨 나날들』과 단편 「러브 모노레일」, 「그날의 꿈」이 가장 눈에 띄었다. 세 작품 모두 과거의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이라는 동일한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각자의 독자적인 장점 또한 갖추고 있다.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찾아 헤맨 나날들』에선 시간여행을 점집이라는 한국적 판타지의 공간과 결부시키면서 각 챕터별로 무리없이 사건을 진행시키고 심리적 변화를 묘사하는 필력이 돋보인다. 다만 과거의 연인(들)에 대한 남성적 판타지가 상투적 차원을 넘어서 좀 더 정교하게 조명되었으면 더 흥미롭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러브 모노레일」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연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마지막 장면의 다소 냉소적이면서도 귀여운 반전에 이르기까지 시간여행의 순정만화적 매력을 한껏 극대화하고 있다. 「그날의 꿈」은 죽은 연인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회적 재난을 음모론으로 바라보려는 한국사회의 불안감이 결합되면서 시간여행의 경험이 공포 스릴러로까지 확장되는 시도가 흥미로웠다. 이 세 작품들과 나머지 작품들을 비교한다면, 시간여행이라는 설정의 정확한 규칙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좀 더 자유로운 이야기의 전개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머지 작품들은 설정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소설적 재미에는 미치지 못하거나, 혹은 물리적 시간여행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심리적 여행으로만 그치는 상상이라는 명백한 단점들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