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의 초상

  • 장르: 판타지, SF | 태그: #타임리프문학공모전 #시간여행 #차태훈
  • 평점×38 | 분량: 59매
  • 소개: 제2회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 빚을 갚기 위해 시간이주를 통해 시간을 바꿔가며 노동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더보기

어느 시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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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간 이주를 한 뒤 두 달 동안 생리를 하지 않았다. 시간 이주 직전 신체검사에서 임신소견 같은 건 없었다. 스트레스가 생리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건 흔한 일이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

남편과 같은 세대로 배정을 해달라고 그렇게 사정사정을 했건만. 사채업자는 그런 사람들이다. 계산기 두들겨서 숫자가 1이라도 크면 장땡이지. 같은 세대, 다른 공장에 배치가 됐다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연락이라도 닿을 테니까. 일이 복잡해졌다. 다른 세대라니! 이주 후 며칠간은 내가 그와 최소 한 세대, 즉 천 년은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눈물만 흘렀다.

만약 이렇게 헤어지게 되면 내가 태어난 세대, 태어난 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은 했지만, 그러려면 일을 멈춰야 하고, 그러면 빚은 언제 갚아. 걱정 마, 빨리 만나서 다시 일하면 되지. 언제 만날 줄 알고 기다리고 있어, 또 헤어지면 어떡해. 걱정 마, 걱정 마……. 그에겐 날 안심시키는 재주는 있었지만 현실감각은 없었다. 언제 할당량을 끝내고 다시 이주할 권리를 얻는단 말인가.

겨우 할당량을 마쳐도 그게 그와 꼭 같은 시기에 마치리라고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혹시 벌써 끝내고 날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할당량도 못 마친 채 빚을 지고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지? 그래서 그렇게 한 사람은 한 곳에 남아 있자고 했건만. 그래도 그의 목소리는 세대를 넘어서 날 안심시킨다. 걱정 마, 걱정 마…….

그는 너무 착해서 탈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들에게서 물려받은 빚이라면, 그리고 그 부모들도 얼굴도 모르는 그들의 부모들에게서 물려받은 빚이라면 우리 역시 얼굴도 모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면 되는 게 아닐까? 이게 우리가 단순히 맞벌이를 한다고 해서 갚을 수 있는 빚일까?

우리가 끝낼 수 있는 고리일까? 이렇게 하면 우리 아이들은 한 세대에 정착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부모―자식 관계는 빚 없는 사람들, 예를 들면 저기 저 사채업자들이나 가질 수 있는 것 아니던가. 남편과도 생이별을 한 마당에 아이들을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똑똑똑. 누구시죠? 숙소관리인입니다, 오늘 출근 하시나요, 출근자 명부를 작성해야 해서. 아, 가야죠, 갈 거예요.

관리인은 매일 아침 현관문을 두들기지만 그의 얼굴을 본 적은 없다. 예전 같았으면 매일 아침을 시작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관심이 있었을 법도 한데 이젠 무관심에 더 익숙해졌다. 누군가에 대한 관심이 무관심으로 응답받는 일은 작지 않은 상처다.

특히나 모두가 모두에 대해 무관심한 세상에선 더욱 그렇다. 그 역시 내가 출근을 하는지 마는지 외엔 딱히 관심이 없으니까. 그래, 잡생각 할 틈이 있으면 일해서 빚이나 갚아야지. 채무상환의 의무는 태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신성한 의무다. 내겐 내가 지지 않은 책임을 짊어질 의무가 있다.

출근길은 단조롭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지, 어떤 동물이 살고 있었는지, 숲이 있었는지 산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늘 보던 거리, 늘 보던 조경. 어느 세대를 가나 마찬가지다. 어느 세대를 가나 사람들은 어제 TV에 나왔던 화려한 옷을 입고, 신호등과 전광판 외의 것엔 실핏줄이 터져 충혈된 눈을 돌리지도 않고 공장으로 향한다.

어쨌든 시간 이주는 우리 모두에게 많은 기회를 안겨주었다. 그렇다고 들었다. 사채업자들은 자신들이 최대의 이윤을 뽑아낼 수 있는 정형화된 구조물을 모든 세대에 이식했다. 덕분에 채무자들이 다른 세대에 적응하는 데 겪는 어려움은 적었다. 또 우리에겐 일자리가 생겼고,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원래 그 자리에서 살던 원주민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우리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이번 세대에서 내가 하게 된 일은 단순하다. 기계가 하는 일을 관리한다. 다른 세대에서라고 특별히 복잡한 일을 했던 건 아니다. 나도 기계가 정확히 어떤 원리와 체계에 따라 돌아가는지는 모른다. 아기 옷을 만들어서 공동 보육원으로 보낸다고 한다.

처음 이곳에 와서 생전 처음 아기 옷을 보고 ‘아기는 저렇게 작구나’하고 놀랐다. 나 역시 이 작은 옷을 입었겠지. 천과 실과 솜을 다루는 일이어서 그런지 기계 고장이 잦아 손이 많이 간다. 그래도 다른 세대에서 했던 일들에 비하면 훨씬 상황이 좋은 편이다.

네 번째였나, 이주했던 세대에선 전 세대에서 배출되는 배설물을 모아 정화하는 일을 했다. 물론 내가 직접 하는 건 아니고 기계를 관리하는 일이었는데, 한번 고장이라도 나면 온갖 장비를 뒤집어쓰고 정화조로 들어가야 했다. 장비를 벗다가 실수로 손에 오물이 조금이라도 묻었을 때의 불쾌감이란……. 이 세대에 살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던 집, 땅, 하늘이 똥으로 범벅이 된 걸 알까?

글쎄, 어쩌면 아무 사람도 살지 않던 그런 세대일 수도 있지, 인간이 존재하지 않던 세대가 상대적으로 훨씬 많다고 들었어. 그래도 말이야, 만약에 내가 태어난 세대가 이렇게 똥으로 범벅이 돼버리면 어떡하지, 그럼 너무 슬플 것 같아.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 곳은 멋진 화분을 만들어내는 세대잖아, 걱정하지 말고 어서 자자, 오늘 하루 고생했어. 남편이 없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거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출근하셨네요, 다른 세대로 가신 줄 알았어요.”

“며칠 동안 결근했어요, 아이가 아파서. 그래도 오래 비우면 안 되죠.”

이 남자에게 아이가 있었던가? 아이를 공동 보육원에 보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유로운 사람이었나? 문득 그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거의 모든 사람이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 이따금 다른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선택을 했다기보다는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시간난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부모가 시간난민이었다. 그들은 자의적으로, 혹은 타의적으로 세대로 규정되지 않은 시대에 체류했다. 시간 이주는 공식적으로 세대, 천 년 단위로 이뤄지도록 돼 있다. 세대를 미래에서 온 사람들이 점거했다면, 세대에 속하지 않는 시대에선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사람들은 그 시대로 이주할 수 없었지만, 시간난민들은 프로그램 상 오류로, 혹은 이주 중 기계 내부에서 특수한 충격을 줘서 자발적으로 튕겨져 나가기도 했다. 이들은 빚의 굴레로부터 벗어난 것에 대해 감사하고 한동안 행복하게 지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계산기를 두들겨 노동력의 유실을 알게 된 사채업자들은 분노하여 1초 단위의 모든 시대를 수색해 제 세대로 붙잡아 왔다. 그의 부모도 그때 붙잡혔다. 그는 부모에게서 떨어져 기초교육소로 보내졌고, 난 그 곳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세대 안에 갇혀 지내던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에서 교육받았던 것들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줬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를 잘난 척한다며 무시했지만 나를 비롯한 몇몇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린 식사시간마다 모여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그가 살던 시대의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와 함께 지냈고, 그보다 이전엔 부모의 부모까지 함께 지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땐 시간 이주는 없었지만, 몇 년마다 지금처럼 집과 일을 옮겨 다녔다. 그들 역시 우리가 한 세대에 정착하길 바라듯, 한 집에, 한 일에 정착하길 바랐다. 그들도 우리처럼 더 이상 이주할 필요가 없는 곳으로 이주하길 바랐다.

“식사하세요, 오늘 메뉴는 폭찹이네요.”

“먼저 가세요.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오늘따라 기계 고장이 잦네요. 천천히 갈게요.”

“그럼 기다릴게요, 혼자 먹으면 외롭잖아요.”

외롭다는 단어가 누군가의 입에서 직접 나온 걸 들은 건 오랜만이었다. 혼자 밥을 먹는 건 외로운 일일까? 남편과 떨어진 이후 난 매일 저녁을 혼자 먹었는데, 그건 외로운 일이었을까, 괜히 눈물샘이 무거워져서 더 열심히 기계 손질을 마무리했다. 이런 시대에 남에게 눈물을 보이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아이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흔한 일은 아니니까요.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왜 어쩔 수 없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이런 시대에 남의 사생활을 캐는 건 눈물을 보이는 일 만큼이나 실례되는 일이니까. 함부로 그가 선택을 했다고, 그에게 선택을 할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했던 게 미안했다. 나 역시 어쩔 수 없었다. 난 아이를 가져선 안 됐다.

난 아이들을 책임질 수 없었다. 사채업자들은 사람 사이의 친분을 경멸했다. 하지만 그들은 에로스를 찬양했다. 그건 대체로 서로에 대한 아낌과 배려로서의 사랑이라기보다는 의무와 책임만으로 똘똘 뭉친 관계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많은 이들이 짝을 맺었고 사랑을 외쳤고 역사상 이렇게 사랑에 가득 찬 때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적었다. 우린 모두 어쩔 수 없었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 아내가 임신을 한 걸 모른 채로 시간 이주를 했어요. 아이는 예외 없이 기형아였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내 말은…… 검사를 하지 않았나요?”

“검사는 늘 오차를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확률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거기에 걸리는 사람은 생기기 마련이죠.”

“저런…….”

“기형아가 공동보육원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아니까 보낼 수 없었어요. 어쩔 수 없죠.”

할 말이 없어진 난, 그와 함께 더 앉아 있으면 내 이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식은 폭찹을 씹어 넘기고 자리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그는 왜 내게 그의 속사정을 털어놓았을까? 퇴근길엔 일부러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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