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무협 시리즈는 연민할 수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연민하기엔 각박한 세상 위에 풀어놓는다는 기분으로 썼습니다.”
대표적인 무협 작가 좌백과 진산 부부가 각각 개와 고양이를 소재로 발표한 연작 단편선 『애견무사와 고양이 눈』 출간을 기념해, 두 작가님과 책으로 못다 풀어낸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어떻게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무협 단편 소설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공동 작업과 연작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 부부 작가의 일상, 그리고 함께 사는 동물 친구들까지! 진중하고도 유쾌하며 풍성한 이야기로 가득한 그 이야기를, 브릿G 매거진으로 소개합니다!
Q. 벌써 2년 전의 일이네요. 좌백 작가님의 「들개이빨」이 처음 브릿G에 올라왔을 때 잠시 SNS에 소란이 있었습니다. 브릿G에 올라온 작품과 필명을 두고 ‘그 좌백이 맞는지’를 두고 분분하다가 작품을 끝까지 읽으시더니 과연이라며 존재를 확신하는 이야기들이 더러 있었더랬지요. 그로부터 8개월 후 진산 작가님께서 「고양이 꼬리」를 올려 주실 때에도 마찬가지였고요.
슈퍼히어로 창작 단편집 『이웃집 슈퍼히어로』에 수록된 두 분의 출판 단편들은 브릿G에 유료로 게재되어 있었지만, 직접 계정을 만들어 새 작품을 올려 주신 것은 처음이라 반가운 마음이었는데요, 어떻게 브릿G에 찾아와 주시고 직접 작품을 올리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좌백] 그동안 단편소설을 몇 편 썼습니다만, 대개는 그때 운영하는(운영하고 있다면), 홈페이지에 올리곤 했는데, 요즘은 홈페이지 같은 걸 안 하거든요. 요즘 주력으로 하는 건 페이스북인데 여긴 소설 같은 걸 올리긴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고…… 그래서 「들개이빨」을 쓴 이후 어디에 올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개장할 때부터 관심 있게 본 브릿G에 올리기로 했죠.
관심이 있었다는 건 장편 연재가 중심인 기존의 웹소설 사이트들과 다른 시도가 과연 성공할지, 그걸 통해 어떤 성과들이(좋은 작품들이) 나올지 관심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제 단편을 여기 올리기로 한 것은 기존의 웹소설 사이트들에 올릴 성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첫째 이유입니다. 단편이고, 상업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둘째로는 늙어가면서(콜록) 편집이니 뭐니 손이 많이 가는 일에 적응하기 힘들어 되도록 간단하게, 복사해서 붙여넣기하는 것만으로 올릴 수 있는 공간을 찾다 보니 브릿G가 적당하다 싶었어요. 가입에 제한도 없고.
[진산] 좌백이 처음 「들개이빨」을 올렸을 땐 ‘밀린 일 하기 싫으니까 별짓을 다하네’라고 생각했는데요. 우연한 일로 「고양이 꼬리」를 쓰게 됐죠. 좌백이 앞서 말한 이유로 브릿G에 올렸기에 저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고요. 언제 만들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마침 아이디가 있었고, 기성 작가는 따로 이야기하면 등록해준다는데 귀찮아서 그냥 세 편 올리고 정식으로(?) 등록해야지라고 생각했죠.
Q. 두 작가님께서 각각 개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발표하신 첫 작품은 「들개이빨」과 「고양이 꼬리」입니다. 「들개이빨」은 좌백 작가님께서 죽은 노숙자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개에 대한 외신을 접하고 난 뒤에, 「고양이 꼬리」는 진산 작가님께서 구조했던 새끼 고양이가 끝내 세상을 떠난 것을 계기로 집필하게 되셨다고 작품 소개글에서 밝혀 주셨는데요.
두 분의 일상이 동물들과 유대감이 깊은 환경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품 활동으로도 이어진 것일까요. 좌백 작가님 프로필을 보면 개가 등장하는 소설에 대해 구상해 오셨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각각 첫 단편을 구상하고 집필하시게 된 계기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지요.
[좌백] 개를 좋아하고, 개에 관련된 뉴스나 일화 같은 글들도 좋아합니다. 「들개이빨」의 소재가 된 브라질 노숙자와 그 반려견 이야기도 그러다가 보게 된 건데, 깊이 가슴에 울리는 뭔가 있달까… 기사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는 그 감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두고 여러 번 다시 읽곤 했어요. 그러다가 이걸 소설로 표현해보고 싶다고 느꼈죠. 일어난 일 그대로 쓰면 의미가 없고, 무협 아닌 다른 장르로 제가 잘 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무협으로 표현해 봤습니다.
개 이야기에서 사람 이야기로 넘어가는 부분에 무리가 좀 있긴 하지만 그건 문학적 비약으로 독자들이 이해해 줄 걸로 믿고(…) 써봤어요. 원래는 돈 받고 팔 생각도 없고, 책을 낼 계획도 없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책임감 없이 지르는 기분으로 쓸 수 있었다 싶어요. 의뢰를 받고 쓰는 거였으면 못 썼을 겁니다.
[진산] 좌백이 「들개이빨」을 올리고 난 후로 당신도 하나 써보라고 꼬셨는데 내가 왜 그런 귀찮은 짓을 하냐고 튕겼는데 말이죠. 우리 집 개 모모랑 산책을 나갔다가 공원에 쓰러진 길고양이 새끼를 발견해서 병원에 맡겼어요. 살아나면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날 오후에 그만 세상을 떠났죠. 짧은 시간밖에 함께 있지 못했지만, 공원의 풀숲에 힘없이 늘어져 있던 꼬리와, 그걸 모모가 냄새 맡던 순간들이 기억에 남았어요. 그게 이야기가 된 거죠.
무명 고양이를 기리며
특별히 동물과 유대감이 깊은 환경은 아닌 것 같아요. 그저 평범한 애견가족 정도? 그저 직업이 작가다 보니, 일상에서 드물지만 마주칠 수 있는 저런 일들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거죠. 동물에 감정 이입은 잘 되는 편인 것 같군요. 사람 일에 대해서는 대체로 냉정한 편인데, 이상하게 동물에는 약해요. 그 왜, 영화나 책에서 사람 죽는 장면은 시큰둥하게 보는데 동물 죽는 장면은 펑펑 우는 그런 감성이죠.
동물을 안 키우는 분들이 종종 하는 오해가 있는데, 이런 감성은 인간을 경시하고 동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일어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인간은, 타인은 나와 동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함부로 연민할 수가 없어서죠. 그에 반해 동물은 마음껏 연민하고 마음의 빗장을 풀어놓을 수 있죠. 동물 무협 시리즈는 그렇게 연민할 수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연민하기엔 각박한 세상 위에 풀어놓는다는 기분으로 썼습니다.
Q. 뿐만 아니라, 이후 발표하신 다른 작품들을 집필하면서도 영향을 받으셨던 뉴스나 사건,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애견무사」는 덩치 큰 사자개를 등 뒤에 태운 신진무사의 난감해하는 태도와 그 둘의 형상이 눈에 선하게 그려져 웃음이 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개를 데리고 강호에 나간다는 설정도 신선하고 흥미롭게 다가왔고요.
「고양이 눈」은 반려 햄스터 키키를 비롯해 세상을 떠난 동물들을 위한 추도문이라고 소개해 주셨고, 「폐허의 개들」은 주인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하는 개들의 충직함이 눈물 나게 그려집니다.
「고양이 귀」는 작은 생명들을 경시하는 인품에 대한 경고와 연대를 담았습니다. 약 2년에 걸쳐 시리즈로 발표한 작품들이다 보니 각 작품을 구상하시게 된 계기가 별도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좌백] 각 작품 앞에 붙은 진산과의 대화에서 밝힌 것과 거의 같아요.(과장은 해도 거짓은 말 안 하는 게 저와 진산의 대화죠.)
「들개이빨」을 쓴 후 진산에게 읽어 보라고 했더니 그러더군요. “실망이야. 난 동물무협 쓴다고 해서 진짜로 동물이 말하는 무협을 쓰는 줄 알았거든. 개랑 고양이가 칼 들고 나와서 얍얍 싸우는 그런 무림을 그리는 건 줄 알았지.” “나보고 동화를 쓰라는 거냐.”라며 그런 건 쓸 생각 없다고 하고 말았지만 사실 그 이후 진짜로 그렇게 쓰려면 어떤 방식, 어떤 세계관에서 가능할까 생각해 보곤 했어요.
그러다가 전통 무협의 갈래 중 하나인 신마검협소설(神魔劍俠小說)에선 그게 가능하겠구나 싶었죠. 김용에게도 영향을 준 걸로 유명한 중국 근대 무협 소설가 이수민이 쓴 『촉산검협전』처럼 신선과 요괴, 술법과 무술이 같이 등장하는 그런 세계관이면 개나 고양이가 말한다고 이상하지는 않잖아요. 「애견무사」는 그런 생각으로 썼습니다.
「폐허의 개들」은 세계관으로 따지면 그 연장선에 있지만 소재 자체는 ‘TV동물농장’에서 본 주인이 올 때까지 집을 지키며 기다리는 개 이야기들(이런 건 여러 편 있어서)에서 가져온 거고요. 원래는 주인공 개를 충견 해피 한 마리로 하려고 했는데, 진산의 조언에 따라 황구, 흑구, 백구 세 마리로 이름도 바꾸고 수도 늘린 건 역시 소설 앞머리에 밝힌 대로고요.
[진산] 고양이 이야기의 개별 집필 계기는, 단편들마다 앞에 붙은 짧은 이야기에 쓴 것과 거의 일치해요. 「고양이 꼬리」는 앞서 말한 대로였고요.
「고양이 눈」은 모모랑 산책 나갔다가 길에서 발견한 작은 햄스터 키키 때문에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소동물은 구조해도 살리기가 힘든 편인데, 키키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우리와 1년하고도 두 달을 함께 있다가 해씨별로 갔습니다. 기간으로 치자면 예전에 키우다 보낸 개들보다 훨씬 짧은데, 햄스터는 처음이었고 여러모로 각별해서 키키가 죽고 난 다음에 상실감이 굉장히 컸어요. 「고양이 눈」은 그 상실감을 스스로 달래려고 만든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보낸 동물들이 사실은 전부 영원히 죽지 않는 요마라면, 하는 이야기. 게다가 그 앞에 나온 좌백의 「애견무사」가 신마검협이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죠.
키키를 기리며
「고양이 귀」는 그야말로 어른의 사정으로 쓰게 된 건데요. 원래 좌백의 개 무협 3종과 제 고양이 무협 2종이 나왔을 때 브릿G랑 출간 계약을 했는데…… 단편이 하나만 더 있으면 책 분량이 예쁘게 나오겠다는 편집부의 압력을 받아서, 아, 한 편 더 써야 하려나 뭘 쓰지…… 하다가 쓴 겁니다. 역시 운을 맞추는 게 나을 테니 고양이를 소재로 해야 할 테고, 고양이 신체 부위 중 뭐가 좋을까, 고양이 앞발? 고양이 수염? 등등 생각하다가 고양이 ‘귀’를 떠올렸고요.
그리고 아마도 이 단편집의 마지막 수록작이 될 것 같으니 총집편을 만들어보자… 했다가 칠공주가 떠올랐지요. 무협에는 사흉이니, 십대고수니 하는 숫자 맞춘 패거리들이 있는데 우리에게도 전통의 패거리가 있잖아요? 추억의 그 이름 칠공주.
Q. 이렇게 본격 부부 합동으로 동물 무협 시리즈라는 카테고리를 처음 열게 되셨는데, 각 작품들을 연작으로 발전시키게 된 과정은 어떠셨나요? 「들개이빨」에 나오던 중년인이 「고양이 꼬리」에 연이어 등장하기도 하고, 각각의 세계관에 조금씩 영향을 주고받는 지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좌백 작가님은 개를 중심으로, 진산 작가님은 고양이를 중심으로 작품을 번갈아 가며 발표하셨는데,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등장인물들도 각각 남자와 여자들로 구분이 된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이처럼 하나의 시리즈로 엮을 때 각자 맡거나 분담하기로 논의한 지점이 있었을까요?
[좌백] 역할분담이나 논의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냥 자연발생적인 시리즈라고 할까요. 단지 앞에 쓴 서로의 작품을 읽다가 ‘아, 이거 좋네. 나도 써야지’하는 기분으로 썼지요. 물론 쓰겠다고 말하고 허락도 받습니다만.(안 그러면 혼나요.)
[진산] 장편 작업처럼 ‘일을 해야지’하고 각 잡고 시작한 일이 아니라서요. 딱히 의논한다는 의식은 없었어요. 좌백의 쓴 소설의 등장인물이나 세계관을 차용하게 된 거나, 좌백이 개를 제가 고양이를 위주로 쓰게 된 것도 의논해서 맞춘 거라기보단 그냥 그게 재미있을 것 같다 보니 자연스럽게 된 것입니다. 주인공 성별 역시 마찬가지고요.
Q. 강한 자가 살아남는 무림의 세계에서 동물들이 주요한 역할을 했던 작품들이 또 있을까요? 동물들은 약자나 조력자로만 여겨지던 부분이 많았을 것 같은데, 이번 작품집에서는 오히려 동물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진정한 무림인의 자질에 대해 고찰하는 부분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수록 작품들을 쓰실 때 기존 무협소설의 세계관과는 다른 지점에서 바라보게 된 부분이 있을까요?
[좌백] 무협의 경우 동물의 이름을 별호로 삼는 경우가 많죠. 용이나, 호랑이, 늑대 등 강하고 멋있는 쪽으로 편중돼 있습니다만. 앞서 거론한 신마검협소설의 경우 신선급 등장인물들은 백학을 타고 날아다니거나 용을 부리거나 하는 신통력을 발휘한다고 묘사되기도 하죠. 자칫하면 동화 분위기가 되기 때문에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잘 시도되지 않던 분야입니다만 근래 들어서 그런 종류의 중국번역소설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어 우리도 써볼까 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 것과는 별개로 저는 그냥 개가 좋아서 그런 식으로 써봤다…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앞으로는 다른 동물들을 소재로 한 무협 단편도 더 써보고 싶긴 합니다만 실제로 쓸지 어떨지는 그때 가봐야 알겠지요. 그리고 진정한 무림인…이라기보다 진정한 인간, 진실한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은 어떤 소재를 사용해도 제겐 늘 떠나지 않는 부분이라 이번 단편들에도 그게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진산] 무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물들은 영물인 경우가 많죠. 김용의 『신조협려』에 등장하는 신조처럼요. 제가 쓴 고양이 무협에도 비현실적인 동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대체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길가의 돌멩이처럼 살아가는 동물, 혹은 사람의 이야기였어요. 무협은 한편으로는 마초적인 영웅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약자와 소외자의 이야기일 수 있어요. 가장 고전적인 무협의 복수담은 힘없는 자가 곤경에 처했을 때 세상도 누구도 도와주지 않아 스스로 힘을 길러 목표를 성취한다라는 것이니까요.
Q. 수록 작품들 중 「고양이 귀」에는 전작과 중국 무협의 고전에서 찬조 출연시킨 인물들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다른 작품들도 포함해, 무협을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고전이나 다른 작품들을 오마주해 쓰게 된 배경이나 인물들이 있다면 그 내용과 이유를 간략히 부탁드려도 될까요.
[좌백] 고전이라기보다, 아니 이것도 고전이긴 하죠. 「애견무사」를 쓸 때는 80년대 홍콩영화인 「귀타귀」와 「영환도사」 시리즈의 영향을 짙게 받았음을 밝힙니다.
사실 거기 등장하는 강시보다 도사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죠. 제가 소설에서 쓴 대로 그 도사, 그러니까 홍콩 배우 임정영이 연기한 영환도사가 바로 모산파 도사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이거든요.
[진산] 「고양이 귀」 이벤트도 끝났으니 공개하자면, 본 시리즈 내에서 찬조 출연한 인물들은 빼고, ‘불패’는 다들 잘 아실 김용의 『소오강호』에 등장하는 ‘동방불패’ 캐릭터의 오마주고요.
화자인 ‘나’는 고룡의 『유성.호접.검』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몸담은 살수 집단의 우두머리인 고노대를 오마주한 것입니다. 고는 성씨고 ‘노대’는 중국에서 연장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말이라, 그 이름만 등장했을 때는 다들 남자인 줄 알죠. 하지만 서슬 퍼런 살수 집단의 우두머리가 실은 불리는 여성이었죠.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큰형님’이라고 불리는 흑막 캐릭터가 있는데 알고 보니 여자,였다는 식이죠. 고룡의 작품 속에서는 부정적인 인물로 등장하지만, 저는 그 인물을 좀 긍정적인 방향으로 살려보고 싶었고요.
그 외에도 특정 캐릭터는 아니지만 ‘천하제일미’나 ‘무림신녀’ 같은 캐릭터는 80년대 무협에서 수없이 반복된 여성 캐릭터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 꼬리」에 등장하는 십이는 청대의 협의소설 『아녀영웅전』의 주인공 십삼매에서 따온 이름이기도 해요. 숫자 하나만 뺀 거죠. 동시에 ‘숫자’로만 불리는 병풍 캐릭터들이 무협에는 무수히 등장하는데, 그걸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해요.
Q. 작품집 출간을 위해 교정작업을 하시면서 서로의 작품에 대해 도발적인(?) 평가를 하는 일화를 SNS에서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는데요. 책에도 실린 코멘트들도 이 책의 매력 중 하나인데, 이처럼 남들과 다른 부부 작가의 일상을 간단히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좌백] 재밌게 보셨다는 그 일화가 저희집 일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건데요… 아래와 같은 이야기죠.
작가 부부 만담(※주의: 작가만 가능. 남이 하면 혼남.)
-동물무협단편집 교정 보던 중.
진산: 내가 썼지만 어쩜 이렇게 잘 썼지. 사이사이에 시답지 않은 다른 단편들이 실려 있는 게 유일한 흠이네.(으르렁)
좌백: 나야말로 긴박감 넘치는 내 단편들 사이에 웬 쉬어가는 코너들이 끼어 있다고 생각했는데.(크르렁)
진산은 늘 제 글을 시답지 않게 봅니다만 저는 진산의 글을 인정하고, 또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에 같이 책을 낸 것에 대해서도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제 글 사이사이에 쉬어가는 코너로는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 장편이라면 저 스스로 글의 완급을 조절하려고 구성부터 다시 고민했을 텐데 이번엔 진산의 소설들이 그 역할을 해줘서 정말 다행이죠.(훗)
[진산] 부부가 작가라면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가, 둘이 서로 우아하게 문학 이야기를 하며 차를 마시는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고요. 부부 무협 작가라고 하면 ‘혹시 부부 싸움할 때 장풍 쓰시나요’라는 질문을 듣는데 쓸 수만 있으면 쓰고 싶죠.
그 누가 악평을 한들 좌백의 글은 내가 제일 잘 씹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습니다. 일종의 ‘야빠정신’이라고나 할까. 까도 내가 깐다고나 할까. 솔직히 작가들은 대부분 자기애와 자기혐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정신세계의 소유자들인데, 독자분들이 아무리 까도 작가 자신보다 심각하게 영혼의 밑바닥까지 메스를 쑤셔대지는 못할 거예요.
좌백의 작품을 읽을 때 제 느낌은 항상 그렇습니다. 아니 저렇게 소심하고 쫀쫀한 인간이 어떻게 그 쪼잔하고 편협하고 못된 인생관을 이렇게 미화시킬 수 있지??? 이번 단편들도 그렇더군요. 솔직히 시리즈 전체 세계관이 연결되는 것처럼 보인 것도 다 너그러운 내가 열심히 링크를 만들어줬기 때문이지 좌백은 그딴 거 신경 안 쓰고 자기 이야기만 다 하지 않았어요? 내가 단편집 살렸다 진짜. 하긴 자기 이야기하는데도 벅찬 사람에게 어찌 시리즈물의 디테일까지 신경 쓰기를 바라겠어요. 완결 본 것만 해도 칭찬해주고 싶네요.
Q. 진산 작가님 프로필을 보면 함께 사는 리트리버 주주를 비롯해 여러 동물들을 직접 구조하신 경험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동물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계기가 있으신지요. 또 지금 함께 지내는 반려동물들도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좌백] 결혼하면서부터 개는 늘 같이 살아온 존재입니다. 첫 반려견은 ‘요요’라는 이름의 요크셔테리어였는데, 17살까지 살다가 저세상으로 갔죠.(그보다 나중에 들어온 애들이 먼저 떠나는 동안 이 게으른 강아지는 저세상으로 가는 것도 게으름 피우며 느릿느릿 갔어요.) 그 후 몇 년은 다른 개와 같이 살 엄두도 못 냈지만 워낙 둘 다 개를 좋아하다 보니 산책코스 중엔 늘 펫샵이나 동물병원이 있었어요. 들어가진 않고 창가에서 안에 있는 강아지들을 구경하는 거였죠. 그러다가 ‘모모’를 만났습니다. 펫샵에서 안 팔리고 오래 머물러있던 까만 코카스파니엘 강아진데 그날따라 진산이 유리창 너머로 오랫동안 보고 있다 했더니 홀린 듯 안으로 들어가서…… (그 다음은 진산에게 듣기로 하죠.)
[진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비타500 박스에 담긴 까만 강아지를 안고 집에 돌아왔죠. 그렇게 모모를 키우게 됐고, ‘주주’는 작년 크리스마스 전야에 유기견 구조 요청이 트위터에 올라왔는데 마침 집 근처라 얼른 업어왔죠. 처음엔 임시 보호로 데려왔던 거예요. 실은 전에 리트리버 키우던 아이가 있었는데 가출해버리고는 영영 못 돌아왔거든요. 그 아이가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대신 온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우리가 거두기로 했어요.
햄스터 ‘키키’나, 이름 모를 길고양이 새끼 이야기는 앞에 했고……. 어릴 때부터 종종 동물을 줍는 일이 있었는데, 사실 어릴 때는 잘 살리지도 못하고 오래 책임지기도 힘들었어요. 생활의 한계상 유기동물 보호 활동 같은 걸 본격적으로는 못하지만, 제 손 아래 들어온 동물을 잘 거둬서 그들의 삶이 영위될 수 있도록 돕는 건 상당히 기쁜 경험이에요. 내가 다른 생명에게 쓸모있는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자기 위로도 받고, 무엇보다 그 동물들 때문에 즐거워요. 우리 집 식구들의 일상 화제 구 할은 개들 이야기죠. 개들 때문에 웃고 살 수 있어요.
Q. 독특하고 확고한 테마가 있는 연작 소설집을 두 분이 공동으로 내신 소회가 어떠신지요. 『애견무사와 고양이 눈』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좌백] 책을 낼 땐 늘 (이 안 팔릴 것같은 책을 겁도 없이 내준) 출판사와 (망할 길로 겁도 없이 따라온) 동료작가에게 폐나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선 망해도 혼자 망할 수 있는 단독 작품이 좋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세계, 색깔과 다른 이야기들로 책의 가치를 높여주고 세계를 풍부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공동으로 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네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라면……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그 참에 우리 주변의 작은 생물들에게도 잠깐이나마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네요. 다음에는 더 재미있는 소설로 인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진산] 이번 동물무협 단편집은 재미있는 일이었어요. 일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그때그때 생각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방식으로 엮어서 편하게 발표했고요. 출간하겠다는 제의가 왔을 때는 사실 좀 걱정했습니다. 우리는 장편 무협을 주로 썼던 사람들이고, 모양이 다 같은 책이라고 해도 시장에서는 유통방식이 달라요. 무협을 주로 내본 적 없는 출판사에서, 안 그래도 마이너한 단편 무협집이라… 과연 장사가 될까. 창작자가 아닌 사업자로서의 작가는 걱정이 안 될 수 없죠. 하지만 다양한 시도는 늘 좋은 거죠.
좌백과 공저 작업은 몇 번 해봤는데, 장편의 경우는 이가 갈리는 경험이었기 때문에 ‘결코 다시는 공저!’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이번 작업은 함께 묶이긴 했지만 공동 작업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었어요. 그냥 서로 공유 가능한 테마가 있고, 하고 싶은 만큼 서로 연결시키는 방식이니까요. 앞으로도 동물 무협 시리즈는 더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은 햄스터 키키를 주인공으로 한, 피카레스크풍 무협을 생각한 적이 있고, 무협은 아니지만 모모와 주주를 모델로 한 로맨스 판타지도 생각해봤어요. 물론 부담 없는 상황에서 쓰고 싶기 때문에 언제 쓸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어쨌든, 그런 이야기들이 계속 빛을 보려면 독자분들이 관심을 보이셔야겠죠. 부탁이라면, 많이 읽고, 많이 이야기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