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픽 검색어 큐레이션: 공기(空氣)

대상작품: <지금은 사랑에 빠지기 좋은 계절> 외 4개 작품
큐레이터: 드리민, 6월 8일, 조회 25

안녕하세요, 드리민입니다.

원래라면 2주 전에 큐레이션을 올렸어야 했습니다만, 제가 5월 내내 격주로 일주일씩 입원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리뷰단 30기 활동도 한 달에 최소 4편의 리뷰를 올려야 하는데 겨우겨우 요건을 만족할 수 있었네요. 지금은 다행히 회복하여 열심히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좀 더 규칙적으로 리뷰와 큐레이션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그럼 다시 한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공기(空氣)의 사전적 의미부터 짚어볼까요.

1. 지구를 둘러싼 대기의 하층부를 구성하는 무색무취의 투명한 기체. 산소와 질소가 약 1 대 4의 비율로 혼합된 것을 주성분으로 하며, 그 밖에 소량의 아르곤ㆍ헬륨 따위의 불활성 가스와 이산화 탄소가 포함되어 있다. 동식물의 호흡, 소리의 전파 따위에 필수적이다.

2. 그 자리에 감도는 기분이나 분위기.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어대사전

두 사전적 의미에서 추출할 수 있는 공기의 의미나 가치를 새롭게 내려본다면, “소중하다”와 “흔하다”일 것입니다. 어찌 보면 두 의미는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양립이 가능합니다.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숨을 쉴 수 없으니 살아갈 수 없고, 사회적인 의미에서도 공기를 알아채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공기는 소중합니다. 동시에, 공기는 (비록 오염되고 있긴 하지만) 지금 당장 갑자기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을 정도로 흔하고, 오랫동안 만난 사람이나 적응된 공간의 분위기라는 것은 쉬이 바뀌는 것이 아니니 흔하고 일상적이다고 느껴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공기는 흔합니다.

굳이 따지고 본다면, ‘소중한 공기’는 사전적 의미 중 1번에, ‘흔한 공기’는 2번에 더 가까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이는 우리가 호흡할 때 필요한 공기가 환경오염으로 인해 더 이상 흔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분위기를 의미하는 공기란 것은 정말 흔한 것인가요? 애초에, ‘소중하다’와 ‘흔하다’라는 그 둘 사이의 차이는 있어도 부정적인 어감은 아닙니다. 공기란 것은 정말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이기만 한 것인가요?

이번 큐레이션을 위해 여러 작품을 읽으면서 저는 그 부분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째서 그러한 의구심이 생겼는지 그 사고의 흐름을 중단편 소설 5편과 함께 보시지요.

 

1. “짝사랑처럼 선선한 공기” <지금은 사랑에 빠지기 좋은 계절> by 루블릿 작가님

선선한 밤공기를 맞으며 걷다 누구라도 눈이 마주치면 당장에라도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날씨였으니까, 무리도 아니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의 자식을 돌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그 아이로부터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을 엿보게 되는 것은 또 어떤 느낌일까요. 간질간질하면서 애틋하지만 끝내 이뤄지지 못할 짝사랑의 감정은, 향긋하지만 금세 지고 말 봄꽃의 향기를 머금은 다소 쌀쌀한 밤공기와 닮아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딘가 어긋나있는 듯한 분위기가 흐르는 작품이라는 느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분명 학생인 ‘하임’이 자신의 엄마 또래일 터인 ‘재연’을 ‘아저씨’나 ‘삼촌’ 등으로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 부른다든가, “유전자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해.”나 “내가 부모는 아니어도 그 정도 자격은 되지?”라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이유 모를 기시감 같은 것 말이지요.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는 않지만, ‘하임’의 정체가 ‘재연’이 사랑한 ‘주영’의 유전자를 베이스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인간인가 싶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게 보면, 결과적으로 조금 소름이 돋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네, 뒤이어 나올 이야기들과 결이 비슷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2. “저 세상처럼 서늘한 공기” <저 세상 텐션으로 노래하라.> by 김태민 작가님

#공기반소리반

이미 생명을 다한 명성에 기대어 운영되는 보컬 아카데미, 한참 전에 결딴난 성대로 돌아오지 않는 목소리. 얼굴 반반한 제자를 탐하는 데에만 열중인 스승, ‘명호’와 그 주변 환경은 그 퀴퀴한 냄새가 빠질 일도 없습니다. 게다가 갓 스물이 된 새 제자 ‘소진’을 탐하려 한 날부터 보이기 시작한 옛 제자 ‘지원’의 환각까지 더해지니, ‘명호’는 점점 제정신이 아니게 되어가고 있었죠. ‘명호’는 ‘지원’의 발자취를 찾아가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재회하게 됩니다.

작품 제목의 ‘저 세상 텐션’이라는 것은, 아마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듯한 목소리나 감정선 따위를 말하는 것일 터입니다. 김태민 작가님의 코멘트에 따르자면, 이것은 아무래도 재능의 영역이겠지요. 노력만으로는 개화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아주 충격적이고 우발적인 계기가 없다면 말이지요.

하지만 공교롭게도, 여기서 말하는 ‘저 세상’은 말 그대로 이 세상이 아닌 ‘저세상’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공기 반, 소리 반에서 공기가 사실상 영혼으로 대체되고 만 것입니다. 언젠가, ‘영혼의 무게는 21g이다’라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 시신 안에 갇혀 있던 공기였다는 결론이 났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영혼을 쥐어짜서 소리와 뒤섞어버린, 저세상 텐션으로 부른 노래는 서늘하고 소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3. “잿더미처럼 매캐한 공기” <1627-03-28 11:23:29> by 담장 작가님

잿더미가 든 공기를 마시고 자란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한 움큼의 잿더미가 있었다.

‘영혼의 무게 21g’가 사실 몸 안에 갇혀 있던 공기의 무게였다는 이야기를 이어가 보죠. 마녀사냥이 횡행했던 시기의 공기는 작품에서 표현되듯 마녀들을 태운 잿더미가 섞여 있을 것입니다. 한 움큼의 잿더미. 그것은 공기에 뒤섞인 마녀들의 영혼이자 다시금 그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영혼을 구성하게 될 21g의 공기 중 일부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잿더미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가 하면, 광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광기는 대체 무엇일까요. 무엇이 마녀를 마녀로 만드는 것일까요. 마녀를 태우고 난 다음의 잿더미가 곧 광기이자 마녀의 씨앗이라면, 그 속에서 호흡하며 제 영혼의 일부로 삼는 모든 이가 광인이고 마녀인 것일까요? 어쩌면 정말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광기의 특성은 지성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광기가 지목한 마녀의 정체는 소피아처럼 교양과 학식이 많은 여성이거나, 알리사처럼 자신들의 광기와도 결이 다른 불가해한 무언가에 불과했습니다. 광기에 제대로 된 논리란 존재할 수 없지만, 그들의 날 선 주장대로라면 모든 사람들이 마녀가 되는 셈입니다.

1578년에도, 1627년에도, 그리고 어쩌면 21세기에도 마녀사냥은 남아있습니다. 잿더미가 섞인 매캐한 공기는 아직도 우리의 폐부에 깊이 들어와, 우리의 영혼을 구성합니다. 광기와 불가해의 이름으로.

 

4. “가스를 들이킨 듯 독한 공기” <가스라이팅> by 금귤 작가님

신이 공기같은거라면 나는 당신을 모자른 듯이 헐떡이고 있을 뿐이다.

마녀를 끄집어내 태워 잿더미로 만드는 광기의 표면적 근거는 광신입니다. 즉, 마녀 이전에 신을 끄집어내고 헐떡이며 들이키는 것이지요. 자신에게 없는 것을 빼앗고,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배제하는 일에 그것만큼 좋은 정당화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는 어느 시점엔가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전복되어 이해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세 번 곱씹고자 다시 천천히 읽어나가자, 입안이 아리고 눈이 매캐해지더군요. 마치 가스를 들이킨 것 같았습니다. 가스라이팅의 어원이 되는, 점멸을 반복하는 가스등처럼요.

작품에서 언급되는 최면은 광신에 동치됩니다. 여자는 자기 자신을 신으로 내세움에도, 한심한 자신의 남자를 신인 것처럼 떠받들어줍니다. 그럼으로써 한심한 남자의 한심한 거짓말을, 자신을 한심한 여자처럼 매도하는 말을 신의 자비인 양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편협한 세계는 곧 깨지고 맙니다. 가스를 공기인 양 들이킨 몽롱한 정신으로 저지른 오만하고 한심한 광신은 이 사랑이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었음을 깨달을 수 없듯이요.

 

5. “영원한 사랑처럼 무거운 공기” <Love wins> by 조소영 작가님

“넌 나한테 공기같은 사람이야. 난 너 없이 못 살아.”

예전에 읽었던 작품입니다. 단문응원으로 남겼던 것대로, ‘영원한 사랑’을 꿈꾸긴 하지만 주변에서는 너무 무겁다고 하더라고요. 행복하기만 하고 기쁘고 좋은 것만 나눌 수 있는, 깊고도 영원한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이 비교적 최근까지도 있었던지라 다시 읽었을 때 감회가 새롭더군요.

다시 공기의 의미로 돌아와서, 그것은 흔한 것이지만 소중한 것이기도 해서 사라지면 세상이 멸망해 버리는 것 정도는 금방입니다. 달리 말하면, 공기처럼 흔하고 소중한 사랑이 사라지면 그 사람의 인생이 끝나버리는 것도 금방일 것입니다.

그건 광신도, 광기도, 어딘가 미쳐있는 사랑일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먼저 없어지냐, 세상이 먼저 없어지냐도 순서의 문제에 불과합니다. 원래 사랑이란 게, 공기란 게 그렇습니다. 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진 세상이라면 그런 걸 따질 새도 없는 게 당연하잖아요.

 

 

지금까지 총 다섯 편의 ‘공기’를 다룬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서양 오컬트에서, 공기는 곧 지성과 사고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는 행위는 영혼의 맥박이기도 합니다. 지성의 잘못된 사용, 사고의 결핍 혹은 과잉은 광기를 불러옵니다. 호흡을 헐떡이거나 멈추는 행위가 생명의 안정적인 영위에 위협이 되는 것처럼, 광기 역시 생명을 위협하는 공기의 저주에 해당합니다.

환경오염으로 공기가 더럽혀지는 지금, 소중한 것이지만 동시에 흔한 것이기에 등한시되는 지금, 우리는 어쩌면 ‘광기’라는 이름을 가진 공기 그 자체가 내리는 저주를 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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