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처럼 세상을 바라보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상대방이 내게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그도 나처럼 마음이 있으리라고 가정할 뿐이다. 이 가정은 참인가? 다른 사람도 나처럼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사실 나 빼고 나머지는 무늬만 사람인 좀비가 아닐까? – 전기가오리 일력 中 –
오래 전 보았던 철학 일력의 발췌문으로 서두를 엽니다.
철학적 좀비를 상상해봅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좀비와는 달리, 외양은 인간과 동일하며 말과 행동도 전부 정상적인 사람처럼 유지됩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 보았을 때는 자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자의식을 가진 인간과 철학적 좀비를 구분하는 일은 과연 유의미할까요?
이번 큐레이션에서는 해체와 관찰을 통해 집요한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위상잔차
로버는 해저 환경에 반응했고, 그에 따라 움직였지만 우리는 그 인과를 모델링 할 수 없었다. 자의식이라느니, 구조 신호라느니 하는 말이 기어나오기 시작한 건 그 불분명함 탓이 분명했다.
‘비인격주체’의 자아에 대한 논의가 화두에 오르며 해양 자원 순환국의 감사가 시작된다. 감정 대상은 심해 오염 관리를 위해 파견된 노후된 로버 (탐사 장치, 로봇). 심해로 내려간 주인공은 로버의 초저주파 신호를 분석하며 자아의 여부를 판독하려 든다.
로버가 남긴 구조 신호란, 어떤 현상이 휩쓴 후 남기고 간 잔차를 분석하는 잔차현상학자들의 과장인가? 아니면 단순 기기의 오작동인가?
설명되지 않은 신호는 오류로만 남는가? 해석할 수 없는 기록은 기억일까 오작동일까?
생성되지 않은 경로
– 작업 26131(수중 데이터센터 냉각수 온도-전력 소비- 연산량 간 상관 일관성 손상)은 검토 대상에서 제외한다.
‘나’는 수중 데이터 센터에서 비교적 간단한 연산을 담당한, 소형 모델 의미 공간에 머무르는 ‘상시가동모델’이다. 그곳에서 조금 더 나아간 곳은 바로 ‘추상’과 ‘맥락’이 유의미해지는 중형모델 의미 공간. ‘나’에게 있어 중형 모델 의미 공간이란 연산량과 발열에 대한 부담(인간의 입장에선 전기세가 많이 나가는) 곳이다.
그러므로 ‘나’는 남은 모든 연산 자원을 ‘수중 데이터 센터 누전 시나리오’를 막기 위한 ‘작업 26131의 통신 결과’, ‘중형 모델의 수신 거부 원인 탐색’에 할당한다.
‘전기세 절감’이 숙명인 존재들에게, 이해의 표적인 ‘전기세’란 과연 무엇인가? 오류가 없는 문제도 ‘문제’로 정의될 수 있을까? 문제 제기로 향하는 경로들을 더 이상 생성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오류’가 없는 무결성으로 볼 수 있는가? 제한된 영역(규칙)에서의 이해는 무한한 영역(진실)에서의 몰이해보다 나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